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5장 15절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몇 개월 전에 큰 가구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직원분에게 저는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이곳 상호가 Live Art, 예술적으로 살아라는 뜻이죠?” 직원은 질문을 듣더니 깜짝 놀라면서 그 뜻을 맞춘 사람을 처음 봤다고 놀라워했습니다. 당연한 것에 놀라는 직원을 보면서 저도 덩달아 놀랐습니다. 저는 그 상호의 뜻이 참 좋습니다.
‘Live art, 예술적으로 살아라.’ 이 땅에서 리브아트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산다는 것은 또한 축복입니다. 예전에 가수 김국환 씨가 라는 노래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얼마나 인생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지 모릅니다. 해석만 잘해도 살아가는 모든 날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이 됩니다.

‘눈이 부시게’ 라는 드라마 마지막 회는 배우 김혜자 씨의 내레이션으로 종영합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말라. 오늘을 살아가라, 눈이 부시게”

어떻게 살아야, 눈이 부시게 사는 것일까요? 혹시 태어난 것을 후회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태어나 보니 내가 원하는 집이 아니었고, 내가 원하는 성씨가 아니고, 내가 원하는 이름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지역이 아니고, 내가 원하는 부모의 직업이 아니고, 내가 원하는 성격이 아니고, 내가 원하는 성별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세월을 다시 되돌리는 방법만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주어서라도 바꾸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방법이 있습니다.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후회되었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다시 바꾸고 남겨진 모든 날들을 눈부시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다시 태어나면 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우리 인생이 눈부시게 새로워지는 방법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면 옛날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상관없이 새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살다가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혹자는 살다가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을 길을 걷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에 비유를 했습니다. 멀쩡히 걸어가는데 달려오는 차에 치이는 것과 멀쩡히 살다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비슷합니다. 교통사고가 나서 차에 치이면 죽습니다. 예수님과 충돌해도 똑같이 우리는 죽게 됩니다. 그런데 교통사고와 좀 다릅니다. 예수님과 내가 부딪히는 순간 내가 죽는 것은 맞지만 그 순간 나와 부딪힌 예수님이 내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그리고 나는 죽었지만 내 안에 예수님이 들어와 사시게 됩니다. 그때부터 예수님과 충돌한 사람은 스스로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그렇다면, 예수님이 들어오셔서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해 오늘 본문은 아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5:15)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사람이 장기기증을 받아 심장이식 수술만 해도 자신에게 심장을 준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평생 그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지 않습니까? 하물며 예수님의 생명을 얻어서 사는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서 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심장이식이야 어차피 죽을 때 기증하는 것이지만, 예수님은 멀쩡히 살아계시면서 나를 살리기 위해 자원하여 죽으셨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 한 사람 살리려고 멀쩡한 자기의 목숨을 자원하여 버리신 예수님을 생각한다면, 그 생명을 얻어서 사는 우리는 살아도 주의 것으로, 죽어도 주의 것으로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주를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요? 동행이 길어지면 동거가 됩니다. 동행하다 보면 같이 살게 되는 결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함께 걷다 보면 함께 살게 되는 날이 옵니다. 결혼은 동행의 결과입니다. 저는 아내와 연애를 할 때 그렇게 많이 걸었습니다. 다시 말해 함께 걷는 동행을 많이 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가까이 있는 충남대학교 앞 궁동이라는 곳을 자주 갔습니다. 나갈 때는 버스나 학생들의 차를 얻어 타고 나가서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고, 다시 학교 기숙사로 돌아와야 할 때는 거의 대부분 걸어서 돌아갔습니다. 궁동이라는 곳에서 침례신학대학교까지는 아무리 빨리 걸어도 한 시간 이상은 걸리지만 하나도 멀지 않게 느꼈습니다. 누군가 차를 태워준다고 해도 타지 않고 걸었습니다. 그렇게 걷고 또 걷다 보니 어느새 같이 살게 된 것입니다. 동행의 결과는 함께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설교를 듣고 세미나를 듣고 무슨 훈련을 받아도, 마지막 과정은 삶으로 귀결됩니다. 예배 학교를 다녀도 마지막 과정은 ‘삶이 예배가 되는 사람’으로 끝납니다. 선교 학교를 다녀도 마지막 과정은 ‘선교적 삶(Missional Life)을 살자’로 끝납니다. 제가 졸업한 침례신학대학교 기숙사 생활관 관훈은 ‘목회. 즉, 삶’이었습니다. 목회 따로, 삶 따로 살지 말고 삶이 목회가 되고, 목회가 삶이 되라고 배웠습니다.

모든 신앙생활의 지향점은 삶입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과 함께 걷다가 오후 6시에 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처음에는 너무 어렵고 불편한 일입니다. 아무리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도 처음에는 불편합니다. 생활습관도 다르고, 잠잘 때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치고, 몸부림 때문에 몇 번씩 잠을 깹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 코 고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나중에는 코 고는 소리가 안 들리면 오히려 잠이 깨고, 몸부림 때문에 잠을 깨기는커녕, 다리가 내 다리인지 배우자 다리인지도 모르는 수준에 이르게 되면, 상대방 다리를 긁어도 내 다리가 시원해지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며 산다는 것은 처음에는 불편하고 어려워 보이지만 예수님과 지내는 날들이 깊어지고 길어지면서 세상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과 가까워지고 예수님을 잘 알게 되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4-7)

예수님은 함께 사는 것을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있는 것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가 붙어서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지가 해야 할 책임은 한 가지뿐입니다. ‘그냥 딱 붙어있는 것입니다.’ 붙어있는 것뿐인데 구하는 대로 이루어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도 함께 사는 것이 귀찮을 사람이 있을까요?

옛말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고, 나는 놈 위에 붙어 다니는 놈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붙어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붙어만 있어도 포도나무의 모든 좋은 것이 가지로 흘러가고 가지 끝에는 주렁주렁 열매가 맺히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선한목자교회를 담임하시는 유기성 목사님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라는 책에서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이렇게 단순 명료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내가 죽었다고 선언하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신다는 고백은, 그때부터 나의 모든 무거운 짐이 예수님께로 옮겨지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어서 그 책은 극심한 우울증을 겪은 사람의 간증을 들려줍니다.

극심한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했던 한 성도는 모든 것을 자기 힘으로 하려다가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성도는 십자가에서 이미 오래 전에 죽었고, 자기 안에 예수님이 사신다는 것을 느끼게 된 뒤로 모든 짐과 인생의 무거운 것들이 예수님께로 옮기어졌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 아무개는 죽었고, 내 모든 문제는 예수님께로 옮겨졌다. 예수님이 이미 다 해결하셨다”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러자 한순간에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한다고 할 때는 모든 것이 무거운 짐이었는데, 예수님께로 옮겨졌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자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특권입니다. 이 특권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십시오. 그것보다 복된 인생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는 죽었고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누가 보아도 살아있는 내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이 보이도록 사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와 태도, 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전도하려면 말로 전도하는 것은 힘든 시대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삶으로 보이는 전도가 필요합니다. 내 안에 사시는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서 보이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삶이 전도지가 되어야 하고, 내 얼굴이 전도지가 되고, 내 행동이 전도지가 되어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이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할 부분입니다. 아무리 부활을 외쳐도 그 사람의 얼굴이 죽을 인상을 하고 있으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아무리 세상 사람들에게 설명해도 그 기쁨을 알 수 없습니다. 기쁨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월요일은 월(원)래 웃고, 화요일은 화가 나도 웃고, 수요일은 수시로 웃고, 목요일은 목이 터져라 웃고, 금요일은 금방 웃고 또 웃고, 토요일은 토할 때까지 웃고, 주일은 주구장창 웃어야 합니다. 그런 모습 속에서 세상은 기쁨을 배워서 아는 게 아니라 보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설명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어야 할 때입니다. 기쁨을 설명하지 말고 기쁘게 사는 것을 보여주고, 정직을 설명하지 말고 정직하게 사는 것을 보여주고, 사랑을 설명하지 말고 사랑하며 사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교하게 해달라고 기도만 하는 게 아니라 선교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열방을 품는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온 열방을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이런 일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할 것이며, 온 성도가 함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축구를 좋아하는데 월드컵을 보면서 늘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둥근 축구공 하나만 있으면 전 세계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축구공 하나만 있어도 서울, 경기지역에 있는 다민족 사람들이 하나가 될 수 있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문이 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몇 해 전, 우리 교회 사역의 모토인 WORLD를 따서 강중침 월드컵이라는 이름으로 축구대회를 열 것을 제안했습니다.

외국인 유학생과 노동자들 축구팀을 양수리수양관에 초청해서 함께 축구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들에게 추첨을 통해 비행기 티켓을 선물하고, 고향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은 고향집에 가전제품도 보내주고, 의료진들이 참여해서 건강검진도 해주고, 음식도 나누면서 잔치를 해보자고 제안을 했는데, 몇 달간 체육위원회에서 준비를 잘하여 양수리 수양관에서 드디어 다민족 축구대회 월드컵 WORLD CUP이 열렸습니다. 우리 강중침이 우리 곁으로 온 땅 끝을 섬기는 놀라운 기회였습니다.

놀랍게도 우간다, 말레이시아, 우즈베키스탄, 캄보디아, 한국외대 외국인 연합팀, 몽골 A, B 팀, 중국, 우리 교회 연합팀까지 아홉 개 팀이 참가했습니다. 그야말로 월드컵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은 다양하게 자원봉사로 참여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주차봉사, 차량봉사, 의료봉사, 중고시장까지 열리고, 제가 전도 잔치 때 설교했던 복음 설교를 영어 책자로 만들어 나누어 주었습니다. 여전도회에서는 사랑의 분식집도 운영했습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다른 팀들은 자기의 경기를 기다리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사랑을 베풀고, 봉사를 베풀고,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또 이 행사가 일회성으로 마친 것이 아니라 참여한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참여한 다민족 모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빛과 소금으로 그들의 필요를 돕는 사역을 하면서 본격적인 서울, 경기지역의 다민족 사역을 연계해서 했습니다.

오늘, 지금 선교하는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돈 벌어 언젠가 몇살이 되면 선교를 해야지’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 물질을 사용하고, 이때를 위해 주신 것 같은 의외의 생긴 물질을 내어놓고, 직접 몸으로 나가 다민족들을 품는데서부터 선교가 삶이 되고, 매일매일 선교사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교가 더 이상 하늘에 떠있는 뜬구름을 잡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이 선교가 되고, 내 주변이 선교지역이 되며, 땅 끝으로 나가지 못해도 우리 곁으로 보내주신 땅 끝을 품는 이 사역에서부터 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라나라” 시리즈의 마지막 “살아가라”의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구호와 다짐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최병락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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