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예배 2주차

* 설교자 : 임석순 목사 한국중앙교회

* 페이지 : 229-238

*본문 :

사사기 6장 25절-40절

“그 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버지에게 있는 수소 곧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끌어 오고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또 이 산성 꼭대기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제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잡아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 하시니라…(중략)…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순종은 가능한가?”라고 물어보신다면, 그리고 누군가 이 질문을 던진다면 우리는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멘! 가능합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순종이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한 가정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졌다면 가족 구성원 중에서 어느 한 사람의 순종이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순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와 선교 현장에는 하나님의 뜻을 묻고 순종한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이 땅으로 가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한 선교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시지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도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던 예수님을 따라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처럼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순종은 우리에게 부담스럽고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순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십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5-8)

기드온도 우리처럼 순종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기드온을 순종의 사람으로 이끌어 가시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기드온에게 “너는 큰 용사”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삿 6:12)

‘큰 용사’라는 말씀의 씨를 뿌리셨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형편, 자신의 현재 모습을 돌아보면 큰 용사는 고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큰 용사라는 말씀을 부정하고 부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삿 6:16)

포기하지 않으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기드온은 점차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 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삿 6:17-18)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 돌아올 때까지 머무르리라”(삿 6:18) 기드온은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한 후 가루 한 에바로 무교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 상수리나무 아래로 가져다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사자는 고기와 무교병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 놓고 국을 부으라고 하셨습니다. 기드온이 순종한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삿 6:17-24)

2. 적극적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 여호와의 영은 우리를 찾아오신다

그동안 부정적인 생각과 두려움에 떨었던 기드온에게 마침내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소극적이나마 말씀에 반응했을 때 기드온에게 평화가 찾아와 순종할 힘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평화가 찾아오니 더 감당하기 어려운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그 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버지에게 있는 수소 곧 칠년 된 둘째 수소를 끌어 오고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또 이 산성 꼭대기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제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잡아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 하시니라” (삿 6: 25-26)

정말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아버지의 수소 중에서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지정해서 말씀하신 것을 보면 아마도 기드온의 아버지가 제일 아끼던 소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의 바알 제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찍어 그것으로 번제를 드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행했을 때 벌어질 상황을 기드온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평화를 주셨기에 힘을 내어 또다시 순종합니다. 감히 낮에 행하지는 못하고 밤에 행합니다. 과연 이 어려운 순종을 하고 나면 그의 앞길은 앞으로 훤히 열리게 되는 것일까요?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밤사이에 일어난 일을 발견하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누구의 소행인가 캐물은 후에야 그가 바로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임을 알게 됩니다. 요아스에게 아들을 끌어내라고 하면서 당연히 기드온은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드온의 아버지인 요아스 역시 아들이 용서될 리가 없습니다. 아들을 죽이고 싶을 만큼 괴로움이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아스는 “우리가 죽일 필요가 있느냐? 바알이 그를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라”라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그런데 내부적으로 일어난 소동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외부 상황입니다. 미디안과 아말렉 족속과 동방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요단강을 건너와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 것입니다. 진퇴양난입니다. 사방으로부터 포위를 당하고 있는 기드온입니다. 그때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삿 6:34)

우리나라와 한국 교회, 다음세대와 미래를 생각하면 방법이 없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힘이라도 있으면 무엇이라도 시도해 볼 텐데 교회들마다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진퇴양난에 처한 기드온의 상황처럼 이때가 비로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시점이자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순종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 여호와의 영은 이때 우리를 찾아오신

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3. 죽기까지 순종할 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목도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들을 직접 찾아오셔서 조반을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주님께서 승천하시는 모습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로 인해 목숨이 위태로워졌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두려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모여서 약속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주의 영이 임하신 후, 그들은 복음 전파를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를 각오하며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자들로 거듭났습니다. 기드온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는 처지에서 여호와의 영이 임하자 담대하게 선포하고 나팔을 불어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당시에 기드온은 나팔을 불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목숨을 위해서 숨어야 할 상황인데도 목

숨을 내어놓는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이 용기는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이제 기드온은 죽기까지 순종할 각오를 하고 나서 자신이 나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삿 6:36-40)

기드온은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 아닙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여 목숨을 내걸고 나가고자 아버지 앞에서 그것을 점검한 것입니다. ‘하나님! 한 번만 더 확인하고 싶습니다. 정말 내가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면 내가 죽기까지 순종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임을 완전히 확신한 기드온은 7장에서 마침내 미디안을 향해 나아갑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새워가며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것은 두렵거나 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시고자 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신 주님은 죽음의 자리까지 담대히 순종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최근에 함께 신앙생활했던 분들이 한 분 한 분 곁을 떠나셨습니다. 장례식장을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우리는 한 번은 꼭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언젠가 반드시 죽을 목숨이라면 주님 앞에서 소극적인 반응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죽기까지 순종하다가 아버지 앞에 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죽기까지 순종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이 세상에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 오셨다고 말씀하셨고,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셨습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온 인류가 죽었지만 한 사람의 순종으로 온 인류가 의롭게 되고 생명을 얻었습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롬 5:19)

우리 힘으로는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 힘으로 할 수 없고 앞이 캄캄하다고 여겨질 그때가 바로 성령님이 임하실 시간입니다. 어쩌면 내 힘으로 가능할 것 같은 때에는 소극적인 순종에 그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구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죽기까지 순종하게 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번 질문드립니다. 순종은 가능합니까?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는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도 미흡하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좋은 땅으로 바꿔주시고 말씀의 씨를 뿌리셨으니 끝까지 반응을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더 큰 순종을 요구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리에 이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 결코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기다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성령의 힘으로 일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 내 유익을 구하는 물음이어서는 안 됩니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사람으로서 아버지의 뜻을 확인했다면, 순종하겠다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확인할 필요도 없이 순종해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감사’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죽기까지 감사를 실천하고 순종하는 한 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할 것이 없는데 무슨 감

사인가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라고 말씀하시니 소극적으로라도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선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감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을 보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적극적으로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많은 감사의 조건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평생 집 한 채 없다고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소극적이나마 감사하십시오. 어렵던 시절에 17번을 이사하는 경험이 있어서 집 없이 여기저기 전전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집 없는 분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또 육신의 질병으로 힘드신 성도분도 계실 것입니다.

만일 육체가 건강했다면 육체만을 돌보는 삶으로 만족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육의 연약함으로 인해 영을 살찌우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자녀가 잘 안되고 힘들게 할 때 ‘아이가 속을 썩이지 않았으면 내가 잘나서 자식을 잘 키운 줄로 교만했을 텐데, 속 썩이는 자식을 보니 하나님께서 다 해주시고 하나님께서 다 키워주심을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현재에 감사하지 않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그를 따로 징계할 필요가 없습니다. 감사하지 못하면 그는 이미 징계를 받았고 멸망과 벌을 받은 것입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순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좋은 땅으로 만드시고 말씀의 씨를 뿌려주셔서 소극적으로나마 순종할 수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순종을 어렵게 만드는 우겨쌈을 당하는 시간들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때에도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을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죽기까지 순종하는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있기를 소망하십시오. 특히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며 어떤 상황이든지 감사하는 일에 순종할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임석순 목사
 
영국 웨일즈대학교 철학박사 
(現) 기독교 사이버대학교 총장 
(現)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원장 
(現) 한국중앙교회 담임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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