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4장 1-9절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 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 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 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 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한홍 목사의 『하나님이 내시는 길』이라는 책을 보면 ‘그리스도인은 가진 것이 없기에 하나님이 길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능력이 없기에 더 겸손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계획이 없기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다른 사람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며, 아름다운 팀워크를 이루 어 갑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분명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승리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모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실 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당시 모세는 나이가 많았습니다. 그저 목동에 불과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십니다.

출애굽기는 3장부터 5장을 함께 연결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특히 출애굽기 3장은 모세의 ‘소명장’이라고 부릅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시고, 다시 부르신 사건이 기록돼 있습니다. 모세는 과거에는 애굽의 왕자였습니다. 그러나 살인 후에 도망하여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며 40년을 보냅니다. 세월이 흘러 몸은 늙었습니다. 가진 것도 없습니다. 현재 모세는 양을 치는 80세 노인일 뿐입니다. 노년에도 여전히 양을 쳐야 먹고살 만큼 형편없는 모세의 처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제야 모세를 부르십니다. 모세가 양들에게 풀을 먹이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이유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통받는 애굽땅에서 구출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3장부터 5장까지 모세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변명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80세 노인입니다. 할 줄 아는 것은 양치는 것뿐입니다. 말도 잘하지 못합니다. 한 마디로 모세의 변명은 자신은 “아무것도 가진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택하셔서 부르셨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계속해서 ‘못하겠다’, ‘할 수 없다’라고 변명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다섯 가지 변명을 합니다.

첫째, 자신에게 능력이 없다고 변명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출 3:11)

자신이 파라오 앞에 갈 능력도 없고,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3장 13절에 “자신이 하나님을 잘 모른다”고 변명합니다.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내가 믿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누구신지는 확실히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습니다만, 하나님에 대한 확신은 없다는 변명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을 믿지만, 때로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심과 함께 하심이 의심이 들거나 확신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모세는 이런 의미로 자신이 하나님을 잘 모른다고 이야기 합니다.

셋째, 모세는 “사람들이 나를 믿어주지 않고, 내 말도 듣지 않을 것”이라고 변명합니다.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출 4:1)

모세 자신은 이제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확신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변명입니다.

넷째, 4장 10절에서 모세는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라고 자신을 평가합니다. 파라오에게 대항하여 백성들을 이끌 지도자라면, 말도 당당하게 하고 연설도 잘해야 할 텐데,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해서 할 수 없다는 변명입니다. 마지막으로 4장 13절에는 모세가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변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다섯 가지 변명에도 불구하고, 해결책을 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하나님, 그래도 저는 가기 싫습니다”는 변명을 합니다.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을 보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모 든 걱정과 염려와 변명에 대해서 조목조목 답을 해주시면서 한 가지 큰 약 속을 해주십니다. 모세가 가진 모든 걱정과 변명에 대한 해결책이 바로 3장 12절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창 3:12)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네 말처럼 너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형편없는 존재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답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모세의 세 번째 변명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십니다. 모세가 “백성들이 나를 믿지 않고, 내 말도 듣지 않을 것”이라고 변명합니다. 그때 4장 2절 말씀처럼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입니다. 모세는 당연히 지팡이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들이 나를 믿어주지 않고, 나에게는 능력도 없다”라고 변명할 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즘은 대다수 사람들이 “‘휴대폰’입니다. ‘돈’입니다. ‘신용카드’입니다.” 이렇게 대답할지 모릅니다. 이것들은 모두 우리가 생활하면서 가장 가까이에 두고 사용하며, 알게 모르게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특히 요즘은 휴대폰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잠을 잘 때도, 길거리에서도, 다른 사람을 만나도 항상 손에 휴대폰이 들려 있습니다.

사실 모세가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는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모세가 자신의 손에 든 것이 지팡이라고 말하자 하나님께서는 “네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고 말씀합니다. 모세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니, 지팡이가 뱀으로 변합니다. 중동의 사막지역에서 뱀은 독성이 강한 코브라 종류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손을 내밀어 그것의 꼬리를 잡아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잡으니, 다시 뱀이 지팡이가 됩니다. 그 다음으로 보여주신 기적이 “네 손을 품에 넣으라”는 말씀이셨습니다. 모세가 품에 손을 넣었다가 꺼내보니 손에 나병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세가 나병이 든 손을 다시 품에 넣었다가 꺼내니 본래대로 돌아왔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기적이고,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께는 쉬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러한 기적을 보여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 앞에 살아있는 신이라 불리는 이집트의 파라오도 굴복할 것이라는 징표를 보여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질문하신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깊은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손에 지팡이가 있는 것을 모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신다는 것은 “네가 그 동안 집착하고 의지한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입니다. 모세가 하나님보다 의지하고, 하나님보다 가까이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입니다. 모세가 들고 있던 지팡이는 크고, 좋은 지팡이도 아닙니다. 고대 근동 지방의 목동들이 흔히 가지고 다니는 손때 묻은 보잘것없는 작은 막대기에 가깝습니다. 흔히 모세의 지팡이라고 하면, 라는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모세의 키보다 더 크고 멋진 지팡이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마치 지팡이에 어떤 능력이 담긴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톱카프 궁전 박물관에는 ‘모세의 지팡이’로 불리는 지팡이를 전시해놓았습니다. 직접 가서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지팡이가 아니라 막대기에 가깝습니다. 이 지팡이는 나이 든 모세에게는 지팡이 역할도 하고, 대적이 올 때는 무기도 되며, 양을 칠 때는 방향을 제시하는 도구였습니다. 모세에게는 가장 가까이에 두고 사용했던 의지하는 대상이었습니다.

최형섭 목사는 『하나님의 일곱 가지 질문』이라는 책에서 모세의 지팡이 가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고 쓰고 있습니다. 모세가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는 우리가 손에 든 소유나 물질 등 내가 가진 것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의지하는 대상이나 사람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많은 사람이 자신의 손에 가진 돈을 의지합니다. 돈이 나를 당당하게 하고, 보호해주며,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지팡이도 마찬가지로 모세가 의지하던 것이었습니다. 맹수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도구이며, 양을 치며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고 이야기하십니다. 바로 그동안 네가 의지했던 것들을 땅에 던지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 더 이상 자신의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를 붙잡게 됩니다. 모세의 손에 들린 지팡이가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모세가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모세도, 지팡이도 오직 하나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지팡이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고, 모세가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에서 생수가 나오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모세 자신의 지팡이, 사람의 지팡이’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붙잡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출 4:20)

과거에는 ‘나의 지팡이’였지만, 자신이 의지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은 뒤에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히브리어로는 ‘마테흐 하 엘로힘’이라고 표현합니다. 히브리어로 ‘마테흐’는 ‘지팡이’라는 뜻입니다. ‘하’는 ‘~의’라는 뜻입니다. ‘엘로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의 지팡이’라는 뜻입니 다. 나는 부족하고, 능력 없고, 보잘것없는 존재이지만 내가 붙든 하나님 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질문은 그동안 네가 붙잡았고, 의지했던 것을 내려놓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붙잡으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는 것이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재산이나 가족, 자녀 등을 더욱 믿고 의지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네 손에 든 것을 내려놓으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의 것을 빼앗아 가시고, 우리를 힘들게 만드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보다 우선해서 의지하는 것들을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을 수 있는지를 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대상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우리 손에 들고 있는 가장 아끼는 것, 가장 의지하는 것을 하나님을 위해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쇼어라인 커뮤티니 교회의 목회자인 케빈 하니(Kevin G. Harney)의 『무모한 믿음』이라는 책에 보면, 자신의 아내와 아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하루는 5살 난 자신의 둘째 아들 조슈아가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날은 아내의 생일이었습니다. 아들은 이른 새벽부터 아버지 방에 있던 파란색 상자를 가져다가 선물을 담고, 엄마에게 생일 축하 카드까지 썼습니다. 선물 상자를 열어보니 네 가지 선물이 들어있습니다. 첫 번째 선물은 아들이 정말 아끼는 작은 모형자동차였습니다. 이 선물에 엄마는 감동합니다. 아들이 이것을 얼마나 아끼는 줄을 알기에 엄마에 대한 아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선물은 25센트짜리 동전이었습니다. 우리 돈으로 약 300원가량이 아들의 전 재산이었습니다. 어른이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들은 자신의 전 재산을 엄마에게 선물로 드린 것입니다. 세 번째 선물은 핀 볼 게임기였습니다. 어디든지 갈 때 마다 꼭 가지고 가는 게임기였습니다. 그런 데 마지막 선물은 장난감 수갑이 들어있었습니다. 엄마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 선물이었고, 충격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왜 수갑을 선물로 넣었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오늘은 엄마 생일이니 한쪽 수갑은 자기 팔에, 다른 한쪽은 엄마 팔에 수갑을 채워서 온종일 엄마와 같이 있고 싶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때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며,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꼈다고 쓰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의지하던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때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기뻐하시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이 ‘I AM NOTHING’(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에서 ‘GOD IS EVERYTHING’(하나님이 전부이십니다)로 바뀌는 것을 원하십니다.

2001년 9월 11일,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9·11테러가 일어났습니다. 그 후 미국 전체의 시스템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가치관 또한 많이 바뀌었습니다. 당시 신문의 기사에는 맨해튼에 있던 증권회사에서 전산 총괄 전무로 일하던 한 사람이 쓴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9·11테러 당일, 지금은 무너진 세계무역센터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지역에 있는 사무실에 급한 일이 생겨서 건물에서 나오게 됩니다. 건물에서 나와서 다른 곳으로 향하려 하는데, 갑자기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 건물로 돌진합니다. 위에서 불덩이가 쏟아지고, 건물이 무너지려 하니 빌딩 옥상인 110층에 있던 사람들이 강으로 뛰어내립니다. 불과 몇 분 전만해도 자신과 회의를 하던 모든 사람이 사망했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의 이웃들도 67명이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테러로 인해 회사도 문을 닫게 되어 1,800명이 한꺼번에 직장을 잃었습니다. 35년간 다니던 직장을 하루아침에 잃고 실직자가 되었습니다. 자신에 손에 있던 것들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쓴 글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되니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를 발견했다. 내가 지금까지 붙잡으려 했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창조주를 의지하고 기억하는 것 외에 인생의 참된 가치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지금 붙들고 있는 것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이것을 깨닫고 나의 가치관은 ‘I AM NOTHING’에서 ‘GOD IS EVERYTHING’ 바뀌게 되었다.”

모세에게 하신 것은 “네가 의지하던 것을 던지고 나를 의지하라”는 하나님의 시청각 교육이셨습니다. 내 손에 들고 의지하고 있던 지팡이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뱀으로 변하고, 내 손으로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나병이 들어 저주받은 손이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붙잡았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때 모세가 발 견한 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모든 삶의 영역을 넘어서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고개를 숙이고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길레모트라는 새가 있습니다. 이 새는 바위틈에 알을 낳는데, 수천마리의 새가 한꺼번에 산란하면, 바위 전체가 알로 가득 찹니다. 그런데 수많은 알 중에서 어미 새는 자신의 알을 찾아갑니다. 또 새끼손가락 크기의 작은 벌총새가 6,000km를 날아가기도 하고, 철새들은 자신들이 가는 길을 정확하게 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 정교하게 만드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것이 우연이며, 의지할 것은 힘이나 돈, 인간의 이성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하신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지금까지 집착하고 의지했던 것을 내려놓으면,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겠다”는 놀라운 축복을 담은 질문입니다.

2.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네 손에 있는 것이 보잘것없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쓰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출 4:4)

이것이 모세의 모험입니다. 모세의 순종입니다. 시골에서 뱀을 잡아본 분들은 뱀을 잡을 때 뱀의 머리를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뱀의 머리를 잡아야만, 뱀이 꼼짝하지 못합니다. 만약 뱀의 꼬리를 잡으면 당연히 물리게 됩니다. 뱀에게 독이라도 있으면 죽음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팡이를 뱀, 특히 코브라로 변하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뱀은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대상입니다. 또한 모세가 이겨내야 할 대상인 파라오의 상징이 뱀입니다. 이집트의 황제인 파라오는 태양의 아들이며, 파라오의 상징물이 뱀입니다. 그래서 ‘투탕카멘의 가면’에서 볼 수 있듯이 코브라가 파라오의 이마 가운데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뱀은 사탄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뱀은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며, 이길 수 없는 존재 이고, 죽음의 상징입니다. 상식적으로 하나님 말씀대로 뱀의 꼬리를 잡으면 물려 죽고 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가진 이성과 논리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믿고 모험을 하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뱀의 꼬리를 잡으니, 다시 지팡이로 변합니다. 지팡이는 일상의 평범한 도구입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막대기입니다. 목동이 양을 칠 때 가지고 다니는 하찮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께 붙잡히는 순간 기적을 행하는 도구가 됩니다. 볼품없는 모세 의 지팡이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자, 120만 대군을 이끄는 위대한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모세의 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힘없는 80세 노인의 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붙잡는 순간 위대한 일에 쓰임 받는 손이 됩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그 순간이 하나님을 찾아 야 하는 시간입니다. 능력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건강이 없어도, 나이가 많아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장 12절 말씀에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라고 모세에게 약속해 주십니다. 전능하신 엘로힘의 하나님께서 그분의 지팡이를 손에 들려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해롤드 린젤(Harold Lindsell)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신 것은 모세의 손에 있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나타내 보이고자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손에 있는 물맷돌 하나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나타내 보이셨다”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모세의 지팡이는 볼품없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니 위대한 일을 하는 도구가 됩니다.

다윗도 그렇습니다. 다윗은 나이가 어렸습니다.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욕해도 형들과 어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골리앗에게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나오느냐,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라며 나아갑니다. 남들이 보면 무모한 믿음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가진 것은 특별한 무기도 아닌, 평상시에 사용하던 보잘것없는 물맷돌입니다. 물맷돌을 골리앗의 이마에 던져서 승리합니다. 사무엘상 17장을 살펴보면 골리앗이 가만히 있는데 이마를 맞춘 것이 아닙니다. 다윗을 향해 달려 움직이는 골리앗의 이마를 정확히 맞춘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다윗이 물맷돌 던지는 기술이 좋아서, 물맷돌이 특별한 무기라서 이긴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뱀의 꼬리를 잡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어렵지만 용기를 내었습니다. 믿음의 모험을 했습니다. 모세가 손을 내밀어 뱀을 잡으니 다시 지팡이로 변합니다. 믿음의 모험을 할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불가능한 것처럼 보여도 겁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애굽의 파라오를 이기고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작은 새 한 마리까지도 주관하시고, 우리의 인생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내가 무능하고, 부족하고, 연약하며,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문제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에 대해 클레이튼(Clayton)은 다섯 가지로 요약합니다. 첫째, 친밀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습니다. 둘째, 보살피시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져주십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앞서 걸어가신다는 것입니다. 넷째, 보호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하나님 외에는 어떤 것도 우리를 보호할 수 없습니다. 다섯째,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친밀하시고, 우리를 보살피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공급해주시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겠다는 구체적인 의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의사이자, 기독교 상담 심리학자인 ‘폴 투르니에’(Paul Tournier)가 쓴 『인간의 자리』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중간지대의 불안’이라는 표현이 나타납니다. ‘중간지대의 불안’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망설임과 불안감이 있는 부분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깊은 마음속에는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폴 투르니에는 서커스에 공중그네 타는 사람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서커스에서 공중그네 묘기를 보면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공중그네를 타고 있는 한 사람이 있고, 반대편에서 공중그네를 타려고 출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양쪽에서 공중그네를 타면서 중간 지점을 향해 나아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되면, 한 사람은 자기가 붙잡고 있던 그네를 놓고, 공중에서 두세 바퀴를 돌며, 다른 사람이 타고 있는 그네로 뛰어듭니다. 그리고 다른 공중그네를 탄 사람의 손을 잡고 함께 반대편으로 착지합니다. 폴 투르니에는 자신의 그네를 놓은 후부터, 반대편의 그네를 잡기 전까지를 중간지대라고 표현합니다. 중간지대에 있는 순간에는 아무것도 의지할 대상이 없이 공중에 떠 있는 상태입니다. 그때 성도 들은 불안하고 염려하며 절망에 빠집니다. 하지만 잡았던 그네를 놓고 뛰어든 사람보다 더 긴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반대편에서 뛰어든 사람의 손을 잡아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정확한 타이밍을 맞추어야 안전하게 곡예를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고, 감탄하는 것은 공중그네에서 뛴 사람이지만, 가장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은 뛴 사람의 손을 반대편에서 잡아주려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때로는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 떨어지면 어쩌지?’라는 불안을 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공중그네를 잡은 손을 놓았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반대편에서 우리를 안전하게 잡아주시려 주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의지할 것도 없습니다. 과거로 다시 돌아가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붙잡지 못해도 불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 자신보다 하나님의 타이밍이 더욱 정확하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붙드시고,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 손에 있는 것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통해 모세에게 꼭 하고 싶으셨던 말씀은 그동안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을 의지했던 모세를 책망하시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보여주시면서 모세에게 이렇게 약속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모세야, 불안해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반드시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장창수 목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 Div.)
계명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졸업(M. A.)
미국 Azusa Pacific University 졸업(M. A. R.)
미국 Liberty University 졸업(D. Min.)
총신대학교 기독교 교육학 박사과정(Ph. D.) 수료
미국 Torrance 소재 남가주 크리스천 한인교회 담임 역임
월드비전 목회자 홍보대사
대구 매일신문 칼럼니스트 역임
GMS 세계선교회 부이사장 역임
대신대학교 11.12대 재단이사장 역임
(現) 대구 CBS 운영이사장
(現) 총신대학교 재단이사
(現) 대구 대명교회 담임목사
■저서
『길라잡이』, 『성령의 열매 맺기』, 『하나님의 명령에 싸인하라』, 『성숙한 그리스도인 1, 2』, 『말씀을 따라 산 믿음의 거장들』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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