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장 5-6절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1921년부터 1949년까지 ‘중국내지선교회’ 소속으로 공산당에게 추방당할 때까지 중국에서 의료선교사로 사역했던 보언 리즈(D. Vaughan Lees)가 쓴 『중국의 예수가족 공동체 교회이야기』에는 1920년대에 중국지하교회의 지도자였던 ‘칭 틴옌’이라는 분의 사연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칭 틴옌은 뿌리 깊은 유교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부모님의 강요에 따라 결혼을 했기 때문에 부인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부인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결국 그는 부인을 친정집으로 보내버렸습니다. 그러던 칭 틴옌이 선교사가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면서 예수님을 만났는데 그때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에베소서 5장 25절 말씀을 주십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조건 없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칭 틴옌의 마음에 이 말씀을 주시자, 그는 갈등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기로 다짐을 합니다. 아내의 고향집으로 가서 진심으로 아내에게 용서를 빌고 그녀를 데려오는데 ‘전족’으로 발이 작았던 아내는 먼 길을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칭 틴옌이 아내를 업고 자기 집까지 20km를 걸어갑니다. 그렇게 자기 집의 문턱을 넘는 순간 칭 틴옌과 아내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게 됩니다. 그 이후로 칭 틴옌은 1920년대 중국의 핍박받는 가정교회의 위대한 사역자가 되었고, 아내도 남편을 돕는 신실한 믿음의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의 주장, 자신의 뜻대로만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잘못된 생각은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봉사하고, 주의 일을 하는 것만이 믿음생활이며 주님과 동행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나와 동행한다’는 것은 우리 삶의 현장에서 내 뜻을 내려놓고 나를 부인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나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서 “너는 나와 동행하며 살았다”는 칭찬을 받고 싶을 것입니다. 이것은 위대한 인물, 특별한 계시, 엄청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만 주시는 평가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는 평범한 일상, 하찮은 일, 개인적인 부분에서 하나님께 묻고 순종하는 그 길을 하나님께서는 “네가 나와 동행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동행한다’는 것은 함께 길을 가는 것입니다.

평범함 속에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을 성경에서는 믿음의 사람으로 평가합니다. 의외로 성경에 에녹에 대한 글들이 많지 않습니다. 에녹에 대한 말씀을 찾아보면 에녹은 모세와 같은 특별한 사명을 받은 것도, 여호수아와 같이 대단한 일을 한 사람도 아닙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히 11:5)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에녹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하늘나라로 옮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녹을 통해 말씀하시는 믿음의 기준은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과 동행하는 에녹과 같은 믿음은 평범함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그 인생을 기쁘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창세기 5장 22절에 보면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다고 말씀합니다. 에녹에 대한 창세기 5장 말씀은 짧지만 ‘동행’이라는 말을 2번이나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녹의 사명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습니다. 에녹은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엄청난 사건도 없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자식 낳고, 고민하며, 인간이 겪는 평범한 삶을 다 겪었던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보잘 것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녹의 삶을 “너는 나와 동행했다. 너는 나를 기쁘게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 나타나는 족보를 보면 ‘태어나고 살다가 죽는 것’의 반복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선진들의 족보를 보면 위대한 일을 했든지 평범한 삶을 살든지 간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평생 하나님 이름을 부르며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간 것’입니다. 그들이 살아온 삶에서 업적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을 부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내 삶을 보고 계시다는 것을 믿으며 예수님의 뜻대로 포기하지 않고 견디며 사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맥스 루케이도(Max Lucado)의 『예수님처럼』이라는 책에 보면 ‘프랭크 로바크’라는 분의 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일기를 보면 ‘1930년 1월 26일 나는 매순간 하나님을 느끼고 있다. 지금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는 이 손가락도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기를 바란다.’, ‘1930년 5월 14일 – 매 순간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을 생각하기를 주제로 삼고 있고,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한다. 점점 그렇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 말이 중요합니다. ‘물론 아직은 한나절도 못 간다. 그러나 언젠가는 온종일을 주님과 동행하는 날이 있겠지.’ 그로부터 17일 후 그의 일기장에는 놀라운 고백이 나타나게 됩니다. ‘1930년 6월 1일 – 오 하나님, 하나님은 더 이상 저에게 낯선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은 온전히 저와 동행하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맥스 루케이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실제 많은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 간증, 체험, 은혜가 없는 종교생활을 한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단지 복을 비는 대상이며, 십자가는 능력이 아니라 종교적인 상징일 뿐이다. 그러나 믿음은 프랭크 로바크처럼 평범한 삶에서 하나님께 뜻을 묻고,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에녹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는 평범한 삶 속에서 힘들고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너를 바라보면 나는 기쁘다.” 그리고 그 주님 때문에 에녹도 기쁨의 충만함을 얻습니다. 이러한 기쁨은 세상 사람들은 모릅니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평범함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험하며 믿음으로 사는 것, 이것이 기쁨입니다. 또한 히브리서 11장 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까? 히브리서 11장 6절 말씀은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계십니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계십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상을 주십니다. 회복시켜주시고, 함께하여 주십니다. 이러한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나에게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삶의 평범함 속에 이러한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인생이 다하는 날 ‘너는 나와 동행하였다’라는 평가를 하나님께니다. 세상적인 조건이나 업적과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평가는 세상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삶 속에서 하나님은 “네가 무엇을 이루었느냐?”가 아니라 “네가 어떻게 살았느냐?”를 물어보시기 때문입니다.

1886년 8월 10일, 캐나다 라이스 호숫가에서 모든 주민들의 존경을 받던 66세의 조셉 스크리븐(Joseph M. Scriven)의 시체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40년 동안 라이스호수 주변에 살면서 자기의 집도 없이 친구들의 집을 이리저리 다니며 살아왔습니다. 스크리븐은 원래 아일랜드 출신으로 부유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명문 트리니티대학교를 졸업하고, 약혼까지 한 장래가 촉망받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결혼식 바로 전날 약혼녀가 말에서 떨어져 물에 빠져 죽습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한 스크리븐은 과거를 잊기 위해 멀리 캐나다로 2년간 여행을 떠났다가 10년이라는 세월을 객지에서 보냅니다.

새 출발을 하기로 한 그는 자신이 가정교사로 일하던 집안의 엘리자 로쉐와 약혼하는데 그녀도 결혼을 며칠 앞두고 폐렴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때 고향에 계신 홀어머니가 위독하다는 편지를 받습니다. 그 때 그는 처음으로 진실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 어머니의 친구가 되어 주세요. 이제는 저도 하나님의 뜻대로 외로운 사람의 친구가 되어 살겠습니다. 주님과 평생 동행하며 살겠습니다.’ 스크리븐이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를 드렸을 때 그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스크리븐이 어머니에게 위로의 편지와 함께 한편의 시를 쓰는데 그 시가 바로 우리가 지금 부르는 찬송가에 있습니다.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그 때부터 스크리븐은 자기의 삶을 주님 앞에 맡기고 오직 이 땅에 우리의 친구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자기의 옷을 벗어주고, 고아들을 돌보러 찾아다녔습니다. 스크리븐에게서 진실된 마음이 전해지고, 그의 삶에서 기쁨이 흘러넘치자 사람들은 그에게 호프 항의 성자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어느 날, 마을 주민 한 사람이 몸이 아픈 스크리븐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침대 옆에서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가 적힌 시에 대해 묻자 스크리븐은 “주님과 내가 함께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스크리븐이 세상을 떠나자 라이스 호수의 주민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조셉 스크리븐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스크리븐은 실패한 인생입니까? 우리가 그와 같은 인생이 기구한 삶이고 불행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잠시 잠깐 나그네와 같이 살다 가는 이 땅에서 그는 인생의 마지막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삶을 살았습니다. 야고보서 4장 8절에도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형편이든지 여러분의 평범함과 여러 가지 문제 앞에 기죽거나 소심하지 마십시오. 평범한 삶, 지금 내가 살아가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삶을 통해서도 믿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평범한 삶 속에 축복을 숨겨놓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바로 우리의 평범한 삶 속에 있는 하나님의 축복을 캐내는 삶인 것입 니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날마다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삶, 일상 속에서 작은 일 하나하나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믿음과 일상생활을 분리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생활과 가정생활이 달라서는 안 됩니다. 신앙이 곧 생활이고, 생활이 곧 신앙인 것.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청교도였던 루이스 베일리(Lewis Bayly)가 쓴 책『The Practice of Piety(경건)』은 그리스도인들의 경건과 성숙한 삶을 위한 교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책에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평생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스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입니다.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며, 하루 종일 언행심사를 지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을 다스려야 합니다. 행동을 다스려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 등 모든 것들이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증거가 됩니다. 그것이 삶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경건함으로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곧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남들이 보기에는 보잘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던 에녹이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너는 나와 동행하였다”고 칭찬하시는 이유입니다.

2.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은 죽음과 심판을 늘 생각하며 사는 믿음입니다

창세기 5장 22절을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후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씀을 합니다. 앞 뒤 성경구절을 찾아보면 다른 인물들은 언제 태어났고, 누구의 아들이고, 언제 죽었다고 말씀하는데 에녹에 이르러서는 이상하게도 므두셀라가 태어난 후에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씀이 이전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서 분명히 아들 므두셀라가 태어날 때 에녹의 삶에는 어떤 터닝 포인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정확히 어떤 이유인지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의 아들 므두셀라는 969세로 역사상 가장 오래 산 사람입니다. 원래 므두셀라의 이름 뜻 자체는 ‘창을 던지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고대사회에서 부족끼리 전쟁을 벌일 때에 자신의 부족에서 창을 가장 잘 던지는 사람이 죽으면 전쟁에서 패배한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사람이 죽으면 부족은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은 단순하게 ‘창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라 ‘그가 죽으면 멸망이 온다.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는 속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에 사회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살았습니다. 에녹은 아마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곧 심판하실 것이라는 징조를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아들 므두셀라를 볼 때마다 ‘언젠가는 죽는다, 언젠가는 심판이 찾아온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죽음과 심판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노력하고 발버둥 친다고 해서 예측하거나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생각하고 심판을 생각한 에녹은 죽지 않고 하나님이 데려가시고, 아무 생각 없이 삶에서 쾌락을 즐기던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맛보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죽음과 심판에 대한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언젠가는 반드시 죽음이 찾아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죄와 멸망과 지옥의 심판은 없지만 하나님이 평가하시는 상급의 심판은 있습니다. 우리의 말, 나의 생각과 행동까지도 하나님 앞에 심판 받을 날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에녹은 아들을 볼 때마다 죽음과 심판에 대한 생각을 항상 하였고,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므두셀라의 이름대로 그가 죽자 이 세상에 심판이 찾아왔습니다. 창세기 7장 11절에 노아의 홍수를 통한 하나님의 심판은 노아가 600세 되던 해에 일어났습니다. 노아가 600세 되던 해가 바로 므두셀라가 969세에 죽은 해와 동일합니다. 므두셀라의 이름 뜻대로 그가 죽고 인류의 심판이 찾아온 것입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전 7:2)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죽음과 심판을 마음에 두는 사람입니다. 이 말씀은 늘 죽음을 생각하며 우울하게 사는 염세주의와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수한이 될 때까지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어떤 것이냐를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신앙과 믿음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미 하나님을 만났기에 성도라고 불리며, 예배의 자리로 나아온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젠 내가 진정한 집으로 갈 때 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의 모습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평범한 삶이든, 스크리븐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세계적인 원자력 전문가로 손꼽히는 정근모 박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의 자녀 가운데에는 만성신장염 진단을 받은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은 고작 10살 때 5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습니다. 정근모 박사는 그 아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며 기도하고 자기의 신장 하나를 떼어 아들에게 이식했습니다. 아버지의 기도와 보살핌 덕분에 아들은 36살의 나이로 26년을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이 자녀를 떠나보낸 정근모 박사에게 위로의 말들을 건네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아주 밝은 표정으로 “곧 다시 만날겁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그분이 지은 『나는 위대한 과학자이기보다 신실한 크리스천이고 싶다』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는 아들과의 마지막 이별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진우가 천사처럼 밝은 표정으로 하나님 곁에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래 이제 네 말처럼 천국으로 갔구나. 수술과 혈액투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천국으로 갔구나. 그곳은 매일 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 곳일 테지. 진우가 유언처럼 들려주었던 말을 떠올리며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빠 제가 죽거든 절대로 눈물을 흘리지 마세요.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가는데 무엇이 두려워요. 제가 죽으면 아빠 축복기도를 해주세요, 저는 천국에 입학하러 가요. 죽음을 천국 입학식으로 표현한 내 아들. 그래 너는 하나님의 품에서 지금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거다. 그러나 나는 눈물이 나는 것을 어떻게 하냐. 너의 죽음을 어떻게 축복하며 기도할 수 있겠느냐. 나는 너만한 신앙도 갖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

책의 제일 마지막은 정근모 박사가 자기 아들과의 헤어짐, 그리고 다시 만날 소망을 가지고 이렇게 글을 맺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만약 죽음이 끝이라면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부질없고 비참한 것일까요. 영생의 소망, 이는 그리스도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위대한 선물입니다. 나는 믿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이심을 진우의 생명을 거두어 가신 그분의 섭리와 사랑을 나는 믿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진우의 말처럼 죽음을 축하할 수 있는 아름다운 신앙을 갖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당신은 내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이미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이 어떠하든지 걱정이 없습니다. 우리의 남은 인생은 위대한 사람들처럼 특별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천국으로 갈 때까지 에녹처럼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장창수 목사 대명교회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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