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장 22-32절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첫 번째로, 찬송은 밤에 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밤은 찾아옵니다. 인생의 밤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끔찍한 밤을 지나온 사람들도 있고, 그 밤을 지금 지나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 밤 앞에 서서 어두워져 오는 저녁에 있는 사람이 있을 뿐, 모두 밤을 지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매일밤 찾아오는 밤을 우리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처럼, 인생의 밤이 찾아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마주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밤이 찾아왔다고 인생을 잘못 산 것도, 하나님의 징벌도 아닙니다.

누구나 밤이 오지만, 밤이 찾아왔을 때 목 놓아 울고만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럴 때일수록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노래는 밤에 불러야 제맛이죠. 찬송은 밝은 대낮에 부르는 것보다 모두 잠든 시간에 부르는 것이 은혜롭습니다. 찬송은 마음이 기쁠 때 부르기보다, 가슴에 눈물이 흐를 때 부르는 찬송이 더 은혜롭습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멀리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인생의 밤에 부르는 찬송은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보통 밤을 만난 사람들은 밤새도록 웁니다. 세상 다 끝났다고 웁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인생의 밤이 찾아올 때 오히려 찬송을 합니다. 밤이 다 지날 때까지 노래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혔고, 밤이 찾아왔습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온몸의 뼈는 제각각 아픈 소리를 냅니다. 모든 뼈가 아프다고 소리치니 그 개수를 셀 정도입니다. 그때에 바울과 실라는 울지 않고 노래합니다. 25절에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어두운 밤 감옥 안에서 울리는 노래에 하나님의 귀가 번쩍 열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지금 한밤중을 지나고 계십니까? 찬송을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세상 어디에도 웃음이 없고 즐거움이 없고, 소망이 사라졌을 때, 교회도 어둡고 즐거움과 기쁨이 사라지고 침울한 분위기로 예배가 이어진다면 그것은 시대를 향한 교회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절망을 이야기하는 곳이 아니라 소망을 이야기하는 곳이고, 어둠을 이야기하는 곳이 아니라 빛을 이야기하는 곳입니다. 슬픔을 이야기하는 곳이 아니라 찬송을 이야기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 와서 여러분 영혼에 빛을 가득 담고 세상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명감으로 예배드리십시오. 이 성전에서 영혼이 회복되고, 육신이 회복되고, 믿음이 회복되어 나가면 지금 어두운 세상, 지금 절망한 세상에 여러분이 빛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어두울수록 빛이 밝게 빛나는 것처럼 큰 기쁨으로 이전에 없던 예배를 사명감을 가지고 드리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소생케 하는 은혜가 지금부터 모든 예배 가운데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흔들 시간입니다.

두 번째로 찬송은 묶였을 때 하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차꼬에 묶였습니다.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행 16:24b)

우리는 찬송을 문제가 해결되고 풀려났을 때 하지만, 진짜 찬송은 묶였을 때 하는 것입니다. 환경에 묶이고, 형편에 묶이고, 발이 묶이고, 손이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묶이지 않은 곳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입. 입을 묶을 자 없으니, 입으로 찬송하는 것입니다. 아마 어쩌면 우리 사는 날 동안 가장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일은 찬송일 것입니다. 누가 찬송을 못하도록 입에 재갈을 물려놓아도, 마음속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이 찬송입니다. 흥얼거리기만 해도 찬송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찬송을 묶을 자가 없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찬송한 이유는 발이 묶여서 발로 무엇을 할 수 없고, 손이 묶여 손으로 무엇을 할 수 없으니, 묶이지 않은 것을 생각하니 입이었고 입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니, 기도와 찬송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감옥에 묶어 둘 수 있어도, 그들의 찬송은 감옥에 묶어 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찬송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기분이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한가운데, 한밤중에, 여러분의 삶의 문제가 묶여 있을 때, 그때 하는 것입니다. 그 찬송을 듣고 하나님께서 묶인 것을 풀어주실 것입니다.

세 번째로 찬송은 억울할 때 하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붙잡혀 죄수로 들어왔습니다. 죄를 짓기는커녕, 귀신들려 고통스러워하는 여자아이를 고쳐준 선행을 베풀고도 오히려 그것 때문에 오해를 받아 감옥에 들어왔습니다. 이것만큼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찬송은 기분 좋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억울할 때 하는 것입니다. 누명이 벗어질 때 하는 것이 아니라 누명을 뒤집어 쓸 때 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찬송 모음집인 시편도 대부분 억울할 때 지어 부른 찬송입니다. 얼마나 많은 탄원시들이 있습니까? 억울할 때는 이를 갈 때가 아니라 찬송할 때입니다. 원수의 얼굴을 생각할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때입니다. 욕을 할 때가 아니라 찬송을 하고 하나님께 억울한 마음을 쏟아놓으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고 미리 찬송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찬송은 찬송할 수 없을 때 하는 것이 찬송입니다

찬송을 부를 수 있을 때 찬송하는 찬송보다, 부를 수 없는 상황에서 부르는 찬송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찬송을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은 가장 깊은 밤에 가장 암울하고 어두울 때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찬송할 수 없을 때 그때야 비로소 찬송을 시작하고 몸을 움직여 춤을 추어야 할 때입니다.

여호사밧 임금 때 아람 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 전쟁의 맨 앞자리에 찬송하는 자들을 앞세우고 전쟁에 나갔습니다. 찬송은 전쟁에 승리하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시작할 때, 전쟁이 가장 절정에 다다랐을 때 승리를 위해 부르는 것입니다. 그때 상상도 못하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의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주인공 조르바 어린 아들이 죽게 됩니다. 그런데 조르바는 그 아들의 주검 앞에서 갑자기 춤을 춥니다.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했지만, 그가 미치지 않기 위해 춤을 춘 것입니다. 그가 춤을 추지 않았다면 정말 미쳤을지도 모릅니다. 춤이 그를 구원해 준 것입니다. 가장 어두운 순간의 춤과 노래가 그를 살려준 것입니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모든 부족 식구들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면서 그 노래에 맞추어서 춤을 추면서 시작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부족 식구 중의 한 사람이 아파서 눕게 되거나, 우울증에 걸려서 의기소침해지면 부족의 치료사가 찾아가서 병을 진단하고 치료를 해주는데, 보통 의사들은 “어디가 아프냐?”라고 물어보지만, 이 부족의 의사는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마지막으로 노래를 부른 것이 언제입니까?”하고 묻는답니다. 노래가 멈추면 죽는 것입니다. 노래가 흘러나오면 춤이 따라 나오고, 노래와 춤이 죽어가는 사람도 살려내는 것입니다.

찬양은 부를 환경이 되었을 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부를 수 없는 환경을 만났을 때 오히려 더 힘차게 불러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낼 수 있습니다. 힘들어하는 성도님들에게 아프리카 의사처럼 물어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찬송을 부른 적이 언제입니까?”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그때마다 나를 이끌고 나를 살려준 찬송들이 있습니다. 이유도 모르게 입안에 맴돌고 머물러서 아무 생각 없이 불렀던 그 찬송들이 지나고 보면 나를 살렸고, 나를 견디게 했고, 이기게 했고, 이곳까지 오게 한 찬송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의 찬송들이 있습니다.

스무 살, 신학교 처음 들어갔을 때 그렇게 뜨겁던 믿음이 신학 책 몇 권 읽었다고 머리가 굵어져서 하나님과 관계가 서먹해지고, 끝까지 읽지도 않은 책을 옆구리에 끼고, 모든 것을 깨우친 것처럼 신학교 오지 않은 친구들에게 나도 모르는 소리로 잘난 척을 해댔던 그 시절에 저의 영성은 메말라가고 고등학교 때 한없이 순수하고 뜨거웠던 믿음은 왜 그리 빨리 식던지…그러다가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참석한 학교 채플에서 함께 불렀던 찬송에 저는 그만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흐느끼다 못해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기도하며 귀를 기울이시고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네… 새 노래로 부르자 랄라라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새 노래로 부르자 하나님 사랑을”

한 학기 내내 제 입에 담아두고 불렀던 찬송입니다. 그 찬송이 저의 신학교 시절을 이끌어 주었습니다.
제가 군대에 특공대에 차출되어 가서 죽을 고생을 할 때, 정말 힘든 시간들을 보낼 때, 군대 생활 동안 제 입을 떠나지 않고 긴긴밤 그 먼 거리를 어둠 속에서 행군할 때도 혼자 부르고, 걸레로 내무반 청소를 할 때도 부르고, 머리 박고 얼차려를 받을 때도 마음속으로 불렀던 군대에서 저를 살려준 찬송이 있습니다.

“내가 어둠 속에서 헤맬 때에도 주님은 함께 계서, 기뻐 찬양하네 할렐루 할렐루야”

제가 유학을 가서 아무것도 없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면서 공부를 할 때, 시집오자마자 3주 만에 부모를 떠나 미국으로 남편을 따라 유학 와서 도착해서부터 태국 식당에서 웨이터, 가발 가계, 도너스 가게, 흑인 미용품 가게 점원 등등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일을 하면서 남편의 공부를 돕던 아내, 저와 아내가 그 힘든 IMF 기간 유학 생활을 이기게 해준 것도 아내에게 배워서 부르게 된 찬송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거실에 앉아 시간 날 때마다 불렀습니다.

“나 아무것 없어도 주님이 있고, 나 모든 것 할 수 없으나 주는 다 하시네. 나 무력해도 주는 강하시고 나 어딜 가야 좋을지 모를 때 주 나의 빛 되시네. 나 슬픔에 잠기어 낙심될 때 선하신 주의 팔 날 이끄시네….”

시작도 끝도 비슷해서 열 번, 스무 번도 반복해서 부를 수 있는 이 찬송을 부르고 또 부르면서 유학 생활을 이겨내었습니다. 지나고 보면, 어려운 순간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그때마다 이길 수 있는 찬송을 저의 입에 넣어두시고, 그냥 하루 종일 입안에서 부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찬송이 날 살린 것입니다. 그 찬송 때문에 하나님이 일하시고, 하나님이 앞서가시고, 개척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목회를 오늘날 세미한교회까지 이르게 하시고, 그리고 이제는 이 귀하고 복된 강남중앙침례교회로까지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요즈음 저는 이 코로나를 지나면서 제일 많이 부르는 찬송이 있습니다.

“날이 저물어 갈 때 빈 들에서 걸을 때 그때가 하나님의 때
내 힘으로 안 될 때 빈손으로 걸을 때 고백해 여호와 이레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주께 아끼지 않는 자에게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하루에도 몇 번이고 이 찬송을 마음으로, 입으로 부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찬송은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찬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찬송을 했습니다. 어두운 밤에 울지 않고 찬송했습니다. 두손 두 발이 다 묶였을 때 오히려 찬송했습니다. 억울해도 가슴을 치고 어금니를 깨무는 대신 입을 벌려 찬송했습니다. 감옥은 그들의 몸을 가둘 수는 있어도 찬송은 가두지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감옥 문은 그들의 찬송소리에 견디지 못했습니다. 아마 감옥 문도 감동을 받아 더 이상 이들을 가두어 둘 용기가 없었나 봅니다. 그들의 찬송 소리가 하나님께 들리니, 하나님께서 지진을 일으켜 감옥 문을 열어버리셨습니다. 나의 찬송은 하나님을 춤추게 하고, 춤추시는 하나님께서 내 문제 위를 뛰어다니시느라 지진이 나고 닫힌 문제의 감옥은 열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찬송은 내 문제 위에서 하나님을 춤추시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섯 째 다른 사람들이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만 묶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닙니다. 내가 힘들면 모든 사람이 힘들고, 나라에 불경기가 찾아오면 모든 사람에게 불경기가 찾아옵니다. 내가 묶여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문제도 다 묶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울고 있는데 나는 찬송하고 있습니다. 울던 사람들이 울음을 멈추고 찬송하는 여러분의 찬송을 듣게 됩니다.

감옥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어두운 밤이 찾아오면 백이면 백 모두 억울해서 울고, 그리워서 울고, 신세 때문에 울면서 적어도 몇 날 며칠은 그렇게 보내는 것이 당연한데, 장기수들은 새로운 죄수가 들어오면 첫째 날에 뭐하고 둘째 날에 뭘 할지 훤하게 꿰뚫고 있는데, 오늘 들어온 두 명의 죄수는 울기는커녕 노래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무슨 노래를 하는지 그 노랫말은 또 얼마나 궁금하겠습니까? 우는 대신 노래하는 이 두 사람의 노래를 그 감옥 안의 모든 사람들이 숨죽이고 듣고 있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행 16:25)

여러분의 찬송은 누군가가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불러주는 찬송 때문에 누군가는 죽으려고 하다가도 살 소망이 생기고, 의욕이 생기고, 자신감이 생깁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찬송을 했더니, 바울과 실라의 감옥 문만 열렸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감옥 문이 다 열렸습니다. 나의 찬송은 다른 사람의 문제도 해결 받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행 16:26)

나의 찬송은 다른 사람의 문제까지도 해결해 줍니다. 이 즈음 되면, 염려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옥문이 다 열리면 어떡하냐? 흉악한 범죄자들의 차꼬가 풀리면 범죄자들이 다 탈옥할 거 아니냐?’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 중에 한 명도 줄행랑을 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행 16:27-28)

저는 그들이 찬송을 듣는 중에 예수님을 믿게 되고 삶의 변화가 일어났다고 봅니다. 감옥 문이 열린 것을 보고도 도망을 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죄수들. 예수를 만나지 않고는 죄수들이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찬송은 나의 문제만 해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 곁의 사람들의 문제도 해결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어둠 속에서 부르는 찬송의 힘입니다. 세상은 지금 밤이라고 합니다. 분명 밤을 지나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세상은 밤이 왔기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여기저기 곡소리가 들려오는 이때에 믿음의 사람들은 이럴 때일수록 이전에 없었던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찬송이 하나님의 귀에 들려, 하나님을 춤추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전에 없던 찬송을 듣고 어찌 여러분의 문제 위를 뛰시며 춤추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밤이 깊을수록 찬송 소리는 더욱 커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입에 찬송을 담고 하루 종일 부르십시오. 찬송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이전에 부르지 않았던 더 힘찬 찬송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문제들이 찬송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차기를 축원합니다.

최병락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작성자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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