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부 설교

* 설교자 : 최정훈 목사 부천동광교회(둥근교회 담당)

* 페이지 : 374-383

*본문 :

여호수아 2장 1-7절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어떤 사람이 여리고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중의 몇 사람이 이 땅을 정탐하러 이리로 들어왔나이다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정탐하러 왔느니라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이르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1. 믿음의 시작

최근 서점에서 놀랍게 팔리는 책이 하나 있는데 바로 『더 해빙(The having)』이란 책입니다. 이 책을 보고 저는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다 읽었습니다. 전 세계 상위 0.1 퍼센트 부자들이 만나기를 원하는 ‘이서윤’ 씨를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정리하여 낸 책이 바로 『더 해빙』입니다. 이 책은 미국과 유럽에서 미리 출간한 책인데 그 반응이 대단했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39억에서 86억 정도의 재산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럴 수 없는 이유가 바로 ‘해빙’(Having)에 있다는 것입니다. ‘해빙’이란 뜻은 간단합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하라’는 의미입니다. ‘없음’의 세상에서 ‘있음’의 세상으로 감정을 바꿔보라는 것입니다. 이대로만 실천하면 2-3주 만에 금방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책은 소개합니다.

저는 이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더 빌리빙’(The believing)이란 단어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사실 우리는 대부분 ‘없음’의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예를 들어 어떤 물건을 두고 우리는 고민합니다. 내 수입은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 과연 구매해도 되는 것일까? 그러면서 생각은 깊어집니다. 이번 달 세금도 내야하고 보험료, 휴대폰 요금, 식사비, 그 외에도 지출할 곳이 많은데 나는 왜 늘 돈이 없는 것일까?

그래서 다른 사람들처럼 할부 또는 대출을 받아 무엇인가를 삽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합니다. 내가 돈을 주고 내가 구입 한 것인데 늘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내 통장의 잔고를 보면 마이너스입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늘 돈이 없다는 느낌’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한번 시작되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하지만 ‘해 빙’(The having)은 그 ‘없음’에서 지금 내게 ‘있는 것’에 집중하라고 말합니다. 이순신 장군도 이런 말을 합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있다’라는 것에 집중하면 누구에게든 부와 행운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여호수아를 묵상해보았습니다. 가나안은 지금 여호수아에게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있다고 믿고 요단강을 건너는 장면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면서 ‘더 빌리빙’(The believing),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것입니다.

2. 여리고 성

오늘은 그 첫 시간입니다. ‘더 빌리빙’(The believing), ‘믿음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그 주제를 함께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본문 1절입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수 2:1)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첫 번째 군사작전을 시작합니다. 그가 먼저 선택한 것은 가나안을 가로막고 있는 여리고 성을 정탐하는 일이었습니다. 전쟁에서는 상대편의 군사력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벽이 있어서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고고학자들이 도면을 그려보았습니다. 성벽이 이중으로 되어 있습니다. 내벽과 외벽이 있으며 그 높이가 최소 14미터, 넓이는 2미터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나무판자를 연결하여 집을 짓고 살았는데 이곳에는 기생 라합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벽이 단순한 담벼락 수준이 아닙니다. 규모가 상당합니다. 문제는 여리고 성에 들어가야만 규모를 알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또한 정탐을 위해서는 이 성이 어떤 구조로 정찰을 하고 있는지, 투석기는 어디에 놓여 있으며 병력은 어느 정도인지를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더불어 그 안의 민심도 중요합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인지 분열되었는지도 세밀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호수아는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과연 그는 몇 명을 보냈을까요? 2명입니다. 여호수아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그의 스승 모세는 여리고 성에 정탐꾼 12명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자신과 갈렙을 제외한 10명이 기껏 한다는 말이 “우리는 죽을 것이다. 안 된다. 우리는 메뚜기며 그들의 밥이다”라는 믿음 없는 소리를 했습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은 40년의 광야생활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것이 여호수아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정탐꾼 2명을 여리고로 보내게 된 것입니다.

3. 두 정탐꾼

오늘은 이 두 사람에게 집중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두 사람이 여리고 성의 스파이로 보내졌습니다. 처음에는 이 두 사람에 대해 ‘정말 대책 없는 사람들이구나. 믿음도 그렇고 굉장히 뻔뻔한 사람들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여호수아는 40년을 준비했습니다. 그가 이 2명의 정탐꾼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가졌을까요? 그러나 그들이 한 것은 딱 하나입니다. 성문에 진입하여 숙소에 들어간 것이 전부입니다. 이후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들켜 버렸습니다.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정탐하러 왔느니라” (수 2:3)

본문 3절은 여리고의 군사력이 생각보다 견고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스파이가 성안에 들어왔습니다. 그 정보가 곧장 왕에게까지 보고되는 시스템입니다. 그것도 그 정탐꾼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를 자세히 파악합니다. 이제 모든 계획이 끝났습니다. 정탐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상황입니다. 여리고 왕이 직접 나서서 스파이를 끌어내라고 지시합니다. 이때 라합이라는 기생이 그들에게 다가가 숨겨주면서 제안을 합니다. “나중에 나와 나의 가족을 꼭 살려줘야 합니다!” 그리고서는 창문에 줄을 달아놓고 탈출을 도와줍니다.

그러나 라합은 불안한 마음에 그 둘을 붙잡고 상세하게 나가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성벽을 곧장 나가지 말고 3일 동안 산에 숨어 있다가 경계가 느슨해지면 그때 나가라고 하나부터 열까지를 다 알려줍니다. 그렇게 두 정탐꾼은 그녀의 말을 듣고 산에 숨어 있다가 무사히 여호수아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놀랍습니다.

“그 두 사람이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 강을 건너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나아가서 그들이 겪은 모든 일을 고하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하더라” (수 2:23-24)

보통 위와 같은 진술을 위증이라고 합니다. 지금 2명의 정탐꾼이 여호수아 앞에서 뻔뻔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그들은 여리고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딱 한 사람 라합을 만난 게 전부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정탐에 실패했고,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 반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4. 라합과의 만남

정탐꾼은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오늘의 주제는 ‘더 빌리빙’(The believing)입니다. ‘없음’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 것’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두 사람은 스파이입니다. 목숨을 걸고 적국에 들어가야 합니다. 만약 적발되면 살아서 돌아올 수가 없습니다. 그 마음으로 여리고 성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인데 들어가자마자 들켜버립니다. 이 두 사람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분명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라고 믿고 성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근처에 가보지도 못하고 하루 만에 발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무 생각 없이 걸어만 가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혹 넘어지더라도 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위기의 순간에 ‘타닥-탁탁탁’하고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져야 하는 게 아닐까요? 하지만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죽음의 문턱에서 그들은 숨죽이고 서 있었습니다.

그 절망 가운데 두 사람은 라합을 만나게 됩니다. 라합에게는 기생이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닙니다. 어느 학자는 예수님의 조상이 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기생이란 단어는 창세기 37장에서 다말을 소개하는 창기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런데 기생이었던 라합의 입에서 대단한 믿음의 고백이 나옵니다.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수 2:9-10)

그녀는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아모리 사람들을 진멸시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빌리빙’(Believing)입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믿음은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5. 라합의 믿음

신명기 6장에서도 “쉐마”, 듣는 것이 먼저입니다. 하지만 라합만 들었을까요? 여리고성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도 매주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라합은 ‘빌리빙’,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치 본 것처럼 믿었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광야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그녀는 믿었습니다. 여러분도 예수

님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의 제자 도마는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의 못 자국을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다”라고 했을 때 주님은 만져보라고 하셨습니다. 그제야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는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왜 드릴까요? 아까운 헌금을 드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 것처럼 믿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헌금하며 선교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 것처럼 믿으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빌리빙’(Believing)입니다. 그리고 가장 첫 번째가 ‘듣는 것’입니다.

6. 믿음의 연속

생각해 보십시오. 라합이 귀로 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이제 라합의 말을 누가 들었을까요? 두 정탐꾼입니다. 아마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적국에서 그것도 여리고의 끝자락에 서있는 기생 라합에게서 하나님의 이름을 듣게 됩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 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수 2:11) 이 말을 듣는 순간 무엇을 느꼈을까요? 그저 한 여자의 음성이 아니라 라합의 입술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도저히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 모세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빌리빙’(Believing)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우리는 여리고 성이 얼마나 강하고 민심은 어떠한지 정보를 얻기 위해 왔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막으시고 모세가 했던 하나님의 언약을 다시 듣게 하시는구나.’ 그래서 23절에서 두 사람이 여호수아에게 했던 말은 위증이 아니라 믿음의 고백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겠다는 것을 듣고 그 이야기를 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40년 전의 그때가 다시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는 12명의 정탐꾼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가보지 않았지만 반드시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2명 모두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다 함께 여리고 성으로 가서 정탐을 합니다. 자신과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현실을 바라봅니다. 지금의 상황을 바라보며 우리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모습이 여호수아는 못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땅을 직접 밟아보니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지금 모습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메뚜기고, 그들의 밥이다. 조금도 희망도 가질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여호수아는 답답하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의 모습이 그들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분명히 주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여호수아의 마음에는 불안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리고 성이 얼마나 강한지 약점이 무엇인지 또 민심은 어떠한지를 상세하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2명의 정탐꾼에게서 “하나님께서 하신다”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 믿음의 고백을 통해 그는 다시 용기

를 얻고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너갈 수 있었습니다.

7. ‘듣는 것’이 시작

‘더 빌리빙’(The believing)의 첫 번째는 ‘듣는 것’입니다. 라합이 듣고, 그 이야기를 두 정탐꾼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여호수아가 듣고 믿음으로 여리고 성을 함락합니다. 이 말씀은 약 3,400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한참 지나서 바울이 그 이야기를 로마서에 기록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또 시간이 흘러 지금 우리에게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듣는 것이 정말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수많은 말씀들이 놓여 있습니다. 유튜브에 검색만 해도 원하는 말씀을 마음껏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들리지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바로 거기에서 믿음이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했을 때 그 시작은 요단 강을 건넜을 때가 아닙니다. 그 시작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을 때가 아닙니다. 그 시작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이 ‘빌리빙’(Believing)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들리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하실 것을 믿으며 걸어가는 것이 ‘빌리빙’(Believing)의 비밀입니다.

『더 해빙』이란 책에서는 2-3주만 이대로 생각하며 행동하면 효과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빌리빙’(The believing)은 지금부터 효과가 일어납니다. 들리십니까? ‘더 빌리빙’(The believing) 하시며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시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최정훈 목사 

상명대학교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교역학석사) 졸업
숭실대학교 성서신학과 (Th. M. 신학석사) 졸업
(現) 부천동광교회 부목사(둥근교회)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