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장 12-17절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예수님께서 오늘 칼을 들고 버가모 교회를 찾아오셨습니다. 칼의 용도는 다양합니다. 칼이 의사의 손에 쥐어져 있다면 살리는 칼 치료하는 칼이 될 것이고, 적군의 손에 쥐어져 있다면 나를 죽이는 칼이 됩니다. 나를 지켜주는 칼이 있는가 하면 그 칼끝이 나를 향해 있는 무서운 칼도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을 향해 예수님께서 칼을 들고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면, 그 칼의 용도는 여러분을 살리는 칼일까요? 여러분을 심판하는 칼일까요?

아마,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 그 칼의 용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잘 살아왔다면 여러분을 지켜주시는 칼이 될 것이고, 예수님을 대적하면서 살아왔다면 그 칼은 여러분을 심판하시는 칼이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 앞에 찾아온 예수님의 칼은 아픈 영혼을 치료하고 살리는 의사의 손에 들려진 칼처럼 치유의 칼, 살리는 칼만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칼을 들고 버가모교회를 찾아오셨는데, 그 칼이 어떻게 생긴 칼인지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좌우에 날이 서 있는 칼이라 했습니다. 좌우에 날이 선 검이라고 자세히 설명한 것으로 봐서 양쪽날의 용도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버가모교회는 칭찬도 받고 책망도 받은 교회이기 때문에 양쪽날이 다 필요했던 것입니다. 틀림없이 한쪽 날은 심판하는 칼이고, 다른 한쪽 날은 치료하고 지키시는 용도입니다. 먼저, 이 칼을 들고 버가모교회를 향해 칭찬하시는 칭찬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계 2:13)

버가모 지역도 서머나 지역처럼 황제숭배가 성행했던 지역으로 그만큼 교회를 향한 핍박이 많았던 곳입니다. 로마가 버가모교회를 없애기 위해 성도 중에서 가장 충성스러운 성도였던 안디바를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를 따르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를 보여주어 흩어지게 만들려는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흩어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 그 정도는 각오하고 믿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은 핍박으로는 흩뜨려 놓지 못한다는 것을 역시 사탄은 몰랐습니다. 오히려 교회는 그런 핍박을 이겨낸 것을 평생의 자랑과 간증으로 삼고 살아가기 때문에 핍박이 오면 믿음이 더 좋아집니다. 버가모교회를 향해 마귀는 로마라는 무서운 칼을 들고, 그 교회에서 가장 믿음이 좋고 충성하는 안디바를 색출해내어 모든 성도가 보는 앞에서 죽이면서 본때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흩어지기는커녕 믿음이 더 견고해진 것을 예수님이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들고 계신 칼로 버가모교회를 무섭게 지켜주고 계신 것입니다. 마귀가 다가오면 들고 계신 칼을 마귀에게 쓰윽…보여주시면서 “내 칼에 죽을래, 가만 내버려 둘래”하시면서 교회를 지키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교회와 주님을 위해 핍박받는 사람들을 긴 칼을 들고 지켜주고 계십니다. 음부의 권세가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곳이 교회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버가모교회는 이런 믿음으로 핍박을 이겨낸 칭찬보다, 내부적으로 가진 책망 거리가 더 많았던 교회였습니다. 칭찬보다 책망이 많았던 교회. 그래서 좌우의 날선 검 중에 다른 쪽 날선 검을 치켜들고 버가모 교회의 내부적 문제를 책망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의 문제는 외부로부터 오는 문제는 너무 잘 이겨내었는데, 내부적인 문제로 형편없이 무너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문제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계 2:14-16)

그들의 내부적인 문제는 첫째,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사람들 때문이었고, 둘째로는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대체 발람의 교훈은 무엇이고, 니골라당의 교훈은 무엇일까요? 이것이 무엇이기에 교회 안에 이렇게 큰 문젯거리가 된 것일까요? 사실 이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은 같은 문제인데 음행의 문제입니다. 교회 안에 음행의 문제가 들어온 것입니다. 교회에 음행한 사람이 출석하고 있다 정도가 아닙니다. 교회가 음행을 공식적으로 묵과해 준다는 뜻입니다.

니골라당은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이단사상인데, 육체는 악하고 영은 선하다고 하는 이분법 사고를 가진 영지주의의 분파로서 육신은 악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다루어도 영이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사상입니다. 따라서 이 사상은 필연적으로 육체의 쾌락과 방종을 가져오게 됩니다. 아무런 신앙의 가책 없이 음란이 자연스럽게 교회 안에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발람의 교훈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해달라는 모압 왕 발락의 요청을 받고, 아주 악한 방법을 모압 왕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지 않고도 이스라엘을 이기는 방법이 있는데, 저들의 신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음행이기 때문에 모압 여인들을 보내어 음행을 하게하면 저들의 신이 직접 벌을 내리게 됩니다. 그러면 당신들 손에는 피하나 안 묻히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그대로 그 방법을 따른 모압 왕은 싯딤나무 아래로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해서 행음하게 합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징벌하심으로 2만 4천명이 죽게 됩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행음의 죄를 짓게 한 것이 발람의 교훈입니다. 지금 사단이 그 방법으로 버가모교회를 핍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밖에서 로마를 충동하여 교회를 공격해보니, 더욱더 단단해지고, 더 결집하고 믿음이 좋아져 그 방법으로는 안 되니까, 교회 안에 행음을 집어넣어서 죄를 짓게 함으로 않고 하나님이 직접 그 교회를 심판하고 없애 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탄의 입장에서는 손 안 대고 코푸는 전략입니다. 그런데 이 사단의 전략이 안타깝게도 적중해 버리고 맙니다.

버가모교회 안에 이단 사상인 니골라당의 교훈을 받아들이고 발람의 교훈을 따라 교회 안에서 합법적으로 공식적으로 온갖 음행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공부 시간에 행음이 합법이라고 가르치는 니골라당과 그것을 실천하는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버젓이 성도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도 그들을 몰아내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 버가모교회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버가모교회는 지금 하나님의 심판의 손에 들어간 것입니다. 사탄의 공격을 받는 교회보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교회가 훨씬 심각한 교회입니다. 앞서 칭찬받았던 서머나교회는 밖의 공격도 이겨내고 안의 공격도 이겨내어 칭찬을 받았는데, 버가모교회는 밖의 공격은 이겨내었는데, 안의 문제는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교회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상황이 어떻습니까? 예전에는 교회가 세상의 죄를 보고 걱정했는데, 2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보니 이제는 세상이 교회를 걱정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가지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의 타락을 보고 혀를 차면서 ‘말세다 말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세상은 소돔과 고모라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타락해서 말세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죄를 보고 말세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세상은 늘 그래왔습니다.

그러기에 말세의 징조를 어디서 알 수 있냐면, 바로 교회 안에서입니다. 교회가 타락하고, 교회가 세상보다 더 죄를 짓고, 교회가 세상 사람도 안하는 일을 버젓이 행할 때 말세가 가까웠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세상이 동성애 법을 찬성했다고 해서 말세가 온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동성애 법을 찬성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그것에 죄다 아니다 원래 정해진 규범이 없습니다. 따라서 언제든지 반대했다가도 문화에 따라 시대에 따라 찬성할 수 있습니다. 원래 세상은 그렇습니다. 정치에 도움 되면 찬성하고, 사업에 도움이 되면 친 동성애 기업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다가 정치에 불리하면 반대하고, 사업에 손해가 오면 금방 돌아설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이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를 보고 말세 운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아닌 교회 안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문제는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이것을 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성애자가 교회에 오는 것은 얼마든지 환영할 일이고,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하여 그 문제를 이겨낼 수 있도록 사랑과 배려와 도움으로 함께 해 주어야합니다. 사람을 변화시켜 죄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 그게 교회의 역할입니다. 동성애 죄가 거짓말하는 죄보다 더 심한 죄인가요? 아닙니다.

죄는 모두 죄일 뿐입니다. 그런데, 왜 교회에서 동성애를 큰 죄 취급을 하는 줄 아십니까? 다른 죄들에 대해서는 교회도, 죄를 지은 그들도 죄라고 모두 인정을 합니다. 교회 안에서 거짓말, 도둑질, 살인하면 안 되는 것을 모두가 압니다. 이런 것이 시대가 바뀌어 죄가 아니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동성애의 문제만은 더 이상 죄가 아니라고 우기기 때문에 싸우는 겁니다. 기독교가 동성애자들이나 동성애만을 유난히 미워한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동성애만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살인이 죄라고 하는데, 누군가 죄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 죄와도 싸워야 하고, 거짓말이 죄인데 죄가 아니라고 누가 말하면 그 죄와도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런 것을 죄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고 다 인정합니다. 그런데 교회들이 점점 동성애를 죄로 접근하지 않고 인권으로 접근해서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래서 싸워나가는 것입니다. 현재 미국 장로교회에서는 합법적으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동성애자에게 목사 안수까지 주고 있습니다. 미 연합감리교회도 이번 총회 때 통과되려다가 근소한 차이로 부결이 되어 얼마 가지 않아 통과될 것으로 봅니다. 미 남침례회는 이 부분을 아주 강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법에서 간음죄의 법이 폐지되고 도박이 합법화되고, 마리화나가 편의점에서 팔리게 되었다고 세상의 종말이 온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원래 그랬습니다. 문제는 그런 일들이 교회 안에서 통과되어 공식적으로 행음이 묵과되고, 구역모임 시간에 기도 대신 화투놀이하고, 청년회 모임에서 마리화나를 피워대는데, 그런 일들이 교회 안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문화가 될 때 그때 종말이 가까이 왔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술 마시는 사람이 교회 오는 것이야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지만, 교회가 술 마시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죄인이 와서 변화 받아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되는 변화의 공동체입니다. 그 사람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교회의 공동체가 적극적으로 돕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사람이 와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옷을 갈아입는 곳입니다. 교회에 술 마시는 사람 와도 안 되나요? 예배 전에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와서 담배 냄새 풍기면서 예배드리면 되나요? 안 되나요? 당연히 됩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올수 있습니다.

술 좋아하고 담배 좋아하던 사람이 교회에 와서 술 냄새, 담배 냄새 풍기면서도 예배를 드릴 때, 옆에 앉은 사람이 이상한 눈으로 그 사람을 쳐다보고 수군거리면 건강한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그런 분을 두 팔 벌려 환영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은혜를 받고 바뀌는 곳입니다. 그래야 능력 있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모르던 사람에게 성령의 불이 들어오고 담뱃불이 나가는 곳이고, 주님이 들어오시자 술 주정이 나가는 곳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변화의 공동체입니다. 죄를 짓는 사람이 교회에 왔는데 10년을 다녀도 편안함을 느낀다면 그 교회는 문제가 있습니다.

죄인이 죄를 가지고 교회야 언제든지 올 수 있지만 죄가 교회 안에 들어와서는 불편함을 느껴야 합니다. 죄를 가지고 교회 안에 들어왔는데 편안함이 느껴진다면 그 교회는 타락한 교회입니다. 교회는 죄를 가진 사람이 편하게 교회를 왔다가 가지고 있는 죄가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그 죄의 짐을 마침내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의롭게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교회 밖에 있는 죄와 싸우기 전에, 교회 안에 들어온 죄와 싸워서 먼저 이겨야 합니다. 교회 밖에 사람들이야 몰라서 죄를 짓지만, 교회 안에 들어온 죄는 반드시 이기고 벗어나고 몰아 내야 합니다. 그게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 빠진 버가모교회에게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계 2:16)

버가모교회의 문제를 다시 보세요. 얼마나 어이가 없습니까? 외부의 공격에는 생명을 걸고 교회를 지켜놓고, 내부 문제로 다 허물어지게 만든 교회였습니다. 교회가 밖의 사자의 공격에 이겨내었다고 방심하면, 교회 안의 작은 여우에게 쑥대밭이 됩니다. 사람은 바위 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집니다. 바윗돌 피했다고 방심하다가 작은 돌부리에 넘어져 이빨이 깨지고 이마가 깨집니다. 로마의 공격에서 이겨내었다고, 교회 안에는 문제없다고 방심하면 안 됩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많은 분들이 시험에 넘어지는 것을 보았는데 큰 시험에 무너지는 사람을 잘 못 봤습니다. 회사가 부도가 낫다고 신앙을 떠나거나, 몸에 암이 생겼다고 믿음을 떠나는 경우를 못 봤습니다. 그런데 큰 시험은 잘 이겨내는데 작은 시험에는 너무 쉽게 넘어집니다. 그래서 큰 시험보다 작은 시험이 더 무섭습니다.

미국에서 목회할 때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40일 금식하신 여자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제가 먹고 하라고 해도 끝까지 40일 금식을 마치는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금식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 성도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는 환상을 보여주셨다면서 그렇게 40일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한 2년 후에 주보에 남편 이름이 빠졌다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저는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그분들 나쁜 분들이 아닙니다. 좋은 분들입니다. 제가 그분들을 보면서 너무 안타까웠던 것은 40일 금식의 큰 바위는 이겨내었는데, 주보에 이름이 빠진 작은 돌멩이에 넘어져 교회를 떠나고 시험에 빠진 것입니다. 사람은 바위에 넘어지지 않고 돌멩이에 넘어지는 것을 늘 기억하셔야 합니다.

또 한 분은 연세가 꽤 있으신 권사님인데 딸이 넷인가, 다섯이 있는데 모두 목회자 사모님이 되었습니다. 식당을 하시다가 식당이 완전히 망했는데도 그 모진 시련을 믿음으로 다 이겨내고, 시험 중에 물질의 시험이 제일 쉬운 시험이라고 하면서 장군처럼 일어났습니다. 당시에 미국 교회를 빌려 썼던 상황에서 미국 교회에 김치 냄새나면 바로 지적받고 안 좋은 소리 들어야 하니까, 전교인이 늘 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에 여 집사님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도너스는 더 이상 못 먹겠다고 하시면서 냄새가 덜 나는 백김치를 하얀 쌀밥과 함께 해왔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그 권사님은 시험에 들어서 교회를 떠났습니다. 딸 다섯을 다 목회자 사모로 키우고, 사업이 망해도 분연히 믿음으로 일어났던 그 권사님이 백김치 한 포기에 시험이 들어 교회를 떠나버린 겁니다.

바위를 조심할 게 아니라 돌멩이를 조심해야 합니다. 버가모교회가 밖으로 로마의 무서운 핍박에도 목숨을 걸고 교회를 지켜 내어놓고도, 안으로 일어나는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해서 예수님의 심판의 칼 아래 놓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 조심하고 무서워해야 하는 것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습니다. 핍박보다 무서운 것이 내 안에 있는 교만이고, 환란보다 무서운 것이 내 안에 있는 음란이고, 핵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내 마음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마음입니다.

밖으로는 세상에 둘도 없는 거룩한 성도요, 집사요, 교사요, 권사요, 장로요, 목사인데 그 속은 죄로 가득하고, 시험에 들어있고, 교만하고 음란하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버리실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는 둘도 없이 거룩한 가정으로 보이는데, 집에 가서는 집안에 예수 믿는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는 삶을 산다면 그 사람은 밖에서 성공하고 안에서 실패하여 버린 바 될 것입니다.

재작년 일주일 봄방학을 맞이해서 아빠의 취임감사예배에 참석한 후에 미국으로 돌아간 딸이 도착하고는 그 다음날 저희 부부에게 문자 편지를 하나 보냈습니다. 정말 저희 부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저희 부부를 돌아보게 되었고, 이런 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비록 일주일이지만 한국을 다녀온 후에 저는 아빠가 미국에서 설교를 하던 모습과 변함없이 그대로 설교를 하시는 것을 보았어요. 한국에서 일주일 살아보니 재미있는 것도 많고, 할 일도, 먹을 것도 많아서 하나님을 보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어요. 하지만, 저는 우리 가족 모두가 늘 기억했으면 하는 게 있는데 우리가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늘 기억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지금 주님께 의지하고 있는 이유가 단지 우리가 헤어져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길 바래요.

우리는 단지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의지해야 하고 앞으로의 인생길도 모르기 때문에 의지해야 하는 것을 늘 기억하길 바래요. 엄마 아빠도 사역을 하시면서 늘 그 사역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지 개인의 인기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님을 늘 기억하시기를 바래요. 제가 지금 너무 기쁜 것은 엄마 아빠가 여전히 하나님을 위해서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왔다는 것이에요. 하지만 앞으로도 두 분이 외모나 돈이나 인기에 사로잡힌 분이 되지 않기를 바래요. 물론 우리 가족의 믿음이 이런 것들 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잘 알아요. 하지만 제가 그곳에서 일주일을 살아보니 한국이 하나님을 얼마나 쉽게 잊어버리고 살 수 있는 환경인지를 미국에 도착하고 보니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우리 가족 모두가 하나님만 사랑하고 우리에게 주신 많은 복들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임을 잊지 말고 하나님을 더욱더 사랑하기를 바래요”

제가 이 편지를 아내와 앉아서 읽고 주님의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변하지 말라는 주님의 음성.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주의 종의 자세를 잃지 말고, 대형 교회 목사 흉내나 내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고, 늘 주님의 종임을 기억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딸의 편지로 읽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목회의 큰일은 잘 감당한다고 칭찬받는 목사가, 가정은 엉망이 되어 밖의 일은 승리하고 집안일은 실패하는 삶이 아닌 것 같아 정말 감사했습니다. 딸과 아들은 세상에서 엄마, 아빠를 가장 존경한다고 말해줍니다. 십만 명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가 되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딸의 편지로 여러분에게 도전해 봅니다. 여러분의 겉 사람과 속사람은 모두 건강하십니까? 늘 겉사람과 속사람이 함께 강건하여지셔서 밖의 큰 시험도 이기고 안의 시험도 이겨서, 안팎으로 외유내강하는 믿음의 굳건한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최병락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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