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7장 45절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우리는 지금 팬데믹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청년으로서 새롭게 시작해야 할 일들만으로도 벅찬 경우가 많은데 팬데믹이라는 상황은 우리를 더욱더 힘들게 합니다. 이처럼 청년으로 살아가기 힘든 이 시기에 어떤 말씀이 위로될까 고민하다가 ‘다윗과 골리앗’이 생각났습니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너무나도 잘 아는 내용일 것입니다. 그래도 간략하게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1)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옵니다. 2) 블레셋 군영에는 골리앗이라는 장수가 있었습니다. 3) 골리앗은 키가 6규빗, 약 2m 50~70cm가 되는 거인입니다. 4) 골리앗은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합니다. 5) 그러면서 자신에게 한 사람을 보내어 서로 싸우자고 말합니다. 6) 골리앗의 모욕적인 말에도 불구하고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가 죽고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7) 그때 때마침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만나러 갔다가 골리앗과 이스라엘이 대치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게 됩니다. 8) 다윗이 현장에서 보자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모욕하고 하나님을 모욕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9) 그래서 다윗은 사울 왕에게 자신이 출전하겠다고 말합니다. 10)그러나 사울 왕은 어린 다윗이 가능하겠느냐며 무시를 합니다. 11) 그런데도 다윗은 사울 왕을 설득하여 출전합니다. 12) 그리고 다윗은 골리앗과 전투를 하게 됩니다. 13) 그때 너무 유명한 다윗의 고백이 나옵니다. 14)“너는(골리앗)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오지만 나는(다윗) 만군의 여호와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가 나간다”라고 말합니다. 15) 그리고 물매로 돌을 던져 골리앗의 이마에 맞춰서 골리앗을 쓰러뜨립니다. 16) 그리고 달려가서 골리앗의 칼을 뽑아 죽입니다.

여기까지가 너무나도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입니다. 오늘 다윗과 골리앗의 말씀을 이야기한 이유가 있습니다. 다윗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이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담대함을 얻고자 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나눴으면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골리앗’입니다.

1. 골리앗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골리앗의 겉모습과 여러 조건을 고려할 때 감히 대적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이성적으로 대안을 내놓기가 너무나도 힘든 대상이 골리앗입니다. 그런데 이런 골리앗의 모습은 우리의 삶 속에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적군으로서 골리앗 장군의 모습이지만 각자의 삶에는 내 힘으로, 내 생각으로, 내 판단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골리앗과 같은 문제와 어려움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살았고, 성실하게 살았고, 정직하게 살았다 할지라도 그와 상관없이 내 삶에서 골리앗과 같은 문제들을 직면할 수 있습니다.

10년 전, 어느 한 청년과 고민 상담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건축 사업을 하시는데 돈이 필요하니깐 자녀의 이름으로 대출을 받은 것입니다. 그 금액은 절대 가볍지 않은 2억이 넘는 금액이었습니다. 이제 20대 중반인 청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금액입니다. 당시 그 청년은 교제도 하고 있었고 결혼도 꿈꿨지만 이 빚은 마음의 짐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아버지께서 그 빚을 갚은 능력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빚을 자녀에게 갚으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는 예수님을 믿는 분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식까지도 이용하는 지극히 세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결코 정상적인 아버지라고 말하기는 힘든 분이었습니다.

이 청년과 상담을 하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세상에는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부여되는 부당함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당함이 ‘나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로 찾아올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골리앗과 마주한 것처럼, 현실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문제들이 우리의 앞에 놓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무엇일까요? 좌절, 낙망, 자기 비애, 자포자기인가요? 아닙니다. 바로 다윗과 같은 모습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 삼상 17:26b)

다윗의 정체성은 군사의 많고 적음이나 무장 상태를 따지는 군사력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라는 생각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군대는 세상적 기준으로 충족되지 못하더라도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가득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승리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할 때는 골리앗과 같은, 감히 대적할 수 없는 문제가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이겨낼 수 있음을 말합니다.

이처럼 다윗과 같은 생각과 믿음을 가진다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혹여 나의 믿음이 부족해서 문제가 더 크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인간적인 마음으로 문제에 더 시선이 갈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럴 때는 처음에는 문제에 집중할지 모르지만, 그다음 대처로 그 문제를 놓고 간절히 하나님을 의지해 보는 것입니다. 감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되기를 기도해 보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청년처럼 내 힘으로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놓고 하나님을 의지해 보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적어도 낙망하고, 좌절하고, 인생을 포기하려는 마음만큼은 들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더라도 끝까지 몸부림칠 수 있는 용기와 담대함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한발 한발 내디딜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쌓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저 멀리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와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경험되는 순간, 나 혼자 외롭게 걸어가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길로 내 삶의 간증이 채워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골리앗 같은 문제가 닥친다고 하더라도 다윗과 같이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과 사울 왕처럼 두려워하고,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당하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외치면서 의지하며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2. 소년 다윗(겉모습, 외적 조건들)

그런데 우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의 상황과 조건과 환경이 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과 가치관은 나의 가능성을 보기보다는 현재 나의 모습으로 단정 지으려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다윗에게도 있었습니다.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데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삼상 17:28)

다윗은 골리앗의 모습을 보고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냐”고 외치는데 이 모습을 본 다윗의 큰형 엘리압은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이 블레셋에 의해 모욕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분노했지만, 큰형 엘리압은 이러한 다윗을 향해 “네 교만과 네 마음이 완악함을 아노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엘리압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다윗의 어린 나이만을 보고 그 나이에 합당치 않은 말과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이 어린 다윗이 무엇을 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말은 “전쟁 경험도 없는 네가 뭘 안다고 함부로 떠드느냐?”라는 말과 같습니다. 다윗이 어리다고 무시하는 것은 엘리압 뿐만이 아닙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삼상 17:33)

사울 왕은 골리앗을 보고 분노하는 다윗의 소식을 듣고 다윗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저 블레셋 사람 때문에 우리가 기가 죽어서는 안 됩니다. 왕의 종인 제가 나가서 그와 싸우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다윗의 어린 겉모습만을 보고 33절에 보면 “너는 소년이기 때문에 싸울 수 없다”라고 판단하며 말합니다.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삼상 17:42)

골리앗도 다윗의 어린 모습만을 보고 업신여기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 하더라도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나의 모습이 볼품없고 가능성이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냉정하게 말합니다. “너는 안돼.”, “너는 불가능해.”, “네가 뭘 안다고 그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존감을 낮추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조건만을 보고 쉽게 판단해 버립니다.

어쩌면 적군인 골리앗도 아닌 엘리압과 같이 친형처럼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더욱 상처되는 말을 들을지도 모릅니다. 나를 잘 안다는 사람이 나의 굳건한 믿음을 보고 오히려 “건방지고 고집 센 녀석”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릅니다. 또한 다윗과 같은 편이라 말할 수 있는 사울 왕 조차도 다윗을 ‘어린 소년이 어떻게 골리앗과 싸울 수 있겠느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 상황 속에서 현재 나의 볼품없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을 의식해야 합니다. 45절의 다윗의 고백처럼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라는 고백을 끝까지 붙잡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준비할 것이 있습니다.

3. 다윗의 막대기, 물매와 돌

바로 다윗이 전쟁터에 가지고 나아갔던 막대기, 물매와 돌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으로부터 “소년이 어떻게 골리앗과 싸울 수 있겠느냐?”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자신은 양을 지킬 때 사자나 곰과도 싸워봤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사울 왕은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힙니다(38절). 다윗은 사울 왕의 군복을 입고 칼을 차고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아 입고 가지 못하겠다고 사울 왕에게 말합니다(40절).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다윗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막대기, 물매와 돌’이라는 것입니다. 사울 왕 입장에서는 그래도 골리앗과 싸우겠다는 다윗이 기특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안전하라고 친히 자신의 갑옷과 칼을 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것을 거절합니다. 사울 왕의 갑옷과 검이 얼마나 좋은 것이겠습니까? 사울 왕은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울 왕의 무구(武具)와 갑옷은 이스라엘에서 최고로 좋은 것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공해야 한다, 잘 살아야 한다며 많은 대안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취업과 진로를 위해서도 성공하기 위해서는 스펙을 잘 준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나를 홍보하고 나를 과시하기 위한 스펙들을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기준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세상적으로 화려한 무구(武具)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다윗이 사울 왕의 갑옷과 검을 차고 골리앗과 싸웠다면 승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최고의 것이 오히려 다윗의 행동을 불편하게 하고 다윗의 싸움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막대기, 물매와 돌’을 가지고 나아갔고 결국 물매로 돌을 던져 골리앗의 이마에 맞추어 쓰러트립니다. 그리고 골리앗의 칼로 찌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윗의 막대기, 물매와 돌이 어떤 의미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다윗의 막대기, 물매와 돌은 양을 지키기 위한 수단입니다. 이 당시 다윗은 전쟁하는 전사가 아닙니다. 어린 소년 다윗의 의무는 양을 돌보고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막대기, 물매와 돌입니다. 다윗은 남들이 보기에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양 돌보는 일이라 할지라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사자와 곰과 같이 무서운 동물이 와서 양을 잡아가면 쫓아가서 구해 오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했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감당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늘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표현할 때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즉 다윗은 매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계신 하나님과 늘 동행했다는 것입니다. 수도 없이 물매로 돌을 던졌을 것입니다. 저는 다윗이 처음부터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사자와 곰과 싸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수도 없이 던진 돌들이 쌓여 결국 강한 상대가 나타나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함께라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철저하게 ‘살아계신 하나님’이 체험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처럼 골리앗이라는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적군을 만나도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며 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에게 맡겨진 일이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것을 아시고 그 부분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성품과 인격을 갈고닦고 성실과 정직을 위해 나아가는 청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다윗과 같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작은 일을 감당하면서도 체험하는 청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삶의 경험들이 쌓인다면 결국 우리는 다윗과 같이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는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인생에 골리앗과 같은 이성적으로, 상식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닥칠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이 없다면 다행이지만 그런 문제가 꼭 한번쯤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취해야 할 첫 번째 행동은 다윗과 같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임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굳건한 믿음을 가진 나 자신이라 하더라도 현재의 모습이 부족하고 볼품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자존감이 낮아지고 나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일들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소년 다윗의 모습을 기억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다윗은 어린 모습 때문에 적군인 골리앗으로부터도 업신여김을 받았으며, 같은 편인 사울 왕으로부터 싸울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을 받았습니다. 또한 친형으로부터 건방지고 고집 센 녀석이라고 오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미숙한 현재 모습을 보기보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더욱 의지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현재의 모습에 좌절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앞으로 나를 통해 이루어가실 놀라운 일들을 기대하길 소망합니다. 그렇게 될 때 골리앗과 같은 문제들에서도 반드시 승리하는 역사가 우리의 삶 속에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나의 삶에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갈 때 나의 노력이라는 물매와 돌에 하나님의 역사가 더해져서 골리앗의 이마를 맞추고 쓰러뜨리는 역사가 우리의 삶 속에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게 어떤 문제와 상황 속에서도 늘 승리하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현근 목사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 A.) 졸업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졸업
서울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구약학(Th. M.) 과정 중
(前) 중앙성결교회 고등부
(現) 대광성결교회 청년부 담당 목사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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