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장 15-19절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중략)…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예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겉으로만 보면 큰 차이가 없습니다. 누구나 밥을 먹고 일을 합니다. 누구나 돈을 벌고 돈을 씁니다. 누구나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합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하루 여섯 끼를 먹는 것도 아니고,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해서 하루 다섯 끼를 먹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사는 모습은 대개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실제 생활에서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은 어떻게 다를까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똑같이 밥을 먹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은 먼저 기도하고 밥을 먹습니다.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이나 비슷하게 일을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은 출근하면서 기도합니다. 신자나 불신자나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자는 미워하는 그것 때문에 기도하고, 미워하는 그 사람 때문에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이란 곧 기도생활입니다. 기도를 잘하는 사람이 신앙생활도 잘합니다. 제일 잘 믿는 사람은 제일 잘 기도하는 사람, 제일 바르게 기도하는 사람, 기도의 행복과 능력을 제일 깊이 누리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성경적인 기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모든 성도들이 성경적으로 믿고 성경적으로 기도하여서 성경에 기록된 모든 은혜를 충만하게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감사함으로 드리는 기도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대개 이런 식입니다. “하나님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고, 그것도 주시고, 요것도 주세요.” 필요한 것을 한참 늘어놓고 졸라댑니다. 하나님께 청구서를 들이밀고 사인해달라고 강요하는 식입니다.

이제는 그 정도 수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필요한 것을 달라고 청구하기 전에, 먼저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무엇에 대해서 감사할까요? 나를 구원해 주신 것에 감사하고, 기도할 수 있는 자리까지 인도해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

원망하고 불평하고 졸라대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내가 구하는 대로 주심을 믿고 감사합니다. 때로는 내가 구하는 대로 주지 않으시고 더 좋은 것 주심을 믿고 감사합니다.

내가 구하지 아니한 것까지도 넉넉하게 채워주실 줄 믿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기도 수준이 높아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감사함으로 성숙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것, 참으로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군가 나로 인해서 감사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엡 1:15-16)

에베소 성도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열심히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그 믿음과 사랑의 소문이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에게까지 들려왔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에 감사함이 넘쳤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의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계속해서 감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얼마나 훌륭한 성도들인지, 한 번 감사하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두세 번 감사하고 잊어버린 것도 아닙니다. 기도할 때마다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감사함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성도의 아름다운 신앙이요 인격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생각하고 기도할 때, 감사가 흘러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여러분의 믿음과 사랑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져야 합니다. 누군가 여러분의 얼굴이 떠오르면,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섬기는 제직 가운데 어떤 제직이 좋은 제직일까요? 그 장로님, 그 권사님, 그 집사님을 생각하면서 기도하면, 나도 모르게 감사가 흘러나오는 분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힘들기도 하고 지치기도 합니다. 오해도 받고 상처도 받고 공격도 받습니다. 그러다가도 기도하는 가운데 어느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질 때가 있습니다. “목회가 쉽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아름다운 제직들을 세워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제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나면 은혜가 충만하고 의욕이 생깁니다.

어떤 부모가 훌륭한 부모일까요? 자녀들이 부모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짜증이 납니다. “하나님, 우리 엄마 제발 잔소리 좀 하지 말게 해주세요.” 화가 나기도 합니다. “하나님, 우리 아빠, 제발 술 그만 먹고 소리 지르지 않게 해주세요.” 자녀들이 기도할 때 짜증과 분노가 나오게 하는 부모는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100%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다 같은 인간이기에 실수도 있고 허물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 아빠, 우리 엄마, 참 좋은 분들의 자녀로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자녀가 여러분을 생각할 때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부모가 되시기 바랍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며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인격, 바로 그 지점까지 날마다 노력하고, 날마다 투쟁하고, 날마다 성장하는 우리 교회의 가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마음의 눈을 밝히기 위한 기도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와 무학 대사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날 태조 임금이 심심해서 무학 대사와 농담을 주고받기로 했습니다. 태조가 무학 대사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말했습니다. “대사의 얼굴이 꼭 돼지 같소.” 그러자 무학 대사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다. “임금님의 얼굴은 부처님 같습니다.”

농담을 하기로 했으면 서로 받아쳐야 재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무학 대사가 받아치지는 않고 오히려 칭찬하는 말을 하니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태조이성계가 다시 말했습니다. “나는 돼지 같다고 했는데, 대사는 어째서 부처님 같다고 하는가?” 무학 대사가 대답했습니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는 법입니다.” 결국 무학 대사가 태조 이성계에게 한 방 먹였습니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는 이야기와 비슷한 말씀이 에베소서 1장 18절에 있습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엡 1:18)

우리 마음속에 눈이 있습니다.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마음의 눈으로 인생을 해석합니다. 그 마음의 눈이 어두워져 있으면 세상이 온통 캄캄해 보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의 마음눈이 밝아지도록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이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나요? 우리의 기도는 대부분 밖을 향한 기도입니다.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풀어달라는 기도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서 환경이 바뀌도록, 상황이 바뀌도록, 다른 사람이 바뀌도록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이 소개하는 기도는 밖이 아니라 안을 향한 기도입니다. 환경이 바뀌고 남이 바뀌는 기도가 아니라, 내가 바뀌는 기도입니다. 내 영혼 깊은 곳에 있는 영적인 분별력,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영적인 통찰력, 마음의 눈이 밝아지도록 기도하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영적인 통찰력이 없으면 그 돈으로 쓸데없는 일을 합니다. 육체의 정욕을 채우고, 이기적으로 즐기고, 좋지 않은 일에 돈을 낭비합니다. 아무리 친구가 많아도 영적인 분별력이 없으면 고통스럽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치이고, 상처받고, 돈 떼어먹히고, 이용당합니다.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허무하고 우울해집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서 학벌이 좋은 아이들이 우울증에 걸립니다. 내 마음의 눈이 밝고, 긍정적이고, 희망에 차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밝아 보이고, 긍정적으로 보이고, 희망적으로 보입니다. 그래야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마음이 어둡고 마음의 눈이 침침하면 늘 걱정하고, 근심하고, 한숨 쉬게 됩니다.

요즘 우리나라에 자살 문제가 심각합니다. 하루에 38명, 1년에 대략 15,000명쯤 자살합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자살률이 높아졌을까요? 마음의 눈이 어두워져서 세상이 온통 비관적으로 보이고 도무지 희망이 없어 보이니까 그냥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요?

오늘 성경 말씀 그대로입니다. 마음의 눈이 밝아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의 눈이 환해져서 하나님도 보이고, 성경도 보이고, 희망도 보여야 자살하지 않습니다. 인생에는 고통이 있고 아픔이 있습니다. 그래도 마음의 눈이 열려있으면 고통 너머에 있는 희망이 보입니다. 아픔 속에서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느껴집니다.

우리 교회 모든 교우들의 마음의 눈이 밝아지기를, 그래서 힘들고 어려운 고통 속에도 하나님이 예비해놓으신 길과 빛이 있고, 희망이 있음을 깨달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을 알기 위한 기도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서 얘기하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어떤 사람과는 몇 시간씩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길게 얘기할 수 있는 상대는 잘 아는 사람입니다.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친구, 학교 동창생하고는 서로 아는 게 많아서 할 얘기도 많습니다.

또 공통적인 관심 분야가 있으면 얘기가 길어집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하루 종일 음악 얘기를 합니다. 축구광들이 모이면 치킨을 시켜놓고 밤을 새우면서 축구 얘기를 합니다. 남자들이 모이면 군대에서 축구 한 얘기를 빼놓지 않고 합니다. 누군가와 얘기를 길게 할 수 있는 비결은 ‘아는 것’입니다.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고, 알려줄 것도 많고, 공통적으로 알고 싶은 것이 많으면 오래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기도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동창생을 만나면 몇 시간을 이야기하는데 기도는 15분이면 끝입니다. 음악 얘기, 군대 얘기, 군대 가서 축구 한 이야기는 밤을 새우면서 하는데 기도는 20분이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과 할 얘기가 왜 그렇게 없을까요? ‘아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음악도 알고, 드라마도 알고, 누가 잘 살고 못 사는 것도 아는데, 하나님을 모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1:17-19)

여기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말은 단순히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체험으로 알고, 경험으로 알고, 실제 생활을 통해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인도해 주셨는지를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실제적인 사건 속에서 아는 것입니다. 목사의 설교를 듣고 ‘하나님이 이런 분이구나!’하고 생각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내가 직접 경험하고 체험해서 나의 하나님은 이런 분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아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구체적으로 소개합니다. ‘부르심의 소망, 영광의 풍성함, 능력의 지극히 크심’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나를 부르셔서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앞으로 하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빚어 가실지를 알아야 합니다. 밤낮 요 모양, 요 꼴인 것 같아도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가실지, 그 부르심의 소망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크고 놀랍고 풍성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부자가 되는 영광, 스타가 되는 영광,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인정받고 칭찬 듣는 영광에 대해서는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칭찬하시고, 축복하시는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아시나요? 그걸 알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능력이 지극히 크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절망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면 포기합니다. 내 앞을 가로막은 장벽은 너무나 높아 보입니다. 내 인생을 흔들어놓는 파도는 너무나 거세게 느껴집니다. 내 마음을 파고드는 상처는 너무나 깊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지극히 크십니다. 그 능력으로 역사하시면 넘지 못할 장벽이 없고,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알아야 우리의 기도가 제대로 됩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우리의 기도가 깊어집니다. 결국 신앙이란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을 안다고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재물을 알고, 명예를 알고, 인기를 알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비결을 아는 것이 신앙은 아닙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알려지고 여러분이 저에게 알려지는 것이 신앙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어떻게 만들어 가셔서 마침내 얼마나 영광스럽게 변화시키실 것인지를 아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요, 기도의 근본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성경적인 기도는 첫째로 감사함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둘째로 마음의 눈을 밝히기 위한 기도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한 기도입니다. 오직 말씀대로 기도하여서 말씀대로 응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직 성경을 따라서 기도함으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축복을 응답으로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정민 목사

협성대학교 신학과 졸업
협성대학교 대학원 졸업
광현감리교회 담임목사
미국 달라스연합감리교회 담임목사
(現) 금란교회 담임목사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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