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예배 4주차

* 설교자 : 최병락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 페이지 : 246-257

* 본문:

룻기 2장 10절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룻기의 배경은 사사 시대입니다.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나오미’요 두 아들은, ‘말론과 기룐’입니다. 이들은 베들레헴의 흉년을 견디지 못해 집과 땅을 버려두고 모압 땅으로 건너갑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나오미와 아들 둘이 살아가는데, 아들 둘이 그곳에서 ‘모압’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첫째 말론은 ‘룻’과 결혼을 하고, 둘째 기룐은 ‘오르바’와 결혼해서 십 년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두 아들 모두 자녀도 없는 상태에서 죽어버리고 맙니다. 나오미의 인생이 얼마나 기구합니까? 외국에 와서 사는데, 남편과 두 아들이 다 죽고, 며느리 둘과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멀리 베들레헴의 가뭄이 회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어떻게 취급하는지를 너무도 잘 알던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모압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 재혼하고 살라고 보내줍니다. 그러자 오르바는 나오미를 떠납니다. 하지만 첫째 며느리인 룻은 대성통곡을 하면서 어머니를 쫓아갑니다. 끝까지 어머니를 따라서 가겠다고 외국으로 따라나섭니다. 이때 룻의 엄청난 고백이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룻 1:16-17)

며느리를 자유롭게 해주려는 어머니와 어머니를 끝까지 모시려는 이 갸륵한 관계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렇게 룻은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따라, 이 세상에서 차별이 제일 심한 땅으로 이민을 옵니다. 룻이 온 땅은 이방인 차별만 심한 곳이 아니라 여성차별도 심한 곳입니다. 여기에 떠날 때 두고 간 땅이 있어도 오래되어 경작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경작할 힘과 경제적 여력도 없습니다. 이런 곳에, 남편과 두 아들을 잃어버린 나오미가 외국 여자를 며느리로 데리고, 고향으로 온 것입니다.

그것을 본 베들레헴 사람들의 눈에는 그 모습이 얼마나 불쌍하고 기구해 보일까요? 그 시선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나를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세요.” 나오미의 뜻은 ‘기쁨’입니다. 마라는 ‘쓰다, 슬프다’라는 뜻입니다. 나오미(기쁨)가 마라(슬픔)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룻 1:20)

나오미는 삶만 힘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도 힘들어진 상태로 돌아왔으니 정말 위기입니다. 고향이라고 찾아왔지만,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환경에 놓였습니다. 누군가가 나타나서 이 가정을 구원해 주지 않고는 자력갱생이 힘든 절대 불능의 상태가 나오미와 룻입니다. 그래서 룻기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역사인 구속 사적으로 보았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하셨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일단 나오미와 룻의 관계를 가지고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룻이 나이 많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먹여 살리는 이야기입니다. 나오미는 자기의 힘으로 살아낼 수 없는 전적 불능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나오미와 룻의 관계에서, 룻이 예수님의 역할이고 나오미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룻이 시어머니를 어떻게 구원하나요?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먹여 살리기 위해 가장 위험한 장소로 찾아갑니다. 추수 때가 되었지만, 나오미의 집안에는 곡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오미가 이삭줍기를 하러 나갑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추수의 원칙이 있는데 추수를 해도 귀퉁이까지 베지 말고, 곡식이 떨어지면 줍지 말아서,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 고아와 과부들

이 먹을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레 19:9-10; 신 24:19-22). 룻은 이이삭줍기로 나오미를 살리기 위해서 밭으로 나갑니다.

캐롤린 커스티스 제임스(Carolyn Custis James)는 『소외된 이들의 하나님: 룻기, Finding God in the Margins, The book of Ruth』에서 룻이 이방 여인으로 이삭줍기에 나갔다는 것은 여인으로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서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나오미가 룻을 모압에 남아있으라고 간곡히 말했던 이유도 이 위험을 나타내주고, 룻이 이삭줍기를 마치고 무사히 귀가했을 때 나오미가 기뻐했던 모습도 이 위험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보아스가 이 여인이 이삭을 줍는 동안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하라는 명령도, 그 당시 이삭줍기가 한 여인이 하기에는 얼마나 위험에 노출된 행동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먹여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이삭줍는 밭으로 갔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죽이려 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영문 밖 골고다 언덕으로 죽으러 가신 예수님의 모습을 이삭줍기를 위해 남자들이 득실대는 추수 밭으로 간 룻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나오미는 룻의 목숨을 건 헌신으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추수 밭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를 나오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사하게 돌아온 룻을 보고 너무나도 기뻐합니다. 그리고 룻이 종일 있었던 일을 전해주었는데, 그가 우연히 이삭줍기를 한 밭이, 같은 친척으로 기업 무를 자 중의 한 명인 ‘보아스’의 밭이라는 말을 듣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괴롭게 한다고 나오미가 고백했는데, 그게 잘못된 생각인 것과,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룻 2:3)

룻이 이삭을 줍기 위해 우연히 이른 곳이 시아버지 엘리멜렉과 친척인 보아스의 밭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오미의 집을 살려주시려고 룻의 발걸음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우연이지만, 알고 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교회에 우연히 오신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밟는 모든 발걸음에 우연은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은 ‘우연’이라 쓰고 ‘인도하심’이라 읽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오미와 룻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나오미의 집안을 살려주시기 위해 룻의 발걸음을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가정을 살리시기 위해 그 발걸음을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룻이 밭에서 이삭을 줍고 있을 때 마침 그 밭의 주인인 보아스가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룻을 살리시기 위해 보아스의 발걸음을 인도하시고, 마음을 감동시키신 것입니다.

룻 앞에 드디어 보아스가 나타났습니다. 보아스의 뜻은 ‘능력 있는 자, 능력이 그 안에 있다’라는 뜻입니다. 능력 있는 자가 능력만 자랑하지 않고, 능력을 베풉니다. 하나님을 닮았죠.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전능하신데, 능력을 자랑하시지 않고, 그 능력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보아스의 모습이 하나님과 닮아있습니다.

룻의 갸륵한 효도의 이야기를 친척이기에 익히 듣고 있었던 보아스는 은혜를 베풉니다. 종들을 시켜 룻을 특별히 보호하고, 원하는 만큼 이삭을 주워서 돌아가게 하고, 물과 음식을 주면서 먹게 합니다. 그리고 종들에게 엄히 명하여 아무도 이 여인을 해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이 룻에게 임한 것은 ‘은혜(헤세드)’입니다. 이것을 안 룻이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룻 2:10)

룻은 보아스의 은혜를 받아 추수 밭에서 살아났습니다. 이에 멈추지 않고 보아스는 더 나아가 룻의 가정을 완전히 살려내기 위해 결정합니다. 소위 말해 기업 무를 자가 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기업 무를 자는 ‘토지’라는 뜻의 ‘고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것이 ‘고엘 제도’입니다.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레 25:25)

나오미가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엘리멜렉의 땅을 팔려고 합니다. 타인이 사갈 수도 있고 기업무를 자가 사줄 수도 있습니다. 타인이 사가면 다른 사람의 땅이 되어 그 땅에서 그 기업이 끊어지는 것이고, 기업 무를 자가 땅을 사고 다시 그 집안에 아들이 태어나면, 그 아들에게 되돌려 주는 제도입니다. 기업 무를 자가 되어 준다는 것은 자기의 재산으로 토지를 사주어야 하고, 다시 그 집으로 되돌려줘야 하는 법이기 때문에 철저히 기업 무를 자가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업 무를 자가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보아스가 기꺼이 그 기업 무를 자가 되어 준 것입니다. 마귀에게 빼앗긴 땅과 생명, 하나님의 자녀 신분까지 십자가 희생으로 모두 회복시켜주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진정한 ‘고엘’이 되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보아스가 기꺼이 기업 무를 자가 되어주기로 했지만, 그 집안에 아이가 없어 기업 무를 자가 그 과부를 아내로 맞아서 아들을 출산하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땅을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맞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룻은 이방 여인입니다. 이미 결혼을 한 적이 있는 여인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게다가 시어머니까지 거두어 주어야 합니다. 또한 그녀는 10년 이상 불임한 여인입니다. 첫아이를 낳아서 기업을 되돌려 준다고 해도, 둘째, 셋째를 낳고 가정을 꾸려서 자기 집안도 일으켜야 하는 남자로서, 불임의 여인임을 알고 아내로 맞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당시에 여러모로, 룻은 아내로 맞아들일 조건을 갖추지 못한 여인입니다. 그런데도 보아스는 그 일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아스를 통해 룻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이런 보아스에 대해서 나오미가 잘 표현했습니다.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는도다” (룻 2:20)

이렇게 보아스는 죽은 엘리멜렉의 집안과 나오미, 룻을 살리기 위해 보내진 예수님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이렇게 보자면 룻기에 나오는 예수님의 역할이 누구냐는 질문의 답은 쉽게 얻어집니다.

이제 보아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보아스는 재력이 넘치는데 나이가 많아 결혼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룻이 자기를 찾아왔습니다. 자기의 재산이 충분했기 때문에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 나오미의 재산을 다 돌려주어도 보아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보아스는 기쁜 마음으로 룻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러자 바로 룻이 임신을 하고 아이를 출

산합니다. 이것은 나오미 집안의 경사뿐 아니라, 보아스에게도 경사입니다. 십년 이상 불임이던 룻에게서 자기의 아기가 태어난 것은 보아스에게도 큰 기쁨입니다. 보아스는 재력만 있었는데, 이제는 자녀까지 가지게 되었습니다. 보아스에게도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재력과 함께 늙어가는 보아스에게 대를 이을 아들이 생긴 것입니다. 룻이 보아스의 끊어질 그 가문을 살려낸 것입니다. 이 차원에서 보자면 룻이 예수님이고, 보아스가 은혜를 입은 자가 됩 니다.

더욱 감사한 일은 그렇게 룻과 보아스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어떤 아들인지 주목할 만합니다. 그 아들의 이름을 오벳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벳이 낳은 아들이 이새입니다. 그리고 이새가 낳은 아들이 다윗입니다. 결국 보아스는 다윗의 증조할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윗의 후손에서 예수님이 나왔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은혜를 하나님은 보아스에게 갚을 수 없는 더 큰 은혜로 되돌려 주셨습니다.

묻습니다.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은혜를 베푼 것입니까?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보아스가 룻을 구해 준 것이 아니라, 룻이 보아스를 구해 준 것이 됩니다. 대가 끊긴 보아스의 집안을 룻이 살려낸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룻이 보아스에게는 예수의 역할을 감당한 자입니다.

자 지금까지 내용을 간추려봅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와 룻을 살려내는 작은 예수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룻은 보아스와 나오미를 살려내는 작은 예수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이제 나오미가 남았습니다. 그렇다면, 나오미는 은혜를 받기만 하는 사람일까요? 룻을 모압 땅에서 데리고 온 사람이 누구입니까? 룻을 보아스에게 보낸 사람은 누구입니까? 룻이 보아스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가르쳐 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오미입니다.

룻을 모압에서 데리고 나온 나오미는 출애굽의 주인공 모세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룻 한 사람을 데리고 나오기 위해 치러진 값은 너무 비싼 값이었습니다. 남편도 죽고, 두 아들도 죽고, 룻 한 명만을 건졌습니다. 우리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모습과 나오미의 모습이 닮았습니다. 나오미가 모압으로 가지 않았고, 룻을 데리고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다시 오지 않았다면 다윗의 나라는 없습니다. 그렇게 보자면, 룻을 살리고 보아스의 가문을 살리고 다윗의 나라를 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한 사람이 나오미입니다. 이렇게 룻기는 은혜의 사슬로 연결된 이야기입니다.

룻은 나오미와 보아스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보아스는 룻과 나오미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나오미는 룻과 보아스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룻기 전체가 은혜의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가장 큰 은혜의 통로가 된 사람은 뭐니 뭐니 해도 보아스입니다. 그렇다면 보아스는 어떻게 이렇게 자기를 희생하고. 이토록 큰 은혜 베푸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바로 그가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보아스의 어머니가 바로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게다가 기생이었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기생 라합입니다. 기생 라합은 여리고 성 전투에서 이스라엘 정탐꾼을 숨겨주고 살려주었던 사람으로 여리고 성이 무너져 모두 죽임을 당할 때에 그 공로로 인해 살아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남자 살몬이 이방 여인이며 기생이었던 어머니를 죽이지 않고, 은혜를 베풀어 아내로 맞이해 주었습니다. 어머니 라합이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살몬과 라합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보아스입니다. 보아스는 어릴 적부터 이방 여인인 어머니를 이스라엘 사람들이 받아 주는 것을 보고 자랐습니다. 기생인데도 사람들이 차별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자랐습니다. 보아스는 어릴 적부터 은혜가 무엇인지를 눈으로 보고 자랐던 것입니다. 어릴 적부터 동네 사람들이 보아스에게 이런 말을 했을 것입니다. “너희 어머니는 은혜를 입은 사람이야. 여리고 사람이 다 죽을 때 너희 엄마만 살려주었지. 그리고 지금은 이스라엘 사람으로 살고 있잖니. 너희 집에 임한 은혜가 너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지?”

보아스는 그것을 한순간도 잊어버리지 않고 살다가, 자기에게 이방 여인을 거둬들이는 기회가 왔을 때 기꺼이 희생을 치르면서도 룻을 아내로 맞아준 것입니다. 은혜는 은혜받은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베풀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받은 은혜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기회가 왔을 때 은혜베풀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룻기에게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첫째, 우리가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풀기만 하지 않고 동시에 은혜를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오미, 룻, 보아스가 서로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된 것처럼, 내가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것 같아도, 돌아보면 그 사람에게 받은 은혜가 더 많을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잘 큰 것은, 우리 아이가 똑똑해서 잘 큰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은혜가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 은혜 베푸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직접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불쌍한 노파 나오미와 이방 여인 룻에게 은혜를 베풀었더니, 하나님은 보아스에게 가장 큰 선물인 다윗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습니다.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맞지 않았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은혜를 베푼 보아스에게 하나님은 가장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셋째,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이 은혜를 베풀 수 있습니다.

보아스는 사람들이 어머니 라합에게 베풀어준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잊지 않았기에 룻을 아내로 맞아들이는 은혜를 베풀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늘 기억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12주 동안 은혜를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노아의 은혜, 복이 되는 아브라함의 은혜, 동행하시는 야곱의 은혜, 내리막길에서 만나주신 요셉의 은혜, 지팡이에 임한 모세의 은혜, 통곡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한나의 은혜, 죽은 개 같은 자를 살리신 므비보셋의 은혜, 주의 손이 돕는 인생 야베스, 음란한 자를 회복시키시는 고멜의 은혜, 가난한 자를 돌보시는 룻의 은혜까지 어느 곳 하나 은혜가 찾아가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바라기는 이제 이분들에게 임했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설교는 12번으로 끝나지만, 13번째 은혜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평생, 은혜 아래서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최병락 목사 

침례신학대학 기독교교육학과 졸업(B. A.)
사우스웨스턴신학교 졸업(M. Div. Biblical Language)
Dallas Theological Seminary(M. A. 성서연구과정 수학)
사우스웨스턴신학교(Th. M. Evangelism 수학)
(前) 세미한교회 Founding Pastor 및 담임목사
(現) 사우스웨스턴신학교(D. Min. 과정 중)
(現) 강남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
■저서
『다시 일어남』, 『부족함』, 『쏟아지는 은혜』, 『자라가라』, 『모든 것을 살리는 예배를 회복하라』, 『어둠 속에 부르는 노래』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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