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부 설교

* 설교자 :  최정훈 목사 부천동광교회(둥근교회 담당)

* 페이지 : 332-339

*본문 :

여호수아 7장 1-7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1. 위기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능력은 밤을 새우며 일하는 ‘열정’이 아니라,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얼마나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는지를 알 수 있는 ‘위기 대처능력’이라고 합니다. 어떤 학자는 코로나19 위기를 발 빠르게 해결하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할 절호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신앙은 어떠한가요?

비대면 예배가 길어지면서 여러 청년들이 말합니다. “더 빌리빙으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대면 예배가 제한되고, 교회 내에 소모임이 줄어들면서 지금은 신앙 자체를 유지하기도 벅찹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그리스도인에게 예배와 나눔이 멈추었다는 것은 큰 위기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의 위기 앞에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2세대 백성들은 어떻게 극복하고 이겨내는지 더 빌리빙 세 번째 시간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위기를 맞이하면 4가지 유형의 형태로 반응합니다.

첫 번째는 그 문제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행동이죠. 나에게 찾아온 문제 앞에 누군가 해결하겠지 하고 회피하거나,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유형은 남 탓입니다. 아이들이 자주 하는 방법인데, 원인을 나에게서 찾지 않고 주변에서 찾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문제를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됩니다.

세 번째는 그 문제에 적응하는 것입니다. 계속 그 문제가 반복되면 이미 엎질러진 물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며 받아들이게 되죠. 사실 이 세 가지 유형은 한 세트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위기에 놓이면 일단 그 문제를 외면하게 되고, 그다음 ‘이 일이 왜 나에게만 발생하는가?’ 하며 주변을 원망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으면 체념하며 이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네 번째 유형의 사람들이 있는데, 문제를 바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에게 불쑥 찾아온 위기 앞에 그 문제를 외면하거나, 다른 사람을 원망하며, 생각을 단념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의 유형은 지금 이 문제가 왜 나에게 찾아왔는지 먼저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원인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과연 여러분들은 믿음의 위기 앞에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셨으면 합니다.

2. 아이성 전투

오늘은 아이성입니다. 아마도 여호수아에게는 평생 지우고 싶은 기억이 아니었을까요? 그가 가나안 전쟁에서 얻은 전적은 31전 30승 1패입니다. 31번 싸워서 30번 이기고 유일하게 1패를 하는데, 그 전쟁이 바로 아이성 전투입니다.

이름 그대로 아이성은 12,000명 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성입니다. 그러면 그 인구에서 전쟁에 나갈 군사는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7장 3절을 보면 대략 2,000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60만 대군입니다. 그 큰 군사를 가지고 전쟁에서 패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결국 그곳에서 도망치게 됩니다. 이들에게 왜 이러한 위기가 찾아온 것일까요?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수 6:18)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것이든 취하지 말고,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라” 다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을 히브리어로 ‘헤렘’(Herem)이라 하는데, 번역하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에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작부터 모든 것을 다 하셨고, 그중에 첫 열매를 드리라는 것이 헤렘입니다.

처음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저희가 월급을 받으면 먼저 십일조를 떼어 놓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삶의 자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3. 작은 타협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은 아간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전쟁에서 얻은 물건에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 그리고 은 이백 세겔과 금 오십 세겔입니다. 아마 처음에는 이런 마음 아니었을까 상상해 봅니다.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나 하나는 괜찮겠지.’ 여호수아처럼 지도자도 아니고, 특별한 직책도 없습니다. 그래서 ‘나 한 명 물건에 손댄다고 달라지겠어? 다 한두 개씩은 챙겼을 거야.’

그러나 믿음의 위기는 그 작은 타협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외투 한 벌 가져간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네 달라집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 하나가 스노우볼처럼 나중에는 커져 버리고, 결국에는 우리를 무너뜨리게 만듭니다. 성경은 이것을 누룩에 비교하여 설명합니다. 유월절에는 맛짜라는 누룩을 뺀 떡을 먹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누룩에 부풀리는 성분이 있기에 이것을 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퍼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가끔 저희 동네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음식물과 일반 쓰레기를 버릴 때에는 전용 봉투가 있습니다. 가까운 마트에 가면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일반 봉투에 의식 없이 버립니다. 그 안에 열어보면 일반 봉투에 버린 음식물 쓰레기가 수두룩합니다. 그 이유는 남들 버리니까 나도 따라 버리는 것입니다.

아간의 범죄가 심각하게 다뤄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내 안에 작은 타협은 급속도로 이스라엘의 불신앙으로 퍼져나가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비대면 예배가 그렇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실시간 예배를 드리지 못하면서 녹화된 영상으로 대체하고, 그렇게 조금씩 작은 타협을 하다가 결국 주일 성수를 놓치게 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직장과 가정에서도 ‘이 정도는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그 작은 타협이 나중에는 기반 전체를 흔들어 버리는 큰 타협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처음부터 횡령하고, 바람피우며, 사람을 폭행하는 게 아닙니다. 내 안에 작은 타협으로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4. 자만

결국 하나님께서는 아간의 행동으로 진노하십“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수 7:1)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했을 때에 주님은 진노하셨습니다. 그만큼 아간의 범죄에 몹시 화를 내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곧장 가져야 할 자세는 머리를 맞대어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믿음의 위기 앞에 먼저 문제를 회피하고, 하나님께서 분노하시니 아간의 집안을 원망합니다. 나중에는 체념하며 아무 일 없는 듯이 행동합니다.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 (수 7: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닙니다. 다시 전열을 갖추고 하나씩 점검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여호수아에게 하는 말이 “저들은 소수입니다. 우리가 다 올라갈 필요 없이 당장 2, 3천 명만 보내면 승리할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여리고 성도 이겼는데, 아이 성 하나를 이기지 못하겠는가?” 하는 자만심 아니겠습니까? 어느 순간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사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이들은 오랜 시간 훈련된 군사들이 아닙니다. 평생 노예로 벽돌만 나르던 사람들입니다. 또한 40년 동안 가나안 근처에도 가지 못했고, 여리고 성 앞에서는 “우리는 메뚜기다” 하고 도망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지금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기가 찬 행동이라 볼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 그들은 ‘내가 땀 흘리며 13번 걸었고, 남들보다 힘차게 소리 질렀더니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으로 생각했을까요? 그럴 리가요. 하나님께서 다 하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지금 여리고와 아이 성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큰 위기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5.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

하지만 빌리빙의 사람 여호수아는 이 문제를 그대로 직면하며 주 앞에 엎드립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수 7:10)

위기가 찾아오면 사람은 그 문제를 외면하거나, 원망합니다. 또한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며 살아갑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처럼 자신의 문제를 곧장 해결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인생에서 수많은 실수를 하며 살아갑니다.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하루에도 몇 번이고 넘어지며 일어서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몸의 관성처럼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많은 학생이 공부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죠. 예를 들어 수학은 오답 노트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는 문제를 다시 보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틀린 것을 다시 봐야 다음에 실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작업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그 결과 다람쥐 쳇바퀴 돌듯 우리는 매일 똑같은 문제로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어떻게 그 문제를 받아들이고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더 빌리빙에 그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삶의 순간마다 가끔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주님은 내 인생을 평가하는 분이 아니라, 내 문제를 고치시고 나를 이끄시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지적하고 비판하는 경기장의 심판이 아니라, 내 인생의 감독이며 코치인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위기 앞에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나의 편인 것을 믿으며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더 빌리빙의 세 번째는 믿음의 위기입니다. 내 안에 그 작은 타협이 믿음의 위기를 자초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나에게 찾아온 문제를 직면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삶을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틀렸던 문제는 다시 풀어나가면 점수가 올라갑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여러분의 위기 앞에 도망가려는 마음, 원망하는 감정, 체념하는 태도가 있더라도 더 빌리빙의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오늘 하루를 걸어가시는 인생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최정훈 목사 

상명대학교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교역학석사) 졸업
숭실대학교 성서신학과 (Th. M. 신학석사) 졸업
(現) 부천동광교회 부목사(둥근교회)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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