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요예배 1주차

* 설교자 : 장창수 목사 대명교회

* 페이지 : 256-267

* 본문:

요한복음 2장 1-11절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기적’은 사람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적’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한 것임을 이미 압니다. 하나님이 아니시고는 ‘기적’을 행할 다른 존재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일컫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전부 ‘기적’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기적 가운데 본문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첫 번째 기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 자리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의 사건입니다. 무엇이든지 ‘첫 번째’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베푸신 수많은 기적 중 첫 번째 기적이 바로 가나 혼인 잔치에서 일어났습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 2:11)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이 사건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성경에서 ‘기적’ 대신에 ‘표적’이라는 특별한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에 보면 ‘사인’(Sign)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인’에는 ‘징조’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첫 번째로 일어난 사건이나 현상을 보면 다음에 일어날 사건이나 현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번째 열매가 되어주셨음을 알기에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두 번째, 세 번째 부활이 일어남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첫 번째 ‘표적’은 굉장히 의미 있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 자리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기적이셨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질적인 변화였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시라는 ‘사인’이었습니다.

본문은 나사렛에서 북동쪽으로 약 6.4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가나’라는 작은 동네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가나’에는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혼인 잔치 장소에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교회에 들어가 보면, 지하에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을 때 사용하셨다는 돌 항아리가 복원되어 있습니다. 본문의 사건은 1절에 보시면 ‘사흘째 되던 날’이란 말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려고 12제자를 부르신지 사흘이 지났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십니다.

그런데 3절에서 “포도주가 떨어진지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탐탁지 않은 모습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 예수님과 무슨 상관이 있냐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하지만 이런 예수님의 부정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라고 지시합니다. 그리고 하인들은 순종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믿음 있는 모습을 보인 사람은 어찌 보면 하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시키십니다. 사람들이 손발을 씻기 위해 물을 담아놓는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십니다. 하인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아귀까지 가득 물을 채워 넣습니다.

그러자 더 어려운 명령을 하십니다. 항아리에서 물을 떠서 연회장(宴會長), 즉 잔치를 주관하는 사람에게 가져다주라는 것입니다. 하인들이 순종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입니다. 그때 연회장과 많은 손님이 잔치의 기쁨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서 칭찬합니다.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요 2:10)

보통은 잔치 초반에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잔치가 길어지면 포도주에 물을 섞기도 하고, 질이 좋지 않은 포도주를 내놓는데 어떻게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내놓을 수 있냐는 감탄입니다.

성경은 9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하인들은 이 기적을 누가 일으키셨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1절 말씀처럼 이 사건을 통해 제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게 됩니다. 우리는 가나 혼인 잔치 자리에서 있었던 사건을 통하여 몇 가지 삶의 교훈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의 기쁨이 깨어지기를 절대 원치 않으셨습니다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포도주가 없는 혼인 잔치는 더 이상 계속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포도주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4절에 예수님께서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하십니다. 한글 성경에 ‘여자여’라고 번역된 부분과 달리, 실제 헬라어 원문 ‘귀나이’(γύναι)는 굉장히 겸손하고 따뜻한 표현입니다.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보다 더 존경심을 가지고 부르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아직은 메시아로서 모습을 드러낼 때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기적을 베푸실 때처럼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베푸시기 전, 그 요청을 거부하시며 믿음을 시험하시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모욕을 주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깊은 마음은 온전한 믿음을 보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통해 기적을 베풀어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그 의미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거부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순종하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셔서 잔치를 폐하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더 기쁨이 넘치는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당시에 포도주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음료로 쓰이기도 했고, 치료용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어떤 잔치를 베풀었을 때, 잔치의 풍성함과 손님을 잘 접대하는 기준이 바로 어떤 포도주가 나왔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다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누구나 기쁨으로 인생을 시작하지만, 예기치 못한 고난과 문제가 닥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본문의 가나 혼인 잔치 자리는 예수님이 함께 계셨는데도 포도주가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실 때문에 절망하고, 낙심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는데 왜 문제가 생깁니까?’,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고 했는데, 왜 고난이 닥쳐옵니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의 문제가 발생하고 부족한 것이 생길 때, 그때가 오히려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주님은 결코 우리가 고통과 슬픔 속에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리스도, 그 영원한 생명』이라는 책에서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사역의 핵심을 가나 혼인 잔치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는 선포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죄인들이 회개하고, 그들이 예수님을 믿어 천국 백성으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에서 미리보여 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상징하는 말은 기쁨과 환희(歡喜), 축제입니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실재(實在) 적인 장소로서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과 환희를 주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천국을 증거하실 때마다 혼인 잔치에 많이 비유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때로는 괴로움을 겪더라도 잔칫집에 가면 항상 기쁨이 넘칩니다. 우리가 천국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삶이 날마다 잔칫집의 기쁨을 누리며 산다’는 의미입니다.

주님께서는 성도들의 혼인 잔치가 깨어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에 때로는 포도주가 떨어지는 문제가 생길지라도 기쁨으로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의 잔치가 그치기를 바라시지 않으십니다. 어떤 고난과 문제 속에서도 기쁘게 살라는 것입니다. 고난과 문제는 주님께 맡기고, 잔치를 즐기라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은 신앙생활의 고난과 눈물, 장애물과 좁은 길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기쁨과 환희’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핍박과 환난 속에서 많은 괴로움을 겪으면서도 늘 기뻐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서 기쁘게 살아가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혼인 잔치가 우리의 삶이 돼야 합니다. 빌립보서 4장 4절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라고 사도 바울이 쓰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를 쓸 때는 주후 62-63년 경입니다. 이때 그는 로마에 가택연금을 당하는 처지였습니다. 언제 죽을지 미래를 알 수 없었습니다. 온갖 고난을 당해서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너무나 기쁘며, 성도들에게도 늘 기뻐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성도 됨의 표징이 바로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 6:10)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혼인 잔치처럼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고통받으며 살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지는 문제는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힘으로 불가능한 문제들은 예수님께 맡기고, 우리가 잔치를 즐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물로 포도주를 만들 수 없습니다. 기적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능력으로 불가능한 것을 자신의 힘으로 하려고 하면, 당연히 화도 나고 불평과 원망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나에게 맡기고, 너는 기뻐하며 잔치를 즐겨라”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 몫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난과 문제, 어려움을 믿음으로 주님께 맡기면 우리 삶에는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2. 문제와 어려움이 생겼을 때, 예수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요 2:3)

혼인 잔칫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어머니 마리아는 그 문제를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문제는 예수님께 드릴 말씀은 아닙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면, 잔치를 주관하는 연회장이나, 신랑에게 이야기해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문제를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에 가셨을 때는 잔치의 거의 끝자락이었습니다. 먹을 것이 모자라고 포도주도 거의 떨어지는 때입니다. 어떻게 보면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마리아는 예수님께 문제를 아뢰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순종이자,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 가지를 꼭 명심해야 합니다. 삶에 문제가 생기고, 고난이 찾아왔을 때 꼭 기억해야 하는 원칙입니다. 첫째, 그 문제를 자신이 해결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다른 사람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문제는 오직 예수님만이 해결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5절에서는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거절하시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주님께서 들어주심을 믿고, 문제를 아뢰는 것이 믿음의 태도입니다. 우리가 기도드릴 때도, 그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 오직 예수님이시기에 예수님께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나도, 다른 어떤 누구도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할 때 예수님께 문제를 가지고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다른 누구도 아닌 예수님께 말씀드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날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 예수님을 초청해야 합니다. 모든 문제를 예수님께 아뢰고, 예수님과 동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기도하며 순종함으로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7절에 예수님께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자 하인들은 물을 항아리 아귀까지 가득 채웁니다. 하인들은 자기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 그저 순종한 것입니다. 그리고 8절에 예수님께서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마 이번에도 하인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따지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줍니다. 이것이 순종입니다.

기도의 사람으로 불린 ‘앤드루 머레이’(Andrew Murray)는 『순종』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입학하는 학교는 하나님의 순종 학교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말씀 한 마디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전에 우리의 순종을 시험해 보십니다.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인들이 돌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고, 그 물을 연회장에게 떠서 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주님이 “포도주가 생겨라”라고 말씀하시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물 한 방울 없이도 포도주를 만드실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벌써 시체에서 냄새가 납니다. 이미 무덤을 돌로 막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은 직후에 찾아오신 것도 아닙니다. 굳이 사람들에게 냄새가 나는 무덤 문에 놓인 돌을 옮기라고 지시하십니다. 사실 예수님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말씀 한 마디로 돌을 옮기실 수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직후에 살리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따지거나 계산하지 않고, 말씀에 순종할 때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형록 회장의 『P31, 성경대로 비즈니스 하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P31’이란 뜻은 잠언 31장이라는 뜻입니다. 하형록 회장은 책에서 ‘비즈니스와 신앙을 다르다고 말하지 말아라’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중에서도 세상의 삶과 신앙의 삶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그는 세계적인 건축 설계회사인 ‘팀하스’(TimHaahs)를 경영하면서 두 가지를 깨닫습니다. ‘첫째, 순종과 지식은 다르지 않다. 둘째, 신앙과 삶은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머리로 아는 지식과 순종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신앙과 실제 삶을 다르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무식할 만큼 순종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면,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3. 물이 포도주로 변한 기적보다,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 2:11)

물이 포도주로 바뀐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 기적을 통해 인생의 주인이시고, 해결자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누구나 삶을 살아가면서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과 같은 기적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 삶에 크고 작은 기적이 임할 때, 그것을 통해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기도 응답을 받았을 때, 응답을 받은 그 자체보다 응답 주신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케임브리지 대학(University of Cambridge)의 종교학과 시험에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사건에 대한 종교적인 의미를 서술하시오’라는 문제가 출제된 적이 있습니다. 모든 학생이 열심히 답을 적는데, 한 학생만이 답을 쓰지 않고 가만히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험이 마칠 즈음, 딱 한 줄을 쓰고 시험장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 답안을 본 교수가 감탄하며, 최고의 성적을 부여했습니다. 그 학생이 쓴답은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졌더라’라는 한 줄의 문장이었습니다. 이 답을 쓴 학생이 바로 세계적인 천재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George Gordon Byron)’이었습니다.

물의 주인도 예수님이시고,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분도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모든 기적의 주체(主體)는 예수님이십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완전히 다른 존재인 포도주로 만드셨듯이, 죄인인 우리도 완전히 다른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우리가 본문에 나타나는 가나 혼인 잔치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기적 그 자체보다, 이 기적을 통해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하형록 회장은 심장질환으로 인해서 두 번이나 심장 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심장 이식을 받으면서 받은 표식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인’이라고 고백합니다. 보통 심장 이식 수술을 받은 사람은 10년 넘게 살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형록 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두 번째 심장은 벌써 15년이 되었다. 어쩌면 나는 평균 수명까지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확실하지는 않다. 나의 심장이 언제 또다시 문제가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주님의 몫이다. 나는 매 순간이 주님의 은혜로 사는 시간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주님께서 주신 기적을 통해 주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제는 죽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주님의 은혜로 15년을 산 지금, 더 이상의 미련은 없다. 나의 이름을 높이는 삶은 의미가 없다. 나를 비우고 무엇보다도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삶만이 존재 가치가 있다. 지금부터 조금만 더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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