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장 1-4절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은 성령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누가가 기록한 두 책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누가복음은 첫 장부터 성령충만이 가득합니다. 세례요한은 모태로부터 성령충만할 것임을 천사가 선포합니다(눅 1:15). 그리고 세례요한을 잉태한 어머니 엘리사벳도 성령충만합니다(눅 1:41). 또한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도 성령충만하여 찬송합니다(눅 1:67).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 역시 성령에 의한 것입니다(눅 1:35). 그리고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겠다는 마태복음 7장의 기록과 달리 누가는 그 ‘좋은 것’을 ‘성령’으로 해석해주고 있습니다(눅 11:13). 성령이 강조된 누가복음일 뿐 아니라 그 후속편인 사도행전도 성령으로 가득합니다. 성령, 주의 영, 예수의 영이라는 표현이 70번 정도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사도행전 2장에서는 첫 성령충만의 놀라운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성령충만의 중요한 특징을 살펴봅시다. 먼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을 때 성령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행 2:1)

주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 떠나지 말고 모여있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행 1:4-5). 그 말씀대로 모인 곳에 성령충만의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모이는 곳에 계십니다(마18:20). 모일 때 빠지면 그 모인 자리에 임하는 은혜를 놓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일 때 함께 해야 같은 은혜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사람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행 2:4)

모인 사람들 중 한 사람도 성령충만을 받지 못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이면 주님이 함께 하시고 그 모인 자리에 놀라운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인 사람은 누구나 은혜를 입기 마련입니다. 모이는 자리에 빠지지 않도록 힘써야 그 자리에 임하는 은혜도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첫 성령충만은 오순절에 임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행 2:1)

왜 오순절일까요? 유대인들의 삼대절기는 ‘유월절’과 ‘오순절’ 그리고 ‘초막절’입니다. 이 세 가지 절기는 매우 중요하게 지켰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에 애굽에서 나오는 놀라운 은혜를 감사하며 지내는 절기로 해의 시작입니다. 그 유월절에서 중요했던 어린 양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했던 것인데 그 절기에 죽으시므로 출애굽처럼 ‘죄와 사망’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리고 첫 열매를 거두는 절기가 ‘오순절’입니다. 그래서 ‘초실절’이라고도 불렸습니다. 그 오순절에 성령충만의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유월절은 ‘구원’을 의미한다면, 오순절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열매를 맺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성도들이 열매를 맺으려면 성령충만해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강조했습니다(갈 5:22-23).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다운 열매가 없는 것은 성령충만하지 않아서입니다. 따라서 오순절에 성령이 임한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날에 놀랍게 3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열매도 거뒀습니다.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교회에서 열심히 일은 하지만, 진정한 열매는 맺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시험거리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자, 그러면 여기서 첫 성령충만할 때 일어난 세 가지 현상을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현상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행 2:2)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귀에 들렸습니다.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제한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청 주파수는 16-20,000헬츠(Hz/sec)입니다. 그 이상이나 그 이하면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귀로 들을 수 없는 소리도 성령충만하면 들을 수 있습니다. 즉 귀가 열리는 것입니다. 세상 소리는 귀로 듣지만 성령의 소리와 하 나님 말씀은 오직 영적 귀가 열려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충만해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 일곱 교회에 주시는 말씀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로 마무리됩니다 (계 2:7, 11, 17, 29, 3:6, 13, 22).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말씀을 들어도 누군가는 은혜를 받고 누군가는 오히려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다 같이 들었지만 성령이 귀를 열어주시지 않으면 은혜를 받기 힘든 법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도 답답해하신 것은 아무리 주님이 외쳐도 듣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시기도 했습니다(사 6:9; 마 13:13-14). 성령에 의하여 귀가 열리지 않으면 주님께서 직접 설교하셔도 듣지 못합니다. 성령충만한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도 사람들은 귀가 열리지 않으니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을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했다고 표현하였습니다(행 7:51). 성령충만해야 귀가 열립니다.

두 번째 현상은 눈에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행 2:3)

기도하던 그들은 성령충만을 받고 나니 눈에 놀라운 것이 보였습니다. 못 보던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이 열려야 천국이 보이고 신비한 일을 볼 수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스데반은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그러나 고통스럽게 죽지 않고 편안하게 잠자듯 주님께 그 영혼을 부탁하였습니다(행 7:59-60).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성령충만한 스데반은 그 눈으로 하늘이 열리고 주님께서 거기서 스데반을 응원하심을 보았습니다(행 7:55-60). 그러니 고통이 아닌 즐거움을 누렸고 행복했던 것입니다. 누구도 볼 수 없는 그 세계를 성령충만한 그는 분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눈이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보이는 것만 봅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고 신비한 세계를 보는 것은 성령에 의해 눈이 열려야 가능합니다. 사무엘 선지자조차 이스라엘의 왕을 선택할 때 눈에 보이는 겉모양만 보았었습니다(삼상 16:6). 이새의 장남 엘리압의 키와 생김새만 보고 왕이 될 사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면서 하나님은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신다고 지적하셨고 그래서 막내인 다윗이 왕으로 선택되었습니다(삼상 16:7).

세 번째 현상이 무엇일까요? 그들의 말이 달라졌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2:4)

성령충만하니 귀가 열려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눈이 밝아져 못 보던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는 입입니다. 성령충만을 받은 그들 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로 말했습니다. 이것이 전에는 ‘방언’으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개역개정판에서는 ‘다른 언어’라고 했습니다. 이 다른 언어는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는 말입니다.

입이 변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같은 입이지만 하는 말이 다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늘 좋은 말을 하지만 또 다른 누구는 늘 상처 주는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입으로 찬송도 하고 저주도 하는 상태를 야고보서가 지적했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약 3:9-10)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은 듣고 배웁니다. 그리고 많이 본 것을 화제로 삼습니다. 무엇을 듣고 무엇을 주로 보느냐에 따라 말이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좋은 것을 듣고 좋은 것을 보면 좋은 말을 하게 됩니다. 귀와 눈이 달리지면 입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교회생활에서 만나는 시험거리의 대부분 말로 인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에 지은 크고 작은 죄의 대부분도 말이었습니다.

말로 하나님과 지도자를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광야생활이 길어지고 온갖 재난을 겪었습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성령충만하지 못하면 은혜롭지 못한 말로 교회생활이나 가정생활을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정말 성령충만하면, 입으로 생산되는 말이 은혜롭고 듣는 사람에게 덕을 세우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은 사람의(엡 4:23-24) 중요한 특징을 말이라고 했습니다. 우선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엡 4:25)

거짓말은 사탄의 전유물입니다. 거짓말에 익숙하면 사탄에게 사로잡혀 사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요 8:44). 그러나 성령충만하면 거짓을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성령충만하면 이렇게 거짓을 말하지 않는 정도로 끝나지 않습니다. 여기서 더 성숙해지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모두 덕을 세우는 은혜로운 말이 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 4:29)

내가 하는 말이 더럽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 덕이 되고 은혜를 끼칠 수 있어야 성령충만함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위로나 격려 그리고 칭찬은 말로 합니다. 적절하고 창조적인 말로 놀라운 힘을 북돋아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 말을 듣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천국을 누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아내나 남편에게 사랑을 말로 표현하면 훨씬 행복해집니다. 부모님이나 자녀들에게 적절하게 필요한 말로 힘을 북돋아주며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목회를 하면서 성도들의 말 한마디로 힘을 얻을 때가 많습니다. 밥을 사주거나 선물을 하지 않고 따뜻한 격려와 문자 메시지로도 목회의 보람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말로 인해 아픔을 느끼기도 합니다. 말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성령은 분명히 우리의 언어와 관련이 됩니다. 앞에서 언급한 스데반은 그를 대적하는 자들을 능히 이길 수 있었는데 그것은 성령충만한 상태에서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행 6:10). 성령충만한 사람들이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로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말을 주시는 성령이십니다.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할 말을 선택하게 하고 필요한 어휘를 사용하게도 하시는 분이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위험한 상황을 만나도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마 10:19)

할 말을 적절하게 입에 넣어주시는 일은 성령의 중요한 기능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막 13:11)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하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지어야 할 날이 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마 12:36)

우리는 성령충만한지요? 주님께서 듣게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나요? 말씀을 들을 때마다 감격스러운지요? 성령충만하여 귀가 열리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는 눈을 열어, 볼 것을 보고 있는지 점검합시다. 세상 누구나 보는 것 말고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놀라운 하나님 나라를 보고, 신비한 주님의 손길을 영적 눈으로 보아야 성령충만한 상태입니다.

마지막으로 입을 확인합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입인지, 성령이 말하게 하시는 말만 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내 욕망을 좇아 말한다면 나는 성령충만과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말로 세상에서 천국을 만들어내는 삶을 살고 있다면 나는 성령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충만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다운 열매를 많이 맺으면 서 내 삶을 더욱 행복하게 가꿉시다.

김관선 목사

(現) 기독신문 주필
(現) 산정현교회 담임목사

■ 저서
『리셋』, 『내 몸이 성전입니다』 등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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