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장 1-7절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여러분 이런 경험들이 있으신가요?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았는데, 며칠 후 병원에서 정밀조사를 해야 할 곳이 있다며 다시 병원으로 내원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며칠이라는 시간은 얼마나 길고 아득하며 불안하겠습니까? 나이가 들수록 무서운 게 병원에 가서 정기검진을 받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기검진을 한 해, 두 해 미루다 보면 나중에는 검사받기가 두려워집니다. 병원을 가는 게 무서워지고 피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정기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결국에는 건강을 하루라도 더 빨리 챙기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교회는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에서 제일 오래된 교회입니다. 일곱 교회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맏형인 에베소교회의 건강을 검진해보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청진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지금부터 예수님께서 발견하신 건강검진 결과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상태를 설명드리자면, 아직은 중병에 걸린 것은 아닙니다. 소견서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대체로 건강한 편이지만 몸의 이상 증후가 있으니 전문가의 치료를 요함.”

에베소교회는 예수님께 칭찬도 받고 책망도 받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칭찬이 책망보다 조금 더 많은, 조금은 양호한 교회입니다. 우선 칭찬받은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칭찬은, 인내하며 수고하는 성도들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이것을 요한계시록 2장 2절은 본문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에베소교회는 맏형으로 많은 수고를 했던 교회입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실라와 함께 그곳에 도착하여 개척을 하고, 3차 전도여행 시에는 2년 3개월간이나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심혈을 기울인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중심으로 주변의 다른 교회들을 개척하고, 또는 지도자를 훈련하고 개척자로 내보내며 주변의 교회의 지도자들을 불러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중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신약에 나오는 교회 중 가장 중요한 핵심 교회입니다. 지형상으로도 그렇고 역할상으로도 가장 중요한 중심이 되는 교회입니다.

중요한 교회일수록 할 일이 많습니다. 위치가 좋은 교회일수록 할 일이 많습니다. 중요한 교회의 성도들은 할 일이 많습니다. 늘 바쁩니다. 성도들이 수고를 많이 합니다. 교회 안의 일도 해야 하고 교회 밖의 일도 해야 하고, 연합회 일도 해야 합니다. 교단의 큰 행사에는 항상 발 벗고 나서야 하고, 헌금해야 하고, 인원이 동원되어야 하고, 부족한 부분은 메꾸며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저 또한 미국에서 16년 동안 목회하며 이런 역할을 했기 때문에 훤히 알고 있습니다.

에베소교회가 능히 이런 일들에 대한 수고를 자원하여 기쁨으로 해주었기 때문에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들이 개척될 수 있었고, 복음이 소아시아 전역으로 퍼져 나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에베소교회가 복음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가 돼 주었기 때문에 오늘날 전 세계로 복음이 퍼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에베소교회의 역할과 중요성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너무도 그 사명을 잘 감당해 주었습니다.

이런 모든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수고를 예수님이 알고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내가 네 행위를 안다”라고 하실 때, 쓰이는 행위의 단어는 원어로 ‘에르가’라는 단어인데, 요한의 서신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로써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사업’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에베소교회를 지칭하며 행위를 안다는 이 말은, 에베소교회가 얼마나 많이 하나님의 선한 사업을 했는지를 예수님이 아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보면 “내가 너희 행위의 수고와 인내를 알고”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참 어울리기 힘든 두 단어가 함께 등장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수고와 인내’라는 단어입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수고와 인내’는 함께 가기 힘든 단어입니다. 누구나 교회에 등록하고 그 교회 성도가 되면 열심히 해보려고 사역을 시작합니다. 교사도 하고, 성가대도 하고, 주방 봉사도 하고, 이런저런 교회 안의 숨은 봉사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수고를 하는 성도는 많지만, 그것을 오래하는 성도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수고가 인내를 만나는 경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한 몇 년 하다가 그 수고에 맞는 보상을 받지 못하고 사람들이 안 알아주고, 또는 이런저런 개인 사정 때문에 내려놓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어려움을 다 이기고 끝까지 인내하면서 수고와 봉사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분들입니다. 수고는 모두 다 하는 것이지만, 잠깐 수고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수고가 인내를 만나서 한번 시작한 사역을 끝까지 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누군들 왕년에 잠깐 안 뜨거워본 사람 있습니까? 모두 충성하고 모두 열심히 하겠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떤 계기가 생기면 내가 이런 대접받으려고 이런 일하는 줄 아냐고 하면서 내려놓습니다.

어느 날 교회 온 첫날 목양실을 찾아와 제 앞에 무릎을 꿇고 “목사님 드디어 제 평생을 바칠 교회를 찾았습니다. 이제 저의 장례식은 목사님이 치러주십시오. 제가 이 교회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라고 말씀하며 헌신을 맹세한 분이 세 분 있었습니다. 모두 육십이 넘은 남자분이었습니다. 정말 화끈한 분들이죠. 그런데, 지금 그분들 모두 교회를 떠나고 없습니다. 조그마한 일에 상처를 받아 떠나버렸습니다. 화끈하고 왔다가 화끈하게 떠나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수고와 인내’라는 단어가 함께 장거리 여행하기에 참 힘든 단어입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이 인내와 수고라는 단어가 늘 함께 손잡고 다니는 그런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여기에 등장하는 ‘수고’라는 단어는 원어로 ‘코폰’이라는 단어인데, 이것은 일하고 피곤한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가 아니라, ‘피 흘릴 정도로 일한 후에 얻는 심각한 고통’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에베소교회가 하나님을 위해서 행한 수고는 피곤한 정도가 아니라 피 흘릴 정도의 수고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수고를 잠시 한 것이 아니라 인내하면서 끝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이 칭찬을 3절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여기서도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했던 것을 안다는 단어가 나옵니다.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뚜렷한 특징은 한번 했다 하면 끝까지 하는 장점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3절을 보다 보면 어떻게 에베소교회가 그렇게 인내를 가지고 수고를 할 수 있었는지 그 비법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비법을 오늘 우리가 다 배워야 합니다. 에베소교인들이 인내의 수고를 할 수 있었던 비법, 과연 무엇일까요?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계 2:3a)

에베소교인들이 누구의 이름을 위해서 견디었다고 합니까?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자기 이름 걸고 봉사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걸고 봉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이름 걸고 하면 자기 이름에 자존심 상하는 일이 생기고, 누가 무시를 하면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내가 당신 같은 사람에게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느냐…” 하면서 싸우던지, 그만두든지 합니다.

그러나 수고와 봉사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나의 한마디가 예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나의 행동 하나가 예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함부로 우리가 수모를 당하고 창피를 당하고, 오해를 받아도,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받는 수모와 수고이기 때문에 참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이름을 위해서 봉사를 한 사람은 몇 년 뒤에 내 이름이 교회 안에 유명해지지 않으면 그만두지만,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서 봉사한 사람은 몇 년이 지나도 내 이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예수님의 영광이 더 높아진다면 그것으로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누구 때문에, 누구의 이름을 위해, 누구의 자존심을 높이기 위해 그 섬김을 하고 있습니까? 에베소 교회는 이런 장점이 있었던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적어도 몸이 피가 흐를 정도로 수고하면서도, 그것을 잠시 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했고, 그러면서도 자기의 이름 석 자 걸고 하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을 걸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였습니다. 우리가 이 부분은 반드시 배워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칭찬은 악한 자와 거짓 사도를 교회 안에 용납하지 않은 것입니다.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계 2:2b)

에베소 지역은 항구도시로써 가장 번화한 도시였습니다. 세상의 문물이 가장 먼저 들어오고 퍼져나가는 곳이었습니다. 당연히 지역 인구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에베소에 있었고,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가 만나고 헤어지는 곳이었고, 잡다한 세상의 모든 철학들이 혼합되고 가르쳐지는 곳이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에베소 지역의 특징을 자연스럽게 담고 있었겠지요. 교회 안에는 바울의 가르침을 받고 세워진 복음적인 크리스천들 외에도 어디서부터 왔는지도 모를 선생 노릇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을 것이고, 그들이 믿는 자신들의 교리를 사람들을 불러놓고 가르치면서 자기의 위치를 견고하게 만들고 있었을 것입니다. 자기의 리더십을 세우기 위해서는 바울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고 은연중에 가르쳐야 했고, 혼자로써는 안 되니 이 사람 저 사람, 귀가 얇은 사람들을 포섭해서 자기의 세력을 넓히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되자, 교회를 흔들어놓기 시작했을 것이고, 바울은 더 이상 발도 못 붙이게 하려는 심상치 않은 시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베소교회를 향한 주님의 칭찬이 무엇입니까? 너희들이 이것에 현혹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영화 에 나온 두 가지 중요한 대사를 에베소 교회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1. 뭣이 중한디…무엇이 더 진리에 가깝고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2. 현혹되지 마소…그들은 거짓의 교리와 거짓 선생의 가르침에 현혹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에베소교회의 분별력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거짓 사도가 가르치면 그것이 거짓된 가르침인 것을 알아차리고 거짓 사도를 발견해 내고 그들을 교회에서 내치는 분별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2년 3개월간 두란노 서원에서 밤낮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 보람이 있는 것이죠. 말씀을 바로 가르치고 진리를 바로 가르치면 교회 안의 가짜는 금방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3년 동안 눈물로 진리의 복음을 가르쳤더니, 에베소교회가 거짓 교사와 가르침을 분별해 내더라는 겁니다. 진짜를 가르치니 가짜를 분별해 내는 것입니다.

특히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에 자기가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환상으로 보고 안 뒤에, 유언처럼 그곳에서 마지막 가르침을 줍니다. 교회 지도자들을 향한 바울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사도행전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행 20:28-31)

에베소교회는 바울이 눈물로 가르치던 그날의 그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3년 동안 눈물로 가르쳤던 진리는 어디 가지 않았습니다. 교회 안에 거짓 가르침이 들어와서 성도를 삼키려 할 때, 그들은 그 진리의 말씀으로 흉악한 이리에게서 예수님이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지켰던 것입니다. 이렇게 에베소교회는 눈물겹도록 멋지게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를 지켜내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이토록 멋진 칭찬거리를 가진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다고 해서 에베소교회의 잘못을 눈 감아 주지는 않으셨습니다. 잘한 것은 잘한 것이고, 잘못한 것은 분명히 잘못했다고 지적하시면서 고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들을 긴장시키는 대목입니다. 예수님은 절대로 교회의 잘한 것으로 잘못한 것을 눈 감아 주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이런 칭찬을 받은 에베소 교회에게 지적하신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첫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 2:4)

왜 예수님께서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문제를 첫사랑에서 찾았을까요? 이렇게 칭찬거리가 많은 교회에게 트집 잡는 것도 아니고 왜 첫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이만큼 수고했으면 잘했다고 하실 수도 있을 텐데 왜 첫사랑을 지적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지금까지 보여드린 행동들은 사랑이 아니고 뭐란 말입니까?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지키느라 수고하고 고생한 뒤에 그들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예수님의 눈에는 교회를 지키느라 수고한 성도들의 공로만 남았고, 주님을 사랑하던 그 마음은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에베소교회 안에 공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한가득인데, 처음 예수님을 만나서 뜨겁게 사랑하고 울던 그 첫사랑이 가득한 사람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냐고 누가 물어보면, 불같이 화를 내면서 “못 들었어? 내가 이 교회 지켰다니까”하는 공로로 사랑을 증명하려는 사람들이 에베소교회 안에 가득했던 것입니다.

예수님 눈에 비친 에베소교회는 모두 그 마음속에 공로만 있고, 직분만 있고, 늘 수고하며 열심히 섬겨오는 그 인내의 충성은 있는데 정작 그 마음속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여러분에게서 사랑을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첫사랑을 잘 간직하고 계시나요? 예전에 뜨겁게 예수님을 사랑하던 그 마음만은 못하다고요? 예전만 못하다면 그 첫사랑을 언제, 무엇 때문에 잃어버리셨나요? 오늘 예수님이 첫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 2:5)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지금도 원하시는 것은 처음 사랑입니다. 사랑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역이 힘든 것도 사역이 많아서가 아니라 따지고 보면 사랑이 식어서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뭘 해보세요. 힘들 게 없습니다. 함께 가는 길은 멀수록 좋고, 함께 하는 일은 오래 할수록 좋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첫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시면서, 동시에 그 첫사랑을 회복하는 방법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5절에 보면 어디서 그 사랑이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그 지점으로 돌아가서 떨어트린 사랑을 찾아서 오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믿음이 급격하게 식어지고, 교회가 소홀해지고, 마음에 분노가 일고, 교회 사랑이 식어지고, 주님께도 서운해진 계기가 된 날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처럼 사랑이 떨어진 그 계기가 된 그날. 다시 그날로 돌아가서 그때 잃어버린 그 열정, 사랑을 거기서부터 찾아서 오라고 합니다.

열심히 믿음이 자라던 그날, 교회의 어떤 집사님이 지나가는 말로 던진 한마디가 마음에 걸려 소화가 되지 않고 그때부터 교회도 싫어지고 성도도 싫어지고 주님을 믿는 믿음도 성장판이 닫혀버리고, 살아온 아까운 수년의 세월이 있다면 다시 그날로 묵상 중에 돌아가서 그때 그분의 말을 내뱉고, 다시 믿음의 고백을 하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첫사랑을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마음이 떨어지기 전날의 마음을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다가 설교하는 설교자의 한마디가 마음에 꽂혀서 분노를 자아내게 하고 그다음 주부터 설교가 단 한 단어도 들리지 않아서, 몇 년째 영적인 영양실조 상태라면, 그것 때문에 교회와 주님도 멀어졌다면 다시 그날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설교를 ‘나 들으라고 한 소리’라는 착각에서 ‘나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다시 해석하고 들어야 합니다. 세상의 누구도 예수님처럼 완벽하게 설교할 수 없고, 나도 매주 설교를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보다 더 많은 실수를 할 수도 있었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그날 마음에 박혔던 그 가시를 다시 그 자리에서 빼내버리고, 그날 오전 교회에 즐겁게 오던 그 첫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첫사랑을 다시 찾아오는 것입니다.

교회가 싸우고 다투는 모습을 보고 믿음이 식어졌다면 그날로 신속히 돌아가서 남들끼리 싸우는데 왜 내 믿음이 식어져버렸는지, 그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다시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는 첫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싸운 사람들은 곧바로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며 지금도 신앙생활 잘하는데, 그것을 구경하던 당신은 지금까지도 상처받고 믿음이 식어진 채로 살아가고 있냐는 말입니다. 당신도 첫사랑을 빨리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오늘도 여러분의 마음에 청진기를 들이대시면서 첫사랑의 온도를 재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첫사랑을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첫사랑은 안녕하십니까? 너무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시느라 정작 사랑은 저만치 멀어지고 식어져 있지는 않습니까? 30년 봉사에 잃은 것은 첫사랑이요, 남은 것은 공로 아닙니까?

주님은 오늘도 갈릴리 호숫가에 찾아와 베드로와 눈을 맞추시면서 물으셨던 그 질문을 여러분에게 묻고 계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 제가 주님을 사랑하나이다.”, “그럼 되었다. 내 양을 부탁한다.”

주님이 일꾼에게 원하시는 것은 기술도, 재능도, 경력도, 공로도 아닌,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 하나입니다. 그 마음만 여러분이 잃지 않는다면, 영원히 지치지 않고 우리를 소생케하는 하나님 나라의 낙원에 있는 생명 실과를 먹여주실 것입니다. 이 설레는 첫사랑을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빼앗기지 않고 간직하며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최병락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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