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요예배 4주차

* 설교자 : 장창수 목사 대명교회

* 페이지 : 308-318

* 본문:

고린도전서 13장 4-7절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여러분은 만약 여러분들의 배우자가 여러분들을 배신하고 나라에 간첩이라고 신고를 하면 그 배우자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제 자신에게 물어봤습니다. ‘용서할 수 있을까?’ 용서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슬라보미르 라비치’의 저서 『웨이 백』은 1956년에 출간된 책으로, 영어로는 『The Long Walk』라고 소개되었고 몇 년 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이 책은 바로 ‘슬라보미르 라비치’라고 하는 사람이 실제로 겪었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참 사연이 감동적이면서도 안타깝습니다. 그 글은 한 여인이 나치스의 회유와 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남편을 간첩으로 고발하는 장면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렇게 아내는 간첩으로 남편을 고발하여 남편은 체포가 되어 끌려갑니다. 그가 끌려갔던 곳은 가장 악명이 높은 최악의 수용소인데 ‘시베리아 캠프 105’라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그는 25년 형을 받고 하루도 살 수 없는 수용소 생활을 시작합니다. 참지 못하고 그는 6명의 수감자와 함께 탈출을 감행합니다. 그는 시베리아에서 상상할 수 없는 폭염이 있는 고비 사막을 지나고 히말라야산맥을 건너서 11개월 동안 장장 6,500Km를 도망갑니다.

글에 보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고 그가 이렇게 탈출을 감행한 이유를 글에서는 이렇게 소개를 합니다. ‘나는 바로 아내를 만나기 위해서다.’ 여러분들의 생각에는 이 정도의 이야기라면 자기를 간첩으로 신고하여 자기의 인생을 망쳐버린 아내를 죽여 버리기 위해서 복수하기 위해 아내를 만날 것이라고 추정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글에는 ‘내가 오직 나 자신을 배신한 아내를 만나고자 하는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라 아내에게 꼭 3가지를 말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나는 당신을 이해한다”라고 해주고 싶다. 당신이 나를 간첩 혐의로 고발했지만 얼마나 당신이 힘들었으면 그렇게 했을까? 나는 당신을 이해한다. 두 번째는 “그렇게 나를 간첩으로 몰고 고통 속으로 몰고 갔던 당신을 나는 용서한다.” 세 번째는 오늘 설교와도 관련된 특히 본문의 단어와 같은 단어가 나옵니다. “나는 당신이 내게 했던 일을 생각하지도 않고 기억하지 않는다.” 아내를 만나 이 이야기를 해 주고 싶기 때문에 탈출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탈출에 성공하여 나중에 영국에서 건축가로 살다가 2004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행한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악한 계획을 하거나 보복을 하지 않는다는 뜻도 있습니다. 필자는 ‘슬라보미르 라비치’라고 하는 분의 삶을 보면서 그가 아내에게 한, 이해하고, 용서하고, 과거를 잊어버렸다고 하는 3가지의 말이 바로 성도들이 행해야 하는 사랑의 모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 사랑의 속성 가운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할 때 ‘생각하다’라는 단어는 여러분들이 종종 들었던 말입니다. 헬라어 ‘노기조마이’라고 합니다. ‘숫자를 센다, 계산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생각한다는 것은 ‘내가 악한 것을 계산하고 있다. 네가 나에게 악행을 했던 것을 전부 장부에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악한 계획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원문의 의미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악행을 베풀고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모든 것을 나는 계산하지 않는다. 나는 숫자를 세지 않는다. 기억하지 않는다’는 뜻이 바로 본문의 뜻입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아가페적인 사랑의 특징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한 저와 여러분들이 해야 할 사랑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후 5:19)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아니한다’라고 할 때 원문에 ‘노기조마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계산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습, 우리의 허물과 하나님께 상처를 입혔던 것들을 하나님은 계산하지 않으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한 죄악들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온갖 우상숭배와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상처를 드리고 늘 하나님에 대하여 원수 되었던 우리의 죄를 계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 이런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니 너희도 이렇게 해라. 내 마음이 온유하니 너희도 온유해라. 내가 너희를 이렇게 사랑했으니 너희들도 어렵지만 이러한 사랑을 해라. 악한 것을 생각지도 말라.”

본문에서 ‘악한 것을 생각지도 말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다른 사람이 나에게 행한 악행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고린도교회의 배경이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장점도 많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교회 안에 사랑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분파가 나누어져서 싸운다는 것은 결국은 깊이 들어가 보면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으로』라는 책에 보면 ‘이 땅 모든 문제의 뒤에는 사랑의 결핍이 있다.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에 온갖 세상의 문제가 발생한다’라고 합니다.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자기들이 똑똑하여 분파를 나누어 싸우는 그 이면에 타인을 향한 사랑의 결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은사도 많았습니다. 방언하는 사람도 많고 예언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 속에는 온갖 은사로 가득 찼지만 사랑이 없기에 교회는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파, 게바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그렇게 나누어 싸우면서 얼마나 그들은 서로가 서로 간에 악행을 기억하고 그것을 갚아주는지 모릅니다. 주로 당시에 교회가 하는 일이 크게는 성도의 교제와 예배, 두 번째는 전도와 선교, 세 번째는 구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들이 구제를 할 때, 사랑의 마음으로 정말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이익에 따라서 자기가 받은 대로 남에게 갚아주는 이상한 구제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도 정확하게 구제가 집행이 되지 않아 서로 분파별로 나누어서 감독을 했다고 합니다. 바울파가 구제품을 나눠주면 정말 어려운 사람은 주지 않고 자기 바울파 사람들에게만 구제를 합니다. 다음 달에 게바파가 되면 게바파는 게바파에게만 주고 다른 데는 “너희들도 우리에게 그랬잖아”하며 자기들의 밥그릇만을 챙기고 남에게 베풀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되어 그 고리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해서는 어느 한 사람의 희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기억하지 않고 용서하거나 스스로 자비의 손길을 내미는 수밖에 없습니다. 내게 순서가 왔을 때 너희들까지 돕겠다고 결단한다면 그 악순환은 끊어집니다. 루이스 B. 스미스는 ‘사랑은 원한을 품지 않고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기억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원한을 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회 특히 성도들 가운데 ‘여자가 한을 품으면 서리가 내린다’라는 말은 사라져야 합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책에는 원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원한은 우리 기억의 예민한 점막에 남은 과거의 분노이다. 그것이 현재의 분노로 자라나는 과거의 상처이다. 특히 작은 상처의 기억들이 큰 원한이 된다.’ 예민한 점막이라는 것입니다. 굉장히 그 부분에 사람들은 원한을 품고 예민하다는 것입니다.

원한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원한은 사람을 겨누고 있기에 위험합니다. 여러분들의 그 원한은 사물이나 다른 부분에는 원한을 가지지 않습니다. 이상하리만치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꼭 사람에게만 원한을 가집니다. 두 번째 원한은 상처의 기록을 기록하고, 보유하고, 보관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독특하게도 사람들은 그것만큼은 가슴에 새기고 이것을 꼭 감춰놨다고 기록해 놓습니다. 그리고 이 원한을 언제까지 보관하느냐 하면 갚아 줄 때까지 합니다. 세 번째 상처를 주었던 것에 비해 과장되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은 자기가 받은 상처가 과장되어 있습니다. 이 원한은 상처를 주는 당사자에게는 기억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사소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상처를 너무 오래 기억하지 마십시오. 더 슬픈 현상은 ‘원한은 원한을 준 사람이 아닌 원한을 품은 사람을 죽인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님이 아시기 때문에 “너희들은 어떤 경우에도 악한 것을 생각하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지금까지의 삶 속에 여러분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고 악하게 행했던 그 어떤 것도 빨리 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비결입니다.

두 번째로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절대 ‘상대방에 대해 악평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도 ‘본문 말씀 자체가 악평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라고 주석을 답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들을 나쁘게 말하거나 판단하는 성향을 버리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을 가장 선하게 생각하고 보는 마음의 성향이 사랑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상대방의 약점과 악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믿음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허물을 들추어 발견하지 마세요. 악평하는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대부분의 악평은 객관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악평은 자기 기준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객관적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악평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상

태를 보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상처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악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과 외모를 보고 이야기할 때도 많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외모 지상주의로 인하여 외모에 대한 악평이 많습니다. 대부분 자기 기준으로 외모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양귀비 그림을 보신 분이 있나요? 세계 미인이라 하면 양귀비라 할 수 있는데, 중국에서 양귀비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양귀비 눈이 저의 눈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얼굴이 통통하고 몸매가 역삼각형이었습니다. 시대의 기준과 객관적인 기준보다는 자기 기준으로 미모를 설명합니다. 악한 것만을 보고 악한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악한 것만 보입니다. 그리고 악평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소문내는 일에 앞장을 섭니다. 그러나 문제는 악평을 할 때 더 추가하여 악평을 하게 됩니다.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는 마귀의 특징이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마귀의 자식들은 거짓을 지어 말하므로 마귀와 똑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남을 악평하는데 그대로 악평합니까? 더 추가해서 악평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바로 죄입니다.

여러분은 악평하는 입을 닫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내가 악평하는 것이 아니라, 악평하는 그곳에서 피하거나 소문내는 것을 중단시켜야 합니다. 내 앞에서 악평하지 말라고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함께 하며 하나님의 집에 거할 하나님의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정직하게 하는 자,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시 15:3)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산에 거할 자입니다. 또한 야고보서 4장 11-12절에서는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 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라고 말씀합니다. 너희가 이웃을 판단할 자격이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1절에서도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라고 말씀합니다. 악평을 중단하고, 악평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악한 보복이나 계획을 생각하지 않고, 실행에 옮기지도 않는 것’을 말합니다.

원한은 상대방이 자신의 잘못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한은 앙갚음을 할 때 자신이 만족스러울 정도로 상대방이 상처받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너도 내가 당한 만큼 당해야 된다’는 것이 바로 원한입니다. 또한 원한은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고통을 상대방이 더 강하게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내가 당한 고통보다 더 심하게 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보복이나 악한 계획을 가지는 것은 그리스도인임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만일 누구를 향하여 보복하는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이 당하는 고통보다 더 강하게 고통받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4장 2절에서는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제레미 킹슬리(Jeremy Kingsley)는 『낮은 마음-하나님이 주목하시는 낮은 마음』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문제와 단점과 문제를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또 상대방에게서 상당한 여지를 남겨두는 것을 말한다. 상대방의 악한 행동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고, 그의 단점과 문제를 받아들일 여유가 있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보복하거나 상대방의 원한을 품는 사람의 특징은 집착하는 데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인가에 원한을 품거나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단순히 미운 정도가 아니라 그 문제만을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그것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집착하다 보면 집착의 노예가 됩니다. 그래서 그 집착은 ‘쓰레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착하고 집착하는 자체가 쓰레기라는 것입니다.

태평양의 서사모아 제도에 가면 폴리네시아인이라는 분들이 사는데, 매우 이상한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개인이나 가정에 누가 자기에게 상처를 주거나 피해를 입히면 자기 집 추녀에다가 붉은 천을 걸어 놓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보복하고 그 문제로 상대방이 똑같이 공격을 당할 때까지 그것을 걸어 둔다고 합니다. 우리도 어쩌면 이 붉은 천을 마음에 걸어놓고 있지 않습니까? 나에게 상처를 준 수많은 대상들, 나에게 행한 악행들을 붉은 천으로 수없이 걸어 놓지는 않습니까?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상처받고도 보복하지 않는 사람의 편이 되십니다. 그분을 높이 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우리에게 너희들이 다른 부분은 몰라도 악행에 대해서만큼은 불능 상태가 되라고 이야기합니다. 불능은 무엇일까요? 아무것도 못하는 것입니다. 악한 일을 생각하지도 않고, 악한 일을 도모하지도 않고, 악한 일을 추진하지도 않고, 악한 일을 기억하지도 않는 상태,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한 분의 바로 이러한 아름다운 삶을 소개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가수 가운데 노래 잘하는 인순이라는 가수가 있습니다. 가수 인순이는 여러분이 아시는 바대로 혼혈인입니다. 그는 1957년 경기도 포천에서 흑인 미국 군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 엄청난 고통 속에 살았던 그는 동네 아이들이 자기에게 돌을 던지고 침을 뱉고 인간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 되면 그냥 무책임하게 딸만 낳아 놓고 버리고 간 미국인들과 군인들이 원망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런 그는 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정확한 그의 학력은 중졸입니다. 중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까지 있습니다. 바로 그 인순이가 최근에 『딸에게』라는 책을 썼고, 그전에 자기 자서전을 쓴 적이 있는데, 그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에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하고 소문이 나자, 미국 국방성에서 그가 미국 군인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는 미국 군인들에게 공연을 해 달라는 부탁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인순이 자신이 오히려 부탁을 합니다. 흔쾌히 공연을 해 드리겠는데, 이번에는 한국에 나와서 근무를 했던 주한 미군들 중에 은퇴를 하신 연세 많으신 분들, 한국전에 참여하신 분들을 많이 참여시켜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왔습니다. 그때 정성 들여 공연을 하고 그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들은 모두 내 아버지이십니다. 나는 당신들의 딸입니다. 나와 같은 딸을 둔 것 때문에 너무 죄책감이 들거나 가슴 아파하지 마십시오. 나는 당신들의 사랑 때문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절대 불행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나는 정말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저는 이 말을 여러분들에게 하려고 오늘 여기까지 왔습니다. 나의 아버지들이여, 진심으로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배우지도 못하고 온갖 고통 속에서 살아왔던 불쌍한 한 여인이 그들에 대해서 악평하지 않습니다. “당신들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당신들 때문에 내 삶은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순이를 위대한 가수로 자꾸 세워주시는 것 같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하며 우리 모두가 정말 힘들지만, 악한 것을 생각하지 맙시다. 악행을 기억도 하지 맙시다. 남에 대해 절대 악평하지 맙시다. 우리들의 삶에서 어떤 악한 계획도 하지 마시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본받아 그러한 주님의 아가페 사랑을 힘들더라도 실천하는 저 자신과 모든 성도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장창수 목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 Div.)
계명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졸업(M. A.)
미국 Azusa Pacific University 졸업(M. A. R.)
미국 Liberty University 졸업(D. Min.)
총신대학교 기독교 교육학 박사과정(Ph. D.) 수료
미국 Torrance 소재 남가주 크리스천 한인교회 담임 역임
월드비전 목회자 홍보대사
대구 매일신문 칼럼니스트 역임
GMS 세계선교회 부이사장 역임
대신대학교 11.12대 재단이사장 역임
(現) 대구 CBS 운영이사장
(現) 총신대학교 재단이사
(現) 대구 대명교회 담임목사
■저서
『길라잡이』, 『성령의 열매 맺기』, 『하나님의 명령에 싸인하라』, 『성숙한 그리스도인 1, 2』, 『말씀을 따라 산 믿음의 거장들』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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