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5장 21-24절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요즈음 한국에 유행처럼 번지는 워너비가 있다면, 산티아고 순례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남쪽 생장피드포르에서 출발하여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서쪽 산티아고에 이르는 800Km의 길을 순례하는 것입니다. 산티아고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가 선교를 위해 걸었다고 하여 ‘성 야고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그 순례의 길을 지금도 묵상하면서 걷고 있습니다.

1997년 세상에 나온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의 책 『연금술사』를 통해서 산티아고 순례길이 세상에 알려지고, 수많은 순례객에게 주목을 받게 됩니다. 하루에 27Km를 걸으면 한 달 만에 당도하게 되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는 사람 중에 비서구권 중에서는 한국 순례객이 1위라고 합니다. 이 산티아고 순례길은 한국에도 걷기 열풍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서명숙 씨는 2006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후 제주도에 올레길을 만들었습니다. 조사에 의하면 이런 제주도 올레길을 통해 시작된 걷기 열풍으로 대한민국에 조성된 걷기 코스는 500개가 넘고, 북한산 둘레길, 한양 도성길, 해파랑길, 지리산 둘레길, 금강 소나무길, 소백산 자락길, 강화나들길 등이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걷는다는 것은 일상에서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하는 신비한 힘이 있습니다. 혼자 걸어도 자기에게 말을 걸게 되고, 안부를 묻게 되고, 힘내라고 위로를 해주게 되고, 하루 종일 걷는 그 길에 어느새 자기와 친해지고 자기를 보듬고 자기 치유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둘이 걸으면 걷는 거리만큼, 걸어온 시간만큼 서로를 더 많이 잘 이해하게 됩니다. 오래 걸어보면 서로의 성격도 보게 되고, 배려심도 보게 되고, 이기심도 만나게 됩니다. 다투기도 하고, 거리를 두고 걷기도 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걷게 되고, 언덕에서는 손을 잡고 끌어주기도 합니다. 이처럼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성숙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저는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과 함께 그 길을 걷다가 마음이 뜨거워지고 믿음이 자란 것처럼, “신앙생활은 주님과 함께 걸으면서 자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동행’이고 그 주인공은 ‘에녹’입니다. 에녹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단어가 ‘동행’입니다. 하나님과 평생 함께 걸었던 사람에녹은 아담의 7대손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한 최초의 사람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모든 사람이 가는 사망의 길을 가지 않고 살아서 천국으로 들림 받을 수 있었을까요?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하나님과 동행했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한 것을 배워볼까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임한 사망의 저주까지 피해 가게 만든 에녹의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에녹은 환경에 상관없이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오늘 본문 21-24절에는 그 당시의 환경이 어떠했는지 전혀 설명해 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그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심으로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았다고 기록할 뿐입니다. 이 구절만 읽다 보면 우리는 ‘에녹의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었구나’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동행할만하니 동행했겠지…나도 그런 환경이 주어져봐라…동행하나 안 하나…’ 또는 에녹의 삶이 하나님 잘 믿는 것 외에 별로 달리할 일이 없었던 유복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마치, 제가 한국 강남에 있는 교회로 부임한다고 하니까, 미국에서 어느 분이 제게 했던 말이 생각이 납니다. “목사님, 강남 사람들은 다 부자라서 교회 다니는 것 말고 달리할 일이 없잖아요…”

많은 사람이 강남 사람들은 시간이 남아서 교회 다니고, 돈이 남아서 헌금하고, 출세해서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경향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사람이란 그렇게 단순하게 해석되는 존재가 아니지요. 어디에 살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아픔과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강남 사람이라고 기도 제목도 없고 삶의 문제도 없겠습니까? 에녹이 평생365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까 사람들은 에녹의 팔자가 좋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창세기의 역사를 잘 아는 우리는 에녹의 시대가 결코 하나님을 믿기 좋은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려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유 1:14-15)

위 구절을 보면 에녹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를 비교적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에녹의 시대는 모든 사람이 경건치 않은 사람들이었고, 경건치 않은 일을 했고, 경건치 않은 죄인들이 하나님을 거슬러 행동을 했고, 그들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은 하나님을 거스른 강퍅한 말들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동행을 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불경건과 죄가 넘쳐나는 그때에 하나님과 동행했던, 환경에 상관없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이 모두 죄를 지어도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선택했고, 세상의 모든 사람이 죄를 즐거워할 때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을 더 즐거워 했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고 따를 때 에녹은 하나님과 걷는 길을 선택했다는 뜻입니다. 에녹은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 때 자꾸 환경을 탓할 때가 많습니다. “목사님 요즈음 예수만 믿고 못 살아요. 옛날하고 많이 달라졌어요. 옛날에 밭매고 논만 갈면 됐지만, 요즈음 퇴근하고 아르바이트로 한두 개 더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었어요. 이런 환경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산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어요…”

이런 말을 듣다 보면 목사인 저도 그 사람 말에 수긍하며 넘어갈 뻔한 위기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에녹을 보면 그는 좋은 환경이 주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에녹의 시대야말로 정말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이 완전히 외계인이 되고, 왕따가 되고, 외톨이가 되고, 모든 사람이 걷는 길로 걷지 않으면 취직도 안 되고, 취직이 되어도 정직하게 직장 생활을 할 수도 없는 그런 모든 죄의 기반이 구성된 세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살면서 하나님과 동행하기 좋은 날은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만 바꾸면, 살아가는 모든 날이 동행하기 좋은 날입니다. 그것은 환경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과 함께 이 길을 걷겠다’는 여러분의 결단이 있으면,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여러분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고 6·25 전쟁, 그 풍진세상을 다 지나오면서 주님과 동행하기 좋은 날을 하루도 못 보면서 살아도, 교회 와서 찬송할 때는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한걸음 한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라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불안하고 세상을 바라보면 두려워지고 주님과 멀어질까 싶으면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찬송하면서 마음을 붙잡고 또 붙잡으면서 그 험한 세상을 주님과 동행함으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에녹은 좋은 날을 만났기에 하나님과 365년 평생을 동행한 것이 아닙니다. 환경에 상관없이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간 사람입니다. 주님과 동행하고 싶다면, 여러분도 환경에 영향을 받지 말고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환경을 따지지 않습니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날씨를 따지지 않습니다. 눈이 오면 눈 오는 대청봉이 궁금해서 설악산을 오르고, 비가 오면 비에 젖은 단풍잎이 궁금해 내장산을 오르고, 철쭉이 필 때면 홍수가 나도 지리산을 오릅니다. 길을 걷는 사람은 비가 오면 비를 맞고 걸어가고, 눈이 오면 눈을 머리에 이고 걸어가고, 서리가 내리면 서리를 툴툴 털면서도 가야 할 길을 걸어갑니다.

주님과 걸어가는 신앙생활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주님 따라가다가 힘들다고 멈추고, 눈 온다고 멈추고, 비 온다고 멈추고, 언제 걸어갑니까?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주를 따르고, 눈이 오면 눈을 머리에 지고 주를 따르고, 된서리가 내리면 손을 호호 불면서도 주님을 따라가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2.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동행을 했습니다

함께 길을 걸어도 걷는 내내 싸우면서 걷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즐겁지 않은 동행입니다. 함께 걷는 게 고통인 사람이 있습니다. 설교를 위해 산티아고 순례길 연구를 하다가, 어떤 엄마가 딸과 함께 한 달 동안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왔는데, 한 달 내내 딸과 싸우고만 왔다는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고 말을 합니다. 동행이라고 모두 즐거운 길이 아닙니다. 어떤 동행은 생각하면 심장이 떨리는 불편한 동행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면서 주님 손잡고 신앙생활하니까 기쁜가요? 그렇다면 주님 마음도 그러실까요? 여러분과 함께 걸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요? 기쁘실까요? 화나실까요? 여러분은 하나님과 걷는 게 기쁜데, 하나님도 여러분과 걷는 게 기쁘실까요? 여러분은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동행자이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근심케 하는 동행자입니까?

혹시 주님이 여러분을 보시면서 “나는 너와 걸어온 30년 동행 길에 하루도 기쁜 날이 없었다. 너는 언제나 나를 근심케 만드는 길동무였다, 너랑 걷는 걸 생각하면 부담된다”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을까요? 하나님에게 에녹은 어떤 동행자였을까요? 하나님이 에녹을 천국까지 데려가고 싶으셨던 이유는 에녹과 함께 걷는 길을 너무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저의 상상이 아니라, 히브리서 11장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히 11:5)

에녹은 365년 생애 동안 하나님을 늘 기쁘시게 하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내일 에녹과 걸을 것을 생각하시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동행이었고, 함께 걷다가 에녹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은 에녹을 좋아하셨던 것입니다.

아드리안 로저스(Adrian Rogers)는 에녹의 승천의 이유를 이렇게 재미있게 표현을 했습니다. “에녹은 평생 하나님과 걷고 걷다가, 어느 날 하나님이 “에녹아, 우리 집에 너희 집보다 더 가깝구나, 그냥 우리 집에 가자”하고 데리고 가셨다.” 그러면 어떻게 걷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일까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히 11:6)

이 구절을 모두 알고 있지만, 이 구절이 에녹을 설명하는 구절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1장 5절에 에녹 이야기가 나오면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증거를 받았다”라고 끝이 나고 바로 그다음 구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라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은 에녹이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동안 철저하게 두 가지를 믿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던 항상 나와 함께 걷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계신다. 내 눈에 보인다고 계시고, 안 보인다고 안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내 감정과 상관없이 오늘도 내일도 영원토록 나와 함께 걷고 계신다’는 그 사실을 믿었던 것입니다.

둘째, 이 동행의 끝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반드시 주실 상을 에녹은 알았기 때문에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이 험하고 어려워도, 그 뒤에 주실 상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에녹이 믿은 두 가지가 함께 길을 걷는 하나님을 부담스럽게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하나님과 함께 걸으면서 에녹이 “하나님 이 길 끝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상이 있는 것 맞죠? 그 상 때문에 저는 오늘도 믿음 붙잡고 주님과 함께 걸어갑니다”라고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상 때문에 나랑 걷는다니 기분이 안 좋다, 부담스럽다”라고 하지 않고 껄껄껄 웃으시면서 그것을 그렇게 기뻐하셨다는 겁니다. 상을 준비해 놓으시고, 에녹 손을 잡고 걷고, 업고, 어깨동무도 하시면서 함께 걸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에녹이 걸으면서 늘 “하나님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걷고 계시다는 것을 저는 믿고 있어요”라는 그 믿음의 독백이 하나님에게는 너무 큰 기쁨이더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란, 나의 가는 인생길에 반드시 하나님이 함께 걷고 계신 것을 믿는 것이고, 그 길 끝에서는 하나님이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는 그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천박한 믿음처럼 들려지는 그 상을 바라보고 걸어가는 믿음이 오히려 하나님께는 가장 큰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최병락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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