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예배 4주차

* 설교자 : 최병락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 페이지 : 244-255

* 본문:

빌립보서 3장 1-3절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빌립보서의 별명은 ‘기쁨의 서신’이라고 합니다. 계속해서 빌립보서는 기쁨이라는 단어를 멈추지 않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김없이 3장 1절을 시작함과 동시에 오늘 본문은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기뻐하라”라는 말로 다시 “Rejoyce in the Lord(주 안에서 기뻐하라)”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3장 1절을 읽노라면 조금 궁금한 표현이 나옵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우리가 가진 성경은 4장까지 있는데 왜 3장 1절에 ‘끝으로’라고 했는지 ‘아마 마무리하려고 쓰다가 덜 쓴 게 생각나서 4장까지 간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끝으로’라고 하는 ‘Finally Conclusion’은 모든 글을 마무리 지을 때 결론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야기해왔던 어떤 부분에 대한 결론, 또는 강조의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여기서 ‘끝으로’는 헬라어로 ‘로이폰’입니다. ‘로이폰’이라고 하는 것은 ‘마지막으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많은 경우 ‘더욱이’, ‘그러므로’라고 하는 강조 용법으로 사용됩니다. 따라서 이것을 다시 해석해 본다면 1장, 2장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이야기하다가 그러므로 더욱이 힘주어 말하노니 “주 안에서 기쁨을 빼앗기지 마십시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 안에서 기쁨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끝으로’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이토록 기쁨으로 넘쳐나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이라고 하면서 기쁨의 교회, 기쁨의 서신이라고 하는 이 편지에 기쁨을 빼앗기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기쁨을 빼앗는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빼앗는 자가 없으면 빼앗기지 말라는 말도 안 했을 것입니다. 빼앗아 가는 도둑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이 ‘교회 안의 기쁨 도둑’입니다. 신앙의 기쁨을 빼앗아 가는 기쁨 도둑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우리가 교회에 처음 나왔을 때에, 어떤 사역을 처음 맡게 됐을 때 느끼고 누렸던 그 기쁨이,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게 없어졌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는 흔히 이럴 때 ‘교회가 예전 같지 않아. 사람들이 날 대하는 태도도 옛날 같지 않아. 그저 옛날하고 좀 달라졌어’라고 자꾸 외부의 환경에서 찾는데, 훨씬 많은 경우는 여러분 안에 있던 그 기쁨을 도둑맞았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내 안에 있었던 기쁨을 도둑맞고 나면 기계적으로 일은 하는데 입에는 불평이 나오고, 행동은 거칠고, 불량해지고 삶은 굉장히 팍팍해져서 그저 남은 건 일밖에 없고, 기쁨은 사라져서 신앙생활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집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의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주 안에서 기뻐하라”라는 바울의 절절한 외침과 강조를 우리 마음에 새기면서 절대로 기쁨을 빼앗기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기쁨을 빼앗는 도둑이 누구일까요? 오늘 바울은 3장 전체에 걸쳐 빌립보교회 교회 안에 기쁨을 빼앗아가는 도둑으로 들어온 두 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율법주의’와 ‘자유주의’라고 하는 도둑으로 복음주의 안에 있는 신앙을 훔쳐갑니다. ‘율법주의’라고 하는 도둑은 거룩한 척하면서 성도들을 정죄하고, 그 안에 있었던 기쁨을 다 도둑질합니다. ‘자유주의’라고 하는 이름으로 들어온 도둑은 ‘뭘 그렇게 유별나게 살아. 다 먹을 거 먹고 누릴 거 누리고 하지’ 하면서 우리의 열심을 도둑질해 가버립니다. 이러한 도둑이 빌립보교회 안에서 바로 ‘율법주의’와 ‘자유주의’라고 하는 이름으로 들어와 있는데 3장 전체는 이 도둑에 대한 특징을 설명합니다.

빌립보서 3장 1절-9절까지는 율법주의, 17-21절까지는 자유주의,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10-16절까지는 우리가 지키며 붙들고 살아야 하는 복음주의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율법주의, 그 가운데 있는 복음주의, 자유주의의 세 가지에 대한 것을 3장 전체가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우리의 신앙을 병들게 하는 도둑 중에 오늘은 첫 번째 도둑만 살펴보겠습니다. 율법주의(Regalism)에 대해서 오늘 본문이 가르쳐주는 대로 설명을 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에 들어온 율법주의자들을 세 가지로 묘사를 하고 있는데 그 세 가지를 2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

해하는 일을 삼가라” 율법주의에 대해서 성경에서는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 ‘손 할례당’, ‘몸을 상해하는 자들’이라고 썼습니다. 이 세 가지는 율법주의를 설명하기 위해서 바울이 사용한 단어입니다. 따라서 율법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를 하나하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 ‘개들을 삼가라.’

율법주의를 ‘개’라고 표현합니다. 한국 사람에게 있어서 개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집을 지키고 주인에게 순종을 할 때는 개는 굉장히 충성스럽고 좋은 동물입니다. 그러나 개는 좋은 데만 쓰는 게 아니라 욕을 할 때도 씁니다. 지난주에 어쩌면 여기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썼을 수도 있어요. 개는 당황스러울 거예요. 가만히 있는데 자신을 갖다가 쓴다니 개로서는 굉장히 불쾌한 일입니다. 이렇게 개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데, 이 헬라 문화, 히브리 문화, 성경의 문화에서도 개가 좋은 쪽에 쓰이기도 하지만 나쁜 쪽에 쓰이기도 합니다. 주인에게 충성스럽게 말 잘 듣고, 책임감 강한 개를 설명할 때는 ‘퀴나리온’이라는 말을 씁니다. 이때는 좋은 개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나 성경에 좋은 개보다 나쁜 차원에서 개를 사용할 때는 ‘퀴나리온’이라는 말을 쓰는 게 아니라 ‘퀴온’이라는 말을 써서 들개, 그냥 밖에서 돌아다니는 야생 개를 일컬을 때 사용합니다. 오늘 본문 3장 2절에 나오는 ‘개들을 삼가고’라고 할 때에 이 개는 ‘퀴온’, 즉 ‘들개, 야생 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그렇게도 눈물로 세워 놓은 빌립보교회 안의 거룩한 척하는 율법주의자들을 ‘퀴온’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인 삼지 않고 자기 멋대로 들과 산으로 다니면서 모든 나쁜 율법의 생각을 은근히 교회 안에 가지고 옵니다. 이 성도 한번 훑어보고, 저 성도 한번 핥아보면서 몇 마디 나누면, 혀에 가득 묻어 있는 그 독을 전염시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조금 핥아보다가 연약한 성도는 꽉 물어 살점을 뜯어놓고 결국에는 병균이 들어가서 죽게 만들어 버리는 야생 개로, 율법주의자를 지금 바울이 비유하고 있는 겁니다.

얼마나 고장 나고 병든 신앙을 교회 안에 퍼트리는지 바울은 미리 알고, “삼가십시오, 개들을”이라고 말합니다. 여기 2절에 나오는 이 헬라어는 ‘개들을 삼가고, 행악 자를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자들을 삼가라’라는 뜻입니다. 한국 성경은 개들을 삼가라고 하는 단어가 뒤에 나왔지만 헬라어 원어는 “삼가십시오, 개들을”이라면서 ‘삼가’가 먼저 나옵니다. 무슨 뜻일까요? 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삼가라’는 것을 강조하는 겁니다. ‘절대로 허락하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의 기쁨을 도둑질하기 위해서 율법주의자들이 와서 “이 율법 지켰어? 저 율법 지켰어?”라고 여러분을 신앙의 죄책감으로 다시 굴레를 씌웁니다. 개처럼 끌고 가면서 거룩한 척하는 그들에게 물리지 말고, 할큄을 당하지도 말고 그들을 삼가고 조심하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율법으로 구원받은 게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예수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그 이름의 반석 위에 서서 부활의 권능으로 덧입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언제나 우리는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어, 십자가 밑에 나와서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고, 그 예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등장한 율법주의자들이 잘못된 생각들을 옮기고 다닙니다. “율법을 다 지켜야 구원을 받지, 무슨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한 번으로 구원을 받느냐?”며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어 버립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값없다고, 값싼 취급을 하면서 보혈을 막아버리고, 신앙을 병들게 만들고, 보혈을 아주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둘째, 또 ‘개들을 삼가라’ 그리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라’

성경에 나오는 악 중에 가장 큰 악은 위선의 악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위선자라는 말입니다. 자기가 율법의 613가지를 다 지키고 난 뒤에 “내가 지켜보니 귀합니다”라고 소개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도 지키지 못합니다. 이 율법은 세상에 그 누구도 지키지 못한다는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이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없으니 나를 이 죄와 사망에서 건져줄 자가 누구냐?”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율법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으로 이끕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말하는 몽학선생, 초등 교사처럼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으로 외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 율법주의자들은 자기가 율법을 다 지키는 것처럼 행동을 해서 그리스도가 필요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데, 그 위선자의 행악을 끊어버리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율법을 다 지킬 능력이 없는데도 능력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위선자들과는 가까이하지 말라는 겁니다. 섣불리 악한 자들과 동행하지 말고,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시편 1편처럼 함께 서지도, 앉지도, 먹지도 말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셋째, 이 율법주의자들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면 ‘몸을 상해하는 자들을 삼가라.’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손 할례당을 조심하라.’ 이렇게 표현을 했는데 개역개정에서는 번역을 더 정확하게 했습니다. ‘손 할례당’이 아니라 ‘몸을 상해하는 자들’이라고 할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것은 난 지 8일 만에 순수하게 부모의 믿음을 가지고 할례를 행했던 그런 전통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남에게 보이려고 거의 자해 수준으로 할례를 받아놓고 그 할례 자국을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그런 위선자들을 조심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전 성경처럼 손 할례당을 즉, 손으로 할례를 행한 자들을 조심하라고 이야기를 하면 좀 잘못된 번역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율법주의자들은 아브라함 전통에서 만든 할례의 수준이나 유대 전통에서 한 할례가 아니라 몸을 상해하는 수준으로 만들어놓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들어와서 “너 할례받았어?”라고 하면서 회당에 남자들만 모여 있으니 바지를 훌러덩 내리고 거의 자해 수준의 할례의 흔적을 보여주면서 사람을 기죽입니다. 아, 그걸 보면서 ‘우리의 믿음은 저 사람의 헌신과 흔적, 상처에 비교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라고 기죽게 만들어서 성도들 위에 군림하고, 자랑의 도구로 삼는 자들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이런 위선자들이 허울 좋은 율법주의자의 옷을 입고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 율법주의도 위험하고, 자유주의도 위험한데 율법주의가 훨씬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율법주의가 가장 위험한 이유는 거룩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유주의는 오히려 분별하기가 쉬워요. 왜냐하면 교회에 와서 “아, 집사님 뭘 그렇게 신앙생활을 힘들게 해. 좀 피우고, 마시고 살아요.” 이렇게 얘기하면 금방 ‘아, 저 사람 믿음이 약한 사람이구나’하면서 보호 차원으로 들어가지, 존경의 차원으로 안 들어가요. Anti-Moralism, 반도덕주의, 도덕 폐지론자들은 부어라, 마셔라 합니다. 자기 배를 신호로 삼는 사람들, 먹는 게 최고지 하면서 신앙생활을 방만하게 하는 사람들은 존경도 안 받으니까 괜찮아요. 율법주의자의 위험은 교회 안에서 가장 거룩한 사람처럼 보인다는 게 문제입니다. 자기 자신을 그 거룩한 세마포 옷 뒤, 거룩한 목소리 뒤, 끔찍한 할례 뒤에 자기를 숨겨 놓고 거룩한 자처럼 하다 보니까 쉽게 교회 리더가 되고 존경을 훔쳐가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분별하기 힘든 겁니다.

율법주의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무효화시키는 가장 무서운 이단입니다. 예수님의 공로를 다시 구약의 양과 염소의 제사로 환원시켰습니다. 구약에서는 매일매일 번제를 드려서 양 한 마리를 잡고 그 피를 흘리는 제사가 영원히 멈추지 않아서 아무도 우리의 죄를 없애주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침례 요한이 얘기했던 것처럼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하나님의 어린 양인 예수님이 오셔서 단번에 영원한 희생 제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영원히 속죄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는데 이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을 지켜야 한다면서 예수님의 공로는 아무 의미 없이 만듭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를 구약의 양의 제사로, 소의 제사로 데리고 가서 율법 환원주의에 빠지게 하는 너무나도 위험한 이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피를 다시 구약의 양의 피와 맞바꾸는 자들,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놓으신 십자가 부활의 공로를 다시 무효화시키는 적그리스도라는 거죠.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6)

우리는 율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줄 믿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 2:21)

예수님께서 이루어놓은 일을 다시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돌아가면, 예수님을 헛되게 죽은 죽음으로 만드는 적그리스도적인 행동이라는 겁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갈 3:11)

율법을 행하고 지키는 행위 구원은 “내가 하나님이다. 내가 율법을 지킬 능력이 있다”라고 하는 자기 중심주의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것인데 우리는 그게 아니라 예수님이 다 이루어놓으신 그 사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다 지키는 것과 같은 효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약에 기록된 그 모든 율법이 율법 자체로 유효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우리에게는 오히려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더 느끼게 되어서, 이 구약의 율법은 “너희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하다”고 외치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 교사, 초등 교사의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리고 난 뒤에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할 때 그건 율법의 완성이요, 율법의 마침입니다.

그래서 다 이루신 예수님을 우리가 마음에 영접하는 순간 율법을 다 지킨 것과 같은 효력이 발생하는 겁니다. 이미 예수님 안에서 다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예수님을 내가 영접하면, 내가 구약의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해도 예수님께서 다 지키신 것과 동일한 효력이 일어나는 것이죠. 그것을 감격적으로 표현한 것이 로마서 10장 4절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 10:4)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바울은 이 도둑들을 조심하라고만 말하는 게 아니라, 기쁨을 빼앗기지 말라고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믿음의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는지를 3절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빌 3:3)

할례파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몸에 그냥 거창한 할례를 해놓고 사람 겁주는 게 아닙니다. 어떤 도둑과 율법주의자가 와도 진짜 기쁨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유지해야 합니다. 여러분, 주의 일에 기쁨을 가지고, 열정 가지고 시작했다가 6개월 가고, 3년 가면 기쁨은 다 사라지고 기계적인 운동만 남죠.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섣불리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려놓을 때가 됐나 보다.’ 여러분, 주의 일을 하다가 기쁨도 없고, 사람 보는 것도 싫고, 나 자신이 이렇게 하는 것도 위선 같고, 하려는 의욕이 없을 때에 ‘내려놔야지’ 하고 생각하지 말라고 오늘 본문은 이야기합니다. “네가 기쁨을 도둑질 당했으니까 이것까지 내려놓으면 다 잃어버린다. 그것을 내려놓을 때가 아니라 성령으로 봉사해야 될 때다. 성령충만을 달라고 기도해야 된다.” 주의 일을 하다가 기쁨이 없어졌을 때는 내려놓을 때가 아니라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야 될 때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기쁨을 빼앗기지 않고 성령의 화염검으로 율법주의, 자유주의, 어떤 이단이 와도 주님이 지켜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봉사하고 오직 예수로 자랑하던 사람이 기쁨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다하고 난 뒤에 내 이름 알아주지 않을 때입니다. ‘내가 교회에 와서 이 수고를 하는데 내 이름 석 자 주보에도 안 올라와? 이번에는 누구 이름 나오는데, 이 많은 사람의 이름 중에 내 이름도 없어?’ 여러분, 주의 일은 내 이름이 드러나는 게 아니라 예수로 자랑하고, 내가 무엇을 해도 오직 예수님만 자랑해야 하는 줄 믿습니다. 내 이름을 알아주면 좋지만, 몰라준 들 또 어떻습니까? “주여, 내 모든 것을 다해서 드러나는 이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기를 원합니다.”

율법주의자를 경계하느라 산과 들, 방 안에 꼭꼭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깨를 펴고 성령으로 봉사하고, 예수로 자랑하고, 예수의 능력을 의지해서 나아가는 자는 기쁨을 빼앗기지 않는 줄 믿습니다. 그 예수님 안에서 오늘도 복음의 두 발을 단단히 다시 세우고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복음 제일주의, 예수 중심, 십자가 중심, 부활 중심, 보혈 중심의 신앙으로 이어갈 수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최병락 목사 

침례신학대학 기독교교육학과 졸업(B. A.)
사우스웨스턴신학교 졸업(M. Div. Biblical Language)
Dallas Theological Seminary(M. A. 성서연구과정 수학)
사우스웨스턴신학교(Th. M. Evangelism 수학)
(前) 세미한교회 Founding Pastor 및 담임목사
(現) 사우스웨스턴신학교(D. Min. 과정 중)
(現) 강남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
■저서
『다시 일어남』, 『부족함』, 『쏟아지는 은혜』, 『자라가라』, 『모든 것을 살리는 예배를 회복하라』, 『어둠 속에 부르는 노래』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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