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요예배 1주차

* 설교자 : 장창수 목사 대명교회

* 페이지 : 306-317

*본문 :

요한복음 21장 15-20절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싱가포르에는 로렌스 콩(Lawerence Khong) 목사가 목회를 하고 있는 믿음침례교회(Faith Community Baptist Church)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지금은 수만 명의 성도가 모이는 유명한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목회 초기에는 로렌스 콩 목사에게 어려움이 많았다고 합니다. 처음 부임했을 때는 삼백 명의 성도들이 모여서 함께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기 시작합니다. 성도들 가운데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이때, 로렌스 콩 목사는 자신이 실패자인 것 같다는 생각에 좌절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을 읽던 중에 마가복음 1장 11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라는 말씀이 갑자기 눈에 들어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읽는 순간,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바로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들려왔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너를 비난하느냐? 괜찮다, 내 아들아.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성도들이 너를 떠나가느냐?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내가 여전히 너를 사랑한단다’라는 주님의 음성이 로렌스 콩 목사를 좌절에서 일으켜 세우는 유일한 힘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상처와 고통을 받더라도 하나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아무리 실패하고 넘어져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신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같은 주님의 음성이 필요합니다. 나를 대적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신다는 그 따스한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람들의 비난과 인생의 고통 속에서도 주의 음성을 들을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그 말씀이 반드시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실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실패와 절망 속에 낙담하고 있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새롭게 제자로서의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자신들을 실패자로 생각하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否認)하고 저주까지 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삶이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제자들의 마음에는 불안과 염려가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몇몇 제자들은 원래 생업인 어부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인생 속에 기쁨이 없습니다. 주님 앞에 부끄러운 인생입니다. 예수님을 배신하고 저주한 자신을 다시 불러주실 리가 없다고 낙심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힘든 상황에서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으려 합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밤새도록 그물을 던져도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카일 아이들먼(Kyle Idleman)의 『나의 끝, 예수의 시작』이라는 책에서는, 베드로의 인생의 잔고가 텅 빈 ‘0’(영)이 되었다고 표현합니다. 베드로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명예도, 자존심도, 벌이도 없는 삶의 모습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말씀합니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요 21:6)

말씀에 의지하여 제자들이 그물을 던지자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물고기가 많이 잡힙니다. 그제야 제자들은 자신에게 말씀하신 분이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주님께서는 바위에 숯불을 가져다 놓으시고 생선과 떡을 준비해두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와서 조반(朝飯)을 먹으라”라고 부르십니다. 아침 식사 후에 예수님과 베드로는 대화를 나눕니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 21:15)

지금도 이스라엘 갈릴리 바닷가 근처에는 ‘베드로 수위권(首位權) 교회’(The Church of the Primacy of Peter)가 있습니다. 이 교회당 마당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질문하시고, 사명을 주신 것을 상징하는 동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당 내부에는 강대상 쪽에 ‘그리스도의 식탁’이라는 이름의 바위가 있습니다. 바로 이 바위에서 떡과 생선으로 제자들에게 아침을 먹이시고, 베드로에게 본문의 질문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베드로뿐만 아니라 요한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본문에 나타나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를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베드로와 제자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번 질문하십니다. 성경에서 같은 말을 반복할 때에는 강조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똑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베드로에게 하셨다는 것은 분명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의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세 차례의 질문은 반어법(反語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첫 번째 질문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입니다. 이 질문 속에는 예수님께서 여전히 베드로를 사랑하신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영국의 목회자이자 신학자인 캠벨 모간(Campbell Morgan)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질문들은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하고 있으니, 너도 나를 사랑하라는 뜻이다. 즉, 베드로와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시는 따스한 질문이다’라고 해석합니다.

흔히,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으니, 예수님께서도 베드로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하려고 똑같이 세 번 질문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질문은 과거베드로가 했던 행위에 대한 섭섭함이나 책망이 아닙니다. 오히려 베드로가 비록 예수님을 부인하고 실패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베드로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하고 있다. 나는 너를 버리지 않았다. 너와 사랑의 관계가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5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영어성경(NIV)에서는 ‘얘들아’라는 표현이 ‘Friends’로 쓰여 있으며, 헬라어로는 ‘파이디아’(παιδιά)입니다. 성경학자들은 ‘파이디아’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스럽고도 존귀하게 부르는 호칭’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얘들아’라고 부르신 것은 제자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임을 보여주시는 따스한 음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향해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부르십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는 ‘베드로’, 즉 반석(磐石)이라는 뜻의 새로운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21장에서는 베드로를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 부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라는 사명의 이름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친밀하게 시몬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부르신 의도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21장 18-19절에서 주님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빨리 정신 차려서, 내가 준 사명을 감당해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일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사랑과 격려의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과거 베드로의 실수를 기억하시는 것이 아닌 장차 복음을 증거하다가 순교할 베드로를 생각하시며 사랑을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질문하신 의미 역시 ‘나는 어떤 경우에도 너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실패하고 실수하더라도 절대로 우리를 포기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 49:15)

성경의 모든 부분에는 우리의 실수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가득합니다. 다윗이 충성스러운 신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고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질렀을 때도 다윗이 회개하고 돌아오자 여전히 다윗을 사랑해 주셨습니다. 삼손이 자신의 잘못으로 눈이 뽑혀 블레셋에 잡혀가 조롱을 당할 때도, 마지막 기도를 들으

시고 사명을 감당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피해 도망쳤던 요나에게도 박 넝쿨을 통해서 ‘내가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고 핍박했던 바울에게도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사랑을 보여주시며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떠나고 신앙이 연약해질 때에도 ‘나는 너를 여전히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베드로와 우리들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불쌍히 여겨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나를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세 차례의 질문은 ‘삶의 우선순위’를 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은 여기에 있는 너의 형제, 친구, 동료들, 더 나아가서 네 삶에서 네가 사랑하던 다른 모든 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질문입니다. 삶에서 믿음과 신앙이 회복되었다는 것을 아는 방법은 우선순위를 살펴보면 됩니다. 이전보다 헌금을 더 많이 하고 교회 봉사를 더 열심히 한다고 신앙이 회복된 것

은 아닙니다. ‘믿음이 다른 모든 것들보다 삶의 우선순위에 놓이는가?’ 그것이 가장 중요한 신앙 회복의 증거가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느냐에 따라 진짜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는 척만 하던 것들이 구별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을 회복시켜주시기 위해서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베드로의 대답이 달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을 미리 말씀하실 때도 “주여 그리 마옵소서”라고 항변(抗卞) 하고, 심지어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며 큰소리치던 베드로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주님을 배신하고 저주하고 부인(否認)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모습에 낙심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물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찾아와 물으셨고 이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제 베드로의 대답 속에서 ‘나’는 사라지고, ‘주님’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기주장보다는 주님의 뜻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15-17절에서 나타나는 베드로의 대답이 모두 같습니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내 마음을 다 알고 계신다는 고백입니다.

미국의 차세대 설교자인 매트 챈들러(Matt Chandler)의 저서 『예수님만으로 충분한 인생』에 보면 우리가 ‘예수님 우선순위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 우선순위로 산다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 우선순위로 산다는 것은 ‘자아를 죽이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 우선순위로 산다는 것은 ‘복음을 향해 매진(邁進) 하는 삶’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사람은 남은 인생을 예수 복음을 증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과연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를 늘 고민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흑인 배우 가운데 제일 존경받으며, 인정받는 사람은 덴젤 워싱턴(Denzel Washington)입니다. 이분은 1954년에 태어나서 현재 60대 중반의 나이에도 아직까지 활발한 연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출연한 영화만 수십 편에 이르고, 아카데미상을 두 번이나 수상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의 삶이 화려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을 만난 뒤에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2015년 ‘덴젤 워싱턴’은 미국 뉴올리언스(New Orleans)에 있는 딜라드 대학교(Dillard University)에서 졸업식 연설을 하게 됩니다. 이 연설의 제목이 ‘PUT GOD FIRST(하나님을 첫 번째로 두라)’였습니다. 연설에 이런 내용이 등장합니다.

“여러분이 나에 대해 아는 모든 것, 내가 성취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선물입니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았고, 지금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고 있습니다. 나는 항상 신실하게 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항상 나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무슨 일을 하든지 가장 먼저 하나님과 함께하십시오.”

그리스도인 중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가장 우선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놓을 때 하나님께서는 큰 은혜를 베푸십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세 차례의 질문은 ‘너도 사랑하며 살라’는 의미입니다.

베드로가 계속해서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먹이다’라는 헬라어 ‘보스코’(βόσκω)는 ‘상대방의 나약함이나 필요를 채우고 도와주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치라’는 뜻의 헬라어 ‘포이마이노’(ποιμαίνω)는 ‘보호하다, 인도하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즉,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주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이제는 네 이웃을 필요를 채우고 도와주며 천국의 길로 인도하라’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 말을 모두 줄이면 한 단어로 ‘사랑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제레미 킹슬리(Jeremy Kingsley)의 저서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낮은 마음』에 보면 ‘하나님의 모든 일은 사랑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이 나타납니다. 사랑 없는 은사나 사명은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예수님의 사랑의 방정식을 요한일서 4장 19절로 이야기합니다. 바로 ‘우리가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사랑한 것같이 너도 다른 이웃들을 사랑하며 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면서도 정작 내 옆에 있는 이웃들을 섬기기는 힘들어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3장 18절에서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권면합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섬기지 않고, 베풀지 않는다면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살지 않으면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한다면 이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서정오 목사의 책 『깊어지는 인생』에서는 ‘사랑, 그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성도에게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삶 속에서 예배를 잘 드리고 봉사를 많이 하더라도 아무 의미 없는 인생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비극은 가난도 질병도 무지(無知)도 아닙니다. 바로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삶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가지 않는다면 누구보다도 비극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서정오 목사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라고 말합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느껴져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사랑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사랑하라”라는 말은 56번이나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13장에서부터 나타나는 예수님의 고별 설교에서는 44번이나 나타납니다. 즉,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을 앉혀 놓으시고 마지막으로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말씀이 바로 “사랑하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4-35절에서도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서로 사랑할 때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하셨던 질문을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하고 계십니다. 따뜻한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시며 사랑스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렇다면 서로 사랑하며 살라.”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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