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5장 22-27절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중략)…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요즘 날씨가 더워지니 제일 불편한 게 ‘마스크’입니다. 이런 때 현장에서 예배하는 게 참 쉽지 않습니다. 찬양하면 얼굴이 후끈거리고 불편합니다. 백신 접종이 속도를 내서 올해는 마스크를 벗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접종을 했어도, 현재 우리에게는 마스크가 필수입니다. 그러나 마스크가 치료제는 아니죠. 잠시 보호해 줄 뿐입니다. 거리 두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임시방편에 불과하지, 본질적인 문제 해결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상황이 수천 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는 거 아세요?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세상 사람은 모두 죽을 병에 걸렸는데 마스크 쓰고 거리 두기만 하면 살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결국 다 이 병으로 죽습니다. 사람들이 고통당하다 죽게 만드는 이 병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죄’입니다. ‘죄’라는 영적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는 겁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2)

로마서 5장 12절에 보니,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된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라고 하는 ‘죽음 바이러스’를 근본적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영원히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과 불행이 죄 때문인 줄 알지 못하고,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고 애를 쓰고 삽니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착하게 살면 될까?

다른 종교를 가져볼까?’ 그러나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죄’라는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만이 사람들을 죄 사함 받게 만드는 유일한 백신이고 최종 치료제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4:12)

오직 예수님만이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알 수 있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출 15:26)

우리는 지금 황량한 수르 광야를 걷고 있는 것처럼 힘겨운 시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뜨거운 광야에서 물 없이 사흘 길을 걷고 있다고 말입니다. 어른들은 좀 참을 수 있다고 해도, 어린아이들도 있지 않았습니까?

상식적으로 척박한 광야에서는 식량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물입니다. 물은 생존, 생명과 직결되어 있죠. 이렇게 갈급하고 절박한 상황에서 마라에 도착했으니 얼마나 기뻐하며 물을 향해 달려갔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발견한 마라의 물은 너무 써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갈증을 채우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죽겠다고 아우성칩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출 15:24)

“도대체 무엇을 마시라는 거냐! 이걸 어떻게 먹으란 말이냐”라는 거예요.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의 모습, 이 시대 사람들의 축소판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결핍은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거리 두기하고, 마스크를 잘 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런 것으로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근본적으로 없앨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근본 원인을 치료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건 오늘 말씀 제목처럼 ‘인생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분이십니다. 고장 난 우리 인생을 치료하고, 깨어진 관계를 치료하고, 무너진 마음을 치료하고, 상한 심령과 병든 영혼을 치료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그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려면 두 가지 기억해야 할 원리가 있습니다.

1. 뜻하지 않은 상황에 낙심 말라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출 15:23)

사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했던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며칠 동안 물이 없어 미칠 지경이었는데 오아시스를 만났어요. 이젠 살았다고 안도했는데 뜻하지 않은 상황이 전개됩니다. 물은 있지만 물을 먹지 못하게 되다니, 이 얼마나 황당한 상황입니까?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내게 필요한 것을 발견했지만 내 결핍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뜻하지 않은 상황들에 낙심하죠. 간절히 기도해서 자녀가 대학에 갔는데, 대학에 가서는 세상 문화에 빠져 속을 썩입니다. 산을 넘었는데 더 큰산이 버티고 서 있습니다. 취업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해서 취업했더니 악덕 고용주를 만나서 힘들어합니다. 결혼을 위해 철야기도 해가면서 결혼했는데, 남편이 ‘남 편’이신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이 문제 해결되면 될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마라에서 물을 발견했지만 먹을 수 없는 큰 상실감을 겪는 게 인생입니다. 뜻밖의 괴로운 현실에 너무 낙심되죠.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는 건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이 있어도 우리 역시 때때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로 하여금 고통과 결핍을 겪게 하실까요? 오늘 본문에 보니, 하나님이 우리를 ‘마라’로 인도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시험하실새” (출 15:25b)

하나님이 실수하셔서 ‘마라’로 이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교육하기 위해 예비한 학교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학생들을 성장시키려는 목적이 있죠.

아이들 키우면서 “배운 것 다 이해했니?” 물어보면 뭐라고 합니까? 다 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험을 보면 다 아는 건데 틀렸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아는데 틀리나요? 아는 게 아니죠. 모르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습니까?” 하면 “아멘” 하죠!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는 안 믿습니다. 그래서 시험은 내 믿음의 현주소를 드러내 줍니다. 물론 시험은 달갑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험은 꼭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결핍과 마라의 쓴 물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분명히 알게 하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환경에 몰두하고 목마름에만 집중하다가 어둠의 빛이 되시고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기적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불과 3일 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홍해를 가르셨죠.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앞에서 뒤에서 이끌어 오셨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길을 만드시고 우리 인생을 승리로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뜻하지 않은 괴로운 상황에 처해도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치료하시고 회복시키십니다. 할렐루야!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와 닮아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낙심합니다. 현실을 보면서! 본문의 백성들처럼 끊임없이 원망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뜻밖의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 25절에서 힌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 (출 15:25a)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은 쓴 물을 단물로 바꿀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25절을 계속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출 15:25)

우리는 이 지점에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할 때 수풀에 뿔이 걸린 양이 준비되어 있었듯이 미리 준비된 한 나무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치료하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쓴 물처럼 괴로운 우리 인생을 단물로 행복하게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이미 나무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나무를 물에 던져 치료하신 하나님은 예수님을 나무 십자가에 던지심으로 우리 인생도 치료하시고 살리셨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 2:24)

그 어떤 사람도 스스로 죄의 문제, 죄의 바이러스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저 거리 두기와 마스크를 쓸 뿐이죠. 그것이 율법의 한계입니다. 의로운 행위로 구원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나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매달리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예수님의 은혜 때문에 죄라는 근본 원인에서 치료되고 죽음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단지 우리 영혼의 죄와 마음의 상처만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육신의 질병, 나를 힘들게 하는 환경의 문제, 상처와 슬픔의 문제도 함께 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치료하시는 분이십니다. 마라의 쓴 물에 던져진 나무로 인해 단물로 치료된 것처럼, 우릴 위해 나무에 달리신 예수님이 우리 인생을 치료하십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는데 골몰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인생을 치료하시는 하나님만이 우리의 살 길, 축복의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뜻밖의 상황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 대신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우리를 죄의 증상에서 치료하신 예수 안에서 승리를 선포하고 자유하십시오!

우리가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려면 다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2. 뜻대로 사는 신앙을 유지하라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출 15:27)

지도에서 보면 ‘엘림’은 ‘마라’에서 10Km 밖에 안 걸리는 거리에 있습니다. 10Km만 더 가면 물 샘이 열둘이 있고, 종려나무가 70그루나 있는 ‘엘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걸 모르고 마라에서 원망만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뜻대로 사는 신앙을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면 하나님은 우리를 ‘엘림’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 미래는 ‘마라’가 끝이 아닙니다. 우리 미래는 마라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엘림’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런 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엘림’은 갑자기 나타난 장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을 위해 이미 예비해 놓으신 장소였습니다.

일부 성도들이 오해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엘림’의 축복은 우리 노력이나 의로운 행위로 얻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뜻대로 행하면 하나님이 이끌어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엘림’에 가기 전 ‘마라’의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한 것입니다.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왜 시험하셨나요? 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신앙을 유지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신앙을 배우게 하려는 것입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출 15:25b)

하나님이 ‘마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신 것은 힘들게 하고 골탕 먹이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시험한 것입니다. “시험하다”의 히브리어는 ‘니싸우’인데, ‘훈련시키다’, ‘경험하게 하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을 훈련하고 경험하게 하려고 했습니까? ‘법도와 율례’ 즉,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훈련’을 한 것입니다. 이 시점에 이 훈련이 왜 중요하겠습니까?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법과 규례 없이 애굽의 문화를 기준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뜻과 하나님 백성으로 사는 훈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오면 한국 생활에 적응하도록 먼저 ‘하나원’이라는 곳에서 훈련합니다. 일전에, 그곳에서 근무했던 신학생이 하는 말이,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오해하는 게 있다고 합니다. 민주주의는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몰랐습니다. 교회에서 양육 훈련을 강조하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양육훈련이라고 하지, 성경공부라고 하지 않습니다. 말씀훈련을 통해, 머리가 커지는 게 목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말씀훈련으로 삶에서 살아내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앎이, 삶이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영적 훈련은 말이나 글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도록, 경험으로 하나님을 배우게 하십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 인생이 바닥을 치게 하고, 광야의 목마름과, 마라의 쓴 물을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의 인생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인지 깨닫게 됩니다.

언젠가 한 성도가 양육훈련이 끝나고 이렇게 소감문을 보내왔습니다. “배운 게 있어서 머릿속은 복잡하고 마음은 불편합니다. 배우며 깨달은 게 있어서 이제부터 내 삶으로 녹아져 나와야 하는데 큰 숙제입니다.” 제가 이렇게 답변을 보냈습니다. “머리는 말씀으로 단순하게, 마음은 평안하게, 삶은 거룩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삼손은 큰 능력을 가졌지만 훈련되지 않아 끝이 비참했죠. 십자가 보혈로 씻음 받고 죄에서 치료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에서 물을 마시고 회복하자 그곳에서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교육하십니다. 현장교육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방식을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출 15:26)

신앙이란 내가 보기에 좋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인생을 치료하시고 축복된 삶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경험한 과거의 성공이 내일 우리에게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거 아세요? 우리의 경험, 우리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가 필요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는 같은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동일한 환경과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백성은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출 15:2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출 15:25)

백성들은 모세를 보았고, 모세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과 상황을 보았고, 모세는 상황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마라의 사건’도 있고 ‘엘림의 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사건과 시간 속에서 우리 인생을 고치시고 살리시고 치유하시는 하나님만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것은 상상 그 이상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시는 분입니다.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시련을 주시는 까닭은 오직 나의 믿음을 자라게 하기 위함이다.”

뜻하지 않는 괴로운 상황들에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신앙을 유지하십시오. 마라의 사건을 기억하고, 엘림의 시간을 기다리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것입니다.

안희묵 목사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신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M. Div.)
미) Liberty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종교교육 석사(M. R. E.)
미) Fuller Theological Seminary 신학석사 및 목회학 박사(Th. M., D. Min.)
이스라엘 텔 레호브 고고학 발굴 탐사단원
한국침례신학대학교 특임교수
재단법인 엘피스 이사장
기독교한국침례회 107차 총회, 총회장(제73대)
(現) (멀티)꿈의교회 대표목사

■저서
『교회, 다시 꿈꾸다』, 『미래, 다시 꿈꾸다』, 『그래도, 다시 시작이다』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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