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요예배 3주차

* 설교자 : 장창수 목사 대명교회

* 페이지 : 330-340

*본문 :

사사기 6장 11-18절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중략)…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2002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4개 부분을 수상한 ‘뷰티풀 마인드’(A Beautiful Mind)>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존 내시(John Nash)라는 실존 인물의 삶을 담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존 내시는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수학자입니다. 이분의 대표적인 업적은 ‘게임이론’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내시균형’을 정립한 것입니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존 내시는 탁월한 학자이자, 동시에 정신분열증 환자입니다. 그는 정신분열증으로 인해서 실제의 삶과 자신의 상상이 뒤엉켜 혼란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고독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 영화는 ‘존 내시’가 단절의 벽을 허물고 다시 세상 속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아내 알리시아(Alicia)입니다. 그녀는 끝까지 남편을 떠나지 않고, 삶의 문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가정을 지켜나갑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정신분열증으로 세상과 단절한 남편을 밖으로 이끌고, 노벨상까지 받도록 돕습니다. 평론가들은 이 영화에서 “그녀는 남편을 현실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눈으로 바라보았다”라고 말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우리들도 많은 문제와 상처, 절망 속에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인도하시며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은혜’라는 말을 수없이 듣습니다. 그러나 은혜가 무엇인지 정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다는 사실을 믿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깨닫기는 어렵습니다. 쉽게 말해 우리에게 은혜란 첫째, 모든 사람이 자신을 향하여 비난하고 손가락질해도 주님께서 괜찮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모든 사람이 자신을 떠나도 주님께서는 오히려 우리를 찾아와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모든 부분이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주님께서 도와주신다며 손 내밀어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사사기 6장에 등장하는 사사(士師) 기드온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사사기에는 유명한 삼손부터 에훗, 드보라와 같은 많은 사사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 역사의 흐름은 늘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바로, 반역(Rebellion), 보응(Retribution), 회개(Repentance), 구원(Rescue)의 단계입니다. 사사 시대 이스라엘의 역사는 늘 이런 패턴(Pattern)이 반복됩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태평성대(太平聖代)를 누리며 부족함이 없을 때마다 우상숭배와 교만의 죄를 지음으로써 하나님께 반역합니다.

사사기 6장은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또’라는 단어에 주목해 봅시다. 이스라엘은 사사 드보라 시절에 40년 동안 평온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또다시 죄를 짓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죄악을 쉽게 잊어버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잘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백성들의 죄악이 가득해지면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내리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7년 동안 미디안의 손에 넘기십니다. 미디안은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족속 가운데 아주 교활한 족속입니다.

그들은 사해 동북쪽으로부터 지금의 이라크 유프라테스(Euphrates) 강까지 흩어져서 살고 있던 민족으로서 말 타는 기술이 뛰어나고, 교활하며 잔인한 습성을 지녔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미디안 족속은 마치 도적 떼와 같은 무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펴보다가 힘든 농사를 마치고 추수할 때가 되면 기습을 합니다. 남자들은 모두 죽이고 여자들은 노예로 끌고 가서 추수한 작물들을 모두 빼앗습니다. 그래서 6절에는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제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미디안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나서야 자신들의 죄를 뉘우칩니다. 이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셔서 대적들을 물리쳐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사사 시대 이스라엘의 반복되는 역사 흐름입니다.

사사기 6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워진 지도자가 ‘기드온’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이란 인물은 인간적인 기준으로는 지도자의 자질이 없는 사람입니다. 12절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큰 용사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15절에서 기드온은 스스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라고 말합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집안도 좋지 않고, 자기 자신도 형제들에 비해 그렇게 뛰어난 인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기드온이 처음 등장할 때의 모습은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소심하고 연약해 보일 뿐 아니라 하는 일도 농사를 짓거나 밀을 베는 등의 하찮아 보이는 일을 했던 사람입니다.

‘기드온’이라는 이름에는 ‘베다’, ‘자르다’, ‘쓰러뜨리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베는 사람’, ‘쓰러뜨리는 자’라는 뜻으로 ‘크다’, ‘힘이 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사용하실 때에는 그저 ‘밀’을 자르는 사람이 아니라, 이름 그대로 우상인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찍어버리는 사사로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여룹바알’이라는 별명도 얻습니다. 기드온은 믿음도 연약합니다. 인격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집안도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문제 많은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다는 것이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에게 은혜란 무엇일까요?

첫째,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신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삿 6:11-12)

구약에서 나타나는 “여호와의 사자”라는 표현은 두 가지 경우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히브리어 학자 ‘프란츠 델리취’(Franz Delitzsch)는 히브리어 원문에서 ‘여호와의 사자’라는 표현 앞에 정관사가 없다면 ‘천사’로, 있다면 ‘구약에 나타난 예수님’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고, 출애굽기 3장에서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시는 여호와의 사자 역시 예수님으로 해석합니다. 즉, 본문에서 기드온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 오신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기드온은 정말 보잘것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초라하게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포도주 틀은 포도를 구덩이에 넣고 직접 밟아서 즙을 짜내는 방식입니다. 포도 열매를 두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한쪽 구덩이에 넣고, 밟으면 껍질과 씨는 분리되고, 즙만 작은 수로(水路)를 통해서 아래쪽 구덩이에 모이게 됩니다. 이 포도즙을 떠서, 따로 보관하면 포도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미디안이 무서워서 이처럼 포도 열매를 밟는 작은 구덩이에 숨어 몰래 밀을 타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초라한 모습의 기드온을 사용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삿 6:14)

삶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는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부르셨습니다. 본문에서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라는 한글 성경의 표현은 히브리어 원문에서 정확히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이르시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와이펜’이라는 단어는 ‘돌아보다’라는 뜻입니다. 정확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향하여 몸을 돌리시고 돌아보셨다’는 의미입니다. 방향을 돌린다는 것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봄을 뜻하는 것으로써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를 보는 듯한 사랑스러운 시선이 ‘와이펜’이라는 단어에 담겨있습니다.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이렇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신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어떤 문제와 두려움, 연약함과 실수를 견딜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몸을 돌이키셔서 친히 우리를 찾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제프 루카스’(Jeff Lucas)는 『기드온』이라는 책에서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사역을 일으키기 위해 준비된 영웅을 따로 부르시지 않는다. 오히려 몸을 떠는 약한 자를 용감한 영혼으로 변화시켜 세우신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 은혜의 렌즈를 통해 바라봐 주신다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또 ‘필립 얀시’(Philip Yancey)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라는 책에서는 눈밭에 누워있는 부랑자 여인을 집으로 데리고 간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필립 얀시는 부랑자 여인을 향한 부부의 시선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은혜의 눈으로 바라보니, 더럽혀지고, 망가진 여인의 모습이 그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한 사람으로 보인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쩌면 창녀보다도 더럽고, 세리보다도 탐욕스러운 모습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은혜의 눈길로 바라봐 주십니다. 망가진 죄인의 형상이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께서 지으신 형상으로 봐주시는 그것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가능성을 보시고 새로운 사명을 주시고자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삿 6:14)

지금 기드온의 상황은 자기 몸 하나도 챙길 여력이 없는 신세입니다. 미디안을 두려워하며,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는 신세인 기드온에게 민족을 구원하라는 말씀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마른 막대기와 같은 보잘것없는 자를 들어 쓰십니다. 가장 낮은 모습, 절망 가운데 있는 인생을 들어 사용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기드온은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자존심도 없습니다. 두려움과 절망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기드온의 첫 반응은 원망과 거부였습니다. 당연한 반응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디안에게 우리를 넘겨주셔서 징계하셨는데 이제는 나를 통해 일하신다고 말씀하시냐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삿 6:13)

또한 15절에서는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라고 변명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을 찾아오신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사람은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십니다.

안홍기 목사의 『하나님의 용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인 안홍기 목사는 아버지가 장로였지만 어릴 때 장래 희망이 조폭 두목이었을 정도로 망나니였습니다. 그리고 청소년 시절에 즐기던 일이, 기도하는 아버지 얼굴에 담배 연기를 내뿜는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목사님 집에 찾아와서 문을 두드리며 난리를 피웠습니다. 사모님도 주위 성도들도 문밖에 나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그래도 목사한테 찾아온 것을 보면 희망이 있다는 생각에 목사님은 문을 열고 만났습니다. 나가서 보니 술에 취해서 횡설수설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이 괴롭다고 목사님에게 털어놓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일단 술이 깬 후에 다시 찾아오라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멀쩡한 정신으로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때 목사님께서 야단을 치면서 아직 인생의 끝이 아니니 10년만 예수를 제대로 믿어보라고 권면합니다. 만약 제대로 예수를 믿은 후에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으면 다 보상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 후 10년간 정말 제대로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교회 버스 운전부터 궂은일을 하면서 기도 생활도 제대로 합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상상하지 못한 복을 부어주십니다. 사업이 성공해서 부자가 됩니다. 삶이 변화됩니다. 무엇보다도 영적인 체험을 합니다. 그래서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에 가서 신학을 공부한 이후에 목회자가 되고 중국으로 가서 개척을 합니다. 그곳에서 건달들과 조폭들을 모아서 전도하고 교회를 세웁니다. 남미 ‘아이티’에서 큰 지진이 났을 때도 그 현장에 찾아갑니다. 치안 문제와 전염병에도 불구하고 부랑아와 폭력배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국내에서도 2013년 5월 17일, 서울에서 ‘글로벌찬양의교회’라는 조폭 교회를 개척합니다. 그리고 사역이 확장되어서 현재는 교도소 제소자를 위한 전도까지 감당하고 있습니다. 안홍기 목사는 ‘하나님께서 나 같은 인간에게도 새로운 사명을 주시고 나를 사용하신 이유에 대해, 가능성을 보시는 하나님 때문’이라며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조폭들을 가슴으로 품는 것은 나의 소명이다.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이들을 하나님의 용사로 세워나가는 것, 모두 가 소외되지 않고 함께 어울리는 특별한 교회는 만드는 것, 이것이 나의 소명이다”라고 말입니다.

우리에게 어려운 상황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상처받으며 절망 속에 놓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우리가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어려운 상황과 고난 등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새롭게 붙들리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삿 6:12)

그런데 하나님께서 ‘큰 용사’라고 말씀하신 기드온은 정작 두려움에 떨며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는 겁쟁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실 때는 큰 용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가능성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능력이 없습니다. 자격도, 힘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큰 용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삿 6:16)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향해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움과 절망 속에 있는 인생에게 찾아오셔서 “두려워하

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한다”라고 약속해 주십니다. 이 말씀은 구약성경에만 114번이나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말씀은 강하고 담 대한 마음을 스스로 가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염려와 근심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믿는 믿음이 필요할 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임마누엘’의 뜻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서 도망가는 신세였습니다. 형에 대한 두려움, 낯선 곳으로 향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꿈에서 하나님을 뵙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염려하는 이유는 고난의 현실을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임마누엘 하나님을 바라보면 모든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 28:16)

히브리어 원문에는 두 단어가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하나는 ‘야레’이고, 다른 하나는 ‘샬롬’입니다. ‘야레’라는 말은 ‘두려움’이라는 뜻입니다. ‘샬롬’은 ‘평안’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안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소심하고 연약한 기드온이 호전적(好戰的)이고 힘이 강한 미디안을 어떻게 이 길 수 있었을까요?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기드온과 함께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정신의학자이자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콧 펙’(Scott Peck)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왜 인간이 실패하는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영적인 무지(無知) 때문이고, 둘째는 게으름 때문이다.’ 아무리 믿음이 있어도 게으르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혼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그 어떤 것에도 절망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며 동행하시며 나를 도우신다는 이것이야말로 큰 은혜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의 죄악된 모습이 아니라 가능성을 보시고 우리를 세워주십니다. 그리고 연약한 우리를 도우십니다. 이것이 기드온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도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인 것입니다.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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