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3장 14-21절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 불 같게 하였느니라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 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 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 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 하게 하려 함이니라”

1992년 10월 28일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과 기독교인들, 심지어 주요 방송사까지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한 장면이 있었습니다. 바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라는 이단단체 다미선교회에서 주장한 10월 28일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고 한 날짜였기 때문입니다. 80년대 후반부터 전국적으로 우후죽순처럼 일어난 다미선교회 사람들은 종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교회마다 사람들을 보내어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라고 하면서 이상한 환상과 증표를 보여주며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렸습니다.

모든 언론들은 그날 함께 모여 박수를 치며 찬송하며 재림을 기다리는 장면을 보도했고, 그 밤이 다 지나도록 그들이 주장한 재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가올 미래를 그렇게 수년 동안 준비했지만, 그들이 주장한 그 미래는 다가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들이 보여주었던 종말의 모습은 시작부터 잘못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주님의 재림의 날은 하늘의 천사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 시와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기 때문에 그날을 안다고 이야기하는 그 들이 이야기한 날짜는 잘못된 것입니다. 또한 그들의 자세도 잘못되었습니다. 교회들을 흔들어 놓고, 교회 안에 들어가 재림의 환상을 보는 사람들만 종말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하며, 가정을 모두 버리고 집단생활을 해야하며, 자기의 재산은 다 팔아서 단체에 귀속시켜야 하고, 사업과 직장을 다 버리고 함께 모여서 살아야하는 그런 방식으로 종말을 준비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족을 버리고, 사업장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을 전하는 중에 임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종말은 반드시 옵니다. 하지만 그 시와 때를 알지 못하고 도적같이 임하기 때문에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그 시간을 주일 오전 10시 예배시간에 맞추시지 않으시는 이상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순간이나, 해가 뜨는 아침에 오실 수도 있고 혹은 새벽 잠든 시간에 오실 수도 있습니다. 지구는 둥글고 예수님은 재림하시는 시간이 정 해져 있기 때문에 지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른 일을 하다가 다른 모습으로 재림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똑같은 형태로 한 자리에 모여서 찬송하면서 예수님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종말을 가장 잘 준비하는 자세는 매일 매일 자기의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잘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니는 직장에서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전도자는 전도를 하는 중에, 목사는 심방하거나 말씀을 전하는 중에, 선교사는 선교를 하고, 아이의 엄마 들은 아이를 육아하는 중에, 군인은 군대에서 훈련을 받고, 학생들은 열심 히 공부하는 중에 들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밭을 매다가 한 사람은 들림을 받고, 한사람은 들림을 받지 못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는 몇 개월 만에 전 세계로 삽시간에 퍼지는 팬데믹(Pandemic) 코로나19를 보면서, 세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종말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짧은 기간에 전 세계로 퍼져버린 전염병처럼 요한계시록에서 나타나는 종말이 단순히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가능하겠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람 들이 기술과 과학의 발전으로 점점 더 좋아진다고 생각해서 세상이 점점 더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2050 거주불능지구』라는 책을 보면, 앞으로 2050년까지 닥치게 될 많은 자연재해들과 인재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보고서 형식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북극의 빙하들이 녹으면서 잠자고 있던 무서운 바이러스들이 다 깨어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단지 ‘북극곰을 살립시다.’ 캠페인이 아닙니다. 심각한 환경오염과 잠자는 바이러스가 창궐해지는 것입니다.

로봇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게 되고,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의 말처럼 21세기는 이제 노동계급이 귀족계급이 되고, 비노동계급이 노예계급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말까지 합니다.

중세에는 귀족은 놀고 노예가 일했는데, 21세기에는 직장이 있는 사람이 귀족이고, 없는 사람이 노예가 되는 새로운 사회계층이 형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AI 인공지능에 대치되지 않는 사람만 직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새로운 빈곤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겠지요. 실제로 대니얼 내들러(Daniel Nadler)라는 청년이 ‘켄쇼 테크놀로지’라는 인공지능개발 회사를 차리고, 캔쇼(kensho)라는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었습니다. 캔쇼가 처음으로 뉴욕 멘하탄 월스트리트에 있는 골드만삭스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로봇이 취직이 된 것입니다. 그 로봇 한대가 취직되면서 대부분 아이비리그 대학 출신자들로 구성된 직원 598명이 해고를 당했습니다. 600명 해고명단 중에 2명이 남게 되었는데, 그 로봇을 관리하기 위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세상은 출렁이고 있습니다. 출렁이면서 이전에 없었던 세상이 우리 앞으로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난 1900년 동안 이루어진 산업기술보다 20세기 100년 동안 이루어진 기술이 더 많았고, 지난 100년 동안 축척해온 기술들이 2007년 스마트폰 등장에 새로운 세상이 열려 버렸습니다.

스마트폰이 세상에 출시된 지 13년, 온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사람들을 통제하고, 사람들은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해서 생활을 할 수 없어서 집으로 다시 가서 두고 온 핸드폰을 챙기고 나서 야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됩니다. 핸드폰이 불안을 주기도하고 평안을 주기 도합니다. 이런 세상을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라고 합니다. ‘폰 이 만들어낸 신인류’라는 뜻입니다.

예, 세상은 이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하고 있습니다. 예측 가능한 미래도 있고, 도무지 예측할 수도 없는 미래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모르고 맞이해야할 미래도 있고, 알고서도 준비할 수 없이 맞이해야할 미래도 있습니다. 세상은 보통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바뀌어서 바뀐 줄도 모르고 나중에야 아는데, 이번 코로나19 기간은 이 변화를 직접 보고 느끼고 체험하면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짧아지고 있습니다. 먼 미래라고 생각했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들이 현실이 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세상 이렇게 변해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오고 오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이 명령 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19-20a)

어떤 세상이 우리 앞에 다가와도 그 세상 속에서 이 명령은 그대로 지켜져야 합니다. 핸드폰 없이 생활할 수 없는 세상이 오면, 그런 세상에서 모 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찾아내서라도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이 사명은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천사를 보내어, “아, 아, 계획이 수정되었다 오버. 이천년 전에 명령할 때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달라져서, 계획을 수정하겠다. 땅 끝까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취소하고, 한 사람당 세 명씩 전도하면 내가 천국에 넣어주겠다 오바…” 이런 수정명령은 절대로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명령을 내리신 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손바닥위에 놓고 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사명을 수행하는 자들’입니다.

세상의 종말의 순간까지 세상이 어떻게 변해갈지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민족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다면, 그것을 다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 우리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길도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광야 같은 세상이 오고, 사막 같은 세상이 우리 앞에 도래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광야에서 길을 만드시고, 그 사막에서 강물을 흐르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기독교도 좋은 시절은 다 갔다는 말을 합니다.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여의도에 100만 명씩 모일 때 그때가 전성기였다고 말을 합니다. 십자가만 세우면 사람들이 몰려오던 그때가 한강의 기적이었고, 한국기독교의 전성기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마라” (사 43:18)

이것은 이전의 아름다운 역사를 잊어버리라는 뜻도, 무시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좋은 일들은 기록하여 후손들에게 가르쳐야 하지만, 이 구절에서 말씀하는 것은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거로 돌아가려고도 하지 말고, 그 과거가 최전성기였다고 그리워하지 말고, 그 영광에 묶여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백성들이 조금 후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을 예언합니다. 백성들이 묶여서 포로로 잡혀가고, 그곳에서 포로의 삶을 살아야 하는 비극을 선포합니다. 그때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있는 사람 중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 하나님이 우리를 언제 즈음 자유롭게 해주시고 이스라엘로 돌아가게 할 것인가?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이 애굽에 종살이 할 때 우리 조상들을 불러내어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그들을 뒤따라오던 애굽의 군사들을 홍해 안 에 모두 빠트려, 말도, 병거도, 군대도 모두 멸하시기를 꺼져가는 등불을 끄는 것 같이 하셨는데, 이제 우리에게는 똑같은 기적을 왜 베풀어 주시지 않는 것인가? 과거의 그런 멋진 해방의 날이 왔으면 좋으련만…”하면서, 과거에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행하셨던 그 기적을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사 43:14-17)

“너희가 예전 애굽에서 너희를 구원하던 그 시절에 역사한 나 여호와를 그리워하고 있다만 너희는 그때의 영광 정도로 나를 생각하지 마라. 바벨론에서 너희를 구원하는 그 구원의 역사는 이전에 없었던 역사로 내가 너를 구원해 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18절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사 43:18)

“이전에 너희 조상들에게는 내가 홍해를 갈라서 건너게 하고 광야 길을 걸어가게 했지만, 이제 너희에게 행할 나의 새 일, 새 역사는 차원이 다르다. 너희 조상은 40년 광야 길이 없는 길을 걸었고, 목마름과 싸웠고, 물 없는 곳으로 다녔지만, 내가 너희에게 장차 행할 일은 광야를 걸어갈 때 내가 광야에 대로를 만들어 줄 것이다. 사막을 건너게 될 때 사막에 강물을 터트려 주리라. 짐승까지 마셔도 모자람이 없도록 내가 내 백성,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해줄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약속인 것입니다. 19-20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 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사 43:19-20)

저는 이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큰 소망과 기대를 가지게 되었습니 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이 지상명령은 절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명령 뒤에 따라오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약속 한 가지가 있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생각해봅시다. 아무리 예측이 힘든 세상이 오고, 코로나19와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세상이 온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약속은 무엇입니까? 내가 너와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예수님이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세상이 바뀌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끝까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세상이 변하는 것이 중요 한 것이 아니라, 그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우리에게 주시는 그 사 명을 끝까지 완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어떤 희한한 세상이 우리 앞에 다가와도 그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모든 민족 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그 명령은 우리가 포기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포노 사피엔스’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핸드폰을 사용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핸드폰 을 손에 든 민족들에게 핸드폰을 통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기술을 개발 하고, 접근성을 높이고, 계속해서 좋은 컨텐츠를 제공해서 몇 편의 영상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그 가상의 공간을 마귀에게 빼앗기지 않고 주님의 나라로 확장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코로나19 우울증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 외롭고 힘듭니다. 사람이 그립고, 마음의 불안함이 커져만 갑니다. 복음을 전할 좋은 기회입니다. 은혜로운 설교 하나를 카톡으로 그 분에게 보내도 되고, 스토리워십을 보내도 되고, 은혜로운 간증을 보내어 도 됩니다. 세상은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도, 예수님을 모든 민족에게 전하라는 명령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바뀐다고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이 변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을 멈추어서도 안 됩니다. 지속적으로 선교사님을 파송하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지역마다 세우는 것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이 길과 거리 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를 멈추어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새생명 전도축제를 해야 하고, 선교주간을 보내야하고,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온라인 오프라인 수련회를 해야 하고, 우리에게 맡기신 세상으로 나가야합니다.

특히, 이번에 코로나19를 지나면서 우리 한국이 세계 속에서 얼마나 선진국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민낯도 보았고, 선진국의 대명사인 유럽 국가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런 한국의 선진화된 의료시스템과 국민들의 단합된 하나 됨의 모습을 온 세계가 보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사람 하면 문화강국, IT, 자동차 강국 뿐 아니라 의료강국이고, 선진시스템 강국으로 인식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세상 어느 나라를 가도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인정받고 대접받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위기이지만, 한국에게는 기회가 될 것이고, 한국이 세계선교를 위한 길이 대로로 열리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새 일을 위해 어떤 대로를 만들고 계시고, 어떤 강물줄기를 열고 계시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일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새 일을 직접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홍해를 건너던 그 화려한 과거를 추억하던 바벨론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너희를 향해 더 큰 일을 계획하고 있는데, 너희는 고작 홍해를 건너던 그 시절만큼만 되기를 원하느냐… 이전일은 기억지도 생각지도 마라. 아니, 이 전일이 생각도 안날 정도로 내가 더 크고 새로운 일을 행하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번에 특별새벽기도회를 드리면서 참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시는 새 길을 보았습니다. 광야에 대로와 사막의 강을 보았습니다. 정부 정책으로 부흥회의 길이 막히니, 우리 강남 본성전에 대로를 여셨습니다. 우리 강남 본성전의 저녁길이 막혀서 집회를 못하게 하였을 때 는 하나님께서 새벽에 대로를 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새벽에 매일 매 일 저녁과는 또 다른 은혜로 시간시간 부어주셔서 함께 부르는 찬양, 주제 가, 특송들에 큰 은혜가 있고, 주님 가르쳐주신 기도를 함께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소망을 키워지면서 마지막 날 금요성령집회 피날레에 서는 모두가 눈물을 터트리는 사막에 강물이 터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어떤 길이 막혀도 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내시면서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온 세상의 길들이 다 막히는 날이 와도 하나님은 또 새 일을 행하시고 새 길을 여시면서 광야에 대로를 사막에 강물을 터트리시면서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쉬지 않으시고 일하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월드사역 W.O.R.L.D의 다섯 가지는 예배로 뜨겁고, 목장으로 기도하고, 나눔으로 향기롭고, 선교로 영혼을 구원하고, 훈련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전혀 다른 세상이 우리 앞에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그 세상으로, 땅 끝까지, 모든 민족이 주님을 만날 때까지, 복음을 전하는 우리 교회 권속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전에 없던 세상에 이전에 없던 예배와 기도, 찬송과 권능으로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최병락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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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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