사랑이 결단한다고 쉽게 되던가요? 마음을 굳게 먹고 ‘이제부터 사랑하며 살아봐야지’ 한다고 진정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던가요? 그렇게 된다고 해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 환경에 따라 기복이 심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 진정한 변화가 있지 않으면 사랑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오늘 드디어 ‘예수님의 자기소개 시리즈’ 즉 ‘7 I am series’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요한복음에는 “I am”으로 시작하는 예수님의 자기소개가 7번 등장합니다. 이 ‘7 I am’은 예수님의 신성, 인격, 그리고 사역을 보여주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부모님을 공경함으로 부모님이 축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부모님을 사랑하는 내가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자녀도 축복을 받게 됩니다. 내가 부모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 그것을 자녀가 온전히 배우게 되어서 나도 축복을 받고 나의 자녀도 축복을 누릴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한 부모 밑에 건강한 자녀가 있습니다. 그런데 건강한 자녀 위에 건강한 부모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나의 죄와 저주를 속량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은 그저 놀랍고 놀랍습니다.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너무나 귀하고 귀합니다. 이 귀한 사랑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세상에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널리 전파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 전에 7년간 함께 했던 전우들과 정든 이별을 하고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서로를 향해 칼을 들려고 합니다. 왜 이렇게 해야 했을까요? 레위기 17장 8-9절을 보면 회막에서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공동체에서 끊어진다고 했습니다…
영적 거인 여호수아가 죽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별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23-24장은 여호수아의 애정이 담긴 마지막 설교인데, 그가 가나안 정복을 할 때의 나이를 80세 정도로 추정하면, 이때 나이가 100-110세 사이일 것으로 봅니다. 23장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24장은 온 백성을 향한 설교입니다. 여호수아는 실로에서 광야생활과 가나안 정복을 함께 보낸 동역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먼저 식빵을 작은 네모 모양으로 자를 거예요. 전도사님이 식빵을 작은 네모 모양으로 자르는 동안 우리 친구들이 “사랑이 퐁퐁~”하고 외쳐주세요~이번에는 햄과 치즈를 하트 모양으로 만들 거예요. 이번에도 우리 친구들이 “사랑이 퐁퐁~”하고 외쳐주세요~이번에는 바나나와 딸기를 자를 거예요. 바나나와 딸기를 자를 때에도 우리 친구들이 “사랑이 퐁퐁~”하고 외쳐주세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우리를 구원하셨어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셨어요. 이제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들에게는 검은 마음은 없어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요…
하나님은 그 마음의 동기를 살피시고 드러내시며 거기에 나오는 행동에 따라 갚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가?’ 보다 ‘어떤 동기로 그 일을 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저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것을 종종 경험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 온 어머니와 동생들을 매우 냉정하게 외면합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예수님은 자신 때문에 다른 문제들에 휘말릴 것을 염려했을지도 모릅니다. 분명히 그러했을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가족’에 대한 예수의 이해가 오늘 우리와는 아주 달랐습니다…
교회가 지향하는 것은 ‘지역사회를 향도하는 교회’입니다. 지역사회를 섬기고 봉사하고 모범이 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이번 과에서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참된 영향력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일꾼,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메시아가 눈앞에 있는데도 왜 알아보지 못하고 그분의 말씀을 무시하고, 정죄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이 유대인들에게 열심은 있었지만 영적 분별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주제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매우 불의한 일은 항상 있었고 그럴 때마다 선한 이들이 피해를 입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악을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저는 이것을 고민하며 하나님 앞에 자주 질문했습니다…
‘구유’는 가시적 의미에서 불쌍하고 비천함의 이미지와 의미를 뛰어넘습니다. 이 기쁜 소식, 구원자 본인인 예수. 하나님이자 성자이신 아기 예수는 사람이 누이는 침대가 아니라, 사람이 아닌 존재가 누이는 구유에 누이십니다. 명백하지요. 본인이 그런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이들을 위해 오셨음을 온 천하에 드러내고 있으십니다…
사람에게만 비추는 빛이란 무슨 말입니까? 영혼을 살리는 빛이란 말입니다. 만물에는 없고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영혼입니다. 빛이신 주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은 우리 영혼을 살리려 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심히 선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의 천지창조 과정에서 보기에 참 좋았다고 여섯 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창 1:4, 10, 12, 18, 21, 25). 반면, ‘좋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신 적은 딱 한 번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