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예배 2주차

* 설교자 : 최병락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 페이지 : 222-232

* 본문:

역대상 4장 9-10절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은혜 입은 사람들 중에 열 번째 주인공은 야베스입니다. 그가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들보다 귀중한 자라고 합니다. 형제들이 여러 명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몇 명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 중에 가장 존귀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가장 영광스러운(most honorable)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왜 이렇게 야베스가 형제 중에 존귀한 자가 되었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의 시작은 존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야베스의 인생은 시작과 끝이 완전히 다른 반전이 이야기입니다. 그의 이름 야베스의 뜻은 ‘슬픔, 고통(Pain and Sorrow)’입니다. 태어날 때 어머니가 그의 이름을 슬픔 또는 고통이라고 지어주었던 것입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의 이름을 ‘슬픔, 고통’이라고 지어줄까요? 그 이유를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대상 4:9)

그의 어머니가 야베스를 출산할 때 수고로이 슬픔과 고통 중에 낳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야베스라고 지었습니다. 무슨 슬픔과 고통이었는지 몇 가지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산통이 너무 심해서 거의 죽을 고생을 하면서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고통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또는, 어머니가 역사의식이 뛰어나서 그 당시 시대상이 암울했기에 시대의 정서를 담아서 이름을 ‘슬픔과 고통’이라고 지을 수 있습니다. 선지자들이 그런 식으로 자녀의 이름을 짓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베스의 어머니가 이런 시대상을 담아서 자식의 이름을 지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선지자나 그만한 위치에서 나라를 이끌던 여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태어난 야베스의 몸에 고통과 슬픔이 될 만한 신체적인 아픔을 가지고 태어났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태어난 아기를 보니 앞으로 신체적 아픔 때문에 겪고 살아야 할 인생이 너무나 마음이 아파, 그의 이름을 ‘슬픔과 고통’이라고 지어줬다는 것입니다. 일면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견해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가능한 유추는 야베스를 낳을 때 집안 사정이 고통스럽고 슬픔이 가득한 환경이어서 태어난 아들이 앞으로 이런 가정환경에서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고생길이 훤하다고 여겨져 그의 이름을 ‘고통과 슬픔’이라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설득력이 있는 해석으로 봅니다. 저 또한 이 견해에 찬성합니다. 야베스는 인생길 앞에서 고생과 눈물이 펼쳐진 인생으로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왜 네 번째가 가장 설득력 있는지를 조금 더 설명 드리겠습니다. 야베스의 이름을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붙여줍니다. 당시로써는 어머니가 아이의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아버지가 없을 때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야베스는 아버지 없이 엄마가 혼자 고통 중에 출산을 한 것입니다. 그 당시 상황으로는 아버지 없이 어머니 밑에서 자라야 하는 야베스의 인생길에는 고생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야베스에게 형제들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형들일까요? 동생들일까요? 형들입니다. 야베스는 막내입니다. 야베스가 태어날 때 아버지가 없었는 데, 어떻게 동생들이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야베스 전에 형들은 모두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을 때 태어났는데, 야베스 때는 아버지가 없이 어머니 혼자 수고로이 낳은 것입니다. 따라서, 가정 중에 야베스는 막내로써 아버 지를 모르고 태어난 자식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이혼을 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죽었습니다. 만약 이혼을 했다면 형들과 야베스의 양육권은 아버지가 가지고 아버지가 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머니가 키우는 것으로 봐서, 이혼이 아니라 사별입니다. 야베스를 임신하고 남편이 죽은 것같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혼자 그 힘든 가정을 짊어지게 되었고, 남편을 잃은 슬픔과 눈물로, 만삭에서도 식구를 먹여 살리는 고통으로, 그리고, 점점 커지는 산통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듯합니다. 그런 와중에 아이가 태어났으니, 그 어머니가 그의 이름을 ‘고통과 슬픔’이라는 야베스로 짓는 것도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야베스는 바로 이런 환경에서 태어났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어머니가 태어난 아기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 것 같습니다. ‘너는 왜 이렇게 나에게 큰 산통을 주면서 태어났니? 그리고 너는 지금 형들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내가 감당이 안 되는데, 또 이 세상에 나와서 나에게 고통을 더 가중시키고 있니? 나도 고통이고 너도 고통이구나…’

태어난 야베스는 어떻겠습니까? 야베스는 막내였습니다. 장자가 아니기에 아버지의 유산이 있다고 해도 막내에게까지 돌아올 게 없는 듯 보이는 집안입니다. 정말, 야베스의 인생 앞에 붙잡을만한 소망이 하나도 없이 태어났습니다. 야베스는 시작부터 고통과 눈물의 인생이었으며, 그야말로 흙수저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지, 오늘 성경은

그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좀 더 풀어서 쓰면, ‘야베스는 그의 형제들보다 존귀한 자가 되었다.’ 틀림없이 야베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야베스는 열악한 환경에서 시작하여 고통이라는 반갑지 않은 이름을 가지고 인생을 시작했지만, 그는 결국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야베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그 이유를 10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야베스의 기도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대상 4:10)

야베스의 기도는 누구나 주문처럼 외우면 야베스처럼 응답받는 기도가 아닙니다. 야베스가 하나님 앞에 절절히 드린 간절한 그 마음의 고백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봐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야베스는 어떤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한 것일까요? 그 기도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그는 가장 어려울 때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10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야베스가 하나님을 찾아간 것입니다. 야베스가 힘이 들어 하나님을 찾아갔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이것은 또한 슬픔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찾을 때는 찾아갈 이가 하나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왜 교회에 와서 운다고 했나요? 울 곳이 교회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야베스가 하나님을 찾아와 아뢰었다는 것은, 하나님 외에는 찾아갈 사람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야베스는 어려울 때 어머니를 찾아갈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더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형들을 찾아갈 수 없었습니다. 형들이 그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찾아갈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찾아갈 곳은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면 그 사람은 가장 복된 곳으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야베스는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복을 주소서. 나를 도와줄 이는 하나님밖에 없나이다. 갈 곳이 많지만, 그래도 내가 일요일에 교회에 와준다고 하는 사람보다, 아무 곳에도 갈 곳이 없어 주일에 교회 오게 된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실 것입니다. 다른 것도 많은데 하나님도 믿는 사람보다, 다른 것 하나도 없어 하나님만 붙드는 사람은 결코불쌍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찬양이 떠오릅니다.

♬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겐 주밖에 없네. ♬

야베스는 가장 힘들 때 하나님을 찾고 기도를 했습니다. 이런 말이 있죠. “넘어져도 뒤로 넘어지지 말고 앞으로 넘어져라.” 그래야, 돈이라도 줍고 일어선다는 말이지요. 우리가 넘어져도 하나님 앞으로 넘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도움을 받습니다. 다른 데서 넘어지지 말고, 하나님 앞에 서 넘어지시기 바랍니다.

아무 도움이 없었던 야베스는 하나님을 찾아가서 하나님 앞에 엎어져서 하나님께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 내게 복을 달라’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다른데 찾아가지 않고 하나님을 찾아온 그 야베스의 간절한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찾아오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은혜는 누가 받습니까? 하나님을 찾아온 사람, 하나님 앞에 엎 드리는 사람, 하나님 앞에 넘어져서 날 좀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야베스는 자기 힘으로 이 고통이라는 운명적 이름을 벗어버리지 못함을 알고, 어머니도, 가족도, 그 누구도 아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서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다.

둘째, 그는 고통 중에 하나님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고통 중에 하나님을 찾아와 엎드린 그가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 나에게는 도와줄 손이 없습니다. 어머니의 손도, 형제들의 손도, 사람들의 손도, 아무도 나의 손을 잡아주지 않습니다. 하나님, 내겐 도와줄 손이 없습니다. 하여 구하오니, 주의 손으로 나를 도와주십시오’라는 뜻입니다.

살다 보면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드는 생각 중에, 누가 한 번만 도와줬으면 할 때가 있습니다. 누가 한 번만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아주고 이끌어 준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동서남북을 살펴보아도 내 손을 잡아줄 손이 보이지 않습니다. 야베스에게는 이런 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주의 손으로 나를 도와주십시오. 제겐 붙잡을 손이 주님의 손밖에 없나이다.’

여러분, 살다가 힘든 일을 만나시거든 사람들의 손을 잡지 말고,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 주의 손으로 나를 도와주옵소서. 내겐 주님의 손밖에 의지할 이가 없나이다.’ 이러한 기도를 들으면 이 찬양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 주님이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

야베스는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의 손을 찾았습니다.

세 번째, 그가 원하는 것을 구하였습니다.

야베스는 자기의 손을 잡아주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구하였습니다. 무엇을 기도했습니까? ‘하나님 나의 지역을 넓혀주십시오.’ 야베스는 나의 지역을 넓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부동산에서 성공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잘 되는 사업, 2호점, 3호점으로 지경을 확장시켜 달라는 기도도 아닙니다. 이것은 사치스러운 기도가 아니라, 생의 끝에서 부르짖은 절박한 기도입니다. 그는 아버지 없이 태어난 막내였습니다. 집안이 고통과 슬픔 투성이니아버지가 물려준 땅도 없었던 것 같고, 설령 있어도 야베스까지 순서가 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는 공평하게 나누었다고 해도, 야베스에게 돌아온 몫으로는 생을 이어갈 수 없는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야베스에게는 살아갈 지역이 없었던 것입니다.

본문이 기록된 역대상 4장은 가나안에 입성하고 여호수아 전쟁 후에 땅을 분배하는 시대였습니다. 모두 땅을 가지는 시대였습니다. 땅이 있으면 먹고 살고, 땅이 없으면 굶어야 하는 생존의 문제 앞에 야베스는 땅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지역을 넓혀달라는 것은 욕심의 기도가 아니라 생존의 기도였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저희 집에는 논과 밭이 없었습니다. 모두 동네 사람들의 논과 밭을 소작하면서 절반은 주인에게, 절반은 우리가 먹는 소작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천성이 부지런하신 아버지는 새벽 4시면 삽자루를 둘러메시고 논으로 가 남의 논과 밭을 내 논과 밭처럼 가꾸고 소작해서 얻은 곡식으로 모으고 모아, 드디어 제 나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동네 앞에 논 네 마지기를 샀습니다. 우리 집 안방에서 논 주인과 도장을 찍고 돈 네 마지기를 처음 사던 그 광경을 저는 옆에서 보았습니다. 경상도 남자로 눈물 흘리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아버지가 그날 그 어둑어둑한 방에서 어머니를 보시면서 하셨던 말씀도 기억이 납니다. “인자, 우리도 논 주인이네…” 그 아버지의 젖은 목소리와 표정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네 마지기 논은 우리 여섯 식구의 살아갈 생존의 땅이요,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지금 야베스의 기도는 바로 이런 기도에 가깝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아무런 땅이 없습니다. 주께 구하오니, 내가 살아갈 땅을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기도를 외면하실 수 있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욕심이나 정욕에 쓰려고 잘못 구하는 기도, 죄 짓는데 사용하려고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면, 그리고 응답해 주면 타락할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응답하심을 확실히 믿습니다. 야베스는 자기 앞에 주어진 척박한 삶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고 신세 한탄, 세월 한탄만 하다가 그의 이름대로 고통과 슬픔, 눈물로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고, ‘하나님이여 나에게 살아갈 지역을 주세요’라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구하는 것을 응답해주셨습니다. 오늘 이런 기도의 응답이 여러분에게 있으시길 축원합니다.

넷째, 운명을 바꾸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의 이름이 고통과 눈물, 슬픔과 환란입니다. 그런데 야베스는 이제 그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벗어나는 기도를 하나님 앞에 드립니다.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여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자기 이름에 담긴, 슬픔, 고통, 눈물, 근심을 벗어버리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기도해서 응답받은 것이 평생 우리의 근심과 환난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오랜 기도 끝에 자녀를 얻었는데 그 자녀가 평생 부모의 근심이 되기도 합니다. 오랜 기도 끝에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 사업에 환난이 그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목회를 시작하여 선교를 떠났는데, 그때부터 목회와 선교로 부르신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건강의 문제와 재정적인 압박, 환난과 고통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역자들도 많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확신과 응답을 가지고 시작한 일인데, 고통과 환난이 잠잠할 날이 없는 경우들도 있어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야베스는 하나님을 찾아와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그가 구하는 것을 얻었습니다. 그때 야베스가 마지막으로 ‘주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이 지역이 나의 근심거리가 되지 않게 하여주옵소서. 하나님이 주시는 이 많은 복이 나의 환난의 시작이 되지 않게 하여주옵소서.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대상 4:10)

야베스는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야베스의 출생과 환경이 고통과 슬픔, 눈물이었지만, 그의 기도를 듣고 그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힘들 때 누구를 찾아가야 하는지를 아는 지혜, 누구의 손을 잡아야 하는지를 아는 지혜,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를 아는 지혜,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응답 되었을 때, 그 은혜와 복을 계속 받을 수 있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무슨 기도를 해야 하는지를 아는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이 기도로 말미암아 눈물과 고통이었던 야베스의 운명은 바뀌고, 형제 중에서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너무도 귀한 사건이었기에 역대상에 그 많은 사람의 이름을 신속하게 기록하다가, 야베스의 사건에 멈추어 그의 기도를 낱낱이 기록하고 어떤 응답을 받았는지를 기록해둔 것은, 이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눈여겨보고 그들도 이와 같은 진실 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아 응답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놓은 것입니다.

저는 오늘 야베스의 손을 잡아주신 하나님의 손이, 여러분을 붙잡아 주시기를 원합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손을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시고 잡아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손으로 도우사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넘어져도 하나님 앞으로 넘어지십시오. 급하다고 아무 손이나 잡고 도와달라고 하지 말고, 여러분을 향해 내민 하나님의 손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장 절박한 여러분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숨김없이 아뢰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 응답이 다시 환난과 근심이 되지 않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구하는 것을 응답하신 것처럼, 오늘 여러분이 구하는 것도 응답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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