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예배 1주차

* 설교자 : 최성은 목사 지구촌교회

* 페이지 : 215-226

*본문 :

느헤미야 1장 1-11절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영웅은 항상 난세(亂世)에 등장을 합니다. 미국에서 이민 목회를 할 당시 김명민이라는 명배우가 주연한 역사극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를 보며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너무나도 절망적인 위기의 순간마다 난세의 영웅인 이순신 장군 덕분에 조선은 위기를 모면하곤 했습니다. 난세의 영웅이라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시대가 평화로우면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모든 것이 풍족하면 사람들은 기적이나 영웅의 필요성을 못 느끼지만, 소망이 없고 역사의 어두움이 짙게 깔릴 때면 사람들은 그 시대를 밝혀줄 영웅을 찾게 됩니다. 인간의 역사는 늘 그것을 반복적으로 보여 줍니다.

그런 면에서 유대 민족의 가장 암울한 역사 속에 혜성처럼 등장한 하나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느헤미야입니다. 과연 무너진 예루살렘 도시의 성벽들과 무너진 마음들의 영적 성벽들을 어떻게 재건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 우리 시대의 무너진 장벽을 재건하는 소망을 찾는다면 느헤미야서가 우리에게 최고의 지침서입니다.

기원전 586년경, 이스라엘의 남유다 왕국은 아시리아를 물리치고 중동의 패권을 차지한 바벨론에게 멸망합니다. 그때 수많은 유능한 사람들이 바벨론 제국 지역으로 흩어져 포로로 잡혀갑니다. 땅의 영원한 강자는 없는 법이어서 50년 가까이 흐른 B.C. 539년, 바벨론 제국은 바로 그 옆의 동쪽의 새로운 강대국인 메대와 페르시아에게 패권을 넘겨줍니다.

오늘 성경 본문의 주인공인 느헤미야는 바로 이러한 환경 가운데 바벨론 포로 시절 잡혀갔다가 페르시아 지역에서 태어난 히브리인 2세입니다. 페르시아인의 눈으로 볼 때 느헤미야는 히브리인 포로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에스더를 여왕으로 삼았던 아하수에로 왕의 아들, 즉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이었습니다. 당시 술 맡은 관원장의 위치는 요리사가 아니라, 지금의 대통령의 비서실장 정도에 해당하는 중직이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왕이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하고, 신분에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왕의 독살을 막는 임무로서 왕이 먹는 모든 음식을 조사하고, 해박한 지식과 빠른 순발력, 많은 것을 겸비한 다재다능한 재원으로 왕이 가는 곳은 늘 동행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의 권세는 페르시아 제국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권력의 핵심부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느헤미야에게 삶의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습니다.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느 1:1)

아닥사스다 왕이 보위에 오른 지 20년입니다. 기슬르월은 지금의 11-12월을 말합니다. 수산 궁은 페르시아 왕들이 겨울에 거하던 성입니다. 그런데 그런 때에 느헤미야는 방금 예루살렘을 탐방하고 돌아온 동생 하나니로부터 자기 민족의 처참한 소식을 전해 듣게 됩니다. 예루살렘 주변 민족의 노략으로 모든 성벽과 성문들이 무너지고, 약탈당하고, 늘 침략의 위험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느헤미야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 1:4)

느헤미야는 히브리인 2세로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 때에 태어나 제국의 고위 관리직에서 평생 편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자기 증조부, 조부, 그리고 아버지의 조국을 자신의 조국이라고 믿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참담한 소식을 듣고는 기도하고 울부짖으며 금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이렇게 식음을 전폐하고 울부짖으며 기도한 데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이 3차에 걸쳐 귀환을 하는데, 그때마다 훼파된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합니다.

B.C. 537년 – 남유다가 멸망한지 50년이 지나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조서를 내려서 스룹바벨의 지도 아래 약 5만 명이 귀환하게 됩니다. 이때는 전쟁으로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했는데 중간에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약 17년간, 520년까지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다가 다시 완공을 했습니다(B.C. 515).

이 중단된 시기에 바로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가 나타나서 부흥을 위해 영성을 준비시킵니다. 그런데 성전의 기초 준비를 마친 백성들은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전의 화려하던 예루살렘 성전보다 너무 초라했기 때문입니다. B.C. 458년 – 1차 귀환 후 80년이 지난 B.C. 458년,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 1세 때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가 어린아이와 여자까지 약 6-7천 명을 데리고 성벽을 재건하러 왔습니다. 그러나 많은 방해로 성전 재건보다는 주로 신앙 개혁을 부르짖었습니다.

B.C. 444년 – 이제 세 번째로 아닥사스다 1세 때 하나님께서 느헤미야를 부르셨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방 땅에서 어려운 민족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고 자신의 조국과 민족이 사라진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후손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아버지 하가랴로부터 듣고 자랐습니다. 느헤미야의 뜻은 ‘하나님께서 위로하신다’라는 의미입니다. 전쟁 가운데 나라가 없어진 슬픔을 하나님이 위로하시고 결국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실 것을 믿는 소망을 가지고 지은 이름입니다.

느헤미야는 140년 전에 일어난 민족의 비극을 마음에 담아두었고,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돌아온 동생에게서 그 지역의 처참한 소식을 듣고 하나님 앞에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역시 예루살렘에서 신음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동쪽으로 1,000km나 떨어진 페르시아 제국 수산 궁에 있는 히브리인 2세 느헤미야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난세에 하나님의 사람을 일으키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시야를 고정시켜라(믿음의 시야를 확보하라)

하나님의 사람들은 문제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문제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는 눈이 다른 것이 리더의 역할입니다. 당시 페르시아에는 조로아스터교가 성행했으며 여러 민족들에게서 혼합된 다신을 숭배했습니다. 그런데도 느헤미야는 그렇게 이방 신이 들끓는 페르시아 정치 권력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늘의 하나님이 조로아스터교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창조하시고 사랑하시고, 공의와 거룩으로 심판하시며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인 것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자들을 축복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붙듭니다.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느 1:5)

느헤미야의 탁월함은 자신의 막강한 권력을 의지하기보다 먼저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다는 데 있습니다. 히브리인 2세이자 대형 제국 페르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이방인의 신분을 가지고 느헤미야는 절대주권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우리가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우리의 마음속에서 건져내야 하는 것은 어떤 다른 것이 아닌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는 너무 연약한 하나님을 내 마음속에 만들어 놓고 요리하고 있습니다. 컴퓨터 게임에서 손가락 하나로 마음대로 조정하고 컨트롤하듯이 하나님도 그렇게 하고 싶어합니다. 상상할 수 없이 크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일을 만나면 내가 컨트롤하는, 내 마음속에 만들어 놓은 하나님을 연상시킵니다. 그것은 결국 못나고 연약한 내 마음을 신뢰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만이 나를 일으키시고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라는 믿음의 시야를 확보해야 합니다. 어차피 위기는 우리의 삶에서 늘 존재합니다. 그런데 인생의 위기에 시야를 고정시킨다면 끝내 위기 속으로 빠져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을 돌린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문제에 개입하실 것입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 앞에 빨리 자신의 인생을 맡깁니다. 문제나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께 시야를 고정시키십시오.

2. 남의 죄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생각하며 회개하라(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라)

느헤미야가 아무런 심경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누구 하나 욕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비록 자기 조상들이었지만 이미 140년 전의 일이고, 예루살렘에서 태어나지 않은 느헤미야는 이미 세상을 통치하는 막강한 페르시아 제국의 왕을 보좌하는 비서관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왕궁의 산해진미를 뒤로하고 1,000km 떨어져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예루살렘의 일을 전해 듣고 울부짖으며 금식을 했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 1:4)

신앙의 문제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일 줄 아느냐에 달려 있고, 영성의 깊이는 과연 내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고 공감하고픈 열망이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상관하지 않아도 되고, 무시해도 될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문제를 개인과 민족의 문제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문제로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의 안락한 환경을 떠나서 민족의 아픔을 하나님께 아뢸 줄 아는 그런 영성이 이미 준비되었던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느헤미야의 회개 기도입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느 1:6-7)

느헤미야는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었던 과거 조상들의 죄까지 사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공동체의 죄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생각하며 회개하는 개인과 교회를 사용하십니다. 저는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잃어버린 능력 중에 하나가 ‘회개’라고 생각합니다. 죄는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의 죄와 허물까지 연대 의식을 느끼고 나의 죄인 것처럼 회개하는 일은 하늘 문을 여는 기도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라(믿음의 연료를 기억하라)

하나님의 사람들이 위기 가운데 외쳐야 하는 것은 어떤 신조나 생각이 아닌,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던 약속의 말씀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조상들에게 주셨던 약속의 말씀을 주장하며 기도합니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느 1:8-10)

이는 평상시에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깊이 묵상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위기를 만났을 때, 성경의 거의 모든 위대한 기도들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는 기도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기도는 말씀과 병행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짧은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말씀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에는 하나님의 언약이 넘쳐납니다. 기도는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문제와 위기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것인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통해 부르짖었습니다. 기도하다가 불현듯 생각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면 평소에 묵상하던 말씀이, 상황 가운데 성령님을 통하여 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4.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기도하라(간구의 대상이 하나님이심을 잊지 마라)

느헤미야서는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이 납니다. 총 13장 중에서 느헤미야의 기도는 무려 12번이나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문제를 갖고 고민만 하다가 끝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느헤미야는 엄청난 권력과 조직을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성경 인물 가운데 가장 치밀하고 뛰어난 행정가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빈틈이 없는 계획을 기도로 먼저 준비했다는 사실입니다. 느헤미야 2장에서 보겠지만,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고 기도한 후 왕 앞에 나아가는 데 무려 4개월이 걸렸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한 것은, 그가 평소에도 이 일 때문에 기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신앙은 요행을 바라는 마술이 아닙니다.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의 신앙은 어떠한 고난도 통과하는 기도의 능력에서 시작됩니다. 느헤미야는 기도하며 실력을 갖추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여 구하오니 (기도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제가 예루살렘에 가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느 1:11)

느헤미야는 이교도를 섬기는 왕이라고, 페르시아의 왕 앞에서 방자하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하나님의 법칙으로 존중했습니다. 그들을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이 그들을 움직이실 것을 믿고 간구했습니다. 다니엘이 그랬고, 요셉이 그랬고, 엘리사와 느헤미야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며 이렇게 외친 것입니다.

“하나님!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예루살렘에 가서 무너진 성벽들을 재건하고 고아와 과부들을 보호하며 하나님의 사람들이 마음껏 성전에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저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페르시아 왕에게 이 일을 알리겠습니다. 그때 저를 도와주옵소서. 저를 형통하게 하셔서 이 일을 감당하게 하소서.”

이 기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장을 봅니다. 이제는 나와 상관도 없는, 이미 멸망한 조국 이스라엘을 향하여, 내 부모, 내 민족이라는 터질 것같은 애타는 마음을 담아 하나님의 뜨거운 열정으로 열렬히 기도하는 사람 느헤미야!

오늘 이 시대 대한민국의 한복판에서 느헤미야의 기도는 우리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민족 치유, 세상 변화의 비전이 저의 비전이 되기를 원합니다. 연약한 사람들의 아픔이 저의 아픔이 되기를 원합니다. 공동체의 죄 속에 저도 포함되어 있음을 회개합니다. 하나님!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이 일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저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제가 하겠습니다! 세상의 가장 높은 위치, 평안한 수산 궁에 앉아 왕의 진미를 먹는 것보다 무너진 사람들의 마음의 장벽을 쌓는 일을 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임을 오늘 깨닫습니다. 할렐루야!”

한 사람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수는 없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능력있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 교회 공동체, 우리의 민족 공동체는 모두 운명 공동체입니다. 그 가운데서 무너진 성벽, 무너진 예배, 무너진 영성, 무너진 복음 전도의 열정, 무너진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재건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다시 일어나서 함께 기도합시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예배가 다시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목적은 이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임을 잊지 맙시다. 지금 코로나19 감염병 시대야말로 하나님께서 곳곳에 심어 놓으신 하나님의 사람들이 용기 있게 일어나야 할 때임을 기억합시다. 난세,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최성은 목사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Ph. D.)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M. Div.)
한국 침례신학대학교 (B. A.)
뉴올리언즈 및 미드웨스턴 침례 신학교 겸임교수
국제 KOSTA 강사 및 이사
Northwest Baptist Convention(NWBC) 실행이사
미 남침례교단 소속 미국 국내 파송 선교사
네슈빌 다리놓는교회 개척, 다운타운 홈리스 사역
(現) 지구촌교회 담임목사
■저서『생수를 마셔라』, 『예배의 창문을 열라』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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