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예배 3주차

* 설교자 : 김병삼 목사 만나교회

* 페이지 : 188-197

*본문 :

욥기 23장 8-10절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제일 힘든 것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요? 열심히 살아가는데 내 방향이 맞는지 알지 못할 때, 내가 살아가는 삶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을 때,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때, 때때로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의 분량이 그 정도밖에는 되지 않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려고 하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셉은 형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런 요셉에게 붙여진 별명은 ‘형통한 사람’입니다. 요셉은 참 어려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갇힌 그였지만, 늘 ‘형통함’이라는 수식어가 따릅니다. 그에게 형통함이란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주의 임재 가운데 있는 삶이었습니다. 요셉은 노예 로 팔려갈 때도, 감옥에 갇혀 있을 때도 애굽의 총리를 꿈꾸었던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요셉이 총리가 되었기 때문에 그의 삶이 형통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착각입니다. 요셉은 총리가 되었기 때문에 형통한 사람이 아니라, 형통한 삶을 살아가다가 총리가 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문제없는 삶을 형통한 삶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인생을 살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다 인생의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문제없는 인생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안고 사는 가운데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문제없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형통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욥 23:8-9)

욥이 얼마나 막막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까? 얼마나 답답합니까? 그의 인생에서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니 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 중에도 욥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여전히 예배하는 사람이었으며, 그의 친구들이 집요하게 그를 괴롭힐 때에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것의 유익이 무엇일까요? 묵상의 유익은 우리가 인생의 모든 것을 이해하거나 알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삶을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 23:10)

오늘 본문 말씀 10절에 ‘단련’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NIV 성경에는 ‘Test’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에서 ‘시험’은 ‘단련’과 동일한 말입니다. 시험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 인생이 순금처럼 제련되고 정결해집니다. 뜨거운 불에서 하나하나 더러운 것들이 떨어져 나가고 거짓된 삶이 드러납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 감독하는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을 보세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와서 당당하고 신나게 답을 쓰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문제는 보이는 데 답이 보이지 않아 고민하거나 긴가민가해서 알쏭달쏭해 하는 학생도 있을 것입니다. 또 아예 시험을 포기하고 답안지에 1자를 칠하고 잠을 자는 학생들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학생들을 보며 시험장에서 감독하는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이 끝난 후에야 답을 확인해 틀린 것과 맞는 것을 확정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시험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단련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욥의 고백은 그가 시험 중에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께 물었고, 답답하지만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깨닫습니다. 지금 연단의 시간을 걷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욥의 고백은 지금 가는 길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단련하고 계시니, 이후 ‘순금같이’ 나올 자신을 기대하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라는 말씀을 묵상하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일상의 변화를 꿈꿉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묵상은 일상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묵상은 우리의 일상 가운데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묵상은 어떤 특별한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의미 있고 복되게 만드는 일입니다. 일상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욥 23:8-9)

하나님은 앞에서도 일하시고, 뒤에서도 일하십니다. 하지만 욥이 그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욥은 왼쪽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오른쪽으로 돌이켜봐도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이 존재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하나님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가끔 TV 프로를 보면 스포츠 ‘하이라이트’가 나옵니다. 축구는 현란한 개인기로 골을 넣는 장면, 야구는 결정적인 순간에 홈런을 치거나, 환상적인 수비를 하는 장면, 당구는 개인의 기록인 ‘하이런’을 치는 장면, 미식축구에서는 환상적인 패스와 캐치 그리고 터치다운, 농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높이로 덩크 슛을 하는 장면 같은 것이죠. 이런 장면은 주인공들에게도 일생에 한 번뿐일지 모릅니다. 이 모든 결정적 플레이 뒤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패스가 있었고, 평상시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겠지요.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인물들과 믿음의 선배들을 보며 어떻게 이렇게 위대하게 살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 눈에 보이는 위대한 결단과 장면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끊임없이 하나님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이라이트가 아니라 그 전에 있었던 삶을 보아야 합니다.

묵상의 가장 큰 유익은 묵상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할 때 우리의 삶에 기대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대가 깨지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믿음을 가지게 되는 명확한 증거는 우리의 시간과 계획이 ‘하나님의 계획과 때’로 바뀜을 감사하며, 그것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함이 아니라 가장 확실한 믿음의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입니다. 기다림은 지루한 것입니다. 그러나 묵상하는 자들은 가장 확실한 믿음에 근거하기 때문에 기다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이끌어 가시며 우리의 인생에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그분의 약속과 말씀을 붙들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지루함이 아니라, 소망의 항구로 우리를 끊임없이 이끌어가는 원동력입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꽤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서조차 기다림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누가복음 1장에 나오는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친족입니다. 이들을 통해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세례요한이 태어납니다. 그때 천사가 사가랴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너에게 아이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사가랴는 그의 아내 엘리사벳과 함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천사의 메시지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메시아의 탄생을 고대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너에게 자식을 주겠다”라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믿음에는 내가 믿는 것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 믿음을 점검해 보아야 하는 포인트가 여기에 있습니다. 묵상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할 때 우리에게 가장 큰 유익은 내가 믿는 믿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가며, 오늘 욥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도 그가 나의 길을 아시기 때문에, 나를 단련하신 후에 순금같이 만들어내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소망을 놓지 않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진정한 기대가 없는 믿음은 허망한 것입니다.

묵상의 유익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 능력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말씀 안에서 내게 새롭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말씀과 함께 살아가기 시작할 때, 그 안에서 하나님의 손길이 보이고, 그 손길이 보이기 시작할 때, 일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뮤지컬을 볼 기회가 종종 있습니다. 뮤지컬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음악도 좋지만 무대의 변화와 무대 장치가 참 놀랍습니다. 지난해 뉴욕에서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뮤지컬을 보면서도 그랬습니다. 오페라의 유령의 말과 노래가 놀랍게도 무대 여기저기서 신비롭게 들립니다. 무대 뒤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묘한 음색으로 관객들에게 들리는 것이죠. 배우들 은 무대 장치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곳에서 여전히 똑같이 노래합니다. 그러나 뮤지컬 안에서 다채로운 소리와 효과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은 무대 장치를 준비한 감독의 손길에 의한 것입니다. ‘기다림과 기대’는 바로 무대 뒤에서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생각하며 느끼고, 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분명하게 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렘 29:11)

“결말을 알면 겁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영화 제작자의 인터뷰에서 보았던 인상적인 내용입니다.

Q. 관객들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변화무쌍하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것이 참 흥미롭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스토리를 전개해 나갈 수 있을까요?

A. 그건 간단합니다. 마지막 결론 장면을 정해 놓은 게 제일 먼저입니다. 그다음부터는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영화를 만들어갑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닫고 동행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기대를 갖습니다. ‘기대’는 이미 정해 놓으신 하나님의 계획을 믿으며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의 최후 승리와 악의 심판을 믿습니다. 우리는 결국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으리라는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 선하신 분임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우리 삶이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늘 ‘기회’가 찾아옵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을 묵상하는 삶이 아니라면 그 기회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오는 것인지, 아니면 사단이 우리를 유혹하려는 불의한 방법인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진 삶은 우리의 욕망으로 인해 늘 서두르며 하나님의 계획과 때를 기다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자, 그리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는 자가 가지는 믿음의 특권이란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가장 정확한 순간에 정확한 방법으로 역사하시며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신다!”

마지막으로, 새해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위해 우리가 함께 지켰으면 하는 세 가지 원칙을 정리해 봅니다.

원칙 1: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옳은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장애는 ‘좋은 것’이 보인다는 것이죠. 조금 손해 보는 것 같고, 조금 더디 가는 것 같아도 약속을 소중하게 여기고 지키는 신실함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가치와 욕심으로 인해 약속을 깨거나 신실함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묵상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은 우리를 빠른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 아니라 ‘옳은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원칙 2: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자연스러운 욕망이 있습니다. 욕망은 우리가 가진 본능에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욕망대로 살아가면 죄를 짓습니다. 우리의 욕망을 억누르고 하나님의 길을 가게 만드는 것이 ‘묵상’입니다. 욕망을 이기고자 할 때, 손해 보는 것처럼 느낄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참 바보같이 보이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 가장 치열했던 싸움은 ‘욕망’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나 쓰실 수 있지만 아무나 쓰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씀 앞에서 자신의 욕망을 누를 수 있는 자를 쓰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화’는 이런 것입니다. 처음에는 의무적으로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어느새 우리가 하고 싶은 일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원칙 3: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 말씀이 나를 세워주는 날이 옵니다.

‘신앙인’은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이 가장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이 됩니다. 우리가 말씀의 원칙을 하나씩 지켜나가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때에는 주변의 사람들이 그 원칙을 세우고 살아가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불현듯 그 말씀이 우리를 지켜주고, 지지해주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김병삼 목사 

감리교신학대학 신학과 졸업
감리교신학대학 대학원 졸업 (역사신학 전공)
미국 Garrett-Evangelical Theological Seminary 졸업(M. Div.)
미국 오하이오 United Theological Seminary 졸업(D. Miss. 선교학 박사)
하늘다리호스피스 이사장
(사)월드휴먼브리지 대표
(現) 만나교회 담임목사
■저서
『주님은 나의 최고봉 묵상집』, 『올라인교회』, 『텅 빈 경건』, 『기도의 불을 켜라』, 『치열한 도전』, 『치열한 순종』, 『치열한 복음』, 『살아내는 약속』, 『교회가 이 땅의 소망입니다』 외 다수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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