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장 15–7절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오늘은 베드로의 삶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것입니다. 베드로의 삶은 다섯 가지의 시기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물론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면,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시몬과 예수님을 만난 후의 베드로로 나눌 수 있겠지만, 이 시간에는 예수님을 만난 후 베드로의 시기만을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심층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베드로의 신앙 황금기 – 베드로의 신앙 위기 – 베드로의 신앙 위기의 결과 – 베드로의 신앙에 대한 예수님의 해결책 – 베드로의 신앙회복’이라고 나눌 수 있겠습니다.

우선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서 제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첫 번째 시기입니다. 이 시기를 저는 ‘베드로의 신앙 황금기’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예수님의 부르심에 베드로는 엄청난 추진력으로 바로 ‘아멘’하고 순종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
라 하시니” (막 1:17)

예수님께서 1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러자 베드로의 응답은 18절에 나타납니다. “곧”이라고 쓰여있습니다. 오랜 시간 끝에, 혹은 주변 정리를 한 후가 아니라, “곧”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서기로 결단하였습니다.

아마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이런 경험을 하신 분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게 오래전이나 최근이든, 성경의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 화살처럼 날아와 엄청난 충격을 주던 일말입니다. 말씀에 감동이, 신뢰가, 감격이 있어서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나를 지으셨구나!”라는 고백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날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구나!” 하는 사실이 마음 깊이 느껴지면서 죄를 토하고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셨던 경험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가 이렇게 신앙 안에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예배하며 교제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 계신 분들은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따라나서기로 결단하신 분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하고 따라나선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 열심히 사역합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막 6:7)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러자 12절에는 제자들이 나가서 예수님이 하신 일을 따라 행하였습니다. 회개하라 전파하였고, 귀신을 쫓기도 하였고, 병자를 고치기도 하였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의 모습과 스스로의 변화에 놀랐을 것입니다. ‘그저 그물로 고기를 잡던 무식한 어부인 내가 예수님을 따라나서며 놀라운 기적과 예수님의 은혜로운 말씀을 경험하며 이토록 변화되고, 달라질 수 있는가!’ 이런 감격 속에서 힘이 솟고 즐겁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자신의 영혼 가득 퍼져있는 상태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나의 주로 고백하고, 어떤 변화가 있으셨나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기도 시간에 무릎을 꿇고 기도할때, 주님이 주신 은혜를 느끼셨나요? 목사님의 설교시간이 얼마나 꿀 송이처럼 달게 느껴지셨나요? 누군가 몸을 툭 건드리기만 해도, 감사함으로 눈물이 터져 나오고,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이 전심으로 느껴지는 진한 사랑을 경험하셨지 않았나요? 집에서 조용히 읽는 성경의 구절들이 알알이 내 마음에 박혀 꽃을 피우고,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예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았나요? 오늘 보고 있는 베드로에게도 그런 감격과 신앙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함과 동시에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6)

1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라고 물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부른다고 하며, 자신의 신앙을 예수님께 호기롭게 고백합니다.

‘그리스도’라는 뜻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예수님을 나의 왕이자,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잇는 제사장이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베드로의 이 시기가 바로 신앙의 초기였습니다. 베드로의 신앙이 예수님께 가장 칭찬을 받았을 때이며, 신앙의 고백과 행동이 일치를 이루는 시기입니다.

이런 베드로에게 두 번째 위기의 시기가 찾아옵니다. 이때를 저는 ‘베드로의 위기’라고 부르려고 합니다. 베드로의 신앙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사탄의 유혹을 받게 됩니다. 베드로의 신앙에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징조가 누가복음 9장에 나타납니다.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눅 9:46)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크냐’하는 변론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이 ‘누가 크냐’라는 변론은 가장 큰 권위를 갖는 사람이 누구인지, 가장 우선적인 대접을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가리는 시시비비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곧 이스라엘을 혁명적으로 이끄시고, 왕이 되시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판도는 완전히 변하여 자신들이 세상의 왕 되시는 예수님을 실질적으로 모시는 주요한 인물이 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때 누가 그를 가장 가까이 보필하고, 큰 권위를 누릴지를 중요하게 토론하였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함께, 열심히 자신을 피력하며 자신이 No.1에 얼마나 적합한 인물인지를 주장했습니다. 그동안의 신앙이 어느 순간 베드로의 성취가 되고, 업적이 되고, 의가 되는 교만이 찾아온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막 14:27)

두 번째 징조는 마가복음 14장에서 보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의에 대한 자신감을, 제자들뿐만 아니라 예수님께도 드러내게 됩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수난을 받게 될 것을 예고하자 베드로가 29절에 이렇게 자신합니다.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렇지않음을 경고합니다.

이때 베드로는 한 번 더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수님의 말씀이었으니까 말입니다. 내 마음에 어떤 것들이 들어있는지, 또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고민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다시 한번 3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가 힘 있게 말하되” 힘 있게 말한다는 건, 확신을 가지고, 분명하게, 맹세하듯 말하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일말의 고민과 생각도 없이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경고와 말씀에 날카롭게 깨어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하고 경거망동하며 자신의 신앙을 한껏 높게 생각했던 것이 베드로의 두 번째 위기 징조입니다.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막 14:32)

이제 이러한 위기는 행동으로도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늘 생각과 육신은 함께 가기 마련입니다. 육신 따로, 마음 따로이지 않습니다. 32절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자신의 신앙을 맹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극명하게 대비되어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앞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제자들에게 기도하라 이르시고, 깨어있으라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37절을 보시면 그럼에도 자고 있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하시고는 다시금 기도하러 올라가십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결국 다시 잠에 빠지고, 예수님은 내려오셔서 베드로의 잠든 모습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의 신앙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치 못할 정도로 육신이 약해지고 신앙생활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이렇게 베드로와 같이 우리 또한 신앙의 황금기를 거쳐서 신앙의 위기를 겪게 됩니다. 마음에 교만이 싹트고, 자신의 신앙을 자신하며, 더 이상 영혼을 들여다보지 않는 상태, 예전의 뜨거웠던 신앙을 계속 재생시키며, 과거의 감격에만 머물러 있는 상태. 그리하여 귀는 자꾸만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있지 못하는 상태. 기도도, 말씀도, 교제도 어두워진 상태 말입니다. 그러한 결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납니다. 신앙과 자신의 욕망이 결정적으로 충돌하는 때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십시오.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있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마 26:69)

그 앞 단락, 56절에 예수님이 잡히시고, 모든 제자들은 도망을 갔다고 나옵니다. 도망은 갔으나 예수님이 궁금해진 베드로는 몰래 예수님이 재판을 받는 곳으로 들어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베드로를 알아봅니다. 목격자는 자꾸만 자신이 예수와 함께 있던 제자라고 몰아붙입니다. 회피하고자 했지만, 드디어 뭔가를 택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베드로는 결국 선택합니다. 74절입니다.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예수님을 저주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을 모르노라 맹세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시기, 곧 위기를 맞은 베드로의 결말입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 찬란하고 숭고했던 신앙의 시기가 지나고, 어느새 퇴색되어 버렸습니다. 더 이상 떨리지 않고 감격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 군중 속에 숨어있고 싶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궁금하니 계속 교회에는 나옵니다. 그렇지만 숨죽여 지켜볼 뿐입니다. 그저 관찰자가 되어 바라보고, 듣고, 거기 있을 뿐입니다. 만약 나의 욕구와 생각에 상충되는 상황이 되면 결국 예수님을 버립니다. 신앙을 버립니다. 사소한 일이든, 중요한 일이든 상황의 전반에 이러한 선택들이 이어집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마 26:75)

여기 현재 베드로와 같은 마음인 분들이 계십니까? 베드로와 같이 마음에 죄책감이 가득하여, 그 안타까움 속에서 아파하는 분들 말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만큼 답을 찾지 못하고 계시는 분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행하신 해결책에 주목하십시오. 이 시기를 ‘베드로의 신앙에 대한 예수님의 해결책’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회복시키고자 하신 방법은 바로 질문이었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5절을 보면 예수님을 저주하고 도망갔던 베드로를 향해, 예수님은 과거의 일은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현재. 지금. 베드로에게 가장 필요한 질문을 물으셨습니다. 바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입니다.

그 후 세 번의 같은 질문을 통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끊임없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여 무너졌습니다. 베드로의 위기는 자신의 현재 상태를 날카롭고, 확실하게 들여다보지 못하였기에 생긴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금 “니 마음의 중심을 다시 세워라. 사랑이다. 사랑. 나를 사랑하는 그 마음을 세워야 한다”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신앙을 회복하는 일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사역을 시작하느냐, 다시 의지로 일어나 신앙생활을 정돈하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질문대로, 자신의 마음 정중앙에 이 질문을 날카롭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이 질문에 분명한 답을 얻기 위해 우리는 절대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 질문에 베드로와 같이 대답할 수 있을 때까지 전심으로 매달려야 합니다. 베드로는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17절에 이렇게 최종적인 대답을 합니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주님이 모든 것을 아시오매”라는 구절은 ‘예수님이 전지하심으로 저를 꿰뚫어 보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자신의 마음은 진심이며, 정직하게 주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대답을 합니다. 그 사랑에 투명한 물을 들여다보듯 확신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사로잡혀, 자신의 한 일에 대해 계속자책하고, 슬퍼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자신의 중심에 이 질문을 해보십시
오. 그리고 이 질문에 베드로와 같은 대답을 최종적으로 하게 될 때, 여러분의 신앙은 다시금 처음보다 더 찬란하게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예수님의 해결책은 그보다 훨씬 더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 질문을 하시기 훨씬 전부터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정녕 죽을지언정, 예수님을 배신하진 않겠다”라고 대답할 때의 상황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훨씬 더 자세하게 그때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때의 베드로를 들여다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하라” (눅 22:31-32)

여러분의 신앙이 희미해져, 조금씩 방향을 잃어갔을 때부터 예수님은 이미 먼저 아시고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밀을 까기 위해 소쿠리를 마구 흔들듯, 사탄도 우리를 마구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미 그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한없이 기도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가 그 은혜로 다시금 회복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탄식하며, 아파하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의 신앙에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 모두가 훨씬 전부터 예수님의 기도로써 비롯된 은혜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베드로는 변화됩니다. 아마도 이 변화의 모습은 우리의 미래의 모습일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야기가 있기에 우리는 희망을 갖습니다. “그래. 나 또한 결국 베드로처럼 변화될 수 있을 거야. 나 또한 은혜를 사모하다 보면, 베드로의 신앙을 갖게 될 거야”라고 염원합니다. 베드로의 변화된 모습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벧전 1:1)

베드로는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훗날 평생을 예수님께 바칩니다. 그리곤 예수님을 저주하고 도망갔던 그가 훗날 자신의 정체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신앙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한없이 나약하게 무너지지만 예수님의 기도와 질문으로 죽어있던 우리가 나사로같이 소생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베드로전서에 나오는 베드로의 고백을 읽으며 설교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벧전 1:3-5)

베드로의 최종 고백을 우리 또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겐 창세전부터 예비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기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희망과 믿음으로 변화와 회복을 사모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강주혜 목사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졸업
숭실대학교 기독대학원 상담학과(Th. M.) 졸업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종교교육학과(M. Ed.) 졸업
(現) 안산동산고등학교 교목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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