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예배 2주차

* 설교자 : 최병락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 페이지 : 220-230

* 본문:

빌립보서 2장 19-24절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함석헌 시인의 ‘이런 친구를 너는 가졌는가?’라는 시(詩)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여러분은 그런 사람을 가지셨습니까? 가라앉는 배에서 구명대를 서로 양보하며 “넌 살아야지” 할 사람 몇 명을 곁에 두고 계십니까? 구명대를 빼앗아가는 사람은 많겠지만 양보하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궁금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고 평생 주님의 일을 하다가 천국에 갈 주의 일꾼들입니다. 목사만이 일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주님의 일꾼입니다. 그런데 일을 맡은 자로서 주의 일을 감당할 때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독불장군(獨不將軍)처럼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서 함께 일하라는 일꾼의 법칙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이것을 가장 모범적으로 보여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홀로 기사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창조 후에 천지 만물을 다스리시고, 다스리신 후에 천지만물을 운행하고 계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 한 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는 그 대속의 어마어마한 사역을 혼자 하시는 것이 편하실까요? 아니면 베드로와 같이 실수가 많은 사람과 함께 하시는 게 편하실까요? 우리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누가 필요합니까? 혼자 깔끔하게 십자가를 지시면 되는 일을 예수님께서는 하나같이 모자란 사람들 12명을 불러 그들과 먹고, 자고, 일하면서 빵을 떼서 나누고 그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난 뒤에 다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떠나셨지만 남아있는 12명에게 “모든 족속으로 가서 너희도 제자를 삼아 내가 너희에게 보여준 것처럼 너희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그곳에 너희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넘치게 하라”는 것이 주님이 몸으로써 보여주신 사역의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바울이 워낙 불세출의 영웅으로 탁월한 영적 리더이기 때문에 바울이 행한 일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모든 일을 행할 때 성경을 가만히 보면 바울이 한 것은 맞지만, 바울이 혼자 한 일은 없습니다. 모든 일에는 꼭 누가 옆에 있었습니다. 바울이 누군가를 데리고 갔습니다. 선교여행을 해도, 무슨 일을 해도 누군가가 옆에 있었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에만 함께한 것이 아니라 험한 일이 있을 때에도 함께였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들어갈 때에도 꼭 누군가와 함께 갔습니다.

바울이라면 “실라야 둘이 고생하느니 혼자 고생하는 것이 낫다. 너는 여기 빌립보 느티나무 밑에 숨어 있어라”라고 말하는 배포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바울은 “실라야 감옥에도 같이 가자”라고 말합니다. 안 좋은 일에도 꼭 같이 갑니다. 바울은 왜 혼자 가도 되는 그 길을 왜 굳이 실라와 같이 들어갔을까요? 바울은 이런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가도 감옥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봐야, 앞으로 네가 감옥에 들어갈 일이 있을 때에 두려워하지 않는 하나님의 일꾼이 된다. 잔말 말고 따라와라.’

그래서 실라는 ‘아! 감옥 안에도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감옥에 들어와도 찬송하면 되는구나. 찬송하면 옥문이 열리는구나. 그 안에 있는 죄수와 간수를 이렇게 살릴 수도 있는 거구나’라고 깨달았을 것입니다. 감옥에 혼자 들어가면 좋은데 끝끝내 같이 데리고 들어가서 감옥에서 나올 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실라가 감옥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찬송하는 사람, 찬송으로 옥문이 열린다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 됩니다. 감옥에 들어가기 전과 후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은 항상 사람을 세우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혼자 일을 하지 않습니다. 늘 함께 일을 합니다. 실례로 신약 성경이 27권입니다. 그중에 바울이 쓴 성경이 13권입니다. 그 바울서신의 대부분은 바울이 불러주고 대필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경조차도 함께 기록한 것입니다. 유명한 로마서도 사실 바울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불러주고 받아 적은 ‘더디오’라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서신서는 다른 동역자가 받아 적어주고, 서신서의 마지막에만 바울이 친필로 쓴다고 마무리 인사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눈이 좋지 않아서 성경을 기록할 여건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큰 글씨로 투박하게 써놓으면 깔끔한 글씨로 파피루스에 적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바울서신 13권이 있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불세출(不世出)의 영웅처럼 보이지만 그 옆의 동역자 때문에 바울이, 바울 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수많은 동역자 중에 바울이 가장 아끼고, 칭찬하고, 가장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디모데입니다. 디모데는 어떻게 바울이 가장 믿고, 편안하게 어떤 일이든 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오늘 디모데에게서 배우는 동역자의 자세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첫째, 디모데는 바울과 한마음을 가진 동역자였습니다.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빌 2:19-20)

19절에 너희의 사정을 안다는 것은 대충 아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게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사정을 아는 사람 중에 진실하게 생각할 사람이 디모데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디모데를 이렇게 좋아했던 이유는 마음이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나오는 언어가 하나였고, 같은 것을 보면서 심장 박동이 뛰었고, 걸어가는 방향이 같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지금 디모데를 어디로 보냅니까? 빌립보서를 써서 빌립보교회로 보낼 때에 그 교회 사정을 면밀히 보고 다시 돌아와 소상히 알려줄 사람으로 디모데를 택한 것입니다. 이때의 사정을 보면 감옥에 있는 바울과 이 빌립보교회의 동역은 10년이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신실하게 바울과 동역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식 중에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었습니다. 좋은 소식은 빌립보교회가 어려운 중에도 ‘In Christ’, 즉 ‘주님 안에서 거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들의 기쁨을 뺏으려고 밖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성도를 유혹하고 있어 분열의 조짐 징후가 보인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결정적인 증거로 그 교회의 신실한 두 집사님이 있는데 ‘유오디아’와 ‘순두게’입니다. 들리는 소식으로는 이 두 사람이 다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정을 면밀히 알아보라고 보낸 이는 디모데였습니다. 디모데를 보낸 이유는 가서 구경만 할 사람이 아니라 디모데를 보내지만 마치 바울이 가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위로해 주고 싶은 부분을 위로하고, 이러한 분열의 이유가 무엇인지, 어디서 나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바울이 간 것과 같이 면밀하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좋은 동역자는 마음이 통하는 동역자입니다. 한뜻, 한 언어, 한 방향인 동역자가 좋은 동역자입니다.

주님의 일은 누구와 함께 해야 합니까? 뜻이 맞는 사람과 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일 것입니다. 모세가 40년간 광야 생활을 할 때에 누구와 함께 일하길 원했습니까? 바로 여호수아입니다. 모세는 무슨 일을 하면 여호수아를 불렀습니다. 모든 것을 여호수아에게 맡겼습니다. 여호수아의 이름 안에는 갈렙이란 사람의 이름도 포함됩니다. 모세는 왜 여호수아를 좋아했을까요? 같은 이유입니다. 모세가 보는 것을 같이 보고, 하라는 일을 합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생김새는 다르지만 뜻도 같고, 마음도 같고, 행동도 똑같았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지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여호수아였던 것입니다.

디모데와 바울은 마음, 언어, 관심, 감정이 통하는 관계였습니다. 그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누굴 보낼까 할 때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누군가 곁에서 동역하고 있다면 그 동역자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한 마음, 한뜻, 한 생각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와 복을 그분에게 주실 줄 믿습니다. 바울이 무슨 일만 하면 디모데가 생각난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둘째, 디모데는 자기 일보다 예수님의 일을 우선시하는 동역자였습니다.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빌 2:21)

이 말은 디모데는 자기 일을 구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했다는 것입니다. 더하여 “그들이”라는 복수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았을 때, 자기의 일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디모데는 그렇지 않았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이는 빌립보교회에 보낼 때에 바울이 디모데 한 사람에게만 부탁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로 누군가를 보내야 하는데 후보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후보 중 A에게 부탁하면 그 제자가 “기도해보겠습니다” 하고 집에 돌아가기도하면, 자기 일이 생각나 일주일 후에 와서 “제가 기도해보았는데 저는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해서 자기 일 때문에 못 가더란 것입니다. 이번에는 B라는 제자에게 부탁하니 그 제자가 집에 가서 “여보, 바울 선생님이 빌립보에 갔다 오라고 하시는데…”라고 하니 아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빨리 연락해서 못 간다고 해”라고 해서 못 간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열이면 열 다 자기의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지 않았는데 디모데는 “디모데야…” 하고 ‘디’자까지만 이야기했는데 괴나리봇짐을 싸고 벌써 떠났더라는 것입니다. 말이 끝나기 전에도 알아듣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알고, 바울이 어려운 말을 꺼내기 전에 이미 빌립보를 향해 떠나는 사람이 디모데입니다. 디모데는 다 자기의 일을 구하는 상황에서 자기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을 구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울이라면 디모데가 어찌 예쁘지 않고,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겠습니까? 세상에 자기 일이 바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날마다 급하지 않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보낸다고 다 가는 것도 아니고, 주님이 명령한다고 하는 것도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다 자기 일이 급합니다. 다 다음에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다음에 할게요”라고 하면 주님도 우리에게 “다음에 응답해 줄게”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다음”이라고 말하면 주님도 “다음에”라고 말씀하시고, 우리가 “지금”이라고 말하면 주님도 “지금 이때에”라고 말씀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다음이 없습니다. 다음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기회가 왔을 때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합니다. 험한 길이라도 그 길을 갔다 온 사람이 디모데입니다.

주님의 일에 순종하지 않고 다음이라고 했던 사람은 역사 속에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일보다 주의 일을 중요하게 여겨 ‘예’하고 나섰던 그 사람의 이름은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바로 디모데입니다. 순종하는 사람은 역사가 기억하고, 성경이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기억하셔서 2천 년 동안 설교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반면에, 안 된다고 했던 사람은 아무도 이름을 모릅니다.

12명이 정탐을 했습니다. 모세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주신 땅이 좋은 땅이라고 이야기했던 사람의 이름은 누구입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을 다 기억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머지 사람은 10명이라고만 이야기 합니다. 이름이 성경에 나오긴 하지만 아무도 그 10명의 이름을 기억하거나 부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어찌 그 사람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목회하면서 나름대로 세운 원칙이 있습니다. 나의 일과 주님의 일이 부딪히면 항상 주님의 일을 먼저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일 중에 중요한 일이 왜 없겠습니까? ‘스티븐 코비’(Stephen Covey)의 이야기처럼 사람에게는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이 있는데, 급한 일을 하느라 중요한 일을 못 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선순위에 있어서 급한 일보다 중요한 일을 먼저 하되,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다면 그것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일 어리석은 사람은 예수님을 믿으면서 “주님, 제 일은 제가 하고, 주님의 일은 주님이 하십시오”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그 능력을 가만두고 계십니까? 주님이 우리 아버지이시고, 주님이 내 하나님이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 보면 빌라델비아교회가 나옵니다. 칭찬받았던 교회입니다. 비록 작은 교회이지만 하나님이 칭찬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계 3:10)

빌라델비아교회가 칭찬받은 것은 작은 능력으로 인내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을 지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보아도, 잔치에 초대하는데 바쁘다고 오지 않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소를 훈련시키려고, 장가를 가서, 밭을 사서 등등의 이유를 댑니다. 아무리 잔칫집에 불러도 자기 일에 바쁘다고 하면서 못 옵니다. 다음에 온다고 말합니다. 다음은 없습니다. 주님의 일은 오늘밖에 없습니다.

평생 자기 일을 하느라 아무것도 못 합니다. 왜 평생 자기의 일을 할까요? 주님이 일해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의 일을 해야 주님께서 나의 일을 해주시는데, 내가 나의 일을 하다 보니 나 혼자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일을 하고, 내가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사역자 중에서도 늘 집안일이 바쁜 사람이 있습니다. 퇴근 시간 전에도 집에 가봐야 하고, 사역하다가 전화 오면 가야 하고, 멀리 가는 교회 행사는 집안일 때문에 못 간다고 합니다. 어려운 사역이 있으면 휴가를 씁니다. 자기 일에만 바쁜 사역자가 있습니다. 절대 하나님이 쓰시지 않습니다.

디모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누가 갈 것인지 물어보자 다 안 된다고 핑계 대고 빠져나갈 때, 말 떨어지기 무섭게 자기 일인 줄을 알고 선뜻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그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합격’이라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내가 평생 저 디모데와 같이 사역하다가 하나님의 큰 상급을 받도록 해야겠다’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셋째, 디모데는 성도들에게 인정받는 동역자였습니다.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빌 2:22)

이것은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디모데가 연단을 받으면서도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 것을 아시지요? 나에게도 아버지를 대하듯이 얼마나 성실히 대했는지 아시지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디모데를 “이러한 사람이지요?”라고 성도들에게 묻고 성도들이 맞다고 대답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빌립보 성도들도 다 디모데를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일꾼은 마땅히 하나님께도 인정받고, 동역자인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겠지만 성도들에게도 인정받아야 할 것입니다. 성도들도 알고 있습니다. 진짜 주의 종으로 살고 있는지, 취직했는지 말입니다. 다 지나 보면 성도들이 알고 있습니다. 교역자는 인정받는 일꾼이 되어야 하는데 빌립보 성도들은 디모데를 인정했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디모데가 얼마나 멋진 사역자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와 같은 동역자와, 에바브로디도 같은 멋진 평신도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에 불세출의 인물같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영웅이 아닙니다. 바울이 쓰임 받은 것은 그 옆에 많은 동역자가 자신이 빛나기보다는 바울을 빛나게 하여,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을 만드는 동역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후에 디모데는 에베소교회의 목회자가 됩니다. 내가 누군가를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면, 언젠가 내가 그 자리에 설 때 나를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동역자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제자가 아닙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자리를 꿰차지 않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과 뜻을 같이 하고, 예수님과 같이 바라보고, 같은 심장으로, 예수님의 발길이 머무는 곳에 내 발길이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니 교회와 한 방향을 바라보시고, 한 비전과 한뜻을 가지고 나아가면서 교회도, 성도도 복을 누리는 은혜가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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