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예배 4주차

* 설교자 : 최병락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 페이지 : 296-305

*본문 :

빌립보서 2장 5-11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지난 시간에는 화평한 교회를 이루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서로를 향한 공감의 능력을 갖추어 한 기쁨 한 슬픔을 공유하는 것,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칭찬하고 감탄해 주는 겸손의 마음을 가지는 것, 그리고 나의 일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필요를 돕는 것이 화평한 교회를 이루는 특징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나의 마음을 다른 사람의 마음에 맞추어야 하는데 그것이 공감 능력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 수준을 넘어서서 더 강력하게 하나 되는 교회가 되기 위해 바울이 제시하고 있는 확실한 방법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바로, 예수님의 마음에 맞추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영어 표현으로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Have this mind among yourselves, which is fitting in Christ Jesus.” 즉, 그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에 꼭 들어맞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중학생 때 포철공고가 한국 3대 공고 중의 하나라 수업료 전액과 기숙사비 무료, 졸업 후 전원 포스코 취직이라고 해서 특차로 지원을 한 적이 있습니다. 3일간 시험을 보는데, 첫날 필기시험에 합격하면 둘째 날 신체검사를 하게 합니다. 신체검사에 합격하면 세 번째 날에는 실기시험을 보게 하고, 며칠 후에 최종 합격자를 선정합니다. 다행히, 1, 2차 시험에 다 합격을 해서 3차 실기시험을 보았습니다. 면접관들 다섯 명이 앉아있고, 그분들 앞에서 여러 종류의 실기시험을 보는 겁니다. 사실 저는 지금도 벽에 못 하나도 제대로 다부지게 박지 못합니다. 너무 집중하면 손이 떨리는 증상이 있어서 실기시험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실기시험 중의 하나가 4절지 크기의 플라스틱 판에 둥근 모양, 세모, 별 모양 등의 구멍이 나 있고, 박스 안에는 그 구멍과 똑같이 생긴 모양의 조각들이 들어있습니다. 과제는 1분 안에 그 구멍에 맞게 조각들을 끼워 맞추는 것입니다. 그 쉬운 것을 하는데도 저는 손이 떨려서 둥근 모양에 세모를 끼우는가 하면, 별 모양에 오각형을 끼우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난리가 났습니다. 그때, 면접관 한 분이 혼잣말 비슷하게 했던 말을 어렴풋이 기억합니다. “야는, 공고 체질은 아닌 거 같은데…” 결국, 한 2주 후에 발표가 났는데, 당당하게 떨어졌습니다.

별 모양의 구멍에는 별 모양을 맞추고, 삼각형 모양에는 삼각형을 끼워야 정확히 들어가겠지요? 그게 바로 오늘 본문에서 ‘너희 안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Which is fitting in Christ Jesus.” 우리 중에는 세모같이 생긴 내 마음과 둥글게 생긴 예수님의 마음의 결이 맞지 않아서 아무리 예수님이 내 마음에 들어오시려고 해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예수님 마음에 내 마음을 맞추지도 못하여 늘 예수님을 근심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멈추라는 마음을 주시는데 나는 가겠다고 고집하면 예수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싸우는 겁니다. 주님이 왼쪽으로 가라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게 해달라고 40일씩 금식하면서 고집 피우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의 마음을 품지 못한 채 자기 열심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마음을 품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하는데 예수님의 마음은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5-6)

그것은 자기를 비우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그 누구도 위에 있거나 아래에 있지 않고 완전히 동등하시며 동일하시며 본질상 하나이시고 창세 전부터 존재하시며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 성자께서 성부 하나님과 동등한 지위를 주장하지 않으시고 스스로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인간 세상의 자리까지 내려오신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과의 경쟁에 밀려서 할 수 없이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이 아니라 자원하여 자기를 비우시고 이 낮고 천한 인간의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유명한 기독교 변증가인 오스 기니스(Os Guinness)는 그의 책 『생명』에서 ‘위대한 하강’(Great Descent)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기독교는 위대한 상승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위대한 하강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높아졌느냐’라는 성공의 이야기라면 기독교는 ‘얼마나 낮아졌느냐’라는 겸손의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예수님을 믿고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물으면 기독교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고, 어디까지 낮아지고 겸손해질 수 있냐고 묻는다면 기독교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사람으로 낮아지고, 죄인으로 낮아지고, 인간의 마지막인 십자가와 무덤 속에까지 낮아질 수 있었던 것일까요?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구절이 본문 7절에 나옵니다. “자기를 비워”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을 헬라어로 “케노시스”라고 하는데, 기독교 성육신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단어입니다.

3, 4세기에 기독교에서 기독론으로 한참 열띤 논쟁을 할 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신지, 열등하신 분이신지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성부와 동일 본질인지, 유사 본질인지의 논쟁이었습니다. 이때 이 논쟁을 불식시킨 구절이 바울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워”, 즉 “케노시스”라는 구절이었습니다. 즉 성자는 ‘성부와 동일한 본질이신 하나님이시자 자기를 비우시고 이 땅에 오신 분’이라는 것으로 명확히 기독론이 정립되고 삼위일체론이 완성되게 된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열등하여 세상을 구원할 책임을 지워 보내지거나 버려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를 비워 자원하여 기쁨으로 이 땅에 내려오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자기 비움’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이지요. 그렇다면 자기를 비운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또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NIV 성경은 ‘자기를 비운다’는 오늘의 본문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Make Himself Nothing” 곧, ‘자기를 없는 존재처럼 여긴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보여주신 모습은 철저히 자기를 감추시고, 낮추시고, 비우셨습니다. 그 목적은 단 하나 성부 하나님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선하다고 부를 때에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눅 18:19)

예수님은 철저히 자기를 비우시고 오직 하나님만 높이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자는 성부보다 열등하다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자기를 철저히 낮추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자기 비움의 마음입니다. 바로 그 마음을 우리 안에 품으라고 합니다.

나를 통해 내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철저히 비워 오직 예수님만, 하나님만, 성령님만 드러내는 삶,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나도 보이고 하나님도 보여서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지 말고, 나는 확실히 죽고 오직 하나님만 드러나게 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삼위일체를 보시면 삼위 하나님 중에 그 아무도 자기를 드러내시는 분이 없습니다. 오직 서로를 드러내실 뿐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성자와 성령을 세상에 드러내시고, 성자 예수님은 성부와 성령님을 높이셨고, 성령님은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을 드러내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아무도 스스로 자기 영광을 취하지 않으시고, 다른 두 위격을 높여주시는 그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원히 삼위일체의 하나 됨을 유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어느 신학자는 “삼위일체를 제대로 아는 교회는 절대로 갈등이 생길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어느 공동체든지 나를 드러내기 시작하면 공동체는 금방 깨지고 맙니다. 나를 몰라봐 주면 화가 나고, 나를 무시하면 복수의 칼을 갈고, 내 자존심에 금이 가면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은 평생 전쟁터입니다. 자기를 비우지 않아 생기는 결과입니다. 교회를 다닌 지 10년이 넘어가도 아직 나를 몰라주고, 나를 주목해 주지 않고, 어울리는 직분을 주지 않으면 견디지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그 마음속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틀림없이 자신들이 섬기는 교회에서 원하는 직분이나 마땅히 받아야 할 인정을 못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교회 이동이 일어납니다. 조용히 이동만 해도 그나마 다행이지만, 많은 교회는 이동이 아니라 분쟁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유야 수백 가지겠지만 근원은 자기를 비우지 못한 결과입니다. 내가 살아있기에, 나를 몰라주고, 자존심이 건드려지고, 무시를 당한 것 같고,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 같은 마음 때문에 전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내 마음을 걷어내고 그 속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7-8)

오늘날 모든 목회자와 성도들이 함께 배워야 할 것은 ‘자기 비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스스로를 비우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억지로 비우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억지로 비워지는 것도 사실은 다행이고 복된 일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의적인 비움입니다. 항상 마음을 겸손히 하여 높이지 않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내 삶에서 나는 죽고 한결같이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입니다. 이와 달리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욕심과 자존심, 자아가 모두 비워질 때까지 기다리시기도 하고, 급하게, 강제로 비워 버리시기도 합니다. 그것은 외력에 의한 비움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토록 비우게 하실까요? 비워진 자를 사용하시고자 비워질 때까지 기다리시다가도, 급할 때는 강제로 가져가셔서 창고가 비고, 전화 걸사람이 없도록 사람을 비우시고, 제대로 걸을 힘도 없게 내 체력도 비우십니다. 왜 다 비우시는 것일까요?

성경은 역설적입니다. 비워야 채우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케노시스에서 시작된 기적의 이야기를 만나게 됩니다. 열왕기상 17장에는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뭄이 들어 아들 하나와 살고 있는 시돈 땅의 과부는 마지막 남은 가루 한 움큼과 기름으로 빵을 만들어 아들과 먹고 죽으려고 하는데, 엘리야는 그것으로 빵을 만들어 자기에게 먹이라고 합니다. 말도 되지 않는 명령입니다. 그러나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를 위해 그 통에 남은 가루와 병에 남은 기름을 비웁니다. 이것이 ‘케노시스’입니다. 비우기 전까지는 초라한 기름과 가루에 불과하던 것이 비우고 나서부터 그 병에 기름이, 그 통에 가루가 마르지 않는 채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케노시스는 케노시스로 끝나지 않고 채움의 시작, 기적의 시작이 되는 것이 기독교 ‘케노시스의 신비’입니다.

신약에서 발견하는 케노시스는 베드로의 빈 배와 빈 그물입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잡은 것이 없어 빈 배와 빈 그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순간에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그 순간 그물을 오른 편에 던지라 하셨고 그물을 던졌을 때 그 빈 배는 만선이 되는 놀라운 채움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빈 배가 될 때까지 기다리셨고, 지식도 경험도 소용없는 완전히 빈 배가 되고 나서야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배도 마음도 케노시스인 그때 베드로의 순종은 만선으로 바뀌었습니다.

케노시스의 절정은 가나의 혼인잔치입니다. 일주일 잔치를 치러야 하는데 3일 만에 포도주통에 포도주가 비었습니다. 케노시스입니다. 완전히 비어버린 그 위기 상황, 잔치는 초상집 분위기로 바뀌려는 그때, 예수님은 완전히 비어버린 통을 확인하고 그곳에 물을 부으라고 하십니다. 케노시스, 완전히 비워지면, 그다음은 채우는 일만 남지 않습니까? 그 통에 물을 부었더니 그 물이 포도주로 바뀌어 잔치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형편으로 이 자리에 나와 예배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이중에 베드로처럼 평생 모아서 사놓은 배 한 척이 빈 배가 되고, 그물은 찢어져 기능을 상실한 분들이 있습니까? 화려한 인생의 시간이 지나고, 명성도 잃고, 평판도 잃고, 축제의 포도주 통이 텅 비어버린 분들이 있습니까?

사르밧과 베드로의 사례, 비워진 포도주 통에 나타난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가장 좋은 때라는 것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사람, 예수님을 만났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나온 분들은 지금이 예수님을 믿을 가장 좋은 때입니다. 비워진 그곳을 다른 것으로 채우기 전에 예수님을 모셔서 예수님으로 채우셔야 합니다. 그때부터 그 비움이 채움으로 시작됩니다. ‘케노시스’(비움)는 ‘플레로마’(충만)의 시작입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위대한 하강은 낮아짐이 더 이상 낮아질 수 없을 때까지 낮아지다가 그다음에서야 위대한 상승이 일어났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2:9-11)

예수님이 하늘에 계셨고, 땅 위에 오셨으며, 땅 아래로 내려가셔서 장사되신 이유가 나옵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하늘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을 모두 예수님께로 돌이키게 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그 위대한 자기 비움으로 하강을 하신 것입니다. 땅 위로 오시지 않으면 땅 위의 사람을 구원할 수 없고, 땅 아래로 내려가시지 않으면 사망 권세에 놓인 자들을 해방할 수 없었기에 하늘에 있는 권세를 굴복시키고, 땅 위의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땅 아래 사람의 사망 저주를 깨기 위해 그 모든 곳까지 내려가셔야 했던 예수님을 보면서 우리는 이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낮아짐은 낮은 곳에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를 비우는 것은 비굴하거나 초라한 일이 아닙니다. 실패도 아닙니다. 낮아지는 동안에 만나는 사람들과 수많은 경험으로 인해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과정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저도 공부하러 유학 갔을 때, 왜 매일 접시를 닦고 웨이터를 하면서 손님들로부터 영어 못 알아듣는다며 욕을 들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또 매일 밤 9시, 10시에 화장실 변기를 닦아야 하고 새벽 4시면 가장 위험한 흑인 지역 주유소 스무 군데에 도넛을 배달하면서 왜 도망치듯 빠져나와야 했는지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목회를 시작하고 봤더니 교회 성도들이 모두 그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들 중에 이해를 못 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그런 자리로 저를 낮추신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이해하고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이곳에 우리는 모두 연약한 모습으로 앉아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빈 배에 올라타실 때, 그 사람의 인생은 만선의 충만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예수님으로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최병락 목사

침례신학대학 기독교교육학과 졸업(B. A.)
사우스웨스턴신학교 졸업(M. Div. Biblical Language)
Dallas Theological Seminary(M. A. 성서연구과정 수학)
사우스웨스턴신학교(Th. M. Evangelism 수학)
(前) 세미한교회 Founding Pastor 및 담임목사
(現) 사우스웨스턴신학교(D. Min. 과정 중)
(現) 강남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
■저서
『다시 일어남』, 『부족함』, 『쏟아지는 은혜』, 『자라가라』, 『모든 것을 살리는 예배를 회복하라』, 『어둠 속에 부르는 노래』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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