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예배 2주차

* 설교자 : 최병락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 페이지 : 273-283

*본문 :

빌립보서 1장 27-30절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일입니다. 월마트에 가서 물건을 샀는데 문제가 있어 교환하러 갔던 적이 있습니다. 물건을 반품하는 창구로 가니 다섯 명 정도가 반품 카운트에서 손님을 받고 있었습니다. 한쪽 창구에 아무도 손님이 서 있지 않아서 아무 생각 없이 그쪽으로 가서 물건을 반품하려고 하니, 영어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데, 그 창구 직원이 불편한 기색을 하면서 저에게 다시 돌아가라고 합니다. 손으로 저리 가라고 합니다. 굉장히 불편한 마음으로 있는데, 뒤에서 누가 소리를 지릅니다. 뒤를 돌아보았더니,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

었던 겁니다. 그때 저는 한국 사람들이 줄을 서는 방법과 미국 사람들이 줄을 서는 방법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때까지 한국에서는 창구마다 줄을 섰는데, 미국은 한 줄로 서 있다가, 창구가 빌 때마다 맨 앞의 사람이 그 창구로 가는 방식이었습니다. 그것을 전혀 몰랐던 저는 비어있으니까 그냥 그 창구로 간 것이고, 창구 직원은 왜 무식한 동양인이 예절도 없이 새치기하냐고 손으로 돌려보내고, 뒤에 있는 사람들은 제가 알고도 새치기 한 줄로 알고 소리를 친 것입니다. 그다음에 보니 화장실을 가도, 소변을 보기 위해서 사람들은 한 줄로 서 있다가 변기가 비면 맨 사람이 그 자리에 가는 식으로 줄을 서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모든 소변기 뒤에 줄을 서 있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이 통하지만, 미국은 줄을 잘 서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먼저 온 사람부터 서비스를 받게 됩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다른 나라에 가면 그들이 만든 시민법을 따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이번 본문에서는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2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 1:27)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에서 ‘생활하라’는 단어는 마음대로 살아가라는 뜻이 아니라 헬라어로 “폴리튜오”, 즉 “시민답게 살아라”라는 뜻입니다. “빌립보 성도들이여 여러분은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사십시오.” 영어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그리스도인에 어울리는 예의를 지키면서 사십시오”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복음의 합당한 삶은 어떤 것일까요?

첫째, 한마음과 한뜻으로 복음사역에 협력하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빌 1:27)

‘협력’(쉬나들레오)은 ‘함께 투쟁한다’는 뜻입니다. 협력을 전쟁 용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함께, 한마음, 한뜻으로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의 마음가짐으로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사역은 전쟁터로 나가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바캉스가 아니라 전쟁입니다.

영적 전쟁터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하신 말씀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낸다고 하셨습니다. 순해 빠진 양들이 이리떼를 이기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치는 겁니다.

저는 특공대 출신이기 때문에 받았던 훈련 중에 대테러 훈련이 있었습니다. 대테러 훈련장에 가서 도시 타격 훈련을 했습니다. 그러면, 2인 1조로 구성을 하고 정해주는 지점까지 장애물을 넘고 도시시설을 지나서 폭파 딱지를 붙이고 와야 합니다. 그때, 늘 배우는 것 중의 하나가 엄호사격입니다. 한 사람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달려갈 때, 나는 적군을 향해 총을 쏘아야 하고, 내가 달려갈때는 먼저 간 전우가 상대방을 향해 총을 쏴주어야 달려갈 수 있습니다. 그 전쟁에서는 내 목숨을 너에게 맡기고, 너의 목숨을 나에게 맡길 때 총알이 빗발치는 한가운데로도 엄호사격 하나 믿고 앞으로 뛰어가는 겁니다. 나의 목숨이 너에게 달린 것이 바로 한마음, 한뜻이고 그것이 바로 한마음을 한뜻으로 협력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러 세상으로 나간다는 것은 잔칫집에 초청받아 나들이 가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사역이란 복음이 없는 곳으로 가기 때문에 사탄과 마귀가 권세를 잡고 있는 영적 전쟁터로 가는 것입니다. 그곳으로 갈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백 사람이든, 천 사람이든 한마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 될 때 얼마나 강력한 힘이 나오는지를 사탄이 먼저 알기 때문에, 사탄이 기를 쓰고 우리를 분열시키고 성도끼리 싸우게 하고, 성도끼리 원수가 되게 하고, 성도를 찢어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쟁터로 나오기도 전에 서로 내부 총질로 자멸하게 됩니다. 그런 교회가 어디 한두교회인가요? 서로 싸우느라 사탄과는 한 번도 싸워보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 서로 이간질하고, 다투고, 미워하고, 편을 갈라놓으면 교회 앞마당도 못 나오고, 교회 안에서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싸우다가 죽는 겁니다.

목회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참 선배 되시는 목사님이 오랜 목회경험 후에 저에게 해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최 목사님, 목회하실 때 한 가지 명심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사탄과 싸우지 않으면 서로 싸우게 됩니다. 영적 전쟁터로 나가게 하지 않으면 교회가 전쟁터가 됩니다.”

맞습니다. 눈코 뜰 새 없이 선교하고 전도하는 교회는 서로 싸울 시간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교회는 사탄과 싸울 일이 없기 때문에 서로 싸웁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한다는 것은 형제는 서로 하나가 되고, 복음 들고 세상으로 나가 사탄과 마귀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항상 이 찬송이 끊이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 복음에 합당한 삶은 대적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삶입니다.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빌 1:28)

어느 지역에 성도들끼리 사이가 좋은 교회가 한 곳 있다고 합시다. 친 형제도 그렇게 못 친할 만큼 성도 간에 친하고 사이좋으며, 한마음 한뜻이라서 식당가도 메뉴 물어볼 필요도 없이 첫 사람이 정하면 나머지는 다 따라오는, 무얼 해도 한사람 마음처럼 그렇게 사이가 좋은 교회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문제는 사탄을 너무너무 무서워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그렇게 사이가 좋은데 복음을 전하러 밖으로는 절대로 못 나가는 교회가 있다면 그건 교회가 아니라 친목 단체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당신들만의 천국’을 만들어 놓고,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만들고, 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만드는 몇몇 사람들만의 천국이 되어버린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선교도 나가면 문제 생긴다고 선교비만 보내고 성도는 내보내지 않고, 전도도 이단을 전도할 수 있다면서 아는 사람 외에는 길거리에 나가서 전도하지 못하게 하고, 교회 안에서는 천국이지만, 밖이 무서워서 한 발도 세상으로 못 나가는 교회들이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세상 속 마귀가 아무리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으면서 다닌다 할지라도 세상으로 나가서 그들을 물리쳐야지, 교회 안에 숨어만 있는 크리스천이 있다면 복음에 합당하게 살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기억합시다. 마귀는 대적하는 존재이지 피해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빌립보교회는 안팎으로 대적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율법주의자들(빌 3:2)과 반도덕주의자들이(빌 3:18-19) 착한 성도들을 괴롭혔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성도들에게 심한 율법으로 협박을 했고, 반도덕 주의자들은 착한 성도들에게 문란한 삶으로 유혹하면서 복음에서 떠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밖에서는 빌립보 도시 자체가 가장 큰 이교도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에 기독교를 핍박하는 세력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습니다. 빌립보교회는 그야말로 안팎으로 전쟁터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전쟁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싸움은 이미 싸우기도 전에 이겼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 후반절은 이렇게 말씀

합니다.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바울은, 대적하는 자들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싸우라고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마귀는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대적해야 할 대상입니다. 마귀가 아무리 군대처럼 달려들어도 겁낼 것 없습니다. 그 싸움은 이미 예수님께서 싸워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알았습니다. 사탄은 맞서면 힘을 잃지만, 두려워하면 더 무섭게 다가오는 습성을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마귀를 대적하라고 했지, 피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약 4:7)

특별히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모든 면에서 지키고 보호해 주시지만 특별히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러 나가는 사람들은 집중적으로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호해 주십니다.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빌 1:28)

복음 전하는 자를 대적하는 자는 멸망의 증거를 보고, 복음의 군사들은 구원의 증거를 볼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요즈음 무엇을 하든지 두렵고 불안하며 초조함에 사로잡혀 있다면, 여러분의 삶에서 복음의 사역이 멈추어졌기 때문입니다. 복음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은 사역을 할 때만 담대한 것이 아니라, 그 힘 때문에 매사에 모든 일에 담대한 담력이 생깁니다. 복음의 일을 하는 사람의 칼은 절대로 무뎌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복음의 일을 멈춘 사람의 칼은 무뎌져 아무것에도 쓰일 수 없습니다.

복음사역을 하고 난 뒤에 다른 일을 해보십시오. 담력이 생긴 여러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의 칼이 무뎌지고 복음의 사역이 멈추니까 내게 영적인 능력이 약해져 다른 일들까지도 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아이를 키워도 불안하고, 사업을 해도 두렵고, 전화가 걸려 와도 깜짝깜짝 놀랍니다. 초인종만 누가 눌러도 심장이 뛰는 것은 여러분의 삶에 복음사역이 멈추어서 담력이 약해지고, 영적인 칼이 무뎌지고, 믿음의 방패가 뚫려있고, 진리의 띠는 풀어지고, 평안의 복음의 신은 구멍이 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상태로는 누구를 만나도 두려운 것입니다. 사탄이 아니라, 작은 염려에도 땅이 꺼져라 한숨부터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의 삶에 담대함을 회복시키고 싶으신 분들은 그동안 멈추었던 복음의 일, 전도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능력이 생길 것입니다. 힘이 날것입니다. 마귀가 떨 것입니다. 여러분의 얼굴을 멀리서만 봐도 마귀가 피해 갈 것입니다. 복음의 일꾼은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지키시는 줄 믿습니다.

셋째,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은혜 안에서 강한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빌 1:29)

고난을 이기는 최고의 무기는 은혜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고 주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구원받은 이후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구원은 노력이 아니라 은혜로 받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그러면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그다음부터 무슨 힘으로 살 수 있습니까? 바로 은혜의 힘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빌 1:29)

구원도 은혜로 받고, 구원받은 후에도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은혜 안에 있어야 강한 사람이 되고, 강한 사람이 되어야 고난도 이기게 됩니다. 은혜가 고난보다 큰 사람은 고난도 능히 이기는 줄 믿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은혜 안에서 강한 사람이 되어라”라고 했습니다. 은혜 안에 있다는 말은 내가 만나는 모든 일보다 은혜가 커서 그 은혜를 통해 모든 것이 지배를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고난이 은혜보다 크면 은혜의 보자기로 고난을 감쌀 수 없습니다. 은혜가 고난보다 커야 그 고난도 은혜로 감쌀 수가 있고, 고난도 은혜 안에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일단 은혜 안으로 들어온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은혜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은혜 안에 있을 때 강한 사람이 되기 때문에, 은혜 안으로 들어온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은혜가 이기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고난이 크신 분들 계십니까? 혹시 고난이 큰 것이 아니라 은혜가 작아진 것은 아닌지요? 고난이 크다고 불평하기 전에 작아진 은혜를 키우시기 바랍니다. 바울 같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도 육체의 가시를 묵상하고 또 묵상하느라 하나님이 주신 그 큰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제일 먼저 나온 것이 불평이었습니다. 가시를 빼달라고 가시만 놓고 기도 하고, 가시만 묵상하고, 가시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한다고 불평하였습니다.

가시를 빼주지 않으면 이제 한 사람에게도 전도하지 않겠다고 으름장도 놓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첫 번째 응답은 가시를 빼주시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바울아 너는 가시를 묵상하느라 내가 네게 준 은혜는 다 잊어버렸구나. 가시는 내가 정한 때에 빼 줄 테니, 너는 지금 가시를 생각할 때가 아니라, 네게 준 은혜를 기억할 때이다. 내가 너에게 이미 준 은혜가 네게 넉넉하다. 가시 때문에 네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잊어버려 망하게 됨을 반드시 명심해라.”

능력은 가시가 빠진 자리에서 생기지 않고, 은혜를 기억하는 자리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누가 제일 강한 사람입니까? 은혜를 제일 많이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기억하고 사는 사람은 사탄이 만지지도 못합니다. 불평이 나와야 그 틈으로 들어가서 주인 노릇 할 텐데, 은혜가 마귀의 들어오는 길을 원천 봉쇄해버렸기 때문에 마귀가 틈을 탈 수도 없습니다. 은혜 안에 있는 사람은 절대로 마귀의 놀이터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모두 은혜 속에서 강한 군사들이 무슨 일을 만나든지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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