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장 10절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스페인의 천재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e Picasso)는 프랑스 파리의 거리를 거닐다가 버려진 자전거 1대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자전거의 안장과 핸들은 곧 황소 머리로 재탄생합니다. 그리고 그 작품이 만들어진 지50년 후 런던의 어느 경매장에서 293억에 팔리게 됩니다. 이것을 보면 물건의 재료가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그것을 만들었는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엡 2:10a)

풀어서 쓰자면,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존재이다’라는 뜻이고, 영어로는 ‘We are God’s workmanship’,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Workmanship’, ‘작품’이라는 말의 헬라어는 ‘포이에마’입니다. 작품이라는 뜻인데, ‘포이에마’라는 단어에서 영어 단어 ‘포임(Poem)’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포임은 ‘시’라는 뜻입니다.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한 편의 시로 지으셨다는 뜻입니다. 저는 수년 동안 시를 한 편 써보려고 수많은 습작을 해보았지만, 아직까지 내놓을만한 시 한편을 쓰지 못했습니다. 시는 이처럼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포임, 시로 만드셨다는 것이 저에게는 매우 감동적입니다.

윤동주 하면 떠오르는 처럼, 김춘수 하면 떠오르는 처럼 그리고 소월 하면 떠오르는 처럼 시인에게 시는 모든 정성과 열정을 다하여 단어들을 채집하고, 다듬고, 조탁하고 벼리면서 만들어내는 최고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런 시와 같은 작품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니, 한사람도 소중하지 않은 분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왜 만드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 분명한 이유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2:10)

바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셨다고 분명한 목적이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한 일은 어떤 일을 말하는 것입니까? ‘선’은 하나님의 절대 속성입니다. 오직 선하신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선한 일도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속한 일이라는 뜻이 됩니다. 바울 신학자인 부루스(F. F. Bruce)는 ‘선한 일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일’이라고 해석했고, 또 다른 주석가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모든 일들’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 이 둘을 종합해보면 선한 일은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모든 일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재창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음을 받고…’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하신 목적이 단순히 천국에 가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구원은 받았는데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고 있다면 그 사람은 단순히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불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사역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모든 신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와 책임입니다. 섬김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지금 저는 자라가라 라는 시리즈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 , 그리고 오늘은 입니다. 그렇다면, 이 ‘섬김’과 ‘자라남’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섬김이 우리의 영적 성숙에 어떤 유익을 주는 것일까요?

첫째, 섬김은 예수님을 닮아가게 만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섬기려면 예수님께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가까이 있으려면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그대로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예수님을 닮아있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29)

우리가 주일에 교회에 와서 예배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되어 주의 몸 된 교회를 세워나가고, 구역장이 되고, 찬양대원이 되고, 안내위원이 되고, 새 가족 팀원이 되고, 이렇게 섬겨보면 ‘아, 예수님께서 이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셨겠구나. 아, 예수님께서 이럴 때 이런 기분이셨구나…’라고 느끼게 되며 예수님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섬겨보면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를 섬겨주셨는지를 알게 됩니다. 섬겨보면, 왕이신 예수님이 종처럼 섬기신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게 됩니다. 섬기지 않을 때는 섬김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섬겨보면 우리를 섬겨주신 예수님의 섬김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닮고 싶다면, 성경을 펴서 읽기만 한다고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사셨던 삶을 살아보고 예수님처럼 섬겨보면 예수님을 가장 잘 알게 되고 가장 많이 닮게 됩니다. 섬겨보면 예수님이 섬김의 대가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교회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는 사람일 때는 모르는데, 주차 안내 위원이 되어서 주차관리를 해보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 많고, 수모를 당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때, 온갖 수모를 받으시면서 십자가에 묵묵히 달리신 예수님이 그토록 위대해 보이게 되는 겁니다.

1만 명이 넘는 경기도 어느 교회를 다니는 친한 후배가 어느 날 주차봉사를 하게 되었는데 세상에 못할 일이 주차봉사라고 말합니다. 더울 때 더운 데서 섬기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섬기는 게 주차봉사 아닙니까? 쉰 살이 다 되어가는 친구에게 주차 불만 때문에 반말을 하면서 야단을 치는 사람, 다른 차를 먼저 빼주면 당장 다가오는 거친 언행. 심지어, 본인이 주차를 하지 않고 열쇠를 던져주고 가는 사람까지, 성도들이 말씀대로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게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주일날 받은 은혜가 주차장을 못 벗어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이 친구는 부서원을 이끌고 거의 10년 가까이 그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힘들지만 매주 예수님의 심정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주차봉사만큼 수모와 멸시와 천대를 받는 사역이 따로 없기에 예수님의 심정을 잘 느낄 수 있게 해준답니다.

섬기다가 힘들면 섬김의 대가이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은 이보다 더한 것도 참으셨는데…’ 하면서 성경을 묵상하게 되지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5-8)

섬김은 예수님을 늘 기억하게 하고 예수님을 닮게 만듭니다. ‘아, 예수님이 억울한 오해를 받으실 때 이 마음이셨겠구나’, ‘아, 예수님이 이 기분이었구나’, ‘아, 그러면서도 십자가를 끝까지 지셨던 것이구나…’ 그걸 생각하면 섬기다가 울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섬김으로 예수님을 닮아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미국 교회에서 사역할 때 언젠가 차세대 교사 1명이 큰 시험에 들어서 교사를 내려놓겠다고 담당 사역자를 통해 연락이 왔습니다. 무슨 일인지 만나 자초지종을 들어보았습니다. 그는 유치부에서 가르치는 교사였습니다.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는데 교사 수급은 안되고, 도저히 그 발랄한 아이들을 전부 감당못하는 순간이 왔답니다. 그런데 그중에 유난히 활발한 한 아이가 교실을 나가서 교회 안의 이곳저곳을 자유 투어를 했나 봅니다. 교회 안을 샅샅이 뒤져 마침내 그 활발한 아이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아이 엄마가 그 사건을 알고는 그 선생님에게 모진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아이를 귀하여 여기지 않으면 교사를 하면 안 되지 않느냐…어떻게 교사가 아이가 교실을 나가는지도 몰랐느냐…” 그런 이야기를 듣는데, 문득 ‘이 아이 엄마는 가장 좋은 시간에 본당에서 은혜로운 예배를 드리고 있을 때, 나는 그 성도의 아이와 1년 동안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성경을 가르치고 율동 가르치고 했는데, 그 수고는 당연하게 여기고, 한 번의 실수로 이렇게 모진 말을 하니, 내가 돈을 받고 하는 것도 아니고 자원해서 하는데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나?’ 이런 생각에 시험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선생님에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게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선생님은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예수님의 그 마음을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겁니다. 자기를 살려주려고 진 십자가 위에서도 욕을 먹으셨던 예수님, 그러나, 그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고 욕하는 그 사람 살려주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 선생님은 교실이 십자가를 지는 현장이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그 자리를 지키라”고 권면했습니다.

그 교사는 다시 마음을 잡고 선교를 떠나듯 부름 받은 그 교실로 십자가 지러 되돌아갔습니다. 여러분, 섬김만큼 예수님을 깊이 아는 방법이 없습니다. 섬김은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게 해줍니다.

둘째, 섬김은 우리의 은사를 개발시켜줍니다

하나님은 모든 성도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로마서 12장, 고린도전서 12장, 에베소서 4장을 은사장이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장들에 나오는 수많은 은사들을 빛의 자녀들에게 골고루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은사는 가만히 있을 때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 속에 무슨 은사를 선물로 주셨는지는 섬김을 시작할 때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자기 안에 그런 은사와 재능이 있는 줄 모르다가 섬김의 사역을 시작하면서 자기도 깜짝 놀랄만한 재능이 자기 안에 선물로 주어져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은사를 달라고 자꾸 기도를 하는데, 은사를 달라고 기도하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미 주신 은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은사를 주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그 은사를 우선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딤후 1:6)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미 네 속에 있는 그 은사를 불일듯 하게 한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왜 안수를 할까요? 에베소교회의 사역을 맡기기 위해서입니다. 사역을 맡길 때, 안수하며 그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의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불일듯 일으켜서 그 사역을 능히 감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없던 능력을 주려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있는 능력이 불일듯 일어나도록 기도를 한 것입니다.

여러분, 능력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번개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 감당할 은사를 이미 주셨습니다. 순종하고 나가면 여러분 안에 있는 은사가 불일듯 일어나서 그 사역을 능히 감당케 하십니다.

가르치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 교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하여 교사가 되면 가르치는 능력이 불일듯 일어납니다.

주의 일꾼들의 능력은 교실에서 겸비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겸비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주님의 자녀라면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너무 따지지 마시고, 나는 못한다며 빠지지 마시고, 교회 안의 어느 부서든 자원하여 사역을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 주신 은사를 불일듯 일으키셔서 사용하시면서 여러분이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를 정도로 멋지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셋째, 섬김은 또 다른 섬김의 지경을 넓힙니다

여러분, 섬김에는 섬기는 사람만이 느끼는 놀라운 영적 감흥이 있습니다. 섬기지 않고는 알 수도 없고 맛볼 수도 없는 짜릿한 영적인 체험과 간증이 있습니다. 그래서 섬김은 또 다른 섬김으로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인디언 단기선교를 간다고 했을 때, 다녀온 청년이 내년에 다시 갈 확률이 높을까요? 못 간 청년들이 갈 확률이 높을까요? 확언하건대 다녀온 청년들이 다시 갈 확률이 높습니다. 타오스 산의 공기를 마셔본 사람은 그 공기가 그리워서 안 갈 수가 없습니다. 인디언 광야에서 불어오는 흙먼지와 타오스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그 오묘한 공기와 등을 아리면서 찾아오는 시멘트 바닥에서 잠든 영적 추억이 그들을 부르는 것입니다. 섬기면서 기쁨을 느낀 사람은 그 기쁨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교회 안에 보면, 한 가지씩 1인 1사역하면 제일 좋을 것 같은데, 어느 교회나 비슷하게 섬기는 분이 또 다른 부서도 섬깁니다. 성가대하는 분이 교사도 하고, 또 여전도회 임원도 하면서 1인 3사역을 하는 이유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섬기는 사람이 섬김의 기쁨을 알아서 힘들어도 또 그 사역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섬기는 사람이 왜 또 다른 사역까지 섬기는지 아세요? 섬길 때만 느끼고 알게 되는 신비한 간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맛을 알게 되면 섬김은 더 이상 헌신도 봉사도 아니라 특권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요 2:8-9)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제일 고생한 사람은 결혼식에 수종드는 하인들입니다. 그런데, 섬기는 자리에 있었던 하인들은 마냥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날, 물이 포도주가 되는 일생일대의 최고의 기적을 잔칫집에 있는 사람 중에 유일하게 본 사람이 하인들입니다.

신랑, 신부, 결혼을 총괄하던 연회장, 심지어 물을 떠서 가져다주라고 명령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물이 포도주가 되는 광경을 보지 못했는데, 그 기적은 오직 물 떠온 하인들만 알았던 것입니다. 섬기는 사람이 섬길 때만 볼 수 있는 기적이 있는 것이고, 평생의 간증이 있는 것입니다.

힘들다고 사역을 하나둘씩 내려놓으면 삶에서 간증도 하나둘씩 사라지고, 기적도 하나둘씩 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힘들어도 이일을 위해 내가 구원받고 지음을 받았다고 믿고 끝까지 섬기고 인내하는 사람에게는 갈수록 간증이 늘어나고 믿음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최병락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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