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예배 4주차

* 설교자 : 최병락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 페이지 : 248-258

* 본문

창세기 28장 10-22절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야곱은 우리 인생을 많이 닮아있습니다. 딱히 인생의 시련이 없었던 이삭보다 풍파 많은 야곱의 이야기에 우리가 더 매력을 느끼는 것도 우리 인생을 더 많이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파란만장한 세월을 지나고 인생의 말년에 잃어버린 아들 요셉이 살아서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을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가 바로 임금 앞에 섰을 때 자기 인생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창 47:9)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이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모두 말해주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야곱의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습니다. 그는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쌍둥이 둘째의 설움을 아시나요? 5분 차이로 태어났는데 평생 동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 특히 옛날에 장자 중심의 문화에서는 5분 차이로 유산이 형에게 다 가고,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여 둘째는 영원히 메꿀 수 없는 그 5분의 간격의 설움을 가지고 평생 살아야 합니다.

야곱은 어른이 될 때까지 형의 기에 눌려서 한 번도 아버지의 인정을 제대로 받아 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붙여준 이름도 ‘야곱’인데 그 뜻이 ‘거짓말쟁이’라는 뜻입니다. 어느 아버지가 아들의 이름을 이렇게 지어줄까요? 야곱의 성격은 형과는 반대로 유순하고, 체력도 형과 비교할 수 없이 나약한 사람입니다. 그 5분의 차이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은 영원히 첫째 아들 에서에게 향하고, 둘째 아들 야곱은 ‘거짓말쟁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둘째 야곱에게 주어진 기회는 없었습니다. 아픈 손가락에 더 관심이 간다고, 어머니 리브가에게는 야곱은 아픈 손가락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해내는 형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야곱을 엄마는 챙겨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장자에게 해주는 아버지의 축복기도를 야곱이 몰래 받게 해줍니다. 눈이 어두웠던 아버지는 에서인 줄 알고, 최고의 축복기도를 야곱에게 해줍니다.

그때부터 야곱은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고, 형에게 쫓김을 받는 인생이 됩니다. 축복은커녕 저주를 온몸에 받은 듯한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축복권을 빼앗긴 형은 동생을 죽이려고 쫓아오고, 야곱은 외삼촌 라반이 사는 타국인 하란으로 도망 길에 나섭니다. 온 가족의 축복 속에서 두둑한 정착비용을 가지고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이민 가도 힘든데, 도망자의 신세로 외국으로 피난을 간 야곱의 삶은 그야말로 험악한 인생이었습니다.

얼마나 달렸을까요? 더 이상 달려갈 힘도 없고, 어두워 달려갈 길도 보이지 않는 어느 빈들에 이르자 지쳐서 그 자리에 쓰러지듯 눕습니다. 벌러덩 누워 하늘을 보는데, 이마에 흐르는 땀보다,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더 얼굴을 적십니다. 사자의 울음소리도 무섭고, 어딘가 숨어서 잠들기를 기다려 죽일 것만 같은 매복한 형의 군사들도 무섭습니다. 밤이 되면 얼음처럼 차가워지는 날씨도 무서워, 자다가 얼어 죽을지도 모르는 공포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장 무서웠던 것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떠나왔다는 공포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있지 않다는 공포가 가장 컸습니다. 그의 하나님은 아버지의 하나님이었고 그의 하나님이 계시는 곳은 아버지가 살던 브엘세바입니다. 브엘세바도 떠나오고 아버지도 떠나왔으니 야곱은 완전히 하나님을 떠나온 것이고, 하나님 없는 하란으로 가는 것이 가장 무서웠던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 없이, 하나님 없는 땅 그 빈들에 누웠습니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in the middle of nowhere’입니다. 그런데 그때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그 빈들에 나타나십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5절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 28:15)

하나님은 야곱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어제 그 먼 길을 같이 달려오셨습니다. “야곱아 어제 달려오는 그 길에 내가 너와 함께 달리고 있었다. 야곱아, 내일도 걱정하지 마라. 내가 내일도 너와 함께 달려갈 것이다. 지금 떠나는 이 고향을 다시는 못 돌아온다고 생각하지 마라. 너를 이끌어 이곳으로 반드시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 모든 약속의 말씀을 듣고, 야곱은 잠이 깹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고백하죠.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 28:16)

야곱은 그때야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브엘세바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 내가 가는 곳 어디든지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야곱은 그순간 동행의 은혜를 깨달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동행의 은혜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온 그 길에 함께 걸어오시고 낮, 해, 밤, 달 모두로부터 지켜주신 동행의 은혜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부터 장차 살아갈 날에도 여러분을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 그 길을 걸으시며 곰과 사자의 입에서 여러분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창세전에 택하시고, 부르시고,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여러분 속에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그 뜻이 다 이루기까지 여러분을 영원토록 떠나지 않고 동행하시는 그 은혜를 절대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모든 일을 여러분이 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 이루기까지 여러분을 절대로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동행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야곱처럼,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 아닌, 이제 나의 하나님으로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하나님과 평생 동행해야 합니다. 어머니의 하나님, 아버지의 하나님을 넘어서 나의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아무리 믿음 좋은 어머니라, 평생 새벽기도 한번 빠지지 않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돌아가십니다. 여러분을 위해 새벽에 깨어 기도해 주시지 못할 날이 옵니다. 그때는 어머니의 하나님으로 살 수 없습니다. 나의 하나님을 만나, 나의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나의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찬양은 시편 18편 말씀이 나오는 찬송입니다. 나의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과 평생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방패시라…♬

야곱의 인생은 그야말로 나그네길이었고,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살았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와 살았느냐’입니다. 평생 돌아보면 험악한 인생을 살아왔지만, 야곱은 그날 밤 나의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 평생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살았습니다.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그 일을 했느냐가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어디를 갔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갔느냐가 야곱에게는 더 중요하고 더 큰 복이었던 것입니다.

하란으로 도망간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곳을 하나님이 함께 가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란에서 고생하면서 살았다는 것보다, 하나님이 함께해 주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함께 하신 하나님이 야곱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항상 동행하고 역사해 주셔서, 야곱의 모든 화가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시고,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셨으며, 눈물의 베옷을 벗기고 찬송의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야곱과 동행해 주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동행의 은혜입니다. 야곱의 인생을 가장 잘 표현한 성경 구절이 저는 시편 30편 11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시 30:11)

파란만장한 21년의 하란 생활은 삼촌 라반에게 속고 산 21년이지만, 그곳을 떠날 때 야곱은 삼촌이 가지지 못한 육축과 가족을 얻게 되고, 거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평생 마음속의 짐이었던 형 에서와의 원수 관계를 하나님은 화평의 관계로 회복시켜주셨습니다. 평생 속이는 자라고 하는 부끄러운 ‘야곱’의 이름을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덤에 내려가는 자처럼 절망하고 슬퍼했지만, 하나님은 잃어버린 요셉을 애굽 나라의 총리가 되게 하셔서 그의 눈앞에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야곱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날 그 밤에 세우신 그 약속을 끝까지 지켜주시는 동행의 은혜를 야곱의 집안에 베풀어주 신 것입니다. 그야말로 야곱의 인생을 가장 잘 묘사한 구절입니다.

야곱은 죽는 순간도 복된 모습입니다. 열두 아들을 다 불러서 유언을 하고, 하나 하나 축복기도를 해주고 죽는 것도 큰 은혜를 받은 사람만 가능한 것입니다. 죽을 때의 모습도 은혜스러웠습니다. 창 49장 33절에 그의 죽을 때 모습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창 49:33)

자녀들의 얼굴을 다 보며 일일이 축복해 주고 눈을 감은 것은 큰 복입니다. 침상에서 힘들어 발버둥 치면서 버티다가 눈을 뜨고 죽지 않고, 단정하게 침상에 누워 두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평안하게 숨을 거두는 복까지 누렸으니 야곱은 평생 그와 함께하시는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다 누리고 주님 곁으로 간 사람입니다. 이런 야곱의 인생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본다 면, 동행의 은혜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사정과 형편을 보면서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요즘 어떤 형편에서 어떻게 사느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상황보다 동행입니다. 처량하게 고통의 땅 하란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이라도 그 길을 하나님이 함께 달리고 있다면 그 하란의 땅에서도 기적이 일어나고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어디를 가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그래서 더 중요한 것입니다. 구름이 바람 없이 흘러갈 수 없듯이, 우리 인생도 하나님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저도 1998년 5월 21일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결혼한 지 3주 밖에 되지 않은 아내를 옆자리에 앉히고 유학길에 올랐는데, 제 쪽으로 미국에 일가친척 한 명도 없고, 아내 쪽으로도 일가친척 한 명도 없는 생면부지의 땅을 향해 갔습니다. 제 아내는 3주 밖에 되지 않아도 남편은 남편인지라 하나도 겁이 안 나는 표정을 했지만, 저는 처음으로 가는 미국 땅에 로스엔젤레스 LAX 공항 상공에 착륙을 준비하면서 내려다보면서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야…여기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그런 마음으로 학교에 도착하니, 미국 교회에서 국제학생들을 돕는 팀이 나와서 이것저것 도와주는데, 어떤 분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Do you know anybody here?” 여기 미국에 한국에서부터 알던 사람이 있습니까? 그때 제가 뭐라고 했을까요? “ONLY GOD”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에서부터 알았던 분 중에 아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고 하니까…그분들이 막 웃었습니다. 저희 부부가 미국 갈 때 한국에서 미국까지 따라오신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었습니다. 홀로 되신 어머님도 공항에서 펑펑 우셨지만 그 비행기를 타고 따라오시지 못했습니다. 공항에서도, 비행기 안에서도, 학교 부부기숙사에서도 늘 함께 동행해 주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셨습니다. 한국에서도 알고 지냈던 하나님이 미국에도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동행하신 하나님께서 저의 21년 미국 생활에 말할 수 없는 큰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여러분도 이 동행의 은혜를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인생이란 참으로 신비합니다.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해서 불행한 것도 아니고 평탄한 세월을 살았다고 해서 다 행복한 것도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 가장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일까요? 하나님과 함께하는 인생이 가장 행복한 인생입니다. 비행기 일등석 타는 인생이라고 다 행복한 것도 아니고, 3등 칸 배를 타고 가는 인생이라고 다 불행한 것도 아닙니다. 그럼 뭐 타고 가는 인생이 가장 행복하냐고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타고 가는 것이 가장 편하고 가장 행복하고 가장 빨리 갑니다.

여러분, 인생길을 혼자 걸어가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 걸어가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 줄 아십니까? 어릴 적 시골에 앞 동네에 이모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가끔씩 이모님이 밤에 마실 올 겸 저희 집에 놀러 오시는데, 작은 산을 하나 넘어서 와야 합니다. 그러면 혼자 오면 되는데, 꼭 한두 살 밖에 되지 않은 아들을 등에 업고 옵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이 저희 어머니가 “아, 재우고 오지, 와 잠깨구로 업고 오노…” 그러자 하신 말씀이 “언니야, 밤길에 이거 하나 업고 오면 든든하다.” 여러분, 밤길에 산을 넘을 때 한 살짜리 아이 하나만 등에 업고 같이 걸어도 든든하다면, 우리 인생의 밤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뭐가 무섭고 두렵겠습니까? 여러분, 평생 주님과 동행하면서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밤길에는 지팡이 하나만 있어도 덜 무섭습니다. 지난주에도 집사람과 산 기도를 가면서 산에 오르니 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서 손에 쥐어 주며 짚고 올라가라고 하니, 그거 하나 짚고 올라가는데도 올라가는 내내, “야, 편하다. 편하다. 있는 거랑 없는 거랑 이렇게 차이가 나요… 야, 편하다…”

어둔 밤길에 지팡이 하나만 들고 있어도 밤길이 안전한데 하물며 인생길을 걸어가는데 주님이 친히 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되어 주신다면 내일 일도 알지 못하는 밤길 같은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그 내일이 왜 두렵겠습니까? 수많은 인생의 밤길과 깊은 골짜기를 헤매고 다녔던 다윗도 똑같은 고백을 하지 않습니까?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4)

언젠가 힘들 때 문득 바라본 벽에 걸려있는 액자에 이런 내용이 있어서, 제가 너무 큰 힘을 얻어서 적어놓은 구절이 있습니다. God never sends you alone. 하나님은 너를 혼자 보내지 않으신다. God goes before you. 하나님은 네 앞에 가신다. God stands beside you, 하나님은 네 옆에 서 계신다. God walks behind you. 하나님은 네 뒤에 걷고 계신다. Whatever situation you have right now, God is with you. 네가 무슨 상황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너와 함께 계신다.

이것이 동행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입니다. 다윗이 그 인생의 광야 길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그 길을 완주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는 완주자의 노래를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 16:8, 11)

주께서 다윗 앞에 가시고, 나의 오른쪽에 계시고, 내 뒤에 계시고, 내 왼편에서 동행해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 두려움이 찾아올 때, “주님…” 하고 부르십시오. 주님이 어둠 속에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 여기 있다.”

우리가 어둠 속을 걷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어둠 속을 주님이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함께 걷는 인생에 어둠은 더 이상 어둠일 수 없습니다. 주님이 함께 걷는 인생에 실패는 더 이상 실패일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져도 주님이 없는 인생이 가장 불쌍한 인생이고, 가진 것이 적어도 주님과 동행하는 인생이 가장 복된 인생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평생에 동행의 은혜를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최병락 목사 

침례신학대학 기독교교육학과 졸업(B. A.)
사우스웨스턴신학교 졸업(M. Div. Biblical Language)
Dallas Theological Seminary(M. A. 성서연구과정 수학)
사우스웨스턴신학교(Th. M. Evangelism 수학)
(前) 세미한교회 Founding Pastor 및 담임목사
(現) 사우스웨스턴신학교(D. Min. 과정 중)
(現) 강남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
■저서
『다시 일어남』, 『부족함』, 『쏟아지는 은혜』, 『자라가라』, 『모든 것을 살리는 예배를 회복하라』, 『어둠 속에 부르는 노래』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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