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장 9-20절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난미의 말씀과 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중략)…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요한계시록은 종말에 대한 책일까요? 교회에 대한 책일까요? 우리는 흔히 요한계시록을 종말에 관한 책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의 기록 목적은 장차 되어질 일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장차 되어질 일에 대해서 교회를 준비시키는 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개의 교회를 통해서 교회가 어떻게 하면 책망을 받고, 어떻게 하면 칭찬을 받고, 어떻게 하면 버림을 받고 어떻게 하면 쓰임을 받는지를 다양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만 보내는 편지가 아니라, 전 세계에 있는 모든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이며, 일곱 교회를 계속 살펴보면서 각자의 교회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점검하고 종말의 때에 깨어 있는 교회, 쓰임 받는 교회가 되라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오늘은 그 서론으로 일곱 교회를 살펴보기에 앞서서 9-20절을 통해 교회가 어떤 곳이며 얼마나 영광스러운 곳인지를 살펴보고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계 1:20)

제가 지인들을 만나서 여기저기를 다니다 보면 가끔씩 지인들은 저에게 강남의 어느 건물을 가리키며 이렇게 알려줍니다. “목사님, 저 건물은 주인이 연예인 누구입니다. 목사님 저기 보이는 건물은 주인이 아무개 아무개입니다.” 그러면, 저는 신기하게 쳐다봅니다. 주인이 누구냐는 것을 알고 나면 그 건물은 그냥 건물이 아니라, 그 주인의 권력의 크기만큼 그 건물의 권위는 높아지고 함부로 할 수 없는 건물이 됩니다. 하물며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이십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20절에는 교회가 예수님의 손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곱 교회와 일곱 사자라고 했으니 목사도 포함이 되어있습니다. 교회와 목사는 예수님이 손으로 붙잡고 계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절대로 이길 수도 예수님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손에 교회가 있다는 것이 한없이 든든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교회를 향해서는 굉장히 높은 수준을 요구하고 계신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 살펴볼 일곱 교회를 보면 알겠지만, 일곱 교회 중에 칭찬받은 교회는 두 교회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앞에 교회가 칭찬받을 확률이 7분의 2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우리를 긴장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비가 많으시고 오래 참으시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시는 분이시지만 유난히 교회를 대하실 때는 신중하시고 까다로우시고, 높은 수준을 요구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머리끝까지 화를 내신 장면도, 성전이 성전의 역할을 하지 않고 장사판으로 만들어 버린 것을 보셨을 때 상을 뒤집어엎는 분노를 나타내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교회만큼은 정말 신중하고 꼼꼼하게 다루셨습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우리가 그냥 교회만 다닐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를 얼마나 잘 섬기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게 해야 하는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긴장만 하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손에 쥐고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께 책망을 받을지언정 외부로부터는 안전합니다.

예수님이 책망하시는 일은 있어도, 다른 어떤 세력도 교회를 함부로 할 수 없도록 예수님이 든든히 지켜주시는 권세를 가진 곳이 또한 교회입니다. 이게 교회의 권세이고 특권입니다. 예수님이 야단을 치실망정 음부의 권세가 좌지우지 못하도록 보호하신다는 뜻입니다.

몇 차례 말씀을 드렸지만, 사람이 포기해서 문 닫는 교회는 있어도 예수님이 포기하시는 교회는 없습니다. 일 년에 수천 개의 교회가 문을 닫아도 그중에 예수님이 포기해서, 예수님이 음부의 권세에게 져서 문을 강제로 닫는 교회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미리 포기하고 다 끝났다 생각하고 문을 닫는 교회가 몇천 개가 될지 몰라도, 주님이 포기하는 교회는 세상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영영히 지키시고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예수님이 교회라는 단어와 함께 등장하실 때는 연약한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계시록 1장에도 예수님께서 교회 가운데 거니시는 모습을 보면 완전히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을 가진 하나님의 모습으로 등장하시는 모습입니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계 1:13-16)

예수님이 지금 일곱 교회 사이를 거닐고 계시는 것입니다. 교회를 지키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교회를 지키고 계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교회를 만만하게 보시면 안 됩니다. 교회는 절대로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주인이 예수님입니다. 주인이 예수님인데 그 누가 교회를 넘어지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작은 개척교회라도, 담임목사님과 사모님둘밖에 모이지 않는 교회라고 할지라도 그 교회는 절대로 약하지도 않고 만만하지도 않습니다. 그 교회에도 예수님이 지키고 계십니다. 여전히 그 교회의 머리이시고 통치하고 계십니다. 교회는 약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세상은 강하고 교회는 약해서 역사 속에서 교회가 늘 세상의 말발굽에 짓밟히고 살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교회는 한 번도 약했던 적이 없습니다. 너무나 약하게 보여서 금방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 같고, 기독교 2천 년 역사 동안 교회는 늘 제국의 말발굽에 짓밟히면서 핍박을 받았지만, 그 화려하던 제국의 이들은 다 빠져버리고 사라졌지만, 교회는 지금도 살아서 세상의 절반을 전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땅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인 에클레시아 교회는 이처럼 강력한 것입니다.

‘강함이 오래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가는 것이 강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영원하시니 교회도 영원히 그분의 손에서 보호하심을 받을 것입니다.

두 번째,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며 신부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보며 자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메섹에 있는 교회를 핍박하러 가던 사울을 불러 세우시고는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하신 말씀이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다메섹에 있는 나의 교회를 핍박하느냐”라고 하지 않으시고,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메섹의 교회를 예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라는 정의를 이해하려면 교회를 공부해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은 지금 승천하셔서 하늘에 계시고, 재림 때까지는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의 집을 만들고 계신다고 요한복음 14장에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천국에 계신데, 어떻게 교회가 예수님이 될 수 있을까요? 이것을 이해하려면,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가장 쉽게 설명한 곳이 에베소서 5장입니다. 예수님과 교회를 ‘신랑과 신부’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 5:31-32)

남자와 여자가 남남으로 살다가 부부가 될 때는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랑, 교회는 신부가 되어, 둘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교회를 ‘에클레시아’라고 말하며 여성명사를 씁니다. 이 뜻은 ‘밖으로 불러내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창세기 2장 23절에 동일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잠들었을 때 아담에게서 하와를 불러내었습니다. 이때 사용한 것이 ‘에클레시아’와 같은 ‘She was taken out of man’입니다. 따라서 교회라는 ‘에클레시아’와 하와를 나타내는 ‘불러낸 여자’는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윌리엄 젠킨(William Jenkyn)이라는 청교도 신학자는 교회를 “아담이 잠들었을 때 그의 허리춤에서 나온 것이 하와이듯,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사흘 동안 죽음의 잠을 주무시는 동안에 그의 허리춤에서 나온 신부다”라고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잠들었을 때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하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잠이 깨었을 때 아담이 하와를 보고 한 고백이 무엇입니까?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창 2:23)

다시 말해, “너는 나다”라고 했습니다. 이와 동일하게 예수님은 신랑, 교회는 신부이며 신랑인 예수님이 교회를 보고 “너는 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와 예수님은 하나가 되는 것이고, 교회를 대하는 태도는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와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울에게 교회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고, 교회를 핍박하는 것은 나를 핍박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교회를 자신의 친구라고 하지 않고 ‘순결한 신부’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내를 다른 남자가 때리거나 욕을 했다고 가정했을 때 “허허”하고 웃을 남편들이 있습니까? 남이 내 아내를 함부로 대한다는 것은 나를 함부로 대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그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내 생명을 줘도 아깝지 않은 내 신부다. 내 신부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으로 알겠다”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거룩한 예수님의 신부인 교회를 예수님 사랑하듯 생명 다해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 일하십니다.

예수님은 종말의 때가 가까워 올수록 교회를 준비시키신다고 했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종말의 현상들을 설명하시면서, 이 종말을 위해서 교회들에게 “편지하라, 준비하라, 깨어 있으라”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를 통해 종말을 준비하고 완성하겠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계시록에 예수님은 교회를 준비시켜 종말의 때를 준비하라고 하시는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 실망하여 교회가 아닌 다른 곳을 통해서 주님의 일을 하려고 하는 경향들이 많습니다. 실망스러워 보이는 교회들이 많기에 그 마음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잘못된 마음입니다.

존 플라벨(John Flavel)은 “교회가 죽지도 않았는데 너무 일찍 매장하지 말라”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애리조나주에 가면 나바호 인디언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수년 전에 자동차를 몰고 단기선교를 갈 교회를 찾아가다가 미라클교회라는 곳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사역할 때 여름마다 차를 몰고 일주일간 인디언 보호구역을 다니면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교회를 찾아내어 단기선교팀을 보내는 일을 해왔었습니다. 전화 통화로 듀웨인((Duane)이라는 인디언 목사님과 통화를 하며 만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소 하나만 들고 차를 몰고 그곳으로 갔습니다. 달라스에서 그곳까지는 차로 15시간 정도를 달려야 하는데 15시간이 광야였습니다. 마침내 주소지에 도착을 했는데, 아무리 봐도 교회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보니 팻말이 꽂혀 있는데 ‘Miracle Indian Church’라고 쓰여 있었고, 우리 한국의 초가집보다 더 초라한 집 한 채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곳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니, 그 허허벌판에 천막을 쳐놓고 그 목사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목사님이 거기에 혼자 서서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그곳에서 기타를 치면서 찬송을 부르면서 서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맹인이었습니다. 혼자서 교회를 지키고 있는 맹인 목사님은 우리가 온다고 기타로 찬송을 부르면서 몇 시간을 그곳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얼마나 감동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곳에 교회가 있고 앞을 보지 못하는 목사님이 교회를 지키는 것이 너무 감동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해 여름부터 저희 교회 단기선교팀은 그곳으로 여름이면 50여 명이 달려갑니다. 그 주변의 아이들을 불러서 여름성경학교를 하고, 지역주민들을 불러서 머리도 잘라주고, 저녁이면 사흘씩 흙먼지 마시면서 저녁 집회를 했습니다. 저는 그곳사역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곰곰이 생각에 빠지곤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그 땅, 아무것도 세워지지 않은 그곳에, 듀웨인 목사님 한 분이 교회를 지키고 있으니 다시 그곳에 단기선교팀이 가서 사역이 열리고, 주변의 아이들이 교회로 돌아오고, 천국의 복음이 그곳에 전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뉴멕시코주 타오스의 푸에블로인디언교회는 여든이 다 되신 인디언 목사님 부부가 지키고 있는 교회입니다. 미국에서 사역할 때 그곳을 12년째 방문했습니다. 그곳 목사님 부부가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니 우리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님이 그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해마다 예상치 못했던 간증들이 그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눈에는 한없이 초라해 보여도, 하나님은 여전히 온 세상에 세워진 교회들을 통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아무도 오고 가는 사람 없는 그 허허벌판 애리조나 가나도 땅에 지금도 듀웨인 목사님이 기타를 치면서 찬송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저러느니 차라리 문 닫지’하는 생각들을 모두가 해도, 그분은 문을 닫지 않습니다. 그 연약한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우리 생각보다 위대합니다. 교회는 우리 생각보다 강합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는 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인 교회를, 예수님 사랑하듯이 몸 바쳐 사랑하시길 축원합니다.

최병락 목사

침례신학대학 기독교교육학과 졸업(B. A.)
사우스웨스턴신학교 졸업(M. Div. Biblical Language)
Dallas Theological Seminary(M. A. 성서연구과정 수학)
사우스웨스턴신학교(Th. M. Evangelism 수학)
(前) 세미한교회 Founding Pastor 및 담임목사
(現) 사우스웨스턴신학교(D. Min. 과정 중)
(現) 강남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

■저서
『다시 일어남』, 『부족함』, 『쏟아지는 은혜』, 『자라가라』, 『모든 것을 살리는 예배를 회복하라』, 『어둠 속에 부르는 노래』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