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요예배 4주차

* 설교자 : 장창수 목사 대명교회

* 페이지 : 296-306

* 본문:

고린도전서 13장 1-4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사전적인 의미로 시기심은 ‘샘을 내서 미워함’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샘’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남의 일 혹은 물건을 탐내거나 본인보다 더 괜찮은 상황에 있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헬라어로는 ‘젤로이’라고 합니다. ‘젤로이’는 다른 사람의 성공이나 부, 명예, 행복 등을 보고 마음이 상해서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배가 아픈 정도가 아니라 화가 나는 것입니다. 남이 잘 되는 일에 화가 나는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는 단순히 무관심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정도가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남을 미워하는 죄’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시기의 대상은 자기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며 그와 자신을 비교해서 시기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성경의 사울과 다윗의 경우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물리치고 돌아오자 여인들이 나와서 노래를 합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그냥 “다윗은 만만이다”라고 하면 문제가 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울과 비교하니까 그때부터 시기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기와 가깝게 있거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에게 시기합니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시기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시기의 문제입니다. 내가 더 사랑해야 되고, 내가 더 관심을 가져야 될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내 가족, 형제, 친척, 성도, 친구를 시기한다는 사실입니다.

세 번째는 같은 분야의 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시기합니다. 예를 들면 똑같은 장사를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과일가게를 운영한다면 채소가게나 생선가게, 잘 되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똑같은 과일 파는 사람이 잘되면 그날 밤 잠이 안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외가 없습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된 목사는 자기보다 잘 되는 목사를 시기하는 것입니다. 이동원 목사의 책에 보면 자기가 40년을 목회하면서 교회의 성도를 돌아보니 음악하는 사람들이 제일 시기가 심하더라고 합니다. 왜 그런가 답을 찾으려 해도,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운동하는 사람은 절대 같이 운동하는 사람을 시기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운동하는 사람은 기록이나 승패가 분명히 결정되어 버리 기 때문에 시기할 것도 불만을 가질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음악이나 미술 같이 독창적이고 서로 간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분야는 시기가 아주 심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시기하는 것을 단순한 사람의 본성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신에도 심각한 해가 될 뿐 아니라 죄라고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14장 30절에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야고보서 3장 14절-15절은 더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준 본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시기가 찾아오는 것을 ‘사람은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문제로 쉽게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심령에 강하게 시기하는 마음과 질투하는 마음이 생길 때는 마귀가 우리의 마음을 흔들 뿐 아니라 강력하게 나를 파괴하려고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남을 격려하고 세워주는 것이 아닌 시기하는 마음은 절대 우리의 본성이 아니라 사탄적인 마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첫 번째로 시기의 특징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시기에 대해서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씁니다. ‘시기는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여 다른 사람의 소유나 행복에 대하여 불만을 표시하는 것부터 시작이 된다.’ 남들과 비교해서 뭔가 더 가졌다고 생각할 때 불만과 불평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시기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리 노력하고 이렇게 해도 안 되는데, 저 사람은 그렇게 노력하지도 않는데 왜 이렇게 잘 될까?’라는 별것 아닌 불만으로부터 시기는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시기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우월할 때 생깁니다. 다른 사람이 나 자신보다 더 높은 명예나 권세, 부, 행복, 외모 등을 가진 것에 반대할 때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자기하고 상관없는 타인의 잘됨을 거부하는 행동입니다. 의외로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남성과 여성이 함께 텔레비전을 보다가 지나가는 말로 남성이 한마디를 툭 던집니다. “이야, 저 배우는 정말 예쁜 것 같아요.” 그러면 옆에 있던 여성도 질세라 “돈으로 뜯어고쳤으니 예쁘지!”라고 비꼬는 투로 이야기합니다. 분명히 TV에 나오는 배우가 예쁘고 아름다운 것은 본인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충분히 예쁘고 아름다운 여자는 그렇게 봐줘야 합니다. 더욱이 가까이 있는 분들에게도 그렇게 행동합니다. 누가 예쁘다 그러면 그때부터 공공의 적이 됩니다. 이사를 갔다가 오랜만에 만났거나, 명절이나 특별한 날이 되어서 친구들끼리 만나면 꼭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오랜 만에 보니까 참 예뻐졌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끝내면 되는데, 뒤에서는 또 이렇게 수군거립니다. “분명히 얼굴에 손을 댔을 거야. 돈을 들였을 거야. 코도 옛날하고 다르고, 눈도 옛날하고 달라.” “내 눈은 절대 속일 수 없어.” 그런 것에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별거 아닌 외모뿐만이 아니라 남들의 명예, 권력, 부요, 행복 등에 대해서 일단 거부하고 반대하고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시기의 출발점입니다.

세 번째로, 시기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적다고 여길 때 일어나는 마음입니다.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미 많은 것을 누리고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주셨는데 남보다 조금 적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정말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눈에 보이는 가까이 있는 사람보다 조금 적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때부터 시기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마음이 편하지 않고, 그 생각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더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자신보다 부요한 사람의 인격까지 혐오하는 경향입니다. 그 사람이 있는 상황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한꺼번에 엮어 버립니다. 작은 시기에서 시작해서 사람의 인격까지 저주하는 것입니다. “저 인간은 꼴도 보기 싫고, 저 사람은 목소리조차 듣기 싫다.” 이렇게 상대방의 인격과 모든 부분을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경쟁상대를 참아내지 못합니다. 자신보다 더 낫게 되는 것을 참아내지 못합니다. 자기가 다 가져도 가까이에 있는 어느 누구보다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이 되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인기 있는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남들에게 자신의 모습이 조금 부족하게 보이는 것도 싫고, 백가지 중에 저 사람은 하나를 가졌고, 나는 아흔아홉을 가져도, 저 사람이 가진 하나가 내게 없다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시기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에스더 5장 13절에 보면 “그러나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은 것을 보는 동안에는 이 모든 일이 만족하지 아니하도다 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만은 당시의 최고의 권력자였습니다. 5장 11절에서 하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자기의 큰 영광과 자녀가 많은 것과 왕이 자기를 들어 왕의 모든 지방관이나 신하들보다 높인 것을 다 말하고” 어마어마한

영광을 가졌는데도 하만은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아 있는 것을 못 봐주는 것입니다. 그 작은 것 하나 때문에 자기가 가진 모든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불행한 인생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수많은 것을 하나님께서 주셔도, 내 옆에 있는 경쟁상대가 어느 한 부분 나보다 조금 더 가진 것 같고, 조금 우월한 것 같으면 만족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라 본인의 눈에 그렇게 보일 뿐인데 그때부터 삶에 기쁨이 없고, 만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시기의 현상을 살펴보겠습니다. 시기는 시기하는 사람의 판단력과 분별력을 무너뜨려 버립니다. 시기하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누가 말해도 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자기주장만 하고, 백 명이 옳다고 해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문제를 보지 못합니다. 자신은 괜찮다고 합니다. 자기가 시기하는 사람이 문제입니다. 물론 대부분은 시기하는 사람이 문제가 많습니다.

창세기 37장에는 시기로 인해 문제가 생기고 판단력과 분별력이 흐려진 사건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요셉과 형제들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동생 요셉에게 각별하게 사랑을 베풀자 그 때부터 더 나이가 많고 어른이 되어버린 형들조차 동생을 시기하기 시작합니다. “저기 요셉이 온다. 그를 죽이고 자기 꿈이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자. 아버지에게는 짐승에게 잡아먹혔다고 하자”라고 말합니다. 동생을 시기하는 마음 때문에 자기의 피를 나눈 형제를 죽이는 일에 올바른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분별력도 사라졌습니다. 그 동생이 죽었을 때 아버지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할까 하는 그런 객관적이고 사람들이 바라보는 눈도 없습니다. 시기하는 사람은 한 곳만 바라봅니다. 사랑하고 아껴야 할 형제들을 반목하게 합니다.

두 번째, 시기하는 사람은 자유가 없고 마음이 불안합니다. 여러분들의 삶에 시기하는 마음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표정이 어두워지고, 삶의 기쁨이 사라지고, 더 나아가서 불안합니다. 자신이 왜 불안한지도 모릅니다. 자유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깨닫지 못합니다.

창세기 30장 1절에는 레아라는 인물과 라헬의 인물의 시기의 사건이 나옵니다. 정상적으로는 시기한다면 레아가 시기를 해야 됩니다. 성경에 외모를 평가받은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라헬은 대단한 미인입니다. 성경에 매우 아름다웠다는 표현은 한글 표현으로 옮기면 매력적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레아에 대해서는 외모를 소개하는데 과거 성경에는 안력이 부족했다고 하고, 현대 성경에는 눈에 대해 ‘흐리멍덩하다’는 표현을 합니다. 흐리멍덩하다는 것이 그냥 단순하게 눈만 흐리멍덩한 게 아니라 사람이 어리석게 보인다는 뜻입니다.

상식적으로 한 사람은 여자로서 매우 아름답다는 표현을 쓰고 매력적입니다. 똑같은 자매지만 한 사람은 어리석게 보입니다. 하지만 30장 1절에서는 시기가 반대로 이루어집니다. 라헬은 남편인 야곱을 차지하고 수많은 남성의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외모도 예쁩니다. 당당합니다. 양들을 칠만큼 사회활동도 대단했습니다. 레아는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었 습니다. 레아가 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레아는 아기를 잘 낳았습니다. 생각할 것도 없이 야곱은 라헬과 많은 시간을 보내었을 것입니다. 라헬에게는 아기가 없고 레아는 그 반대였습니다. 하지만 라헬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한 가지, 언니에게는 아기가 있는데 자신에게는 없다는 사실에 자유가 없고, 불안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남들에게는 고통스러운 것도 아닌데 죽고 싶다는 표현을 합니다. 남편을 괴롭게 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시기입니다.

19세기 말 영국의 런던에 세 분의 목사님의 계셨습니다. 그리스도 교회의 마이어(F.B. Meyer) 목사님,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의 찰스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목사님,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교회를 담임하셨던 캠벨 몰간(Campbell Morgen)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세분 다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특히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설교의 황제’라는 별명이 있었고, 캠벨 몰간은 ‘성경 강해의 왕자’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세 분의 목사님들은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각자가 섬기고 있는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마이어 목사님의 교회가 조금 숫자적으로 적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 인가 캠벨 몰간 목사님이 미국에서 목회를 하겠다고 하면서 미국으로 가셨습니다. 그렇게 가시니까 캠벨 목사님 교회의 교인들이 마이어 목사님의 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성도가 늘어나고 목사님도 조금씩 인기도 얻게 되어 좋았습니다. 그래서 캠벨 목사님이 가고 난 뒤에 그 목사님을 위해서 많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미국에 간 캠벨 목사님 미국에서 목회를 잘하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캠벨 목사님이 미국의 목회를 정리하고 다시 영국 런던으로 돌아오신 것입니다. 다시 교회를 맡아서 하시는데 그때부터는 시기하는 마음이 속에서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캠벨 목사에게 가는 것 같아서 도저히 자기가 목회자의 양심으로 시기심 때문에 견딜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스펄전 목사처럼 설교를 잘하지도 못합니다. 몰간 목사처럼 권위 있게 성경을 잘 전하지도 못합니다. 저의 가슴에는 시기심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저에게서 시기심을 거두어 가주세요.” 아무리 이렇게 기도해도 마음속에서 시기심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두 분을 시기하다 못해서 나중에는 미워하는 마음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며 속상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하나님의 인자한 음성을 듣습니다. “마이어야 너의 기도를 바꾸어라. 시기심을 없애달라고 하지 말고 너의 시기심의 대상이 되는 두 목사에게 복을 구하는 기도를 해보아라.” 이런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그가 시간마다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스펄전 목사님과 그 교회에 복을 주시고 부흥케 하옵소서. 하나님 몰간 목사님에게 복을 주시고 몰간 목사님의 교회에 부흥을 주시고 교회에 복을 주세요.”

처음에는 정말 하기 어려웠습니다. 입술로 기도하고 그분들을 축복하기 시작하는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가는데 자기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그는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저에게 세 가지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는 평강의 은혜를 주셨고, 둘째는 내 삶에 없어졌던 기쁨의 은혜를 주셨고, 셋째는 내 삶의 목회가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평강, 기쁨, 자유함입니다.” 그 이후에 마이어 목사님이 교회에서 목회를 하시면서 한 번은 공개석상에서 목사님이 성도들 앞에서 이렇게 기도를 하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몰간 목사님의 교회에 복을 많이 주셔서 교회 가득가득 사람이 모이게 해 주세요. 그리고 그 교회가 더 이상 자리가 없어서 사람이 남아돌거든 그 남아도는 사람들은 우리 교회에 보내 주시옵소서.”

참 멋있는 기도입니다. 자기가 시기를 한다고 안 올 사람이 오고 올 사람이 안 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기도를 한다고 그분의 수준이 낮은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설교를 잘하는 두 분보다 더 수준 높은 분으로 생각됩니다. 결과적으로 세 교회가 다 부흥되었는데 마이어 목사님의 교회가 제일많이 모이더라는 것입니다.

자꾸 복과 연결하지 마십시오. 남이 안 되길 바라는 자는 자기가 파멸을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이 잘되기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자신이 부족하든 연약하든 간에 남보다 하나님의 각별한 은혜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축복하십시오. 남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남이 잘되기를 바라십시오. 이웃이 잘 되는 것을 행복해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디모데전서 6장과

갈라디아서 5장은 시기하는 것을 하나님은 더럽고 가증한 일로 바라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날마다 우리는 자기를 점검해야 합니다. 내 부족함과 내 약점, 내 시기하는 마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시기하는 마음을 버리고 사랑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이 나를 향한 특별한 사랑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름’과 ‘틀림’에 대한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나는 맞고 너는 틀렸어’가 아닙니다. ‘다른 것’입니다. 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준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분이 받은 복이 다르고 내가 받은 복이 다릅니다. 남이 잘 되고 남이 많 이 가진 것을 자신이 안 된 것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그는 그, 나는 나’인 것입니다. 내가 받은 복은 나의 복, 그가 받을 복은 그의 복인데 그것을 내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지금의 내 모습을 남과 비교하여 열등감과 시기심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마치 이 우주에 나 한 사람밖에 없는 것처럼 나를 사랑하십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내가 느끼는 시기심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에 집중하십시오. 그 순간 시기가 물러가고 마이어 목사님에게 찾아왔던 평강과 기쁨, 자유가 여러분의 심령에도 찾아올 것입니다. 오늘부터 우리가 부족하지만 노력합시다. 시기하는 마음에서 하나님이 나를 특별히 사랑하신 그 사랑을 간직하고 남을 축복할 수 있는 그런 귀한 성도들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장창수 목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 Div.)
계명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졸업(M. A.)
미국 Azusa Pacific University 졸업(M. A. R.)
미국 Liberty University 졸업(D. Min.)
총신대학교 기독교 교육학 박사과정(Ph. D.) 수료
미국 Torrance 소재 남가주 크리스천 한인교회 담임 역임
월드비전 목회자 홍보대사
대구 매일신문 칼럼니스트 역임
GMS 세계선교회 부이사장 역임
대신대학교 11.12대 재단이사장 역임
(現) 대구 CBS 운영이사장
(現) 총신대학교 재단이사
(現) 대구 대명교회 담임목사
■저서
『길라잡이』, 『성령의 열매 맺기』, 『하나님의 명령에 싸인하라』, 『성숙한 그리스도인 1, 2』, 『말씀을 따라 산 믿음의 거장들』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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