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예배 3주차

* 설교자 : 곽주환 목사 베다니교회

* 페이지 : 188-195

*본문 :

디모데전서 6장 6-10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목회하면서 많은 성도도 만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하나씩 정리되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우리가 갖는 마음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어떤 마음의 태도를 가지고서 살아가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펴보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 6:5-6)

하나님께서 눈여겨보시는 것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 좀 다르게 표현하자면, ‘마음의 태도, 혹은 마음가짐’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왕을 찾으셨습니다. 엘리압을 보고서 ‘이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이로구나’라고 사무엘은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6-7)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심이 무엇일까요? 마음의 중심입니다. 마음의 태도입니다. 마음에 가지고 있는 의도입니다. 마음가짐을 보신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달라스 신학교의 학장인 찰스 스윈돌(Charles Rozell Swindoll)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인생의 90%는 벌어진 상황에 내가 어떤 태도와 사고방식으로 반응을 하는가에 따라 결정되고, 현재 벌어진 일 그 자체가 나에게 문제 되는 것은 겨우 10%밖에 안 된다는 의미다.” 어떤 마음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을 만나보면 불평하는 사람은 언제나 불평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언제나 감사합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언제나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은 언제나 긍정적입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툴툴대는 사람은 언제나 툴툴대고, 맛있다고 먹는 사람은 언제나 맛있게 먹습니다. 이러한 것이 결국 은 우리 마음의 태도, 혹은 마음가짐이 아닌가요?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마음의 태도, 마음가짐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코로나19를 지나면서 우리는 감사를 잃어버리기 쉽고, 자족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기 쉬운 환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을 회복해야 하고, 자족하는 마음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무엇일까요? 자족한다고 할 때에 한자로 ‘스스로 自’ 그리고 ‘발 足’을 사용했습니다. 헬라어 원어를 보아도 자족한다고 할 때에 영어 표현의 ‘auto’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자전거를 바이시클(Bicycle)이라고 합니다. 바퀴가 두 개라는 의미입니다. 오토바이는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라는 의미입니다. 자전거는 밖에서 힘을 줘서 바퀴가 굴러가지만, 오토바이는 안에서부터 힘이 생겨서 굴러가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자족이라는 의미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족이라는 것이 밖에서부터 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환경이 좋아지면 내가 만족하고, 환경이 나빠지면 불만족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족은 외부의 환경에서 오는 만족이 아니라, 내 안에서부터 흘러넘치는 만족입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 빌립보교회에 편지를 썼습니다. 그것이 바로 빌립보서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 4:11-12)

바울이 깨달은 것은 자족은 풍부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내 안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자족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는 자족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왜 우리는 자족하지 못하나요? 우리의 마음에 “좀 더, 좀 더”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얼마의 돈이 내 통장에 있으면 좋겠습니까? 얼마의 돈을 갖는다고 우리 마음이 만족스러울까요?

도박을 하면 결국에는 모두 거지가 됩니다. 도박을 하면 결국에는 모두가 망합니다. 왜 망할까요? 도박을 해서 조금 땄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사람은 조금 딴 것 때문에 좀 더 따고 싶고, 좀 더 따면, 더 따고 싶고… 이러한 인간의 욕심이 결국에는 망하는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자족하는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스스로 만족한다는 의미입니다. 환경이 주는 것을 통해서 오는 만족이 아닙니다. 밖에서 오는 만족이 아닙니다. 내 안에서부터 흘러넘치는 만족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하였는데 어떻게 배운 것일까요? 바울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8)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고상한 진리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얻는 큰 만족함이 있기 때문에 내 마음에 자족함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여성들은 핸드백을 좋아합니다. 나에게 아주 값비싸고 마음에 드는 명품 핸드백이 집에 있다고 합시다. 이렇게 아주 마음에 드는 것이 내 집에 있으면 지나가다가 시장에서 팔고 있는 핸드백이 내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습니다.

예수가 누구인가요? 가장 고상합니다. 여기에 표현된 고상하다는 표현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장 뛰어나다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족하는 것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그 자족하는 마음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족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사도 바울의 자족하는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왔습니다. 예수님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뛰어난 분이십니다.

우리 교회 어느 부목사님이 설교할 때에 전한 재미있는 예화가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딸이 장난감을 갖고서 노는데 절대로 그 장난감을 양보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친구들이나 동생들이 와도 그 장난감을 절대로 놓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장난감보다 더 좋은 장난감을 보더니,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쳐다보지도 않더라는 것입니다. 딸의 그 모습을 보고서 부목사님이 깊은 진리를 깨달았다는 고백입니다.

정말로 맞는 말씀입니다. 환경으로부터 오는 만족, 환경이 주는 성취감, 환경이 주는 행복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잠시 동안 만족했다가 다시 비교하기 시작하고, 다시 불평은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족은 내 안에서부터 흘러넘치는 만족함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가장 존귀하신 분, 내 인생의 근본이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주시는 만족함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내 안에서부터 흘러넘치는 그 마음이 결국에는 자족하는 마음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환경을 통해서 얻으려는 만족은 오래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점점 더 괴로워집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가 내 안으로부터 흘러넘칠 때 스스로 만족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딤전 6:6)

자족하는 마음은 경건으로 이어지고, 다시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그러한 경건은 우리의 마음에 자족하는 마음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그 마음이 바로 경건함이요, 그러한 경건한 마음은 자족하는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 중에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이 찬송이 바로 우리에게 자족하는 마음의 이유를 가르쳐 줍니다. “예수가 가장 고상한 진리이고, 가장 존귀하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와 함께 있으면 내가 없어도 주님이 계십니다.”

이러한 고백입니다. 이같이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는 자족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내 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고, 내 인생에 참된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이어지는 본문 말씀은 우리가 자족하는 마음을 갖는 데 도움을 주는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딤전 6:7)

우리가 자족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좀 더 갖고 싶은 마음, 좀 더 누리고 싶은 마음, 좀 더 영향력을 갖고 싶은 마음, 좀 더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 이러한 마음이 자족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게 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고, 갈 때에도 아무것도 가져갈 것이 없는데 뭐 그렇게 “좀 더, 좀 더”하면서 살아가는가?” 그리고 계속해서 이렇게 이어집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8)

이 말씀은 “오늘 나에게 먹을 것과 오늘 나에게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라”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광야를 지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먹던 만나가 생각이 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만나를 주실 때에 며칠, 몇 달, 몇 년 치의 만나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날 먹을 양만큼 주셨고, 더 많이 가져가야 벌레가 생겨서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광야는 매일 주시는 일용할 양식으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예수께서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자족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양식이 있는데 앞으로 십 년 후의 양식까지 준비하느라 그렇습니다. 오늘 양식이 있는데 앞으로 백 년 후의 양식을 준비하느라 우리는 자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난한 사람으로 살지 마십시오. 가난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많이 가졌어도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많이 가지지는 못했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자족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풍요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이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십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나는 가장 존귀한 가치를 마음에 지니고 살아가니 나에게는 만족함이 있습니다. 세상의 환경은 결코 우리의 마음에 만족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만족함을 준다 할지라도 그 시간이 길지 못할 것입니다. 자족하는 비결을 배우십시다.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가장 존귀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 가장 중심에 모시고 살면 됩니다.

예수님 때문에 나는 행복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나는 없어도 있습니다. 자족함은 외부의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모시고 살 때에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닐까요?

곽주환 목사 

美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M. Div.), 박사(D. Min)
(現) 감리교 신학대학교 이사
(現) 교회성장연구소 이사
(現) 베다니교회 담임목사
■저서『생명을 살리는 교회』, 『베다니에서 생긴 일』, 『베다니에서 부르는 사랑 노래』 및 역서 『평생 유용한 설교방법의 백과사전』, 『뉴 프리칭 밀레니엄』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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