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예배 3주차

* 설교자 : 최병락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 페이지 : 234-245

* 본문:

호세아 1장 1절-2장 1절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은혜를 입은 사람들 열한 번째 주인공은 ‘고멜’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가장 가슴 아픈 부부 ‘호세아와 고멜’의 이야기입니다. 남남이 만나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데도 부부의 사랑이 때로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보다 진한 사랑이 있습니다.

저의 어릴 적 고향에는 ‘치술령’이라는 산이 있었습니다. 그 산꼭대기에는 망부석이 있는데, 신라 시대 충신 박제상이 눌지 왕의 셋째 동생을 구하러 일본으로 갔다가 왕의 동생은 구하여 신라로 보내고 자신은 온갖 고문을 당하고 죽는데, 그 사실을 모른 채 박제상의 아내는 날마다 치술령에 올라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바위가 되어 망부석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부부이지만 부부의 사랑을 능가하는,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애틋한 사랑이 있습니다. 망부석의 이야기가 남편을 사랑한 아내의 이야기라면, 오늘 제가 소개할 이야기는 아내를 사랑한 남편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호세아와 고멜’이라는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이 남편의 애끓는 사랑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남편이 되어주신 하나님의 절절한 사랑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신랑으로 등장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 이야기를 기록한 아가서가 하나님과 우리의 사랑의 이야기이고, 예수님은 신랑, 교회는 신부로서 부부의 관계로 설명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호세아서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 관계를 친히, “내가 네게 장가들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결혼관계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호세아와 고멜의 이야기는 한 부부의 안타깝고도 감동적인 사랑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감동적이게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호세아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충격적인 말씀인데 바로 결혼 명령입니다.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호 1:2)

아무리 선지자라고 하지만 호세아도 젊은 청년으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는 꿈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하나님은 그런 한 청년의 소박한 꿈에는 관심이 일도 없으신지 시작부터 음란한 여인을 맞이하라고 결혼 명령을 내리십니다. 음란한 여자의 다른 표현은 윤락녀를 일컫는 말이겠지요. 모르고야 사랑을 시작할 수 있지만, 사랑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음란함을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아내로 맞아 결혼까지 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명령입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이 명령에 순종하고 고멜을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호세아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자’입니다. 고멜이라는 이름의 뜻은 ‘완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실 때 완전한 자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창조하신 후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감탄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흠 없고, 점 없이 완전한 자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완전한 고멜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마귀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음란한 자가 되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고 영원히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자는 신랑 되신 하나님의 말씀과, 선악과를 따먹고 영원히 네 마음대로 살라는 마귀의 거짓말 사이에서 마귀의 말을 듣고 따라갔습니다. 이것은 곧 영적인 간음이요, 하나님과 관계가 즉시 깨어져 버리는 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신랑 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마귀의 세상으로 나갔습니다. 그곳에 나가서 죄를 짓고 자녀를 낳았습니다. 죄를 짓고 자녀를 낳았으니 자녀들 모두 죄인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마치 음란한 고멜에서 난 자녀들이 모두 음란한 자녀들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포기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신부를 다시 찾아오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명령하여 자기를 떠난 고멜을 데리고 와 아내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호세아는 그 명령에 순종하고 고멜을 아내로 맞아 결혼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세 명의 아이를 출산하게 됩니다. 결혼은 그렇게 행복한 해피엔딩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고멜은 다시 음란함을 버리지 못하고 집을 나가 다른 남자에게로 가버리고 맙니다. 고멜은 남편과 세 아이를 두고, 집을 나가 다른 남자를 만나 음란한 삶을 이어갑니다. 고멜은 다시 과거의 삶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죄인으로 태어나 살다가, 신랑 되신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아 거룩한 주님의 신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세상을 사랑하여 죄를 짓고 세상으로 나가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이 고멜의 모습입니다. 집을 나간 고멜은 잘 살았을까요? 호세아에게 집 떠난 아내 고멜의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그렇게 집을 나간 아내 고멜이 이 남자의 손에서 저 남자의 손으로 노예처럼 팔리고 팔려서, 어느 흉악한 남자 밑에서 노예처럼 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소식입니다. ‘집 버리고 나가더니 잘 됐다’ 하고 싶겠지만, 사랑이 어디 그렇습니까? 그 소식이 호세아의 마음을 찢어 놓습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기에, 호세아는 고멜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아내가 있다는 그 집으로 다시 찾아갑니다. 고멜을 찾아가 보니, 어느 흉악한 남자 밑에서 노예처럼 살고 있습니다. 호세아는 그 남자에게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을 주고 아내를 찾아옵니다.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은 그 당시 노예를 찾아오는 가격입니다. 고멜이 그 집에서 노예로 살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누구의 모습이 떠오릅니까? 하나님이 싫어서 죄를 짓고 하나님의 품을 떠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까지 죄 범한 영혼을 찾아 이곳까지 오신 신랑 되신 예수님, 그리고 죄의 삯이 사망이라서 신랑 되신 예수님이 당신의 생명을 주고 나를 죄의 사슬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이 아니라, 그의 핏값으로 우리를 사서 당신의 신부로 맞아주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의 집으로 되돌아갔으나, 몇 날이 못 되어 다시 세상을 기웃거리며 그 사랑을 다 잊어버리고, 또 일주일 내내 세상에서 세상을 벗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고멜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잠시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나가서 일주일 동안 바람을 피우는 사람처럼, 그저 일주일에 한 번 주일날 교회에 얼굴 한번 보이고는 일주일 내내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고멜입니다.

이 정도 되면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를 포기하실 만도 한데, 세상에는 포기 안 되는 사랑이 있다고 했습니다. 영원히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도, 하다가 더 이상 할 수 없는 때가 오는데, 하나님의 사랑은 한이 없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찾아오시고, 또 찾아오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포기하지 않으 시는 사랑. 그러다 우리를 찾으면 아무 말 없이 우리를 업고 다시 집으로 데리고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을 떠난 고멜의 모습은 그야말로 비참한 모습입니다. 호세아는 고멜을 등에 업고,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고멜을 등에 업고 집으로 돌아가는 호세아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그게 우리를 업고 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 집으로 가자, 집으로 가자, 이런 눈물 흘리지 않는 곳, 내 아버지 기다리시는 그곳에…♬ 하나님의 등에 업힌 우리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처량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업고 가시면서 못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일 때에, 내가 그를 사랑하여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 그러나 내가 부르면 부를수록, 이스라엘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갔다. 짐승을 잡아서 바알 우상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며, 온갖 신상들에게 향을 피워서 바쳤지만, 나는 에브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었고, 내 품에 안아서 길렀다. 죽을 고비에서 그들을 살려 주었으나,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나는 인정의 끈과 사랑의 띠로 그들을 묶어서 업고 다녔으며, 그들의 목에서 멍에를 벗기고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호 11:1-4, 새번역)

우리를 업고 가시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고백이 애틋합니다. “사랑하는 아내야, 너는 나를 멀리멀리 떠나, 다른 신들 앞에서 향을 피우고 노래를 부르지만, 사랑하는 아내야, 나는 너를 포기하지 못한다. 나는 오늘도 너를 위해 포대기를 만들어 인정의 끈과 사랑의 띠로 묶어 너를 이렇게 업고 간다. 나쁜 사람이 네 목에 두른 멍에를 끊어주고, 내 가슴을 풀어 너에게 젖을 물려준다.”

이 모습이 우리를 포대기에 업고 사랑과 인정의 끈으로 묶어서 키우고, 가슴을 풀어 젖으로 우리를 키워오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남편 등에 업혀 가는 고멜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왜?’라는 말을 수백 번 하지 않았겠습니까? “왜, 나 같은 사람을 찾아왔어요?”, “왜 나 같은 사람을 포기하지 못해요?”, “포기해도 되는데, 왜? 그 비싼 값을 주고 나를 다시 샀어요?” 그때, 호세아가 고멜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원수의 손에 넘기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처럼 버리며, 내가 어찌 너를 스보임처럼 만들겠느냐? 너를 버리려고 하여도, 나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구나! 너를 불쌍히 여기는 애정이 나의 속에서 불길처럼 강하게 치솟아 오르는구나.” (호 11:8, 새번역) 그러면서 고백은 계속됩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화나는 대로 할 수 없구나.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망시키지 않겠다. 나는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너희 가운데 있는 거룩한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를 위협하러 온 것이 아니다.” (호 11:9, 새번역)

무슨 말입니까? 나는 너를 포기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내가 어찌 너를 원수의 손에 넘기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모른다며 버릴 수 있겠느냐? 버리려 해도 나의 마음이 허락을 하지 않는구나. 오히려 너를 불쌍히 여기는 애정이 내 속에서 불길처럼 솟아오르는구나. 내가 화가 나는데, 화가 나는 대로 할 수가 없구나. 나는 사람이 아니라 너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절대로 포기할 수가 없다. 이것이 너를 향한 나의 사랑이다.”

호세아는 고멜을 등에 업고 먼 길을 걸어오며 다시 이야기합니다.

“내가 그들의 반역하는 병을 고쳐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하겠다.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이제는 다 풀렸다. 내가 이스라엘 위에 이슬처럼 내릴 것이니, 이스라엘이 나리꽃처럼 피고,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뿌리를 내릴 것이다. 그 나무에서 가지들이 새로 뻗고, 올리브 나무처럼 아름다워지고,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향기롭게 될 것이다. 그들이 다시 내 그늘 밑에 살면서, 농사를 지어서 곡식을 거둘 것이다. 포도나무처럼 꽃이 피고,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유명해질 것이다.” (호 14:4-7, 새번역)

무슨 말입니까?

“사랑하는 아내야, 내가 당신 아픈 것 다 치료해 줄게. 그리고 내가 기쁜 마음으로 사랑을 해줄게. 당신을 향해 불같이 일던 분노를 다 사라져 버렸구나. 이제 당신이 나와 함께 살면서 꽃처럼 살아라. 레바논 백향목처럼, 향기로운 나리꽃처럼, 올리브 기름으로 바른 투명한 피부처럼,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유명한 사랑받는 아내가 될 거야.”

말도 안 되는 남편의 사랑의 고백을 들은 고멜이 용기를 내어 자기를 업고 가는 남편에게 묻습니다. “여보, 왜 나를 포기하지 못해요?” 호세아는 다시 한번 아내를 들추어 업고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응, 나는 당신에게 장가가던 그날 스스로 약속했지, 나는 당신하고 영원히 살기로. 내가 당신에게 장가가던 날 약속했지, 내 모든 것을 다해 당신에게 은혜를 베풀어주기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당신이 이런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등에 업혀 우리가 묻습니다.

“하나님 왜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나요?”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호 2:19-20)

“응, 나는 너에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기로 했기 때문이야. 네가 어떤 잘못을 해도, 내가 은총과 긍휼로 너를 받아주기로 작정했다는 말이지. 너는 나랑 살면 살수록, 내가 어떤 남편인지를 알게 될 거야.”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입니다. 구원자라는 이름을 가진 호세아가, 완전한 자라는 뜻을 가진 고멜을 사랑한 이야기를 우리는 살펴보았습니다. 구원자라는 호세아는 하나님께 어울리는데, 완전한 자라는 고멜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랑과 은혜란, 부족한 자를 부족하다고 말하지 않고 완전한 자처럼 대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음란했던 고멜이지만 호세아의 눈에는 늘 완전한 자처럼 아름답게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부족하기 짝이 없고 죄 가운데 살아가며, 하나님을 멀리멀리 떠나 세상만 좋아하면서 살아가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인생이지만 이런 우리를 완전한 자라 여기고 세상 끝까지 찾아와 우리를 살려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솔로몬이 생명을 다해 사랑했던 술람미 여인은 궁중의 그 어떤 여인보다도 미모가 뛰어나지 않았고, 사람들의 눈에 흠모할 것이 보이지 않았던 한 시골 여성에 지나지 않았지만, 솔로몬은 술람미 그 한 여인을 찾아서 온 정원을 헤매고 다니면서, “내 사랑하는 자여, 내 어여쁜 자여”를 외쳤던 그 사랑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이 중에 하나님께 사랑받을만해서 사랑받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구원받을만해서 구원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남들보다 나은 부분이 있어서, 이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으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크신 사랑으로 안아주시고 받아주시는 사랑 때문에 완전합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6-8)

하나님은 우리가 경건하기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고 찾아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선한 사람이기 때문에 기대감을 가지고 찾아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시고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이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경건한 자를 위해 죽어주는 이가 간혹 있고, 선한 사람을 위해 죽는 일을 혹 들어는 봤어도, 흉악한 죄인을 대신해서 죽어준 사람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기 때문에 이 사랑이 위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고멜처럼, 세상 끝에서 마귀의 노예가 되어 죄의 사슬에 묶여 지옥으로 가는 우리 인생에 주님이 찾아오셔서 그 마귀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거반 죽게 된 우리를 등에 업고 집으로 다시 데리고 가면서,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아가서의 달콤한 노래로 이렇게 노래를 불러주십니다.

“…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 구나 무화과 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에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 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 2:10-13)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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