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6장 14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지난 십수 년간 우리 주변에서 가장 유행한 것을 들자면 아마도 ‘해외여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관광공사의 발표에 따르면 해외 여행객 수가 2015년 1,931만 명, 2016년 2,238만 명, 2017년 2,649만 명으로 매년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매년 명절 때마다 인천 공항의 출국인 수가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뉴스를 자주 들으셨을 겁니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2021년에는 3,000만 명은 우습게 넘었을 것 같습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많은 국민들이 해외여행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해외여행의 붐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과거 세대는 미래를 위해 뭔가 저축을 했다면, 요즘 세대의 소비 경향은 현재를 즐기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0%에 가까운 금리의 영향이 크겠지요.

그런데 저는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바로 ‘인정, 자랑의 욕구’입니다. 뛰어난 성능의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일상의 순간을 쉽게 남길 수가 있게 되었고, 그것을 SNS 등에 실시간으로 올릴 수 있게 되어 자신의 자랑거리들을 많은 사람에게 드러내기가 매우 쉬워졌습니다. 기어이 긴 줄을 서서 맛집 음식을 SNS에 올리고, 아름다운 여행지에서 인증 샷을 찍어 올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좋아요’를 통해 인정, 자랑의 욕구를 채우는 것이지요.

너무 부정적인가요? 사실 전 이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 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그러나 전도자의 말처럼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통째로 희생하는 것보다, 때때로 여행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쌓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전 3:12-13)

어찌 됐건 사실 여행뿐 아니라, 오늘날 사람들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신의 삶을 드러내며 자랑합니다. 여행, 음식, 운동, 취미 등등 종류도 참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지점에서 함께 주목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바로 그 자랑엔 ‘내 삶의 가치’가 담겨 있다는 점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나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동시대 사람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나도 소유하고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그것을 증명하려 합니다. “봐, 나도 가지고 있다고! 내가 이런 사람이야!” 그래서 내가 자랑하는 것은 곧 내가 그것을 ‘가치 있게 여긴다’는 것으로 증명합니다. 예컨대 명품, 자동차, 집, 자녀, 여행 등등. 내가 그것을 계속해서 자랑한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그것을 가치 있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내가 부여한 가치를 통해 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것이죠.

바로 이 지점에서 이 땅을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별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린 스스로 정직하게 질문해야 합니다.
“우린 진정 가치 있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가?”,
“우린 진정 가치 있는 것을 자랑하고 있는가?”

자랑하는 행위 자체가 결코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끊임없이 헛된 것들을 자랑하고 있다면 분명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한 삶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나아가 참된 회개와 돌이킴의 열매는 내 삶으로 진정 가치 있는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에 보낸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 6:14)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주어진 구원의 복음만으론 충분치 않고, 거기에다 율법의 준수를 더 해야 구원이 완성된다고 가르쳤던 거짓 교사들 때문에 갈라디아교회는 바울이 전해준 복음에서 떨어져 나갈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이러한 갈라디아교회의 중대한 위기 때문에 보낸 편지가 갈라디아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전체를 통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밖에 없음을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때론 거짓 교사들에게 거친 말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무언가를 더한다면 그것은 더는 복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절대 타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다른 서신서와는 달리 전투적으로 복음을 변증한 바울이 이 편지를 정리하면서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이 고백은 두 가지 면에서 의미심장합니다.

1) 먼저 왜 바울은 ‘부활’이 아닌 “십자가”를 자랑한다고 했을까요?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부활이 자랑할 만합니까? 십자가가 자랑할 만합니까? 부활은 명백히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드러난 사건입니다. 반면에 십자가는 고난, 죽음, 수치, 패배 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2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십자가의 의미가 세탁(?) 되어서 우린 자랑스레 액세서리로 하고 다니지만, 당시만 해도 십자가는 최악 중에 최악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종교적 상징으로는 결코 쓸 수 없는 형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능력과 영광의 상징인 부활을 놔두고, 굳이 십자가를 자랑한다니요? 자랑은 가치 있는 것, 자랑할 만한 것을 하는 것 아닙니까? 왜 바울은 십자가를 자랑한다고, 그것도 그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라고 담대히 선포했을까요?

제 아들은 축구를 엄청나게 좋아합니다. 당연히 손흥민을 아주 좋아합니다. 제 아들의 꿈 중의 하나가 영국에 가서 손흥민 경기를 직접 관전하는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봤습니다. 아들이 정말 영국에 가서 손흥민 경기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손흥민이 경기 후에 제 아들과 사진도 찍고 사인도 해준 것입니다. 제 아들이 얼마나 좋아할까요? 얼마나 영광이겠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친구들에게 얼마나 자랑하겠습니까?

그런데 한번 더 이상한 상상을 해봤습니다. 손흥민이 제 아들을 위해서 직접 영국에서 한국으로 찾아온 겁니다! 천문학적인 몸값을 가진 선수가 자신의 황금 같은 시간과 돈을 들여 직접 제 아들을 찾아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겁니다. 이건 뭐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제 아들에게 있어 영광 중에 영광이겠죠.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정점에 이른 사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좀 죄송한 얘기지만(?), 하나님이시니까 사실 그 정도는 하셔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영광 가운데 부활하게 하신 것이 뭐 좀 대단하긴 하지만 그분이 그 정도는 하셔야 하나님이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죄악 된 이 땅에 오셔서 인간과 똑같은 삶의 무게를 지니며 사셨고, 무엇보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사건입니다. 이 은혜와 사랑의 깊이를 정녕 깨닫는다면, 우리가 어찌 그 십자가 앞에서 두 발로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 십자가 앞을 떠나서 가는 곳곳마다 어찌 그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며 자랑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부활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증명된 사건이라면, 로마서 5장 8절이 알려주듯,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릴 얼마나 사랑하시고, 그래서 우리를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기시는지 증명한 사건입니다.

제 아들이 영국 직접 찾아가서 만난 손흥민보다, 나에게 직접 찾아온 손 흥민을 비교할 수 없이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친구들에게 자랑할 것처럼, 바울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직접 찾아오신 사건, 그래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증명한 사건이기에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두 번째로 의미심장한 것이 있습니다.

2) 바울은 사실 자랑할 게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요, 당대 최고의 율법 학자였던 가말리엘의 문하생에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계시와 영적 체험 또한 그 누구보다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자랑할 것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증명된 그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고 나니 그 모든 것이 배설물처럼 여겨졌다고 고백합니다(빌 3:8).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자랑했던 그 모든 것들이 사실 내 진정한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을 다 소유했다 한들, 나 한 사람의 가치에 비할 수 없이 하찮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내 가치가 증명될 수 있음을 바울은 분명히 깨달은 것입니다. 그 무엇으로도 그의 영혼을 다 채울 수 없었던 바울에게 이것이야말로 복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그의 진정한 자랑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것, 복음을 자랑하고 전한다는 것은 내 삶이 그 복음의 가치를 믿고, 인정한다는 증거입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나라는 존재의 가치가 증명된 것을 믿어야 그 십자가를 자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내 삶의 가치를 찾은 사람만이 그 십자가를 자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랑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삶의 가치를 어디서 찾고 계십니까?

전 여러분을 온 마음을 다해 축복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바울의 고백처럼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분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복이 있을까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삶의 가치를 회복하고, 그 복음 안에서 이전 것은 지나가고 온전히 새로이 창조된 피조물로 사는 삶만큼 복된 삶이 어디 있을까요?

소망하기는 저와 여러분의 삶에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이 더욱 충만하게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주신 복음의 가치를 분명히 깨닫고, 그 안에서 내 존재 가치를 깨달아,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높이는 영광된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의 남은 평생이 그런 복된 삶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삶을 통해 여러분은 무엇을 자랑하고 계십니까? 다 좋은 것일 겁니다. 때때로 자랑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진정한 자랑은 그러한 것들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세상의 자랑도 천하보다 귀한 내 영혼의 가치를 한끝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의 가치를 증명해줍니다. 가치는 지불된 값을 통해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산 존재임을 깨닫고, 복음이 내 삶에 참 복음이 되어,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을 자랑하는 이 교회와 성도님들 되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노한석 목사 하늘벗교회

작성자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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