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예배 3주차

* 설교자 : 최병락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 페이지 : 284-295

*본문 :

빌립보서 2장 1-4절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2001년 9·1 사건이 일어나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때 사우스 웨스튼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고, 수업 중에 모두 대피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사건이 아프가니스탄에 본부를 둔 탈레반 정권의 테러 집단인 알카에다의 소행임을 알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내의 탈레반 정부 축출을 위한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그 핵심 인물인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해 미국은 NATO와 주변국들의 협력을 받아 조속히 그 전쟁을 끝낼 것을 희망했습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는 나라 전체가 요새로 구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형이 험했고, 역사 속에서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나라가 전무할 정도였습니다. 실례로 나폴레옹도, 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도 점령에 실패했고, 러시아는 여러 번 공격을 했지만, 끝내 점령하지 못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선포한 전쟁에서 미국이 이길 것을 전망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이기더라도 장기전이 될 것을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역시 현존하는 최고의 강대국이었습니다. 전쟁을 선포한 지 2달 만에 카불을 점령하고 임시정부를 세움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나폴레옹, 히틀러도 못 한 일을 두 달 만에 이루어 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 부터였습니다.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그 이후부터 잔당을 소탕하기 위한 작 전에서는 신출귀몰하는 테러 집단들의 전투를 이겨낼 수가 없었습니다. 자살테러, 교외 교란작전, 게릴라전으로 이어지는 전쟁은 장장 13년간 이어졌고, 수많은 사상자가 속출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네이비실에 의해서 오사마 빈 라덴 사살은 성공했지만, 수많은 사상자가 속출하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없어서 2014년 12월 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종전을 선언하고 미군을 철수시키기로 했습니다. 이 전쟁을 보고 많은 나라에서는 미국과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을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미국이 전쟁(War)에서는 승리했지만, 전투(Combat)에서는 실패했다.”

저는 이 말이 꼭 오늘날 교회를 두고 하는 말 같아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승리하였다고 약속하시고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하고 있는데 매일 이어지는 마귀와의 전투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여 죽고, 상처 입고, 신출귀몰하는 게릴라 전략에 당황하고 있는 모습들이 오늘날 교회가 처한 현실처럼 보여서 안타까운 것입니다.

마귀는 자기의 운명이 이미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패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기의 운명은 영원한 불 못, 무저갱으로 가는 운명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꿉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세상 끝이 올 때 재림하셔서 세상을 양과 염소로 구분하여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주인 삼고 살아온 하나님의 자녀는 주인이 계시는 천국으로 인도하시고, 그렇게 예수 믿으라고 해도 마귀가 좋다고 마귀를 주인 삼고 따라가던 사람들은 마귀가 가는 곳인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그때, 마귀는 한 사람이라도 더 데리고 가서 지옥에서 왕 노릇 하려고 지금도 배고파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심판의 날이 언제 오는지 예수님께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날이 언제인지 모르고 하나님만 아신다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마지막 날이 언제 오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 24:14)

복음이 땅 끝까지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는 그날이 세상의 끝이 오는 날입니다. 그 마지막 날은 믿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날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멸망의 날이 되는 겁니다. 그날은 마귀가 영원한 무저갱에 갇히는 날이기도 합니다. 다시는 지금처럼, 믿는 자들을 유혹하고 건드리고 틈타서 괴롭히지 못하고 무저갱에 영원히 감금되는 멸망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그날이 절대로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자기의 운명은 완전히 끝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마귀는 마지막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그날이 오지 못하도록 방해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열두 제자들과 그들로 인해 장차 세워질 교회에 주셨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교회가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날이 절대로 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자기의 최대의 목표입니다. 마귀가 교회를 그렇게 공격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 교회가 복음 전도를 못하도록 하기 위해 교회 안에 갈등을 일으키고, 서로 싸우게 하고, 서로 원수 되게 하고, 서로 싸우다가 지쳐서 교회 앞마당에 한 발자국도 나갈 힘이 없도록 하는 것이 그의 전략입니다.

그렇게 해야 복음은 전해지지 않을 것이고, 자기 심판의 날이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했던 ‘20개국 초청 월드컵 경기’는 마귀가 통곡할 사역입니다. 우리 교회가 20개국에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운명의 날이 그만큼 앞당겨진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더 통곡할 일은 그때 참석한 몽골팀 중에 한 청년은 파워 유튜브 동영상 제공자로서 우리 행사를 다 촬영해서 몽골 사람들에게 소개를 해 준 일이었습니다. 제가 검색한 바로는 조회 수가 현재 42,834건입니다. 42,834명이 복음을 직간접으로 접했다는 말입니다. 마귀는 압니다. 온 세상의 교회들이 분열 없이 화평하여 한마음 한뜻으로 온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면 자기의 운명의 날은 곧 다가온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공격합니다. 성도끼리 이간질하고, 병들게 하고, 불신의 씨앗을 퍼트려 놓으면, 서로 싸우느라 선교는 꿈도 못 꾼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마귀의 이런 전략은 오늘날 너무 잘 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처럼, 예수님께서 마귀를 대해 승리하신 그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성도는 마귀와의 전투에서 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교회는 선교를 제일 잘하는 교회입니다. 오늘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화평을 이루어 선교가 멈추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화평한 교회의 특징’입니다. 어떻게 하면 싸우지 않고 화평한 교회를 이루는지 배워보겠습니다.

첫째, 화평한 교회의 특징은 한마음을 품고 사역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빌 2:1-2)

교회 안에서 성도들끼리 마음이 서운해지고, 교회 안에서 원수가 되고, 교회 안에서 상처를 받는 이유는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마음을 품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공감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제가 아프면 나도 아픔을 느끼고, 슬프면 나도 슬픔을 느끼는 사람은 한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게 안 되면 절대로 하나 되지 않습니다. 형제가 아프면 죄를 지어서 그렇다고 말하고, 자매가 힘들다 하면 정신력이 약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의지력이 약하면 그 사람에게 힘이 되어 주기보다 6·25 때부터 1·4후퇴까지 내가 고생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시작합니다. 모두 공감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위로하려다 더 큰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유대 랍비는 머리가 둘이고, 몸이 하나인 사람이 두 사람인지 한 사람인 지를 묻는 제자에게 ‘한쪽 머리를 때려서 다른 머리가 웃고 있으면 두 사람이고, 울고 있으면 한 사람이다’라고 대답했는데, 바로 그 한마음 한뜻의 교회, 함께 웃고 함께 우는 한사람 같은 교회가 화목한 교회의 특징입니다. 또한 미국의 어느 교회에서는 소아암을 앓고 있는 아이가 머리를 깎고 교회에 오자, 그다음 주에 전교인이 머리를 깎고 와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공감 능력을 갖춘 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말하지 않아도 화평한 교회입니다.

몇 년 전, 전 세계에서 일어났던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있습니다. 본인의 지인 세 명의 이름을 거명하고 얼음 물을 뒤집어쓰는 것입니다. 그 차가운 얼음이 온몸에 흐르면 살을 에는 듯한 고통이 느껴집니다. 그 고통이 루게릭병 환자가 매일 겪는 고통과 거의 흡사하다고 합니다. 그들의 고통을 공감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한 루게릭병 단체가 시작한 운동인데, 그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은 앞다투어 그 재단에 후원금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공감 능력입니다. 공감 능력은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느끼고 함께 아파하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화평한 교회의 특징이 한마음이라고 했을 때 성도들이 서로의 아픔과 문제를 내 문제처럼 함께 아파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공감 능력을 갖춘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스탠리 하우어워스와 장 바니에의 공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책에서는 장애인 공동체를 만들어 전 세계적으로 장애인 사역을 하는 장 바니에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내가 상대방을 넘어뜨리려고 약점을 보는 순간에 바니에는 그 사람의 상처를 보고 있더라.” 예수님의 눈으로 우리의 눈이 열리면, 보이는 것은 상대방의 약점이 아니라 상처입니다. 모두를 품고 사랑하는 그 애틋한 삶이 보여야 예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몸의 중심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어떤 분들은 명치, 어떤 사람은 배꼽, 어떤 사람은 심장이라고 하는데, 몸의 중심은 ‘가장 아픈 곳’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몸의 가장 아픈 곳을 중심이 되게 만드셨습니다. 왼쪽 손가락이 칼에 베였다고 합시다. 그 시간부터 몸의 중심은 왼쪽 손가락이 됩니다. 우선 왼쪽 손가락이 베이면 오른손은 신속하게 그 손가락이 더 다치지 않도록 감싸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접근해서 더 아프게 할까 봐 입이 “아얏” 하고 소리쳐서 경계령을 내립니다. 그리고 소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신속하게 입으로 들어가서 침으로 소독을 합니다. 그리고 입 공장에서 나오면, 바람을 불어서 말려줍니다. 그 시간 동안 아픔을 분산시키기 위해 발은 동동 구르면서 그 고통을 온몸에 분산시켜 나누어 가집니다. 그리고 피가 흐르는 그 끔찍한 손가락을 너무 자세히 보지 말라고 눈에서는 눈물을 뿌려 시야를 흐리게 만듭니다. 그러고는 빨리 도와달라고 타인을 부르는 소리가 입에서 나옵니다. “엉엉엉….” 이게 화평한 교회의 특징입니다.

둘째,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성도들이 많은 교회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 2:3)

나보다 남을 더 낫게 높여주는 교회는 다툴 일이 없고 화평이 저절로 따라옵니다. 다른 성도가 잘 되는 것을 기뻐하고, 칭찬하고, 감탄하고, 자랑하면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긴다면 상대방도 나를 자기보다 낫게 여겨줄 것입니다. 또한 나를 보고 경탄하고 칭찬해 준다면 다툴 일이 없을 뿐 아니라, 날마다 교회에 오고 싶지 않겠습니까? 저절로 화평한 교회가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칭찬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서 좀처럼 남들을 칭찬하지 않습니다.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는 곳이 별로 없습니다. 지그 지글러(Zig Zigler) 박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계 인구의 30억 명이 굶주린 상태에서 잠자리에 든다. 그러나 그보다 많은 40억 인구가 매일 밤 따뜻한 말 한마디를 그리워하며 잠자리에 든다.”

사람은 칭찬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어있습니다. 집에 퇴근을 하고 와도 아내들이 칭찬을 잘 안 해주니까 칭찬해 주는 곳으로 남편들이 자꾸 갑니다. “사장님 잘생겼다, 멋있다. 매력적이다”라고 칭찬해 주는 곳으로 가서 밤새도록 한 달 월급을 다 쓰고 오는 겁니다. 그래서 가정은 칭찬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아내들이 왜 옷을 그렇게 많이 사는 줄 아시나요? 옷 가게에 가면 들어가서 나올 때까지 “예쁘다”라는 소리를 들으니까 그렇습니다. 옷을 많이 사 온다고 타박하기 전에 집에서 운동복을 입고 있어도, 어쩜 그렇게 예쁘냐고 감탄해보세요. 옷 사는 지출이 절반은 줄어들 겁니다.

사람은 칭찬 있는 곳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칭찬이 어색하고, 칭찬이 인색하고, 칭찬이 사라진 세상에서 살다가 교회를 왔는데, 서로서로 높여주고, 감탄해 주고, 작은 농담에도 깔깔깔 웃어주며 손뼉 쳐주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그 사람과 싸우고 싶겠습니까? 저절로 화평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칭찬 공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저절로 화평하고 부흥하게 됩니다. 칭찬이 있는 곳에 마귀가 거할 곳은 없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책에 연필과 볼펜의 칭찬이 나옵니다. 연필이 볼펜에게 “너는 한평생 칼질당할 일이 없으니 마음 하나는 편하겠다. 죽을 때까지 같은 굵기로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니, 대단해. 땅바닥에 아무리 세차게 내동댕이쳐도 심이 부러지지 않는 내공!” 그러자 볼펜이 연필을 보며 말합니다. “저놈은 깎을 때마다 향기가 난단 말이야. 실수했더라도 지울 수가 있으니 무슨 걱정이냐.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침을 흘리지 않는 비결이 뭐지?”

사람은 가만히 보면 다 칭찬 거리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100가지 이상 칭찬 거리를 가지고 삽니다. 목민심서에는 ‘베려고 하면 풀이 아닌 것이 없고, 품으려 하면 꽃이 아닌 것이 없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잡초 밭에 사는 것도 내가 선택하는 것이고, 꽃밭에 사는 것도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자세히 보

아야 이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가만가만 오래오래 보면 이쁘고 사랑스러워서 제목처럼, 풀도 꽃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잡초 같고 풀 같은 우리 인생을 꽃으로 품어주셨지 않습니까? 만약 교회 안에서 이런 풀꽃을 볼 줄 아는 시인의 눈으로 볼펜과 연필이 나누었던 대화를 나눌 수만 있다면 그 교회는 마귀가 피해 가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셋째, 성도의 일을 자기 일처럼 돌보는 교회입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 2:4)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은 천국이든지 지옥이든지 정해져 있습니다. 한번 천국으로 들어간 사람은 지옥으로 갈 수 없고, 지옥에 간 사람은 천국으로 옮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삶의 현장은 수시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천국 같은 교회가 하루 만에 지옥을 닮아있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천국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그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나만을 생각할 때는 지옥이지만, 남을 돌아볼 수 있으면 천국입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향해서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서로서로 발을 씻겨주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날 밤 종일 사역에 지친 예수님과 제자들이 모두 누군가 발을 씻겨줄 거라고 발만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면 그 밤, 그 집안에는 발 냄새가 진동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제자의 발을 씻겨주시고, 제자들끼리 발을 씻겨 줌으로써 그 집은 향유 내음으로 가득한 집이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발 냄새가 진동할 수도 있고, 향유 내음이 진동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는 것의 시작은 그렇게 거창하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 이번 주 중에 몸이 아파 장기 결석하고 있는 분들을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 형제자매의 주차를 위해 내 차를 멀리 주차하고 오는 것은 어떨까요? 대중교통은요?
* 내가 30년 동안 앉아서 예배드리던 그 자리도 기분 좋게 누군가에게 양보하는 것은요?
* 주차 봉사하는 집사님들을 위해 조금 일찍 나서서 커피 한 잔 사 와서 전해주는 것은요?
* 내 아이들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들과 목회자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요?
* 지나가는 성도님을 보면서 엄지 척 한번 날려주는 것은요?

마귀는 오늘도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까지 전해지지 못하도록 교회를 갈라놓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전투에서 성도들이 매일매일 패배하도록 만들어 복음이 교회 문을 나서지 못하도록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힘을 다해 화평을 이루고 마귀가 어떤 틈으로도 들어올 수 없도록 서로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를 높여주어 칭찬해 주고, 서로를 돌보아 줌으로써 화평을 이루어, 모든 민족이 예수님 앞으로 돌아오는 날까지 쓰임 받을 수 있는 우리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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