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장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어릴 적부터 계란 프라이는 무조건 완전히 완숙으로 해서 먹었기 때문에 완숙, 반숙이라는 말을 전혀 모를 중학교 때의 일입니다. 형님이 울산시내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때, 형님 친구 집을 따라 갔습니다. 그 집은 매우 잘사는 집이었고, 고등학생 즈음으로 보이는 누나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거실이라는 것을 처음 봤고, 식탁이라는 것도 처음 봤습니다. 식사시간이 되어 형님 친구 어머니께서 식사대접을 해주시는데 그 누님이 식탁을 차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계란은 반숙으로 줄까? 완숙으로 줄까?” 반숙, 완숙을 전혀 모르던 저였지만 그게 뭐냐고 물을 용기가 나지 않아서 반숙이라고 말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상이 차려지고, 저의 밥공기 옆의 접시에는 반숙이라는 이름의 계란 프라이가 놓였습니다. 조심스럽게 젓가락으로 떠서 밥 위에 올리고 숟가락으로 누르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노른자 안에서 덜 익은 노른자 물이 흘러나와 밥과 어우러집니다. 이때 ‘아… 계란을 이렇게 해서도 먹는구나’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계란과 노른자와 쌀밥이 어우러져 제 숟가락 위에 놓이고 그 위에 김을 한 장 올려 입안에 넣었을 때, 제 마음속에 들었던 처음 생각이 뭔 줄 아세요? ‘아, 이집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다’였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잘사는 집이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신기했고, 그런 집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었습니다. 세상에는 다시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많아도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을 믿는 것을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를 믿는다는 표현을 다시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직접 쓰신 표현입니다.

첫 번째 태어난 것은 우리 부모님으로 부터 태어난 것이라면,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태어난 것은 부모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예수를 믿고 다시 태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유대인의 공회원으로 있던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어느 날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공회원이라 함은 그 당시 최고 기관인 산헤드린의 회원이며, 이 말은 곧 이스라엘 최고위원 70명 중의 한 명이라는 뜻이기에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고위공직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이름 없는 무명의 랍비를 찾아와 인생의 길을 묻는다는 것은 결코 쉬 운 일이 아닙니다. 들통나면 그의 명성과 어쩌면 공회원의 자격까지도 박탈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사람들이 잠든 밤에 예수님을 몰래 찾아왔습니다.

신학자 필립 라이큰(Philip Liken)은 니고데모가 밤에 찾아온 것은 시간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도 맞지만, 동시에 그의 영적 상태도 밤이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남다르게 노력하고, 정직하고, 율법에 흠이 없이 자라 그 어렵다는 산헤드린 공회원이 되었으니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이 행복한 삶을 살 것 같았던 그였지만, 막상 그 성공의 정점에 서보니, 자기가 그렇게 찾고 찾던 행복의 파랑새가 그 성공의 정상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기의 삶에는 밝은 대낮이 찾아왔는데 웬일 인지 자기의 영혼은 여전히 깊은 밤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성공 뒤에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성공을 준비하며 살았지, 성공 뒤를 준비하고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필립 라이큰(Philip Liken)은 ‘니고데모는 생각했던 것 보다 더 큰 어둠을 만났다. 그리고 그는 어둠 속에서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라고 그의 영적 상태를 묘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예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분을 만난 사람은 빈부귀천 상관없이 모두 인생의 참된 길을 발견하고 캄캄한 밤에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된다는 소문입니다. 그 소식에 니고데모는 모두 잠든 밤에 예수님이 거하는 숙소를 수소문하여 찾아갔습니다. 어둠에서 한줄기 빛을 찾아갔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 자기 마음속 에 담아두고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못한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여,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다시 태어남”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

니고데모가 다시 묻습니다. “랍비여, 어떻게 하면 다시 태어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그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예수를 믿으면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믿는다는 것입니까? 요한복음 3장 16절이 너무 유명해서, 우리의 눈이 요한복음 3장 16절에만 집중되어 있지만 사실은 그 전 구절이 중요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4-15)

예수님께서 갑자기 모세가 광야에서 장대 끝에 달린 구리 뱀 이야기를 하십니다. 이 사건은 민수기 21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백성들이 광야에서 원망하다가 뱀에게 물려서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여, “장대 끝에 구리 뱀을 달아서 높이 들어라. 그리고 그 구리 뱀을 쳐다보는 사람은 모두 나을 것이라고 말해주라”고 말씀하셨습니 다. 그 말을 믿고 쳐다본 사람은 나았고, 그게 말이 되냐고 믿지 않고 쳐다보지 않은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그럼 장대 위에 구리 뱀을 본 사람은 왜 다 살았을까요?

장대 위의 구리 뱀은 전쟁에서 높이든 깃발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전쟁에 나가서 깃발을 높이 들면 같은 군대가 그 깃발 아래로 모이게 됩니다. 깃발은 군대를 깃발 아래로 모으는 기능을 합니다. 이처럼 구리 뱀이 장대 위에 높이 달리는 순간, 그 구리 뱀을 쳐다본 사람들 속에 있는 뱀의 독이 그 구리 뱀이 달린 장대 밑으로 모여드는 것입니다. 뱀을 들었으니 뱀들이 모여든 것입니다. 장대 위의 구리 뱀을 쳐다보자 사람들 몸속에 있는 뱀의 독이 빠져나가 장대 위 구리 뱀에게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그게 말이 되냐고 믿지 않은 사람은 그 뱀의 독이 그대로 몸속에 있어 다 죽었습니다. 따라서 장대 위 구리 뱀은 죽음의 독을 모으는 집합장소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직접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사건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죄를 그 십자가 밑으로 소환하셨습니다. 저를 믿는 자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마다 사망의 저주가 그 십자가 밑으로 옮겨지는 것이고, 그 죄를 예수님이 짊어지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죽을 죄가 예수님께로 옮겨짐으로 우리의 죄가 사라진 것입니다. 이것을 이사야 53장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6)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십자가 위에 달린 예수님에게 옮겨버리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에게 있던 사망의 저주가 십자가 위에 달린 예수님께로 옮겨져서, 예수님이 우리의 저주를 몸에 짊어지고 저주받은 모습으로 십자가 위에서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에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3)

그 저주는 예수님의 저주가 아니라 우리의 저주를 십자가 위로 소환하신 것입니다.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산다는 말을 믿고 쳐다본 사람은 다 살았던 것처럼,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는 자는 다 영생을 얻게 될 것 입니다. 예수님이 그 십자가 위로 우리의 모든 저주를 가져가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첫 번째 출생은 어떤 부모를 만났는지 모릅니다. 좋은 부모를 만난 분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누구인지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고아로 살아온 분들도 있을 것이고, 차라리 고아의 처지가 나을 정도로 부모로부터의 학대를 받고 자란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장 아픔을 준 사람이 놀랍게도 부모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첫 번째 출생이 어떻든 상관없이, 가장 큰 복된 소식은 그 사람에게 다시 태어날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경험 해보지 못했던 부모를 만날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고 예수님이 이 땅까지 내려오신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해진 운명을 확실하게 바꿀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 정해 진 운명이 무엇입니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정해진 운명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그냥 살다가, 죽으면 그 후에는 지옥으로 가는 심판이 있습니다. 이것에서 예외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살아가는 어느 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경험을 하게 되면, 자녀는 아버지의 집으로 가게 됩니다. 그게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죽어서 갈 집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만듭니다. 그럼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두 가지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The Lord–주인)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The Savior–구원자)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9)

예수님을 나를 사망에서 살리시는 구세주로, 내 인생의 주인으로 믿는 그 믿음입니다. 이 믿음 때문에 하나님이 그 순간 하나님이 아니라,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나를 낳아준 육신의 부모님도 고맙고 귀하지만, 그 부모님은 연세가 들면 나를 떠나 돌아가십니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영존하시어 영원까지 여러분을 지켜주시는 부모입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다윗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시 27:10)

홀어머님은 제가 유학 갈 때 공항까지 나오셔서 목 놓아 우시면서 아들 을 보내셨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미국까지 따라오셔서 저의 가는 길에 단 한순간도 떠나지 않고 지켜주셨습니다. 부모님은 저에게 이 세상을 주셨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이 세상 다음에 만날 천국을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을 결코 가볍게 생각하지 마세요.

오늘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지 않고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졌다고 말합니다. 왕자는 왕의 권세를 자연스럽게 물려받듯, 자녀의 권세는 부모의 권세를 그대로 물려받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됨과 동시에 그 엄청난 권세까지도 우리에게 주셨다는 뜻입니다. 이름만 아들과 딸이 아니라 실제로 누리는 권세도 함께 주신 것 입니다.

여러분은 다시 태어나셨습니까? 교회를 몇 년 다니셨냐고 묻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태어나셨냐고 묻고 있습니다. 교회 봉사를 몇 가지 하시냐고 묻고 있지 않습니다. 거듭나셨냐고 묻고 있습니다. 혹시 이중에 교회만 다니고 아직 다시 태어나지 않은 분이 있으실까 하여 말씀드립니다. 절대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천국, 그런 세상이 어디 있냐고 반문하실 분들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죽으면 끝이지, 천국이 어딨고 지옥이 어딨냐… 그건 다 사람 겁주려고 만들어 낸 것’이라고 부인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뱃속의 아기를 생각해보세요. 뱃속의 아기는 이 넓은 세상이 있는 줄 모릅니다. 절대로 모릅니다. 1개월째는 성별이 구분이 됩니다. 2개월째는 아기의 심장 박동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3개월이 되면 머리, 몸, 팔다리가 구분이 되면서 사람다운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4개월이 되면 장기의 기능이 거의 만들어지고 소화기는 거의 만들어져 오줌도 누기 시작합니다. 5개월이 되면 아기가 손을 구부렸다 폈다합니다. 6개월이 되면 머리카락이 많아지고 눈썹도 생깁니다. 고개를 돌려 얼굴 방향을 바꾸기도 합니다. 7개월이 되면 대뇌에 주름이 잡히기 시작하고 바깥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됩니다. 8개월이 되면 뜻은 못 알아들어도 엄마의 말소리의 강약을 통해 엄마의 감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9개월이 되면 손톱과 발톱이 자라고 표정도 풍부해져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안구도 움직입니다. 외부 자극에 대해 좋고 싫음을 나타냅니다. 10개월이 되면 언제 태어나도 좋을 만큼 호흡 기능을 갖추고 저항력을 높이며 출산을 준비합니다. 1-3개월째는 바깥세상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아이지만, 8-10개월이 되 면 바깥세상이 있을 수도 있다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는 겁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바깥쪽에서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부모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사랑스러운 음성이 들리고, 사랑아~ 하고 부르는 소리도 들립니다. 쓰다듬는 그 부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포근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기에게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합니다. 엄마의 뱃속이 그가 아는 세상의 전부입니다. 그런데 10개월이 되자, 이상하게 몸이 뒤틀리고 천지 가 개벽하고, 이 좋은 세상에 종말이 찾아와 천둥과 번개가 치는 것 같고 하늘 과 땅이 뒤바뀌는 충격적인 시간이 다가옵니다. 아기는 자기의 운명이 끝난 것으로 알고 통곡하기 시작합니다. 자기의 모든 존재였던 그 정든 곳을 떠나야 한다는 슬픔에 안 나가려고 버티면서 엄마의 탯줄을 잡고 있지만, 다가온 종말은 야속하게 자기를 짓이기는 고통 가운데 몰아넣고 평생 살던 세상과 이별하게 됩니다. 그런데, 죽은 줄만 알았는데 눈을 떠보니,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 한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방긋 웃으며 안아주고, 친척들이 박수를 쳐주고, 침실에는 포근한 침대가 있고, 냉장고 안에는 먹고 싶은 음식들이 가득한 세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길거리에는 꽃이 피어있고, 하늘에는 새가 날아가며 인사를 전합니다.

얼마 전까지 아기에게 엄마의 태는 세상의 전부였지만, 엄연히 이 세상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전부인 것 같지만, 우리가 죽은 후에 가는 세상이 엄연히 있습니다.
8개월이 지나면 아기의 귀에 바깥세상의 소리가 들리듯이, 사람도 철이 들고, 나이가 들어가고, 죽음의 날이 가까워 올수록 흐릿하지만 죽음 후의 세상에서 오는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그럼에도 설마 그런 세상이 있겠냐고 다시 귀를 막고 애써 부인합니다. 그렇게 죽어서 심판대 앞에 설 때에 나는 몰랐다, 이런 세상이 있는 줄 진정 몰랐다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 1:19-20)

여러분, 죽음 이후의 세상이 반드시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반드시 있습니다. 뱃속의 아기가 아무리 힘주어 뱃속 바깥의 세상이 없다고 외쳐도 엄연히 이 세상이 존재하듯 아무리 죽은 뒤에 천국 지옥이 없다고 해도, 분명이 있는 것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세상에 살면서 반드시 해야 할 것은 예수 믿고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죽어서 아버지의 집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일보다 먼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해서 사망의 저주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사실을 믿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주인으로 모셔들이면 그 사람은 그 순간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마음에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최병락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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