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예배 3주차

* 설교자 : 박노훈 목사 신촌성결교회

* 페이지 : 190-199

*본문 :

누가복음 1장 34-37절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여러분, 어느 왕자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어느 날 왕자가 신하들과 함께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름다운 처녀를 발견합니다. 궁전으로 돌아와서 왕에게 그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사랑에 빠진 그는 그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 했습니다. 어떻게 그녀의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요? 왕자에게는 사랑을 이룰 수 있는 세 가지의 방법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권위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군대를 보내서 그 처녀를 납치해오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왕자의 권위를 그 처녀는 거절할 수 없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는 처녀의 마음을 알 수 없기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둘째는 그 처녀를 왕궁으로 초대해서 처녀에게 왕자의 정체를 알리고 왕실의 영화를 보여주면서 구애를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처녀의 진정과 진심을 읽기 어렵기에 포기했습니다. 마지막 방법은 왕자 자신이 처녀와 같은 평민의 신분으로 돌아가서 아무런 조건이나 요구 없이 순수하게 서로의 사랑을 약속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자, 어느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일까요? 왕자는 이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고는 왕국을 떠나서 평민의 신분으로 시골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왕자의 자리에서 내려온 왕자, 그는 마침내 시골 처녀와 진정한 사랑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신부를 왕궁으로 데려옵니다.

성탄(聖誕), 인자(人子)가 오신 날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날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왜 인간이 되셨을까요?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으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말도 못 하게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그처럼 사랑하신다는 것은 내 작은 행복을 넘는 일입니다. 그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최고의 축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사랑하시고 위하시면, 세상이 어떻게 나를 두렵게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크리스마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고, 하나님께서 ‘인자(人子)’가 되신 날입니다. 날 사랑하셔서, 우릴 사랑하셔서, 우리 모두에게 오셨습니다. 성탄은 그 자체로 사랑의 기적입니다. 거룩하고 존귀하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사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되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연약한 존재가 되십니다. 아기의 몸이 되십니다. 위험한 상태에 빠지십니다. 기적은 대부분 당사자인 본인에게 놀라운 이익을 줍니다. 그러나 성탄의 이적은 그 반대입니다. 주님은 육체로 오셔서 우리의 본성을 취하시고, 철저하게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배고픔을 아시고, 외로움을 아시고, 아픔을 아시고, 슬픔을 아시고, 이 겨울의 추위와 냉기를 아시고, 고난을 아십니다. 그것은 주님도 이러한 것들을 직접 겪으시고 경험하셨기 때문입니다.

성탄(聖誕), 나를 위한 기적

이 성탄의 기적은 하나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주님께서 오신 것은 나로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 하신 것입니다. 주께서 오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우리의 죄악으로 멸망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칼날을 피하셔야 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하는 인간으로 오신 것은 나를 위해서입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 높고 높은 별을 넘어, 낮고 낮은 곳에 오셨습니다.

왕이 백성을 찾아오기만 해도 백성은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다니요? 도대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왕은 자신의 백성들을 찾아갈 수는 있지만, 설령 찾아가더라도 백성의 가난과 질병과 슬픔을 취할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설령 그런 마음이 있다해도,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르십니다.

“이리하여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그는 몸소 우리의 병약함을 떠맡으시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셨다.” (마 8:17, 새번역)

성탄의 기적은 나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오셨고,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빌 2:6-8, 새번역)

지난달 신문에 레바논의 한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가 보도되었습니다. 이 교통사고로 일가족 중 부모는 현장에서 숨지고, 엄마 품에 꼭 안겨 있던 2살배기 여아가 홀로 살아남았습니다. 사고 현장에 출동한 구조대는 사고 차량을 수습하며 엄마 품에서 홀로 생존한 2살 딸을 발견했는데 아이는 생명에 지장이 없었다고 합니다. 구조대 관계자는 “숨진 엄마가 양팔로 아기를 감싸안고, 자신의 온몸으로 충격을 흡수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습니다.

앞서 지난 10월 콜롬비아에서 일어난 경비행기 추락 사고가 있었는데, 경비행기 1대가 추락하며 탑승했던 성인 남녀 3명이 모두 숨졌지만, 생후 18개월인 아기는 홀로 살아남았습니다. 당국은 숨진 아기 엄마가 자신의 몸으로 아기를 감싸안고 충격을 흡수했기 때문에 아기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예수님은 양팔을 벌려 나를 품으시고, 그 자신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나로 죽지 않고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성탄의 기적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적은 죄인인 내가 구주 예수님을 믿어 살게 되었다는 것,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이것이 바로 성탄의 기적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 오시는 시간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밤에 오셨습니다. 밤은 절망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낙담했을 때, 우리가 근심과 염려로 힘들어 할 때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하늘이 별들로 환해지는 것처럼 우리에게 오십니다. 춥고 긴 어두운 밤이, 주님께서 찾아오심으로 밝아집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을 바라보는 그 순간 우리의 밤은 즉시 끝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찾아오심은 어두운 새벽 동트는 것과 같습니다. 동이 트면 밤은 추방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에 오셔서 무지와 슬픔과 두려움과 절망을 몰아내십니다. 빛이 임하면 어둠은 빛의 속도로 사라집니다. 우리가 절망의 어두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해도, 우리가 고개를 들어 주님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나에게 있는 깊은 절망은 끝나고, 내 영혼에는 기쁨이 차오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우러러보아라. 네 얼굴에 기쁨이 넘치고 너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시 34:5, 새번역)

주께서 내게 오심이 이와 같습니다. 가장 작고 가장 연약한 이에게 이것은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믿을 수 없고, 아무것도 소망할 수 없을 바로 그때에, 주님이 내게 오신다는 것, 이것이 기적입니다. 나를 위한 기적입니다.

예수님은 언제 오셨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만약에 먼저 우리 자신의 죄를 제거하고 난 후에야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계획이라면 이 구원 계획은 우리에게 은혜와 자비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안 주신다고 합니다. 산타 할아버지는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애인지를 알고 계시다고 합니다. 산타 할아버지는 착한 아이를 위해 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위하여 오셨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 1:15)

사도 바울은 자신을 괴수라고 합니다. 죄인의 괴수!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여 오셨습니다. 성경이 또한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가 은혜를 받을 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님은 죄 가운데 있는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나의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죽음의 골짜기에 있을 때 오셨습니다. 성경이 말씀합니다.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눅 1: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자란, 자신에게 전혀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자를 말합니다. 뭔가를 해볼 생각조차 포기한 사람입니다. 캄캄하고 어두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절망하는 사람입니다. 어둠과 죽음의 그림자가 나의 안전을 위협합니다. 나를 우울하게 하고, 나의 소망을 꺾어버리고, 나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나를 두렵게 하고, 나를 낙담케 합니다. 여러분 중에 지금 이 시간에도 이 사망의 그늘에서 낙담하고 있는 분은 없습니까?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불안과 무기력에 빠져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낙심해 있는 자에게 찾아오셨습니다. 희망을 잃은 자에게 오셨습니다.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을 주시기 위하여, 사로잡힌 자를 건져내고 사망에 처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은 낮고 낮은 곳, 어둡고 차가운 곳에 임하셔서 우리 마음의 어둠을 밝히시고 두려움과 염려를

몰아내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높이시려고 낮아지셨고, 우리를 풍요롭게 하시려고 가난해지셨으며, 우리를 저 천국 아름다운 성에 당신과 함께 있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오늘도 성령을 통해서 임하는 축복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고 계십니다. 우리가 큰 어려움에 처했을 때, 심히 낙담할 때, 많은 염려와 근심으로 힘들어할 때,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 가운데 있을 바로 그때,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느끼게 하십니다. 형언할 수 없는 주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십니다. 하늘이 별들로 인해 환해지는 것처럼, 나의 삶이 주님의 찾아오심으로 밝아오게 하십니다. 어떻게 내 영혼 안에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까? 이것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눅 1:35)

인간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 곧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이처럼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오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거하십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 5:5)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향하여 축복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후 13:14)

우리는 매번 예배를 드릴 때마다 이 축도를 드립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케 하라

성탄의 놀라운 기적은 오늘의 나를 위한 기적입니다. 이 기적이 우리를 놀랍게 하고,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우리가 받은 그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면 됩니다. 그것이 세상이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강물처럼 흘러가게 하십시오. 강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사랑은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우리 자신이 구원받아 천국에 이르는 삶을 살면서, 그리고 믿음을 누리며 살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거나 세상의 신음을 외면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믿음을 자신의 영혼 구원만을 위한 이기적인 거래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이런 생각은 하늘의 기쁨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이 겨울,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길 바랍니다. 가난한 사람들, 부모가 없거나 가족이 없는 사람들, 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있습니다. 지금은 불경기입니다. 꿈을 잃은 코로나 시대의 젊은이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노부모를 모신 가족들, 그리고 소상공인의 아픔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아주 궁핍한 자들을 도울 준비를 항상 하십시오.

주님은 빛으로 오셨습니다. 어둠을 몰아내시고 우리에게 밝은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절망과 좌절을 몰아내시고 성령의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꾸만 헛된 것에 기대어 힘을 얻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제 생명의 주님을 향하여 두 팔을 벌리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충만하심으로 나를 충만케 하시며 주님의 넉넉하심으로 나를 부요케 하시되, 나를 사용하시어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이 기쁜 성탄에 주께서 임하셔서 고통과 전염병을 몰아내고, 죽음의 절망을 넘어서고, 슬픔과 아픔도 이기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박노훈 목사 

연세대학교 신학과 졸업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목회학 석사) 졸업
예일대학교 (신학 석사) 졸업
밴더빌트대학교 (문학 석사, 철학 박사)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 Research Fellow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 Teaching Fellow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 Senior Teaching Fellow
(前) 미국 윌리엄슨 크리스천대학 객원교수
(前)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신약학 부교수 및 교목
(前) 연세대학교 YN100 (Yonsei Next 100 Years) 위원회 위원
(現) 월드비전 이사장
(現) 신촌성결교회 담임목사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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