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예배 3주차

* 설교자 : 황형택 목사 한국중앙교회

* 페이지 : 240-248

*본문 :

요한계시록 2장 8-10절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예수님의 진심』이라는 책의 저자 스카이 제서니(Skye Jethani)는 예수님의 본심은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가지신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를 찾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산상수훈을 들여다보며 예수님의 마음을 하나둘씩 짚어가기 시작합니다. 책의 서문은 몇 가지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삶의 분주함으로 인해 우리는 예수님의 진심을 무시하며 달리고 있지는 않은가?”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인생은 참 바쁩니다. 어느새 하루가 지나가고 몇 달, 몇 년이 지나가고, 그렇게 금세 지나가는 바쁜 세월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옆으로 제쳐둔 채 달려가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연이어 질문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근본 문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혹시 해 본적은 있는가?”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조금 더 진지하게 들어야 하는데, 한번 듣고 흘려보내는 말씀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에 진지한 물음과 대답을 가져오는 일을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 다른 질문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배척을 받는 것이 그분의 가르침을 무시하면서 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요즘 교회에 대한 비난이 참 심각합니다. 정말 과도할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라가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무시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삶을 점검해 보는 일은 소중합니다. 내 믿음의 길이 어떠한지, 내 삶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는 일은 반드시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 책에는 한 그리스도인의 고백이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매주 무언가에 목말라 있었다. 내가 원한 것은 세련된 현대식 예배가 아니었다. 특정한 종류의 음악이나 종교의식이나 교회의 규모를 찾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평범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무게’를 보고 싶었다.”

하나님의 무게! 여러분과 저의 삶 속에서 하나님은 어느 정도의 무게를 차지하고 있을까요? ‘무겁다’는 말의 한자는 무거울 ‘중(重)’입니다. 이 한자는 중요하다고 할 때 쓰는 말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을 보고 싶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그 글의 소제목을 ‘영혼의 무게’라고 적었습니다.

다시 저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내 안의 하나님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목사인 나에게 영혼의 무게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쉽사리 날아가 버릴 정도의 무게를 가진 것은 아닐까? 혹시 나에게 조금 손해가 될 듯하면 흥분하고 날뛰면서 예수의 사람이기를 포기할 정도의 무게는 아닐까? 혹시라도 약간의 이익이라도 주어진다고 생각되면 예수님 그분을 찾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하는 정도의 무게는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그 어떤 것도 흔들어놓을 수 없을 만큼 가장 무거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꾸 자신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믿음의 무게, 그 영혼의 무게, 삶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견고한 기초가 중요합니다. 보이지 않는 견고한 기초를 제쳐둔 채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집만을 짓고 사는 일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고 있다면, 우리는 질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영혼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세상에서 이름을 조금 더 날리는 일, 조금 더 남들에게 인정받는 일, 조금 더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부유함을 갖는 일, 그 모든 것들이 우리를 유혹한다고 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영혼의 고백을 골방에서 드리는 일이 더 소중하다고 한번 되물어보는 것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십 일 동안의 환난”에 대하여 말합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계 2:10)

그리 길지 않은 환난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다시 묻고 싶어졌습니다. 과연 십 일 동안의 환난조차 견딜 수 있는 영적인 무게가 과연 내 안에 있는 것일까? 짧은 환난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영혼의 가벼움’으로 내가 살고 있지는 않은가? 자꾸 점검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 환난의 시기가 왜 존재하는 것일까요? 왜 서머나교회에 그 환난의 시기가 존재했던 것일까요?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라는 말씀에는 어떤 의미들이 담겨 있을까요?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신 다음 바로 이어진 말씀이 “죽도록 충성하라”라는 말씀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환난의 시기에는 내 삶의 믿음의 충성심을 점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환난의 시기는 여러분과 제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 즉 ‘그 충성심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해 보는 시기’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환난을 당할 때 ‘주님을 향한 뜨거운 충성심이 남아 있는가?’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충성’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피스티스’(πίστις)입니다, 이 단어가 가진 원어의 의미는 놀랍게도 ‘믿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환난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내 믿음이 정말 뜨거운지 점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 일 동안의 고난 속에서, 어쩌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이 환난의 시간 속에서 여러분과 저의 믿음의 무게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머나 교인들에게 이 환난은 왜 다가온 것일까요? 그것은 예배 때문이었습니다. 로마 황제를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예배하겠다고 고백하다가 찾아온 환난이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향한 예배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환난이 찾아온 것입니다.

예배로 인한 환난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주님을 섬기는 예배로 인하여 환난을 받게 되었을 때, 진정으로 주님께 충성심을 보일 수 있을까? 그것이 오늘 서머나교회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예배드리는 것 때문에 나에게 환난이 찾아온다면, 그래도 나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여전히 충성심을 보일 수 있는 영적인 무게가 내 안에 있는 것일까? 환난 가운데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일로 손해를 보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견고하게 지키면서 주님을 고백할 수 있을까?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화원 지역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꽃집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꽃집 중 한 곳의 간판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시 73:28)

혹시라도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일 때문에 사업의 손실이 찾아올지도 모르고, 예수 믿는 사람을 싫어하는 누군가는 이 말씀으로 인해 화원에 안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적어 걸어 놓을 수 있는, 주님을 향한 충성심이 저와 우리 모두에게 남아 있는 것일까요?

다니엘과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기억해 보십시오. 그들은 포로로 잡혀 왔습니다. 귀족 출신이었던 그들이 왕의 음식을 먹으면서 3년 동안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최고의 음식을 제공받으면서 훈련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다니엘은 결정합니다.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부터 자신을 지키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관원에게 요청합니다. 10일 동안만 나를 한번 시험해보라고, 10일 동안만 자신들을 시험해보라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시험해보기로 했습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을 것인지, 먹지 않을 것인지 말입니다. 먹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훨씬 다른 소년들보다 더 윤택하게 만들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시험해보라고 말한 것입니다.

서머나교회의 ‘십 일 동안의 환난의 시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께 대한 나의 충성, 즉 나의 믿음을 점검하는 일입니다. 지금 기독교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때야말로 ‘내 믿음을 점검하는 가장 적절한 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이

성전의 자리에 나와야 한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진정으로 내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견고함이 있는가? 믿음에 관한 그 일에 대하여 적어도 충성심을 말할 수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너무나도 강력하게 “죽도록 충성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예배드리는 일이 공공의 적처럼 되어버린 이때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메시지는 ‘믿음을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려는 마음이 있느냐?’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 믿음은 어디쯤 자리를 잡고 있으며, 내 믿음은 어느 정도의 무게인지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환난은 점검을 위한 도구입니다. 환난의 시간이라면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처럼 내 안에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과연 얼마만큼의 가치 있는 것들이 주어져야 여러분 안에 있는 하나님이 그것들로 대체되는 걸까요? 또 얼마나 큰 유혹이 제시되어야 하나님 그분을 포기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에게 한번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환난의 시간이 좀 더 길어진다면, 환난의 무게가 좀 더 무거워진다면 그분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과 저의 이익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면 하나님을 향한 내 믿음의 충성도도 점점 포기될 수 있는 것일까요? 예배로 인하여 내 삶에 찾아오는 환난의 시간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을 묻는 시간입니다. 믿음을 점검해 보아야 하는 시간입니다.

로마 황제에게 충성할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의 그 어떤 다른 것에 내 마음의 중심을 내어놓을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여전히 여러분과 저는 생명의 주인이신 그분, 어떤 죽음의 수렁에서도 우리를 건져내실 수 있는 그분, 죽었다가 살아나신 그분께, 우리의 충성심을 보여야 합니다. 내 모든 것을 아시는 처음과 마지막이신 그분께, 여전히 내 믿음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환난은 여러분과 저의 믿음을 점검하고, 그렇게 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그 기간이 얼마나 될지 모릅니다. 짧을지, 길지, 혹독할지, 아니면 잠시 있다가 지나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간에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만 합니다. ‘내 안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충성심이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아름다운 믿음은 환난의 시기에 더욱 빛이 납니다. 환난의 때에 오히려 믿음의 무게는 더 필요한 것입니다.

미국에 가면 ‘코네티컷’이라는 주가 있습니다. 50개 주, 중의 하나로 동부 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각주마다 그 주의 별칭이 있습니다. 뉴저지라는 주는 ‘Garden State’라고 합니다. 온 곳에 정원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서 그런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 코네티컷 주는 헌법 주(Constitution State)라고 합니다. 1639년에 미국의 최초로 성문화된 헌법이 이곳에서 만들어져서 헌법 주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헌법에는 코네티컷 주가 설립된 목적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자유함과 그 복음의 순수함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하여 우리는 이 주를 설립한다.’

그들의 삶에 어떠한 환난과 고통과 궁핍, 심지어 비난이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자유함, 그리고 그 복음이 가진 순수한 능력을 붙들기 위하여 그 주(State)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환난이 찾아와도 우리는 주님을 향한 믿음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향한 충성심을 우리는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과연 내 영혼의 무게가 얼마이며,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무게는 어느 정도 되는지 우리는 자꾸만 점검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이신 복음이 내 안에 어떻게 얼마만큼 자리 잡고 있습니까? 아무도 볼 수 없고,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분을 향한 우리 믿음의 고백이 진정 뜨겁게 남아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점검해야 하는 시기가 바로 이 ‘환난의 시기’입니다.

혹시라도 예배를 통하여, 예배드리는 그 일로 인하여, 내가 예수의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어려움이 있다면 우리는 그때에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을 향한 나의 충성심을 말입니다. 그분을 향한 우리 믿음의 뜨거움을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신앙인의 길입니다. 그것이 바로 서머나 교인들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이고, 귀가 있다면 우리 모두가 들어야만 하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여러분과 제 안에 있는 영혼의 무게, 그리고 하나님의 무게는 얼마나 되는지를 늘 점검하시는 모든 성도님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황형택 목사 

숭실대학교 철학과(B. A)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졸업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M. A. Compl) 졸업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 Divinity School(M. T. S) 졸업
달라스 신학대학원 성서주석학 석사과정 수학
보스턴 대학교 대학원 설교학 박사과정 수학
(現) 극동방송국 이사
(現) 샘 인터내셔널 이사
(現) 몽골국제대학교 이사장
(現) 강북제일교회 담임목사
■저서
『끈질긴 사랑의 추적자』, 『위기관리 전사 엘리야』, 『들어가 그 땅을 밟으라』, 『자리 매김」, 『언제나 희망은 남아 있다』, 『예수의 사람』, 『그래도 나는 신앙인이다』, 『기도의 기본으로 돌아가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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