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고백은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믿음의 대상이 누구 인지에 대해서 분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믿는 그 믿음의 내용이 무엇 인지가 정확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내가 믿는 대상과 나와의 관계는 어 떤 것인지에 대한 실천적 삶이 나타나야 합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적인 건축물인 금문교는 현대 토목 건축물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입니다. 이 다리를 건축하는 건 사실 ‘실현 불가능한 꿈’이라고 불렸어요. 수면 아래 지형이 복잡하고, 강한 조류, 바람, 안개로 인해 설계과정부터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어요.
한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설교를 시작할게요. ‘친구들은 지금 행복한가요?’ 너무 어려운 질문인가요?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볼게요. ‘친구들은 행복하기를 원하나요?’ 대답할 가치가 없는 물음이죠? 세상에 행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아무도 없을 거예요.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해요(히 10:39). 그렇다면 구원 받기 위한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오늘 함께 바디매오 이야기를 통하여 구원받는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 알아보려고 해요.
(하나, 둘, 셋) 어? 여기에 카드가 들어있어요. 어떤 카드일까요? 카드를 펼쳐볼게요. 오? 카드 안에 숫자가 적혀있어요. 2021! 이 숫자는 무슨 숫자일까요? 맞아요. 하나님께서 우리 친구들에게 주신 2021년 새로운 시간이에요.
하나님은 온 우주의 창조자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세계는 창조자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겨야 합니다. 하늘의 천군 천사도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을 주인이 아니라 ‘아버지’라고 부르는 유일한 존재가 있습니다.
며칠 전 장로님 한 분이 아침에 구운 초란을 주셨습니다. 오후에는 권사님 한 분이 귤을 한 상자를 주셨습니다. 금요일 오후에는 권사님 한 분이 떡을 주셨습니다. 감사히 잘 받아서 교역자들 그리고 직원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남자들은 군 생활을 할 때 교회에 간다는 이유만으로 선임병이나 간부로부터 기합이나 욕설을 들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 가는 것이 무슨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싫어하고 욕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특별한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문화는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겸양(謙讓)의 문화가 있습니다. 겸양이란 겸손한 태도로 사양하는 문화입니다. 한두 번은 사양해야지 양반이라고 생각하고, 넙죽 받으면 가볍거나 상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싫어도 타인을 배려하느라 싫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콤 머거리지(Malcolm Muggeridge)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이며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스파이로 활동하면서 소비에트의 동향을 살피던 정치 활동가입니다. 말년에는 영국의 BBC에서 왕성한 방송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반드시 만나야 할 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 그리스도라는 길을 찾아서 그 길을 걷는데 만약 그 길이 잘못된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는 가짜의 길이라면 어떨까요? 안 될 일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어떻게 나누든지 세 가지 질문으로 수렴됩니다. 길의 문제, 진리의 문제, 생명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지나온 삶도 가만 더듬어보면 틀림없이 이 세 가지의 질문이 만들어낸 고민들로 수렴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현시대는 사사 시대와 비슷하단 생각이 듭니다. 구약의 사사 시대를 한 마디로 표현한 구절이 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 21:25)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변 나라로부터 압제와 고통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삽니다. 두 번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바라보고 여러분은 달려 나가고 있습니까? 무엇을 삶의 목표로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오늘날 인류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윤택하고 편리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정작 기쁨이라는 위대한 감정은 상실해 버렸습니다. 막스 러너의 말대로 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추 한 알이 둥글고 붉게 익는 것은 저절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그 과정에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대추 한 알이 둥글고 붉게 익기까지의 시간을 규정한다면 ‘견딤과 기다림’의 시간이라 할 것입니다. 시인은 대추 한 알에서 인생을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