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요예배 4주차

* 설교자 : 장창수 목사 대명교회

* 페이지 : 342-352

*본문 :

누가복음 8장 26-39절

“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예수께서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 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그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중략)…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이르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최근 신문에 60대 부부의 이혼 사례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아내가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는데 이혼 사유가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남편이 외도(外道)를 한 것도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도 아닙니다. 부부 사이에 자녀들도 잘 자라나서 모두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래서 판사가 아내에게 이혼을 왜 하려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아내는 40년 전 신혼 초에 남편이 폭언하고 자기 집안을 무시했던 아픔과 상처가 아직 남아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막내가 장가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혼을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기사 말미(末尾)에는 이 사례에 대한 심리학자의 분석이 있었습니다. 아내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병리적인 면도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한 번뿐인 인생을 사랑하며 기쁨으로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평생 가슴에 남긴 채 살아온 인생이 불행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믿음이 있었다면 서로 용서하며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어떤 집사님의 아이가 스마트폰에 중독이 되어있다고 상담을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를 병원에도 데리고 가고, 혼을 내도 안 된다고 합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학교에 가서도 스마트폰에 늘 빠져 있습니다. 하루는 학교 선생님이 부모님을 오시라고 해서 학교에 갔습니다.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수업 시간에는 스마트폰을 반납해야 하는데 반납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혼을 내고 매를 들었는데 매를 맞으면서도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답니다. 여기에 충격을 받은 선생님이 부모님을 학교에 오시라고 한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사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역시 알게 모르게 정신적인 질환을 갖고 살아감을 보여줍니다. 흔히 정신질환이라고 하면 정신병원에 있는 환자나 미친 사람과 같이 극단적인 예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부분적으로는 정상적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과 명예, 권력에 집착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술과 인터넷, 게임에 중독이 되기도 합니다. 스트레스나 우울증, 노이로제(Neurosis) 등 정신적인 문제를 겪는 사람도 많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정신의학자인 ‘스콧 펙’(Scott Peck)은 오늘 이 시대의 사람들을 ‘미(Me) 제너레이션(Generation)’이라고 평가합니다. 바로 ‘내가 중심이 되는 세대’라는 것입니다. 내 의견만이 중요합니다. 내 생각대로 사는 것만 추구합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분노합니다. 스콧 펙은 이러한 세태를 ‘정상은 아니다’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이 시대의 문제는 자기가 정상이 아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믿음이 있었다면 서로 용서하며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어떤 집사님의 아이가 스마트폰에 중독이 되어있다고 상담을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를 병원에도 데리고 가고, 혼을 내도 안 된다고 합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학교에 가서도 스마트폰에 늘 빠져 있습니다. 하루는 학교 선생님이 부모님을 오시라고 해서 학교에 갔습니다.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수업 시간에는 스마트폰을 반납해야 하는데 반납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혼을 내고 매를 들었는데 매를 맞으면서도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답니다. 여기에 충격을 받은 선생님이 부모님을 학교에 오시라고 한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사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역시 알게 모르게 정신적인 질환을 갖고 살아감을 보여줍니다. 흔히 정신질환이라고 하면 정신병원에 있는 환자나 미친 사람과 같이 극단적인 예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부분적으로는 정상적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과 명예, 권력에 집착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술과 인터넷, 게임에 중독이 되기도 합니다. 스트레스나 우울증, 노이로제(Neurosis) 등 정신적인 문제를 겪는 사람도 많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정신의학자인 ‘스콧 펙’(Scott Peck)은 오늘 이 시대의 사람들을 ‘미(Me) 제너레이션(Generation)’이라고 평가합니다. 바로 ‘내가 중심이 되는 세대’라는 것입니다. 내 의견만이 중요합니다. 내 생각대로 사는 것만 추구합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분노합니다. 스콧 펙은 이러한 세태를 ‘정상은 아니다’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이 시대의 문제는 자기가 정상이 아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본문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첫째, 귀신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귀신도 예수님을 알아본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귀신의 힘은 우리 인간에 비하면 대단합니다. 하지만 귀신도 예수님의 권세에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귀신조차도 예수 이름의 권세와 예수 믿는 성도들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예수 믿는 성도들은 귀신에 대해서 과도하게 의식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거라사의 귀신 들린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의 인생이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그의 모습은, 구원받기 전 죄인 된 우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만나 회복된 모습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을 만나기 전 귀신 들렸던 인생은 비참했습니다

거라사의 귀신들린 사람은 무덤에 살았습니다. 지금도 거라사에 가보시면 당시 무덤 사이를 파고 살았던 굴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들은 옷을 입지 않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힘이 강했는지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도 그것을 끊어버릴 정도였습니다. 다른 사람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까지 피해를 입혔습니다. 마가복음 5장 5절에는 귀신 들린 사람이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라고 기록합니다. 이 귀신의 정체에 대해서 성경은 ‘더러운 귀신’이라고 표현합니다. 마가복음 5장 2절에도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럽다는 표현은 헬라어로 ‘아카다르토’(ἀκαθάρτῳ), 즉 ‘부정하다’라는 뜻입니다. 정상적인 것을 부정하고, 도덕적인 것을 부정하는 자체가 더럽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 바로 예수님을 만나기 전, 귀신 들린 자의 모습입니다. 그는 부정함으로 가득 찬 인생입니다. 귀신 들린 사람은 인격도 삶도 더러움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내가 사는 곳이 더럽고, 내 모습이 더럽고, 내 인생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탐욕과 음란과 방탕과 외식과 불법으로 가득한 더러움이 그 속에 가득

차 있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만나기 전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2. 귀신 들린 사람의 모습은 고독한 인생의 모습입니다

본문 27절에는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 거한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에게 무덤 근처에 살라고 하면 무섭고 외로워서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무덤은 살아있는 사람이 거주할 곳이 아닙니다. 고독하고 절망이 가득한 장소입니다. 인격적인 교제를 할 수 없는 곳입니다. 죽음의 자리입니다. 예레미야 17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렘 17:5-6)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외롭다는 것입니다. 장례를 치러 보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오직 예수님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질, 권력, 지식, 가족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 그것만이 전부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죽음을 맞이해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외롭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홀로 외롭게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일주일이 지나도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머리맡에 두고 쳐다만 보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도 우리의 삶이 여전히 고독하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강원도 ‘예수원’(Jesus Abbey)의 ‘벤 토레이’(Ben Torrey) 원장은 산골짜기에 살면서도 일평생 행복했다고 합니다. 수도원에서 홀로 살면서도 늘 주님과 대화하며 외롭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 감사와 기쁨이 넘쳤습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는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 공간은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돈으로, 명예로, 취미로 아무리 채워봐야 고독과 외로움은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속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생은 고독하고 비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을 믿는 인생은 참으로 복된 인생인 것입니다.

3. 예수님을 만나기 전 우리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삶이었습니다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하니” (눅 8:28)

거라사의 귀신 들린 사람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괴롭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평소에 친하게 지내다가도 “저한테는 전도하지 마세요. 예수 이야기하지 마세요”라며 거절합니다. 자신이 멸망을 받을 지옥으로 가고 있는데도 유일한 구원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합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 반(反) 기독교인들이 생겨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짜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기 때문에 비판을 받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에 대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악으로 인해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들은 예수님을 거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는 ‘현대인들은 무의식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세 가지의 반응을 보인다. 도피하거나,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것이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죽어가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1)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삶

본문 27절은 귀신 들린 사람에 대해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옷을 벗고 지냈는데도 전혀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자기가 하는 행동이 죄라는 것을 모릅니다. 또한 죄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삶이 변화되었을 때는 말과 행동과 생각의 죄까

지도 부끄럽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이것이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2) 파멸의 길로 가는 삶

세상의 모든 사람은 중독이 되어있습니다. 무엇인가에 집착하기도 합니다. 자기가 가진 돈, 명예, 지식에 집착합니다. 내가 아는 것이 모두 다 옳다고 주장합니다. 그 외에 나머지 모든 것은 틀렸다고 비난합니다. 또한 이 시대에는 수많은 중독이 있습니다. 가끔씩 뉴스에서 젊은이들이 게임을 하다가 ‘돌연사’했다는 소식을 접하곤 합니다. 자신이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잠도 안 자고, 먹지도 않고, 게임만 하다가 갑자기 죽는 것입니다.

29절에는 “귀신이 가끔 그 사람을 붙잡으므로 그를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 지켰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라고 말씀합니다. 귀신에게 붙잡히면 자신의 의지나 힘과는 상관없이 광야로 끌려갔다는 것입니다. 중독을 끊고 새 삶을 산다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중독은 자신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리 스트로벨’(Lee Strobel)의 『은혜, 은혜, 하나님의 은혜』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은혜란, 모든 매임에서 풀려나는 것’이라는 주제가 있습니다. 중독에 매여있는 사람, 과거 상처에, 우울증과 질병에 매여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모든 매임에서 자유를 얻는 것이 바로 은혜라는 것입니다.

‘저드’라는 불쌍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12살 때, 선배들 무리에 끼고 싶어서 마약을 접합니다. 그 후에 자기도 모르게 마약에 빠져들어, 4년 만에 코카인과 필로폰을 섞어서 주사로 투약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삶이 통제 불능에 빠졌습니다. 단 일주일도 맨 정신으로 살아 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면서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힘으로 마약을 끊으려 하다가 또 실패하고, 이것이 다람쥐가 쳇바퀴 돌듯이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마약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 ‘저드’는 마지막으로 방 안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제발 도와주세요. 제 삶은 완전히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도저히 내 힘으로는 끊을 수가 없습니다.” 처음으로 이런 기도를 합니다. 그 후에도 끊임없이 기도를 반복합니다. 마약을 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며 계속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요한일서 4장 10절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를 읽을 때, 완벽하게 치유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같이 문제 있는 사람도 사랑하심을 느낍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고, 이 예수님만이 나의 참 소망이 되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은혜받은 후 목회자가 됩니다. 주드윌 화이트 목사는 현재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센트럴 크리스천 교회의 담임목회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출석교인은 2만 2천 명이며, 미국의 10대 교회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한 주에 400명씩 세례를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화려하게 보이는 죄악의 도성인 라스베이거스에 복음이 증거되고, 예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은혜의 도시가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조차 거라사의 귀신 들린 사람의 이야기는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지나쳐 버립니다. 그러나 사탄의 꾀임은 교묘해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수많은 사람을 중독과 우울증 등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받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거라사 광인(狂人)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합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절망의 현장에 찾아와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만든 모든 우상은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손을 내밀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실패해도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낙심해도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중독되어 스스로의 힘으로 도저히 헤쳐 나올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찾아와 주십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는 수가 성 여인에게도 찾아가셨습니다. 38년 된 절망에 빠진 베데스다 연못의 환자에게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거라사의 귀신 들린 자에게도 찾아오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를 통해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만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시면 모든 매임에서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사람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자신의 이름은 “군대”라고 대답합니다. 이 ‘군대’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레기온’(Λεγιών)입니다. ‘레기온’은 군단(軍團)을 의미하는데 약 6천 명의 군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귀신이 들어있고 강력한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신의 힘이 강력하고 수가 많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로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때로는 내 생각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군대 귀신과 같은 강력하고 수많은 대적이 있을지라도 주님의 능력을 신뢰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찾아와 주셔서 완벽하게 회복시켜주십니다. 35절에는 사람들이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39절에서 주님은 마지막으로 귀신 들렸던 사람에게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가 완전하게 회복이 되었다는 예수님의 선언이십니다.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어떤 질병이나 문제이든지 잠시 회복된 것처럼 보이지만 후유증이 있습니다. 재발(再發) 하거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고쳐주시면 완전하게 회복됩니다. 역대하 14장 11절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삶에 문제가 있어도 아픔과 상처가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면 완벽한 회복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에게 “집으로 돌아가라”라며 완전한 회복을 선포해 주십니다. 우리 모두가 이처럼 주님을 만날 때, 삶의 완벽한 회복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는 믿음의 백성들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장창수 목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 Div.)
계명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졸업(M. A.)
미국 Azusa Pacific University 졸업(M. A. R.)
미국 Liberty University 졸업(D. Min.)
총신대학교 기독교 교육학 박사과정(Ph. D.) 수료
미국 Torrance 소재 남가주 크리스천 한인교회 담임 역임
월드비전 목회자 홍보대사
대구 매일신문 칼럼니스트 역임
GMS 세계선교회 부이사장 역임
대신대학교 11.12대 재단이사장 역임
(現) 대구 CBS 운영이사장
(現) 총신대학교 재단이사
(現) 대구 대명교회 담임목사
■저서
『길라잡이』, 『성령의 열매 맺기』, 『하나님의 명령에 싸인하라』, 『성숙한 그리스도인 1, 2』, 『말씀을 따라 산 믿음의 거장들』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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