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예배 2주차

* 설교자 : 최병락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 페이지 : 212-221

* 본문:

에베소서 2장 8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누군가에게 비밀번호를 준다는 것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당신에게 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늘의 문을 여는 비밀번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하늘 창고라는 말씀을 하셨고, 그곳에 우리 인생에 필요한 것들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우리가 그 하늘의 문을 여는 비밀번호를 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성경을 읽다가 찾아낸 그 비밀번호를 오늘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잘 받아 적으세요. 아니면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늘의 문을 여는 비밀번호는 ‘G.R.A.C.E.’ 입니다. 바로 ‘은혜’입니다. ‘은혜’는 하늘의 문을 여는 비밀번호입니다. 하늘로부터 여러분에게 오는 모든 좋은 것은 다 은혜 때문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비밀번호가 눌리면 하늘의 문이 열리고 여러분에게 하늘에 있는 것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2:1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들은 다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공로나 노력, 지성이면 감천으로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풍성한 사랑인 것입니다. 오늘부터 저는 여러분과 함께 성경 속에서 그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구약부터 신약까지 은혜를 입은 사람들을 찾아서 여러분에게 소개할 때에 그분들이 받았던 은혜를 여러분들도 받아서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 중에는 식상한 단어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더 이상 사용을 해도 감동이 없거나 그 의미가 퇴색된 단어들입니다. 예를 들면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나올 때 점원들이 하는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인사입니다. ‘사랑’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단어를 쓰고 있지만, 그 말속에는 진심도, 감동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는 사람도 알고, 듣는 사람도 압니다.

처음에 듣다가 나중에는 식상해지는 단어들도 있습니다. 소위 말해 상해버린 단어들이 있습니다. 인터넷 뉴스에서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해서 사용하는 단어들입니다. ‘충격’, ‘경악’, ‘속보’ 같은 단어들은 식상해서 그 단어를 보고 충격도 안 받고, 경악도 안 하고, 속보도 당연히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세월이 가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엄마’라는 단어 같은 것입니다. ‘엄마’라는 단어는 들으면 눈물이 납니다. 기독교에도 그런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은혜’라는 단어입니다. ‘은혜’라는 단어가 들어간 찬양을 부르면, 성도들의 눈시울이 어느새 붉어져 있습니다.

유명 기독교 작가 필립 얀시(Philip Yancey)는 ‘은혜’라는 단어는 절대로 상하지 않는 단어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은혜’라는 단어는 세월이 가도 상하지 않고 계속 그 신선도를 유지하면서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필립 얀시는 또한 ‘은혜’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물 한 방울 속에 해의 모습이 담겨 있듯이 복음의 진수가 은혜 안에 담겨 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P.14.)

‘은혜’라는 단어만큼 하나님을 멋지고 정확하게 담아내는 단어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은혜’는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지, 분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화이트(E.B. White)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은혜는 개구리처럼 해부할 수 있으나 그렇게 하는 순간 생명을 잃어버리고 만다. 은혜는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오늘부터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을 찾아내어 소개할 것입니다. 바라기는 그 많은 사람 중에 가장 큰 은혜를 입은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 속에서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누구부터 소개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가장 큰 은혜를 받은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그 주인공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겠습니다. 바로 ‘당신’입니다. 바로 당신이 그 은혜를 받은 주인공입니다. 태어나서부터 이날 이때까지 여러분은 은혜 때문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분들은 아무

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받은 그 많은 은혜 중에서 가장 큰 은혜는 무엇입니까? 바로 ‘구원의 은혜’입니다.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은혜 중에 이것보다 큰 은혜는 없습니다.

존 뉴톤이 지은 <Amazing Grace>의 가사도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은혜 중에 가장 큰 은혜는 죽을 죄인이 살아나게 된 구원의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 보면 우리가 구원을 받되, 무엇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 업적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Sola Gracia’ 이것이 ‘구원하시는 은혜’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상태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는 날부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하나님 밖에서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서 태어났습니다. 성경은 이 상태를 ‘죄’라고 말하고, 그런 존재를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어떤 노력과 방법을 다 동원해도 인간은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자녀들을 낳았기 때문에, 그 후손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추방된 상태, 즉 하나님 없이 태어났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하나님 없는 곳, 즉 지옥으로 자연스럽게 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인간의 상태를 에베소서 2장 12절은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엡 2:12)

다시 말해 우리는 태어날 때 자연스럽게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이었고, 하나님 나라에서 보면 외국인이었고,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철저히 버려진 인생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고, 살려주시고, 자녀 삼아주실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런 인간의 상태를 로마서 3장 23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

이게 우리의 실존입니다. 우리 인간의 운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십니다. 제가 의도적으로 약점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만 하나님의 최고의 약점은 ‘사랑이 풍성하시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다른 이름이 ‘사랑’이라고 불릴 정도로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 곁에서 평생을 보내면서 내린 결론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사랑의 하나님께서 자기가 빚어 만든 인간이 지옥을 가는 것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인간을 살려 주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예수님을 이 땅에 내려보내시고, 인간이 지은 죄를 인간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자기 아들에게 모두 짊어지게 만들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아들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 아들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죄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하나님 나라에서는 외국인이었고,

소망도 없었던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것에 대해서 에베소서 2장 13-19절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로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엡 2:13-19)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 인간을 위해 이런 비싼 값을 치르기까지 구원을 하신 것일까요? 잘 알다시피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셔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멈추지 말고 다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왜 그 사랑이 나를 향했을까요?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은 알겠는데, 하나님의 그 사랑이 이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나에게 임했을까요? 그 이유를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충분한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이 이토록 많은 사람 중에 왜 당신에게 임했는지를 고민하고 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것은 10년을 고민해도 절대로 찾지 못하는 한 가지는, 당신이 그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신 안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매력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그 풍성한 사랑의 화살이 왜 하필 당신에게로 향했던 것일까요? 그 정답이 바로 ‘은혜’입니다. 아무런 자격 없는 자에게 베풀어주시는 사랑, 이것이 ‘은혜’입니다. 로마서 3장 23-24절을 다시 읽어 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3-24)

여러분이 구원받은 이유는 은혜 외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디도서 3장 4-7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 3:4-7)

여러분이 오늘 주일이라고 화면 앞에 앉아서 이렇게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하나님이라 부르지 않고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 말도 안 되는 놀라운 복을 어떻게 받은 것입니까?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외모도 보지 않고, 학력도 보지 않고, 집안 배경도 따지지 않고, 재력도 상관없고, 쓸만한 재주도 살펴보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여러분을 자녀 삼기로 태초 전부터 결정하시고, 구별해 놓으셨다가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몇 월 며칠, 창세전에 스스로 약속해놓은 그 약속을 지키시면서 여러분을 조건 없이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줄 믿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에베소서 1장 4-7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엡 1:4-7)

구원받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으면 은혜가 아닙니다. 구원받은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은혜가 되지 않고 공로나 업적이 됩니다. 그때부터 은혜는 여러분 곁에서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은혜는 해부하는 개구리가 아닙니다. 해부하는 순간 생명을 잃어버립니다. 은혜는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래서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가 은혜를 대할 때 조심해야 할 부분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롬 11:6)

여러분! 살면서 평생 감사하며 살아야 할 이유는, 아무런 자격 없는 나에게 이토록 많은 사람 중에서 일방적으로 아무 조건 없이 구원을 허락해주시고 자녀 삼아주셨다는 그 사실입니다. 그것 하나만으로 여러분은 평생 받을 복을 다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햇살처럼 여러분 인생에 비추었다는 것만큼 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 평생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무조건적인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저항할 수 없는 은혜(Irresistible Grace)

내가 아무런 판단력을 내릴 수 없는 태 속에서 형질조차도 안 만들어졌을 때, 나에게 아무런 선택능력이 없을 때, ‘나를 무조건적으로 선택해 주신 것’이 첫 번째 은혜입니다. 두 번째는 ‘나를 향한 그 은혜가 저항할 수 없는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고 했으니,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도 내가 그 은혜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 아니냐?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도 중요하지만, 내가 믿었다는 나의 공로도 있지 않느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기로 결정하시고 은혜의 햇살을 그 사람에게 비추면 그 사람은 저항할 능력이 없이 그 은혜를 받게 됩니다. 은혜를 받는 것에서도 내 노력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마치 나무 한 그루 없는 사막의 한가운데 서 있어, 하늘에서 햇살이 쏟아질 때 그 무엇으로도 저항할 수 없어 나무는 고스란히 햇살을 받습니다. 내 위에 부어지는 은혜의 햇살도 이와 같아서 내가 받아들이고 말고가 아니라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일방적인 쏟아지는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알고 사는 사람은 평생 두 가지를 잊지 않습니다.

첫째, 평생 나를 어떤 조건도 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선택하셔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를 드리는 삶을 사는 것과 둘째, 나의 공로로 된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남들 앞에 구원을 자랑하지 않고 늘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구원을 받았는데 너는 못 받았다고, 구원을 나의 공로처럼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은혜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남들보다 내가 더 나아서 구원을 받았다고 오해하지 않습니다. 내가 저들과 똑같은 사람인데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미안해져서 남들을 더 잘 섬기면서 사는 겸손의 사람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교만하지 않고, 사람 앞에 거만하지 않고, 늘 위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옆으로는 이웃을 섬기는 삶을 자연스럽게 살게 되는 줄 믿습니다.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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