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는 갈멜산의 영적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임을 드러냈습니다. 그렇지만 엘리야는 승리에 도취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기도의 응답에 도전합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은 그 땅에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 갈멜산 꼭대기에 올랐습니다. 기도의 응답에 도전하는 자에게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엘리야에게는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라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아합 왕에게 나아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왕상 18:41)

엘리야가 큰 소리로 선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왕상 18:1b)

이 약속의 말씀 때문에 엘리야는 확신을 가졌고, 기도의 응답에 도전하기 위해 갈멜산 꼭대기에 올랐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가장 먼저 땅에 꿇어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였습니다. 땅에 꿇어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간절히 하나님께 집중하며 기도하던 엘리야의 이런 특별한 자세는 우리에게 두 가지 의미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 기도는 집중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일 엘리야가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던 주변 환경을 바라보며 기도했다면 기도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는 땅이었습니다. 메마르고, 갈라지고, 땅에 있는 것들은 시들어 죽어가는 비참한 현장이었을 것입니다. 종일 햇빛만 쏟아지는 이런 막막한 환경에서 기도하는 엘리야 자신도 흔들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만 집중하고자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습니다.

둘째, 기도는 간절해야 합니다.

사도 야고보는 엘리야가 드린 기도의 간절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약 5:17)
엘리야의 기도가 왜 간절했던 걸까요? 하나님 외에는 대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그 땅에 하늘의 문을 여시고, 비를 내리실 수 있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오늘 우리의 기도에는 간절함이 없습니까? 하나님 외에 더 많은 대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아도, 붙잡아주지 않아도, 해결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나 스스로 일어설 수 있고, 해결할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이제 그의 사환에게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43절a)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그만큼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냥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기도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가 막연하게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히브리 기자는 믿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1. 아무것도 없나이다

올라가 바다 쪽을 바라보았던 사환이 돌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왕상 18:43b)

땅에 꿇어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간절히 기도한 엘리야가 사환을 올려 보냈는데 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비가 올만한 어떤 징조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조금 전 갈멜산의 영적 전투에서는 엘리야의 기도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엘리야가 제단 위에 제물을 올려놓고,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왕상 18:37a)라고 부르짖을 때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여호와의 불을 내려 번제물을 태우셨습니다. 그런데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비를 구하는 간절한 기도에는 하나님께서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변화의 조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엘리야가 얼마나 당혹스러웠겠습니까?

사실 우리에게도 이런 때가 종종 있습니다. 초신자 때에는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지체하지 않고 응답을 해주실 때가 많습니다. 반면 어느 정도 신앙이 성장하고 나면 분명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하는데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적잖게 당황하게 됩니다.

낙심 가운데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기도의 응답이 지연될 때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멈추고 포기해 버립니다.

2.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엘리야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환의 말을 듣고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단호하고 분명하게 사환에게 다시 말합니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왕상 18:43c)

다시 기도의 응답에 도전한 것입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횟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곱은 하나님의 숫자요, 완전한 수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완전에 이를 때까지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때까지를 말합니다.

한센 병에 걸렸던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도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었을 때 깨끗함을 얻었습니다. 여리고성도 마지막 날 일곱 번 돌았을 때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라는 말은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기다리며 기도하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엘리야가 여섯 번까지만 기도하고 기도를 포기해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까지 사닥다리를 놓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중간에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엘리야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환의 말을 들었을 때 어쩌면 초조했을지 모릅니다. 아합 왕에게 곧 비가 내릴 테니 속히 올라가서 먹고 마실 준비를 하라고 얘기했지 않습니까? 그리고 왕이 순종했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많은 백성들이 숨죽여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만일 지금 이 순간 비가 내리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악한 아합 왕이 가만히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기도 응답이 없음을 전쟁의 패배로 간주하고, 한순간에 돌변해 이방 신을 찾을지도 모릅니다.

엘리야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응답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다시 사환에게 일곱 번째 말합니다. “올라가 바다 쪽을 바라보라”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주어졌다면 기도를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응답될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가나안 여인이 흉악하게 귀신들린 딸을 데리고 예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딸의 병을 고쳐달라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수님은 아무런 대꾸를 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계속 주님께 절하며 귀신을 쫓아내주기를 간구했습니다. 이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막 7:27b)

하지만 여인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막 7:28)

주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간구하는 이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소원대로 딸을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크다”(마 15:28)고 하셨습니다. 사무엘도 이 세상을 떠나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노라”(삼상 12:23b)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때 신애라 집사님의 기도에 대한 간증이 기억납니다. 집사님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생기를 공급받고, 우리 안에 있는 영적인 찌꺼기들을 밖으로 배출해 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우리 기도가 상달될 때까지, 하나님의 보좌에 내 영적인 사다리가 만들어질 때까지 기도를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혹 기도를 하다가 멈추어 버린 분이 계십니까?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떤 징조도,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도를 포기해 버린 분이 계십니까? 다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기도의 무릎을 꿇으십시오. 기도를 멈추지 마십시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눅 18:1)는 주님의 말씀처럼 낙망치 말고, 기도의 응답에 도전하십시오. 기다림 역시 거절이 아니라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3. 손 만한 작은 구름

사환은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라는 말에 순종했습니다. 그리하여 일곱번째 올라가 바다 쪽을 바라보았을 때 드디어 손 만한 작은 구름을 보았습니다. 그는 황급히 뛰어내려와 엘리야에게 전했습니다.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왕상 18:44a)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사실 기도의 응답치고는 너무나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지금, 작은 구름 한 조각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던 대지를 적셔줄수 있는 시커먼 먹구름과 소낙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 손 만한 작은 구름을 보고 낙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의 징조로 보았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면 너무나 작은 구름에 불과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손 만한 작은 구름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미리 보여주는 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손 만한 구름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엘리야의 위대함입니다.

기도의 사람은 작은 것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실 큰일을 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어린아이가 가져온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 명을 먹이고도 남기셨습니다. 물고기와 보리떡은 그 시대 가장 가난한 이들이 먹는 평범한 도시락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것을 축사하시고 나눠주라 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보지 않았습니다. 이를 통해 5천 명의 사람들이 먹고도 남을 어마어마한 기적 즉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언제나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만 한 믿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작은 일에 충성된 자에게 하나님은 큰일을 맡기십니다. 엘리야는 손 만한 작은 구름 속에서 큰비를 보았습니다. 사실 3년이 넘는 가뭄에 손 만한 작은 구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엘리야는 손 만한 구름 속에서 큰비를 보았습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자의 순전한 믿음입니다.

에서 간증한 박위 형제를 보십시오. 그는 술에 취해 떨어져 경추를 다쳐서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습니다. 목 아래는 어떠한 감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끼손가락 끝에 약간의 감각이 생겼습니다. 그것이 박위 형제에게는 손 만한 작은 구름이었던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형제를 위해 기도하고, 그 기도가 쌓이고, 재활훈련을 통해 이제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스스로 운전도 하고, ‘위라클’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희망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 큰일을 행하시기 전에 먼저 그 사인으로 손 만한 작은 구름을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손 만한 작은 구름을 보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아니 손 만한 작은 구름을 보면서도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이렇게 작은 응답은 자신이 구한 것이 아니라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기도의 응답에 앞서 하나님께서 징조로 보이신 손 만한 작은 구름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실패하고 넘어졌어도 안된다고 말하지 말고, 불행을 예언하지 말고, 손 만한 작은 구름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손 만한 작은 구름이 당신의 눈에는 너무 작고 초라하게 보일지라도 실망하지 말고, 그 작은 구름을 끌어안고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손 만한 작은 구름이 바로 내 인생의 큰 은혜의 소낙비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오늘 기도하는 당신에게 보여주신 작은 구름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내 인생 가운데 보여주신 그 작은 구름을 가슴에 끌어안고, 감사함으로 기도의 응답에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때 당신의 인생에 은혜의 소낙비가 내릴 줄 믿습니다. 기도를 멈추지 마십시오!

김은호 목사

GOOD TV 공동 대표이사
국민일보 이사
다니엘기도회 운영위원장
꿈이 있는 미래 및 사단법인 프렌즈(Friends) 이사장
교회성장연구소 법인이사
(現) 오륜교회 담임목사

■저서
『꿈만 같습니다』, 『하나님의 대사여, 가라 세상으로!』, 『기도의 현장에서 승리하라』(이상 도서출판 꿈미), 『은혜에 굳게 서라』, 『무릎으로 승부하라』, 『땡큐 바이러스』, 『성령으로 기뻐하라』, 『지친 날들의 은혜』,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이상 두란
노), 『인생은 해석이다』(엠마오) 등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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