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요예배 4주차

* 설교자 : 장창수 목사 대명교회

* 페이지 : 296-307

* 본문:

고린도전서 13장 4-7절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대만의 저명한 역사학자 겸 작가인 백양(栢楊)이란 분이 쓴 글에 보면 아주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 사람들의 기질과 인내에 대해서 우화적으로 표현한 글입니다. 하루는 미국인, 일본인, 중국인 세 사람 중 ‘누가 돼지우리 속에서 가장 오래 참는가’라는 내기를 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먼저 나온 사람은 미국인이었습니다. 그다음은 일본인이었습니다. 마지막은 당연히 중국인인 줄 알았는데 정답은 중국인이 아닌 돼지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중국인의 만만디 정신과 인내심이 있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여기에 덧붙여 한국 사람이 그 자리에 포함되었다면 몇 등을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당연히 1등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은 인내심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내기에는 목숨을 걸기 때문입니다.

오래 참는다고 하는 것은 늘 ‘성숙’과 ‘열매’라는 두 가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오래 참을 수 있다는 것은 성숙한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오래 참는 것은 반드시 훌륭한 열매가 그 속에 숨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바로 기다림과 인내의 삶을 살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6장 15절에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약속을 받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오래 참고 기다리며 산 사람을 소개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그들을 본받아 오래 참음으로 약속을 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히 6:12)

특히 야고보 사도 같은 경우는 인내를 최고의 성품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인내, 즉 오래 참음을 성숙의 척도 중 가장 중요한 척도로 보고 있습니다. 만약 결혼한 부부 가운데 누가 더 성숙한가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면 오래 참는 쪽이 더 성숙함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미숙한 사람은 오래 참지 못합니다. 어린이도 오래 참지 못합니다. 미숙한 사람은 늘 요동하고 불안해합니다. 성숙한 사람은 안정감을 가지며 인내합니다. 열매는 인내하는 자가 맺습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 하는 자니라” (눅 8:15)

오래 참으면 하나님의 약속을 받습니다. 성령의 열매 4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성령이 내주하는 사람은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고, 그러한 대인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 받은 증거는 ‘오래 참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구약성경 히브리어의 ‘인내’는 동사와의 결합에 있어서 3가지 의미로 사용합니다. 첫째는 감정적인 욕구나 분노 상태를 견디고 참는다. 둘째는 기다린다. 셋째는 바란다, 앙망한다, 희망한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은 너무 ‘빠름’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빨라서 좋은 것도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일처리와 관공서의 민원처리는 거의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한국이 세계 최고의 IT 산업이 발전한 것도 ‘빨리빨리’를 요구하는 한국인의 성품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특히 필자가 미국 유학 중에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부칠 일이 있었습니다. 정말 한국인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상황이 었습니다. 손님들은 뒤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접수하는 손님이나 일처리를 하는 직원이나 바쁜 것이 전혀 없는 듯해 보였습니다. 일상의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나누고, 심지어 자기 집 강아지 이야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서 아무 항의 없이 기다리며 줄을 서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신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참으로 한국은 너무도 신속 정확하게 잘 처리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쁘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정신없이 하는 경우가 많으며 신앙인으로서 기다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급하여 일을 망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인의 급한 성격은 사사로운 사회생활 가운데서도 많이 발견됩니다. 자판기 커피를 마셔도 불과 몇 초 사이이지만, 나오는 출구에 손을 넣 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택시를 잡아도 보도 아래에 내려가서 손을 벌리고 기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도 뛰어가야 직성이 풀립니다. 심지어 가장 영광스러운 졸업식에도 미리 사진을 찍고 졸업식장에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기독교의 기다림, 인내 등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기다림과 관련이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시지 못했다면 우리 모두는 멸망의 심판 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사 오래 참고 기다리십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진노와 징계가 빠르고 참지 못하셨다면 우리 인생 모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이야기입니다. 그저 하나님이 기다리고 참아주셨기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녀인 우리도, 하나님의 속성인 참고 기다리시는 모습처럼 ‘오래 참고 기다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위로는 하나님의 구원과 응답도 기다리길 원하십니다. 대인관계 속에서 참고 견디며, 심지어 고난 속에서도 ‘주를 의지하며, 맡기고’ 참고 기다리기를 원하십니다.

구약성경 시편에 보면 ‘주를 바란다’는 말이 많이 있습니다. 시편 59편 9절은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니 그의 힘으로 말미암아 내가 주를 바라리이다”, 시편 62편 5절은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시편 25편 5절은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여기에서 ‘바라다’라는 표현은 영어에 보면 “Waiting. On You I wait all the Day”로 ‘기다린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하나님께서 아시고, 도와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니 문제 앞에서 하나님으로 인해 참고, 견디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으로 인해 ‘희망’을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1. 어떻게 오래 참을 수 있을까요? 인내의 원리에 대한 말씀입니다

첫째, 소망하며 인내해야 합니다. 이것은 포기하지 말고 희망으로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기독교는 단순한 기다림이 아닙니다. 무조건 참고 견디는 고통의 종교가 아닙니다. 희망이 있는 기다림의 종교입니다. 구약은 초림 예수를 희망하며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신약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소망하며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의 삶에서도 결국은 ‘주님’ 때문에 참고 기다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야곱은 원래 간사하고 조급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한 그도 사랑하는 여인 라헬과 결혼한다는 소망으로 7년을 하루같이 머슴살이를 하며 참고 기다렸습니다.

저는 기다림과 인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과거 시대의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의 삶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우리 여인네들의 삶의 기다림과 인내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민요 ‘아리랑’입니다. 예전에 전자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이란 분이 협연한 ‘아리랑’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선정되었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민요 ‘아리랑’은 그 정서와 한을 모르면 가사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가 없습니다. 영어로 있는 그대로 번역하면 아마 이상한 노래가 될 것입니다. ‘아리랑’에서의 ‘님’은 조국, 민족, 애인, 남편 등의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만약 떠나간 ‘님’이 남편이라고 한다면 참 의미 있는 가사입니다.

‘아리랑’은 수십 절의 가사로 되어 있는데 지금도 그 가사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1절에 보면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 십 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떠나간 님에게 발병이 나 죽으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지 말라고 하는 간절한 애원입니다. 2절을 보면 도저히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가사입니다. “심심산천에 초가집을 짓고 우리님 만수무강을 빌어볼까나”라는 가사입니다. 떠나간 님을 위해 깊은 산속에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온갖 상황이 절망이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여인네들의 마음을 7절에는 “청천 하늘에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에 희망도 많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17절과 20절은 클라이맥스인데 17절은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나 날 버리고 가시는 님 가고 싶어가나”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갔겠냐, 자신도 힘들었을 테지, 상대방을 원망하지 않고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0절은 “날 버리고 가시는 님 잡지를 마오 갔다가 올 때가 더 반갑다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자식과 아내가 있는데 언젠가는 다시 오겠지, 때가 되면 반드시 올 것이다. 살다 보면 반갑게 맞이할 때가 있다, ‘언젠가는 올 것이다’라는 기다림으로 참고 기다리겠다는 다짐을 엿볼 수 있습니다. 도저히 서양적인 사고와 요즘 젊은이들의 사고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힘든 세월 속에서 우리들의 부모님, 선배들이 그렇게 참고, 인내하고, 기다리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있고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참지 못했다면 정말 가정마다 문제가 많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 어머니들은 자식들이 크기만을 기다리며 참고 견뎠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도와주시지 않으면 소망이 없고 절망일 수 있습니다. 기다려도 꿈이 없으면 좌절하거나 지칩니다. 인내는 시련 중에도 장차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소망하는 사람에게 가능합니다. 소망은 그리움입니다. 아름다운 미래와 더 나은 변화에 대한 그리 움입니다. 열 달 동안 수많은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한 임산부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오실 날을 소망하며, 고난이 찾아와도 주님이 회복시키시고, 축복해 주실 소망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3절에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꿈을 가지고 인내하십시오.

둘째, 긍정적으로 반응하라! 감사하며 인내해야 합니다.

진정한 인내는 감사하며 인내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고난이 있을 때 거기에 대한 반응을 세상 사람과 다르게 하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절은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라고 했습니다. 인생에서 찾아오는 시련은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종류도 다양합니다. 막을 길도 없습니다. 그러나 시련 앞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오히려 원망, 불평치 않고 감사로 받아들일 때 축복의 도구가 될 때가 있습니다.

존 파이퍼(John Stephen Piper)란 분이 쓴 『인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노예 해방을 위해 애쓴 ‘윌리엄 윌버포스’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국 국회의원이자 신앙인인 윌리엄 윌버포스는 아프리카의 노예무역 제도가 불법이라는 판결을 얻기 위해 46년간이나 투쟁했습니다. 1807년 법안 통과할 때까지 11번의 패배가 있었습니다. 11번의 패배 속에서도 포기하거나 낙담하지 않음을 그는 감사했습니다. 21세에서 74세까지 그는 한 번도 낙선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사건이 그를 더욱 유명하게 했고, 하나님은 실패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까지 합력하여 선을 만드셨습니다. 드디어 1807년에 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1833년, 그가 죽기 3일 전에 영국에서 노예제도는 폐지됩니다. 46년간이나 오래 참았던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오래 참음의 승리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고난과 장애물 앞에 감사하는 것은 힘듭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을 신뢰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믿으면 오히려 감사하며 오래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다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참고 기다리는 것은 시간 낭비나 손해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때도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셋째, 준비하며 오래 참아야 합니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십시오. 불필요한 것은 제거해 버리세요. 해야 할 것은 하며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불필요한 것을 인내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면 머리 아프면 약을 먹어야 합니다. 억지로 참을 필요가 없습니다. 배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합니다. 억지로 참으며 병을 키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고쳐주실 줄 믿고, 사업도 회복해 주실 줄 믿고, 인내하되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며 인내합시다

2. ‘오래 참음’의 유익은 무엇일까요?

첫째, 기다리고 참는 자는 성숙한 신앙을 갖게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삶의 초점이 하나님께로 맞춰지게 됩니다. 어떠한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며 평안을 누리는 성숙한 신앙인이 됩니다. 성숙한 사람은 전체를 볼 줄 알고 깊이를 볼 줄 압니다. 성숙한 사람은 현재 속에서 희망 있는 미래를 볼 줄 압니다. 성숙한 사람은 세상에 살지만 영원을 볼 줄 압니다.

둘째,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십니다.

이사야 49장 23절에는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다리십시오. 잘 모르거나 당황할 때는 좀 더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이 해답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경험이 없는 시골 청년이 맞선을 보면서 고급 레스토랑에 아가씨와 함께 갔습니다. 그런데 고기를 주문하는데 웨이터가 묻습니다. “고기를 어떻게 해드릴까요?” 보통은 잘 익혀 달라는 ‘웰던’이라든지 아니면 중간의 ‘미디엄’이란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청년은 차라리 아가씨에게 먼저 시키라 하고 기다리던지, 종업원이 권할 때까지 기다리든지 하면 되는데, 그만 당황한 나머지 “고기는 최선을 다해주시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차라리 조금 신중히 기다리거나 침착했더라면, 혹은 아가씨가 시킬 때까지 기다렸다면 이런 무식한 봉변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래 참는다는 것은 실수를 줄이고 수치를 면하게 해 줍니다.

셋째, 새 힘을 주십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사 40:31)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를 TLB 성경에서 보면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와를 기다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자에게는 놀라운 은혜와 새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은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께서는 ‘기다리는 자’에게 힘을 공급하십니다. 몇 번 기도해 보고 포기하는 어리석음, 몇년을 기다려보고 포기하는 어리석음 등이 우리 속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성도의 신앙은 기다림에 있습니다, 오래 참음에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10번의 대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기다릴 수 있는 새 힘을 주셨고,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종교의 자유뿐만 아니라 믿는 자에게 놀라운 은혜와 복을 주셨습니다.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에게는 놀라운 새 힘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넷째, 약속을 지키시고 복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욥 42:12)

욥은 인내함으로 그의 말년에 고난을 당하기 전보다 더 큰 복을 받았습니다. 라퐁텐(La Fontaine)이란 분의 글에 보면 “인내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 놓은 것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인내는 모든 문을 엽니다. 그러기에 시련이 와도 인내를 선택하십시오. 그것은 고통의 시간이 아닙니다. 오래 참는 시간이 길수록 더 큰 축복이 다가옴을 잊지 마십시오.

성경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다간 수많은 인물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시련의 터널을 지나왔고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하나님의 감당할 수 없는 복을 누렸다는 것입니다. 욥의 인내는 의미 없는 인내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고난과 인내를 알고 계셨기에 더 큰 은혜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오래 참음’은 성숙한 자만이 할 수 있습 니다. 성숙함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이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는 성숙함뿐 아니라 놀라운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장창수 목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 Div.)
계명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졸업(M. A.)
미국 Azusa Pacific University 졸업(M. A. R.)
미국 Liberty University 졸업(D. Min.)
총신대학교 기독교 교육학 박사과정(Ph. D.) 수료
미국 Torrance 소재 남가주 크리스천 한인교회 담임 역임
월드비전 목회자 홍보대사
대구 매일신문 칼럼니스트 역임
GMS 세계선교회 부이사장 역임
대신대학교 11.12대 재단이사장 역임
(現) 대구 CBS 운영이사장
(現) 총신대학교 재단이사
(現) 대구 대명교회 담임목사
■저서
『길라잡이』, 『성령의 열매 맺기』, 『하나님의 명령에 싸인하라』, 『성숙한 그리스도인 1, 2』, 『말씀을 따라 산 믿음의 거장들』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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