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예배 1주차

* 설교자 : 최병락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 페이지 : 264-272

*본문 :

빌립보서 1장 22-26절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몇 년 전에 암 판정을 받은 한 개그맨이 유튜브를 통해서 강아지 구충제가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지막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강아지 구충제를 복용하기로 했다는 소식과 함께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너무나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살고 싶습니다.”

이분은 개그맨이 되기 전 대학로 거리공연 때부터 보아온 제 마음속의 개그맨입니다. 신속한 치료가 일어나기를 바라고 응원합니다. 사람은 모두 살고 싶은 강력한 의지가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뜻 말이 ‘살다’의 명사형이지요.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시고 그를 위해 돕는 배필인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아담을 돕는 하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살림’이었습니다. 하와의 뜻이 무엇인지 아세요? ‘생명’입니다. 하와는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존재, 즉 살리는 존재로 존재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와의 사명은 살림이었습니다. ‘살림’은 살린다는 명사형입니다. 매일매일 여성분들이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도시락 싸고, 청소를 하는 것을 ‘살림’이라고 말하는데, 지루하게 반복되는 그 일 때문에 남편이 살고, 자식이 살고, 가정이 삽니다. 그래서 ‘살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곳의 모든 남자는 여성의 살림 때문에 살아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삶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살하러 가는 길에도 횡단보도를 건널 때 좌우를 살피게 되고, 살만큼 살았다고 하는 100세 넘으신 노인도 건강채널만 고정해놓고 살아갑니다. 사람은 살아야 합니다. ‘살아’라고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수명을 다 살아내어야 합니다. 그게 사명이고 책임입니다. 하나님이 살라고 한 삶을 우리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 1일 자살률은 37명입니다. OECD 국가 중 1위입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자살률이 2.6배나 높게 나왔습니다. 특이한 점은 70대 이상의 고령에서 점점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청소년 자살률이 1년 사이에 22%가 증가했고, 자살 유가족의 자살률이 일반인보다 8.3배나 높은 것으로 나왔습니다.

전국적으로 충남이 가장 자살률이 높은 곳으로 나타났고, 그다음이 전북, 충북, 강원 순으로 나왔습니다. 자살의 원인으로는 첫 번째가 정신과적인 문제, 두 번째가 경제적인 생활고, 세 번째가 육체의 질병으로 나타났습니다. 많이 가진다고, 다 가졌다고 죽을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 가져도 죽고자 하면 죽을 이유가 100가지이지만, 아무것도 없어도 살려면 살 이유가 100가지입니다.

혹시 생을 포기하고 싶은 극단적인 생각이 드는 분들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힘을 다해 살아내십시오. 힘이 없어 죽게 생겼는데 무슨 힘이냐고 묻지 말고, 지금도 우리를 살리시며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다시 사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살아야 할 이유가 단 한 가지도 없어 보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짙은 안개가 걷히듯 당신이 살아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보일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바울은 생과 사의 가운데 끼어서 살아야 할지 죽어야 할지 매일매일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온 바울은 모두가 죽음을 생각하는 감옥 속에서 죽는 것이 내 사명이라면 지금 당장 죽어도 영광이지만, 살아야 하는 것이 내 사명이라면 나는 다시 살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서 할 일이 남았다면 나는 반드시 살아남아서 이곳을 걸어 나갈 것이라고 감옥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빌 1:22-25)

바울은 살기로 했다고 말합니다. 더 좋은 것은 지금 당장 죽어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지만, 내가 아직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감옥에서 나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사명’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를 살아있게 만드는 사명이 무엇이며 그가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육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할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확신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발전과 믿음의 기쁨을 더 하기 위하여 여러분 모두와 함께 머물러 있어야 할 것으로 압니다. 내가 다시 여러분에게로 가면,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 때문에 많아질 것입니다” (빌 1:23-26, 새번역)

첫째, 타인의 유익을 위해서 ‘삶’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빌 1:24)

많은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시점은 내가 아무에게도 유익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할 때입니다. 다시 말해 그 누구에게도 더 이상 필요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사라져 주는 것이 돕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불편하게 생각하고, 아무도 나를 반가워하지 않고, 나는 그 누구에게도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사탄은 계속 속삭입니다. “너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너는 더 이상 유익하지 않아. 네가 존재하는 자체가 민폐야. 아무도 널 찾지도, 기다리지도, 너를 기억하지도 않아. 이제 그만 끝내!” 하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

누구의 말을 들으시겠습니까? 에덴동산에는 따먹으면 영원히 사는 생명나무가 있고, 따먹으면 영원히 죽게 되는 선악과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나무를 따먹으라고 하셨고, 사탄은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했습니다.

누구의 말을 듣느냐에 따라 영원히 사느냐, 영원히 죽느냐가 결정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사탄의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죽는 과일 선악과를 따먹고 죽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앞에는 매일 나를 살리는 생명나무와 죽이는 선악과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나무를 통해 우리에게 “살아라” 하십니다. 마귀는 선악과를 통해 너같이 죄만 짓는 인간이 살아서 뭐해 “죽어라” 하고 몰아붙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생명나무를 따먹을 것이냐, 우리를 죽이는 선악과를 따먹을 것이냐 결정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생명나무의 소리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정죄하고 죄책감에 빠지게 하고 필요 없는 존재라고 우리에게 소리치는 선악과의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무슨 소리인들 안 들었고 무슨 생각인들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언제나 생명나무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탄은 바울에게 죄책감을 부추기면서 속삭였을 겁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자기 내면을 통해 속삭이는 사탄의 음성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생명나무를 따먹고 생명나무 실과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렇게 외칩니다. “빌립보 성도님들,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헛되지 않기 위해 나는 열심히 살 것이며, 지난 10년의 헌신과 섬김에 열매가 맺히도록 이곳에서 살아서 나갈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유익을 주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얼마나 당당하게 자기의 삶을 붙들고 일어서는 장면입니까? 뻔뻔할 정도로 삶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여러분의 유익을 위해 나는 살 것입니다”라고 당당히 자기 삶의 정당성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만 필요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세상에 여러분을 필요 없는 존재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한 것입니다.

둘째, 바울은 자기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빌 1:25)

바울은 유익을 넘어서 기쁨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있으면 좋은 정도를 넘어서 그 사람이 있으면 기뻐하는 존재라고 스스로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로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근심을 주는 존재로 생각하시나요?

사람들은 가끔 극단적으로 자기가 모든 사람의 근심거리가 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내가 숨 쉬고 있는 자체가 누군가에게 근심 덩어리를 안겨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하루라도 빨리 사라져야 그들에게 근심을 덜어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집에 웃는 사람이 없는 것은 내가 있기 때문이라고 비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집을 나가기가 무섭게 집안에서 웃는 소리가 시작되고,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웃음소리가 사라져서 근심만 줄 뿐, 기쁨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지 못하고 근심을 주는 존재라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청소년 10명 중 1명이 자살 충동을 느끼고, 청소년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은 성적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시험 성적만 받아오면 내뱉는 부모의 한숨 소리를 통해 자기가 부모에게 근심을 안겨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없어지면 부모님이 기뻐할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향해, 아내가 남편을 향해 무심코 내뱉는 한숨이 치명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한숨까지도 찬송으로 바뀌길 축복합니다. 연세가 점점 많아지는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근심 덩어리만 되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도 주님이 주시는 생각이 아니니, 오늘부터 거두시기 바랍니다. 혹시 근심을 하더라도 그 사람을 사랑해서 근심하는 겁니다. 나 때문에 가장 근심하는 그 사람이 내가 없을 때 가장 슬퍼할 사람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누군가에게 근심이 되기보다 기쁨이 되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25절에서 당당하게 살아야 할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확신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발전과 믿음의 기쁨을 더 하기 위하여 여러분 모두와 함께 머물러 있어야 할 것으로 압니다” (빌 1:25, 새번역)

바울은 확신했습니다. “내가 사는 것이 여러분의 기쁨입니다. 아니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살아야 합니다.” 이런 굳건한 삶의 자존감이 여러분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는 모든 사람에게 근심을 주는 존재라 하더라도, 여러분 때문에 기뻐하는 한 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의 이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습 3:17)

셋째, 그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를 인하여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빌 1:26)

빌립보교회가 지금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그분들께 빌립보교회의 2천 년 역사 동안 가장 자랑스러운 한 가지만 이야기해보라고 한다면 무엇을 이야기할까요? 우리의 자랑은 저 위대한 바울이 우리 교회 파송 선교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저 위대한 바울이 우리 교회를 세운 설립 목사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저 위대한 바울이 그 많은 교회 중에 우

리 교회를 제일 아꼈다는 것입니다. 바로 바울의 말처럼, 결국에는 빌립보교회의 가장 큰 자랑이 바울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아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빌립보 성도 여러분, 지금은 내 몸이 감옥에 있지만, 장차 여러분의 가장 큰 자랑이 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때까지 동역을 멈추지 마십시오. 기도를 멈추지 마십시오. 저로 인해 절망도, 실망도 마십시오. 반드시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되겠습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지금은 누군가의 근심 덩어리가 되어 살 소망이 끊어진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에게 큰 자랑거리가 될 때까지 버티고 견디며, 이기고, 멋지게 살아내십시오. 그것만으로도 여러분이 살아있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미 주께서 나 대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 대신 돌아가셨기에 더 이상 내가 죽을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또한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다시 죽을 수도 없습니다. 내가 지금 살아 숨 쉬는 이 생명은 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생명은 여러분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생명이 아닙니다. 주인이신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결코 여러분 안에 주신 생명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을 사망 권세에서 살려주신 예수님이 오늘도 여러분을 살려주실 것입니다. 그 생명은 여러분 속에 있지만, 주인은 예수님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살게 하시는 예수님의 힘과 능력으로, 힘 있게 살아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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