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5장 27-39절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 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 아 있는지라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 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 키러 왔노라… (중략)…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 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안타깝게도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점점 어린아이를 보기 힘들어지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없다는 것은 그 공동체의 미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공동체든 어느 시대든 어린아이가 없다는 것은 큰 아픔입니다.

옛날부터 집안에는 ‘삼성’(三聲)이 들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먼저는 ‘아이의 울음소리’요, 둘째는 ‘다듬이 소리’이며, 셋째는 ‘글 읽는 소리’입니다. 이는 가정에 ‘어린아이’와 ‘어머니’ 그리고 ‘배움’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러한 소리를 듣기 힘든 시대입니다. 아이가 있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아주 큰 복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8)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신 후에 축복하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하여 온 지면에 물의 심판이 임하게 되고 땅의 모든 생물이 멸절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노아와 그의 가족으로부터 다시 시작되는 새로운 시작에 하나님은 동일한 말씀으로 다시 한 번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 9:1)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믿음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지금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 복받은 자여!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 이와 같이 ‘믿음의 백성’이요, ‘의의 백성’된 우리는 적어 도 자식이 복이라는 생각을 놓쳐선 안 됩니다.

현재 우리는 세계 제일의 저출산 국가입니다.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이 많이 두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는 우리가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자라나는 힘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하나님의 축복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기 전에 분명히 “복을 주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들을 우리가 양육한다고 착각해선 안 됩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친히 기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 자체가 가정 가운데 주신 하나님의 복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덩이인 아이들이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어린아이가 없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18:3)

교회에 어린아이가 없다는 것은 교회 안에 큰 자가 없다는 것이요, 장성한 자가 없이 모두 작은 자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없다는 것은 천국 백성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린아이가 없다는 것은 실로 매우 큰 문제입니다. 실제 아이가 없다는 것도 큰 불행인데 더 암담한 것은 성경에 서 말하는 ‘성경적인 어린아이’가 교회 안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어린아이가 누구입니까?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마 18:4)

성경에서 말하는 어린아이는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이는 하나님 의 은혜 없이는 결단코 구원의 자리로 갈 수 없는 자를 말하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말씀을 고백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 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

이런 어린아이가 교회에 넘쳐야 합니다. 장로도, 권사도, 목사도 이런 어린아이로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엔 그런 어린아이가 없습니다.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바리세인과 서기관뿐입니다. 그럼 갈등과 싸움뿐이요, 용납하고 화목하는 것은 고사하고 서로 비난하고 정죄할 뿐 입니다. 이 모든 현상은 성경적인 어린아이의 부재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바리세인과 서기관의 지적에 주님은 이 땅에서 와서 자신이 해야 할 사명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저들로 하여금 어린아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되어야 하나님 앞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레위가 예수를 위 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 라” (눅 5:27)

여기서 ‘레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의 제자 ‘마태’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마태’라 기록하였으나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레위’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레위’라는 이름의 뜻은 ‘연합’입니다. 그리고 ‘마태’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전적인 은혜를 고백하는 것으로 ‘자기 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레위(마태)는 자기 의가 아닌 전적인 주님의 은혜로 예수님과 연합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자기 의가 여전치 가득하였던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이라고 하는 자가 죄인과 함께 앉아 있는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을 비방하였습니다. 성경적 어린아이가 되지 못한 그들은 정죄할 뿐이었던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 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눅 5:30)

어린아이로 살지 못해 비방하는 그들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 5:31-32)

주님은 “나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왔노라”고 말씀하시며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임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 세 가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1) 금식의 비유[34-35절] : 너희가 아무리 금식하여도 너희가 스스로 ‘의’에 이를 수 없다.
2) 새 옷과 낡은 옷의 비유[36절] : 너희가 아무리 노력해도 낡은 옷이 새 옷이 될 수 없다.
3) 새 포도주 비유[37-39절] : 너희가 아무리 노력해도 새 포도주를 옛 부대에 담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느냐?

주님은 그 어떤 누구도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거듭날 수 없음을 말씀 하신 것입니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4:10-12)

나의 의가 아닌 오직 예수로만 우리는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성경적인 어린아이가 된 사람이라면 모든 것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 10:9-15)

이 말씀은 우리가 자칫 오해할 수 있습니다. 바로 ‘내가 믿어서 구원에 이른다’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했다’는 것조차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입 니다. 즉 하나님이 부르지 않으시고, 또 전파자를 보내지 아니하셨더라면 예수를 주로 시인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전적인 그분의 은혜로 구원시켜 주셨음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적인 ‘어린아이’입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는 이 땅에서도 ‘어린 아이’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로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마 18:5)

‘어린아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백성이요, 내가 어린아이니 마땅히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자를 말합니다. 어린아이를 영접한다는 것은 부 족한 자를 용납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는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동일한 어린아이이기 때문입니다. 마더 테레사(Mother Teresa)는 “내가 빈민들과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저들과 내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함께 따라 해 보십시다! “나는 본래 어린아이!” 우린 어린아이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 땅의 교회가 진정 주님의 교회가 되려면 어린아이처럼 오직 주님을 따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조금 커지면 곳곳에 어린아이를 찾아보긴 힘듭니다. 저마다 자기 의를 내세우는 자들만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 교회는 실제 이런 어린아이를 찾기가 너무 힘듭니다. 갈등이 그치지 않습니다. 모두가 자기 ‘의’만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 어린아이 아니니?” 우리는 모두가 다 어린아이입니다. 어린아이로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마태복음 18장을 보시겠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마 18:6-7)

어린아이로 살지 못하는 자는 결국 사람을 ‘실족’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일에는 반드시 ‘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어린아이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을 보십시오. 벌써 말이 거칠고 오만함이 넘칩니다. 그러나 성경적 어린아이는 말부터가 이미 힘과 용기를 줍니다. 절대로 남을 실족하게 하지 않습니다. 실제 하나님의 복이 있는 우리는 어린아이를 잘 양육해야 합니다. 한 명, 한 명이 다 복으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는 우리가 어린아이로 살 아서 어린아이를 영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제 교회 안에 다시 ‘삼성’(三聲)이 들려지길 원합니다. 어린아이 같은 ‘찬송의 소리’, 어린아이 같은 ‘기도 소리’, 어린아이 같은 ‘말씀의 소리’가 교회 안에 가득하길 소망합니다. 어린아이는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내 힘과 판단으론 단 한 걸음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따라 해 보십시다! “나는 어린아이!” 우리 모두 이런 어린아이 로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임석순 목사

 영국 웨일즈대학교 철학박사
(現) 기독교 사이버대학교 총장
(現)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원장
(現) 한국중앙교회 담임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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