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2장 1-2절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기도에 대해서 이해할 때 비교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대표적인 영역이 운동입니다. 운동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 안 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기도가 좋은 줄 알면서도 아는 만큼 열심히 하지 못합니다. 극소수의 성도를 제외하고 다수의 성도들의 경우, 기도의 절대량이 부족합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는 하지만 중언부언하는 기도, 정해진 패턴에 따르는 형식적인 기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교회나 기도의 자리에서는 기도하는데 삶의 자리에서는 기도하지 않는 성도, 삶의 자리에서는 기도하는데 따로 시간을 정해두고는 기도하지 않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누구나 기도가 부족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위대한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George Muller)를 생각해 봅시다. 그는 기도 응답을 5만 번 받았습니다. 5천 번도 아닌, 5만. 성경에는 기도에 관한 가르침이 많습니다. 구약에서 기도에 관한 가르침을 담은 대표적인 책은 시편입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기도의 모습을 통해 기도에 관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얼마나 충실하게 기도 생활 하셨는가?’입니다. 주님은 새벽 미명부터 기도를 하셨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이루어야 하는 대목에서는 더욱 집중적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모습은 우리가 상기하고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지금 내 인생의 중요한 부분에 서 있다면, 혹은 내 인생의 전환기에 위치해 있다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는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 기도의 중심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본받고자 한 사도 바울의 기도를 보면 특별히 사람을 향한 기도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사람들을 위한 기도는 다음의 네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딤전 2:1)

네 가지 기도는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입니다. 사실 두 번째로 언급된 기도라는 그 영역 안에 간구도 있고 도고도 있고 감사도 있는데 사도 바울은 의도적으로 기도를 두 번째 위치시킴과 동시에 또 다른 모습의 기도를 가르쳐줍니다. 바울은 왜 이렇게 네 종류로 나누어 기도에 대해 전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기도를 더 많이 하고 싶어 하고 기도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 합니다. 특히 더 많은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 우리가 한 가지 종류의 기도만이 아닌, 네 가지 종류의 기도를 알고 있으면 기도할 때 유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네 가지 종류의 기도를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이제 이런 기도의 종류를 살펴보면서 ‘내 기도의 생활이 좀 더 깊어졌으면 좋겠다’, ‘내 기도의 생활이좀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 ‘내가 정말 주님의 마음에 더 합한 기도를 했으면 좋겠다’와 같은 다짐을 해야 합니다.

1. 간구

지금 간절한 기도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까? 만약 간절한 기도 제목이 없다는 것은 기도 생활에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입니다. 혹은 간절한 기도가 응답되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신앙생활을 바르게 했다면 간절한 기도를 드려본 경험이 있어야 하고 그 경험이 응답되는 간증 또한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분명 살아계시는데 내 기도가 한 번도 응답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분명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단,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간구와 관련하여 누가복음 11장에는 강청하는 기도가 나옵니다. 밤에 친구가 왔는데 대접할 음식이 없자 이웃집의 문을 두드리면서 먹을 것을 좀 빌려달라고 청합니다. 원래는 들어주지 않을 상황인데 그 이웃은 상대의 강청함으로 인해 들어주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우리가 절실함으로 기도드리면 반응하십니다. 모든 기도의 시작은 ‘나에게 필요한 것이 있고 그것이 절실해질 때’ 시작이 됩니다. 만약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절실함을 놓치고 있다면 그것은 중요한 부분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영역에 있어 절실함이 생길까요? 우리가 처한 자리를 생각해 봅시다.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 다양한 문제에 쌓여있는 상황은 우리를 절실하게 만듭니다. 또한 가족, 즉 부모님이나 배우자, 자녀를 생각하면 절실함이 생깁니다. 더 나아가 선교와 전도를 생각하면 민족을 향한 마음 때문에 절실함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이런 절실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절실한 기도를 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역으로 그런 절실한 기도 제목이 없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한편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드리신 기도의 결론은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였습니다. 곧 간절한 기도의 결과는 나를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내 문제, 내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가 간절한 기도를 드릴 때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만약 내가 집착하는 것만 내려놓을 수 있다면 간절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시든, 하나님이 나의 간절함 가운데 나를 바꾸시든, 그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방법대로 응답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리하자면, 간절한 기도란 곧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입니다.

대학교 시절, 저는 농촌 시골 교회에서 고시공부를 했습니다. 그때 고시공부는 제대로 못 하고 여름 내내 전도사 생활을 하다시피 했는데 당시 교회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 어떤 성도가 와서 기도를 하는데 교회에 분쟁이 일어났음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 기도는 형식만 기도일 뿐 내용은 기도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이 문제를 두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놀랍게도 3~4일이 지나자 기도 같지 않은 기도를 하시던 분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기도를 하다가 기도 끝 무렵에 나를 보더니 “나도 잘한 게 없네요”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기도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후 며칠이 더 지나자 그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간절한 간구를 드리면 잘못된 주님께서 기도도 바꾸어주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2. 기도

간구가 특별하게 아뢰는 것이라면 기도는 특별한 사건이 없을 때, 즉 ‘일상생활 가운데서 드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두 번째로 등장하는 ‘기도’가 첫 번째로 등장한 ‘간구’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사람은 간절한 일이 있으면 기도하러 나가지만 간절한 일이 없으면 기도하던 것을 철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간절할 때 열심히 기도하다가도 간절한 상황이 종료되자 기도도 종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만큼 특별한 일이 없을 때 주님 앞에 꾸준히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기도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간구할 때는 주님의 뜻을 잘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품고 있는 그 기도 제목이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에 주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상 속에서 호흡하듯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가게 됩니다. 곧 기도는 하나님과의 호흡입니다. 결국 기도의 응답은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내 생각보다 귀하며 높다는 것을 아는 것이기도 합니다. 곧 하나님의 뜻이 내가 따를 방법이자 방향이 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응답입니다.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3:19)

이 진리를 깨닫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기도생활입니다. 물론 필요로 하는 간구의 대상이 있다는 것은 기도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기도가 깊어질수록 하나님의 뜻과 경륜에 관해서 깨달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높이와 깊이와 너비와 그 충만한 세계를 우리가 깨달아가는 것, 그리고 하나님과 점점 더 친밀해지는 것, 이것이 기도의 목적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간절하게 기도할 것이 없는 성도는 간절하게 기도할 내용이 실제로 없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능력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간혹 기도를 덜하는 분들은 기도를 많이 하는 분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 저분은 참 인생의 어려운 문제가 많아서 기도할 제목이 많나 보다.” 정작 기도를 많이 하는 분들에게 물어보면 기도하면 할수록 기도할 것이 계속 생긴다고 말합니다. 기도를 안 하니까 기도할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고 기도할수록 기도할 내용이 계속 생기는 것입니다.

이제 삶의 자리에서 특별한 어려움이 없다 할지라도 주님과 긴밀하게 기도함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내가 기도하는 자리가 따로 있어야 하지만 삶의 현장에서도 매사에 기도로 주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 가운데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역사가 일어나길 바랍니다.

3. 도고

도고는 우리가 별로 쓰지 않는 한국말입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도고란 ‘남을 위하여 하는 호소’라고 나와 있고 영어로 살펴보면 인터세션(Intercession) 즉, ‘중보기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곧 도고는 ‘중보기도, 즉 남을 위한 기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교단에서는 중보기도라는 표현을 주의해서 써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중보자는 예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중보기도를 한다고 하면서 마치 내가 예수님 자리에 서있는 것처럼 하면 안 된다는 차원에서 그런 시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고기도’라고 표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중보기도라는 말은 사용하되, 중보자의 자리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조심’하는 것으로 인식하면 될 것 같습니다.

남의 사정을 알고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것이 도고의 기도입니다. 간혹 이렇게 기도드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 김 집사가 굉장히 힘들어요.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김 집사를 왜 힘드시게 하는 거예요? 이해가 안 돼요.” 이것은 도고기도의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 김 집사가 참 어렵습니다. 주님이 더 잘 알고 계시죠? 그런데 김 집사가 저렇게 힘든 이유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김 집사 또한 어려움의 의미를 잘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김 집사에게 그 의미를 깨닫게 해주시고 그를 붙들어 주옵소서. 또한 저에게도 그 깨달음을 주옵소서.” 이것이 도고 기도의 기본입니다. 정리하자면 도고기도의 기본 방향은 ‘나는 잘 모르지만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선으로 이끄시는 건 알지만 현재 부분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깨닫게 해주세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어려움도 이기고 순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도고기도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아브라함이 롯을 위하여 드린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하는 것을 막아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를 드리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같이 지내다가 굉장히 번창하게 되자 같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깁니다. 결국 롯과 아브라함이 각각 다른 땅을 소유하게 되는데 롯은 눈에 보기에 좋은 소돔과 고모라 땅으로 갔고 그 땅은 이제 곧 멸망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 땅을 멸망시키러 온 천사들을 만났을 때, 아브라함은 롯의 멸망 위기를 놓고 하나님 앞에 도고기도를 드립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소돔 성이 잘못한 것은 확실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따르면 소돔 성은 무너져도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 안에 의인 50명 있다면 그 의인들은 멸망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 의인이 50명 있으면 소돔 성을 멸망하시겠습니까?” 이것이 도고기도의 시작이었습니다. 굉장히 지혜로우면서도 솔직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이런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간구와 도고는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간구하러 나갔을 때, 하나님은 의인 50명이 있으면 멸망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아브라함의 반응도 유심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창 18:27)

나는 자격이 전혀 없지만, 감히 주께 아뢴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도고기도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50명에서 5명이 빠지면 어떻게 하실 것인지, 40명이면 어떻게 하실 것인지, 30명, 20명, 10명일 때는 어떻게 하실 것인지를 묻습니다. 하나님은 끈질긴 그의 기도에 계속 대답하셨습니다. 그의 간절함을 보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5명일 때는 어떻게 하실 것인지는 묻지 않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멸망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신한 것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질문할 필요가 없었고 ‘하나님 뜻대로 하시옵소서’의 마음으로 그 뜻을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도고기도의 응답입니다.

살다 보면 이해되지 않는 것이 참 많습니다. 이때 무조건 간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해 봅시다. 나는 모르겠으니 이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 곧 도고기도를 드립시다.

4. 감사

감사도 기도의 일부입니다. 감사만 잘해도 신앙생활을 잘할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 자체가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기도는 어쩌면 가장 성숙한 형태의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사를 입에 달고 사는 분들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좀 지나치다고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훌륭한 신앙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사가 입에 달린 것은 감사가 내 마음속에 없어진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신앙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말로 기쁘시게 받으시는 감사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감사해야 할 그 순간에 바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를 ‘총알기도’라고도 합니다. 그냥 쏘아 올리는 것입니다. 감사의 조건이 나에게 생길 때 그 순간에 감사기도할 수 있는 상태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감사해야 할 그 순간에 하나님 앞에 감사를 올리는 것, 정확한 타이밍에 감사를 올리는 것을 주님은 더 기뻐 받으십니다. 물론 조금 지난 다음에 감사해도 됩니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나중에 가서야 진짜 감사할 일이 생각이 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습관이 되면 미루게 되고 결국 끝까지 안 하게 될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내 삶 속에 하나님이 감사의 조건을 주셨는데 내가 그것을 감사의 조건으로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감사를 바로 드리려면 주신 은혜를 바로 깨닫고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깨달음이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타이밍과 함께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사람에 대한 감사입니다. 우리는 이 부분이 굉장히 약합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빌 1:3)

한번, 감사의 조건 10가지 정도를 적어보세요. 막상 적어보면 사람에 대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생긴 일들, 사건들 위주로 감사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진급한 것에 감사, 우리 아이가 어떻게 된 것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감사기도는 사람으로 인하여 감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4가지 기도에 대해 알려준 것은 기도의 생활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이 편지를 처음 받았던 에베소의 교우들과 디모데는 바울이 어떤 점을 강조하고 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려면 한 가지 방법만 가지고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특히 다양한 기도 방법을 통해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람’에는 ‘임금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포함됩니다. 사실상 당시 상황에서 임금들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그런 핍박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전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삶과 동떨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신앙적인 핍박만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내가 상처를 받은 기억도 떠올려 봅시다. 혹시 내가 받은 상처 때문에 누군가를 내 기도의 영역에서 제외하지는 않았습니까?

“내가 많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데 저 사람을 위해서는 내가 기도를 못 하겠습니다”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까? 혹시라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다시금 기도해 주어야 할 대상으로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본문이 가르쳐준 대로 다양한 기도 방법을 통해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지경을 넓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총체적으로 기도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기도의 4가지 영역을 배움으로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립시다. 기도 중에 배제했던 사람도 품어나감으로써 기도의 지경을 넓혀나갑시다.

한규삼 목사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미국 칼빈신학대학원 졸업(M. Div., Th. M.)
하버드대학교 졸업(Th. M.)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졸업(Th. D.)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졸업
International Theological Seminary 부학장
미국 LA소재 세계로교회 담임
미국 뉴저지초대교회 담임
(現) 충현교회 담임

■저서
『Jerusalem and Jesus Movement』, 『세상을 바꾼 부흥 공동체』, 『요한복음 다시보기』, 『한규삼 목사의 사도행전』, 『오깨』, 『천국의 비밀을 아는 자들의 행복』, 『청지기 수업』, 『전신갑주를 입으라』, 『한국신약해설주석11 목회서신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