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장 20-26절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1.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

오늘의 본문 22절 말씀에 보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아담 한 사람이 죄를 범한 결과, 그에게서 태어난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되었습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은 인류의 대표 선수였습니다. 혹자는 “왜 우리가 아담의 죄 때문에 다 죄인이 되어야 하나?, 이건 억울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완벽한 인간이었습니다. 완벽한 육체와 고결한 인품과 탁월한 지성을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만약 그런 아담이 죄의 유혹에 무너졌다면 우리 중에 그 누구도 무너지지 않았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 누가 나가서 뛰어도 현재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 정도로 못 뛰듯이 말입니다. 아담은 인류의 대표 선수였고, 그가 실패했으면 우리 모두 실패한 것입니다.

아담의 죄는 그 한 사람에게서 그치지 않고 그에게서 태어난 모든 인류를 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가 이 죄에서 파생했습니다. 죽음의 문제, 전쟁의 문제, 고통의 문제, 갈등과 미움의 문제, 환경 파괴의 문제 등 모든 문제가 죄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공해가 많은 지역에 살면 할 수 없이 미세먼지를 맡고 살아야 하듯이 죄 가운데 태어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죄의 영향력 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죄의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항상 인간은 저질러 놓고 수습을 못 합니다. 수습은 하나님이 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그 수습을 위해 하나님으로서도 큰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목숨을 내어 놓지 않고서는 다른 어떤 길이 없었습니다. 죄는 죄의 뿌리가 되는 핵심 세력을 멸망시켜야 완전히 해결이 됩니다. 죄의 뿌리가 되는 핵심 세력은 바로 죽음의 권세, 마귀의 권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셨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담이 열어버린 죄의 문을, 주님은 십자가로 닫아 버리셨습니다. 아담을 통해 죄가 들어왔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가 쫓겨 나갑니다. 아담은 우리 모두를 죄인으로 만들었지만,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의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담의 죄로 인한 저주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인해 은혜로 바뀐 그곳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아담의 키워드는 ‘저주’와 ‘죽음’이었지만, 예수님의 키워드는 ‘은혜’와 ‘생명’입니다.

아담이 우리의 대표자라고 했을 때, 우리는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그가 지은 죄의 결과를 우리가 다 덮어쓰고 죄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대표자라고 할 때, 우리 가슴은 감사로 가득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은혜의 결과를 우리가 다 누리게 되어 죄에서 자유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은혜는 죄로 물든 세상의 영적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버렸습니다. 미움과 다툼과 이기심이 가득한 곳에도 십자가 은혜가 흘러가면 사랑과 축복의 땅으로 바뀝니다.

사탄은 태초부터 끊임없이 사람과 하나님 관계를 이간질해왔습니다. 특히, 끊임없이 죽음의 공포를 집어넣어 인간을 두려움의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갈보리 십자가에 주님이 못 박혀 죽게 함으로써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탄은 미래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있었다면 결코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끝났다고 생각했지, 결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실 줄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그 어떤 인간도 꺾지 못했던 죽음의 권세를 무너뜨리는 엄청난 사건입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4-55)

부활은 사망의 권세를 순식간에 꺾어버리는 통쾌한 승리입니다. 한마디로 주님은 죽음을 죽이신 것입니다. 사망의 권세는 세상의 모든 인간에게 절대적 권세를 휘두른 폭군이었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죽음의 위협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싸우면 가장 무서운 말이 “너 죽고 싶니?”, “너 죽인다”였습니다. 또 우리가 보통 실패했다, 어려워졌다는 표현을 할 때는 “난 이제 죽었다”라고 합니다. 너무 힘들면 “죽겠다”라고 합니다. 장난같이 말하지만, 거기에는 영적인 메시지가 깔려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겪는 모든 고난은 죽음의 모형들입니다. 그러나 죽을 것만큼 힘든 것이지 실제로 죽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진짜 죽음도 이기셨습니다. 그 주님을 믿는 우리도 죽음을 이길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어떤 고난과 시련 앞에서도 죽겠다고 말하지 맙시다.

어떤 권력자도, 재벌도, 인기인도 죽음 앞에서 다 덜덜 떱니다.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 죽음의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부활의 주님 앞에서 한 방에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사망의 너희 승리가 어디 있느냐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얼마나 통쾌한가요? 우리 인생 최악의 시나리오는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주님이 죽음을 이기실 수 있다면 그분이 이기시지 못할 문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업이 조금 힘들고, 건강 문제가 어렵고, 인간관계가 조금 어렵다고 해도… 다 죽음보다는 못한 문제들 아닌가요? 두려워하지 맙시다. 담대합시다. 문제 자체가 심각한 것보다 그 뒤에서 꿈틀거리는 죽음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부활 신앙을 가진 성도는 그때마다 “사망아 너희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를 선포합니다. 인간의 가장 무서운 문제인 죽음을 이기실 수 있는 주님이라면, 이 세상에서 이기지 못할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한 믿음으로 어떤 문제든지 기도로 주님께 나가야 합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께서 이기지 못할 문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2. 주님의 부활은 죄로 죽어있던 우리에게 하늘의 생기를 불어 넣는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 15:22)

첫 번째 아담이 지은 죄의 값을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치르십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우리의 죄를 덮어 주십니다. 우리의 죄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 삶을 얻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통과한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13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흑사병’(Black Death)을 주제로 맥스 루케이도(Max Lucado) 목사님이 이런 동화를 썼습니다.

이태리의 한 항구로 들어온 배 한 척으로 인해서 온 유럽에 무서운 죽음의 바이러스가 퍼져 나갔고, 수백만이 넘는 목숨들이 죽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만약 한 사람이 나타나 당시 유럽의 거리를 돌아다녔다고 가정해 봅시다. “내 손을 잡으세요. 그러면 당신은 살 것입니다.” 실제로 그의 손을 잡은 사람들은 이상한 기운이 자신에게로 옮아오는 것을 느끼면서 병을 이기고 벌떡벌떡 살아났습니다. 대신 사람들의 병균이 이 구세주 같은 사람에게로 옮겨가 그 사람은 갈수록 더 병색이 짙어가고 핼쑥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잡아 일으켰고 그를 만진 사람들은 하나씩 둘씩 다 살아났습니다.

바로 오늘의 본문이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으로 인해서 죄가 온 인류에게 전염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으로 인해 이제 죄를 이기는 은혜가 온 인류에게 전염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0)

부활을 통해 주님이 먼저 첫 열매가 되셔서 죽음을 이기실 것이고, 이어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수많은 성도들이 죽음을 이기고 영원히 살아날 것입니다. 그중에 저와 여러분도 포함되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13)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 전에 한 선포를 기억하시나요? “다 이루었다!”(It is Finished!) 즉, 이제 다 끝났다는 말입니다. “인류를 죄짓게 해서 멸망시키려던 너 사탄의 그 추악한 계획! 이제 다 끝났어! 이 십자가로 내가 인류의 죗값을 다 치렀어! 사탄아! 이 십자가 보혈을 붙드는 자를 너는 더 이상 터치하지 못한다. 그들은 이제 내 것이다. 내가 영원한 하늘나라로 데려갈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부활이 가져올 승리를 예언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그렇게 선포하셨을 때, 죽음의 공포도, 죄의 권세도 모두 십자가에서 부서지고 끝났습니다. 그 주님의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악된 옛사람도 완전히 끝났습니다. “이전 것을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절망적인 당신의 현실을 향하여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절망아 넌 끝났어! 난 이젠 살았어!” 과거의 실패와 상처와 두려움에 대하여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과거의 실패와 상처와 두려움들아, 너희들은 다 끝났어! 난 이젠 살았어!”

3. ‘첫 열매’의 의미

오늘 본문의 20절, 23절에서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라는 말씀을 거듭 반복하십니다. “부활의 주님이 첫 열매가 되셨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1) 다음 열매들을 위한 길을 열어 주심

“주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라는 말씀은 두 번째, 세 번째 열매들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열매를 시작으로 후발주자들 열매들이 계속 생겨날 것입니다. 군대에서 제일 앞에서 길을 여는 선봉부대처럼, 첫 번째 열매는 후발주자들을 위한 길을 열어 줍니다. 모두가 길이 없다고 생각하던 절망적 상황에서, 길을 낼 수 없는 곳에 길이 뚫리면 다들 환호성을 지릅니다. 이제 그 길 따라 다들 전진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이때껏 그 누구도 돌파해 본 적이 없는 장벽이었습니다. 그런데 부활의 주님이 그 죽음 한가운데로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주님의 뒤를 따라 그 길로 전진하면 영원한 생명으로 갈 수 있습니다. 미국의 한 목사님의 부활절 설교 예화가 기억납니다.

“한 마리의 큰 뱀이 바닷속을 헤엄치면서 많은 물고기를 집어삼켰습니다. 그러다가 날카로운 지느러미를 가진 한 물고기가 뱀의 뱃속에 들어가 너무 캄캄한지라 ‘여기서 못 살겠구나’하여 자기의 무기인 날카로운 지느러미로 그 뱀의 배를 찢고 나와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먼저 잡혀 먹힌 물고기들도 그 뒤를 따라 나와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뱀은 죽었습니다. 이 뱀이 바로 사망입니다. 뱀이 오랫동안 사람들을 잡아먹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까지 삼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음의 무덤을 열어 헤치고 나왔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고 죽은 자가 예수님을 따라 다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자의 산 소망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무덤 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이미 열렸습니다.”

전쟁터에서 가장 무서운 적장이 쓰러지고 나면 적진 한가운데로 길이 열립니다. 기세가 꺾인 적을 쓸어버리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무너뜨리셨습니다. 난공불락이라고 여겨지던 사탄의 진영 한가운데로 주님께서 돌파구를 여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치명타를 맞고 휘청거리는 적 진영으로 승리의 기세를 타고 진격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단을 두려워하거나 겁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대장되신 예수님만 믿고 따르면 백전백승합니다.

지난 2천 년 동안 수많은 순교자들이 복음을 위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도 사람인데 어떻게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었을까요? 부활의 주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열어주신 그 승리의 길로 수많은 순교자들은 담대하게 따라간 것뿐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셨듯이 우리 모두 부활할 것을 믿고 그들은 결코 육체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잠들었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으로 믿고 담대히 나간 것입니다. 우리가 더 이상 죽음 앞에 겁을 내지 않는 것은 죽음을 이기신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부활을 디딤돌로 하여 승리하는 인생으로 비상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했습니다. 열매는 자기를 위해 열리는 게 아니라 남을 위해 열리는 것입니다. 주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써,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어둠의 권세를 제압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능력에 힘입어 절망 같은 세상 속에 들어가 하늘의 생기를 불어 넣어야 합니다. 그것이 첫 열매이신 주님의 뒤를 잇는 후발주자들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2) D-데이와 V-데이: 주님의 부활과 최후 심판의 날 사이에서

영화 제작자들은 가장 먼저 영화의 끝 장면, 결론을 어떻게 낼 것인지를 정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영화를 만듭니다. 성경도 태초부터 지금까지 무서운 영적 전쟁이 전개되어 오고 있음을 말하면서 그 끝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계속해서 보여줍니다. 24절을 보면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실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은 눈에 보이는 모든 세상 권세와 그 뒤에 있는 악한 어둠의 세력들을 총괄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군대에도 영적 질서와 권위가 있듯이, 마귀들의 군대도 오합지졸이 아닌 자기들 안의 권위 체제로 짜여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 군사, 예술 등 모든 영역을 장악하고 있는 권력자들 뒤에는 그들을 조종하는 어둠의 권세들이 있습니다. 그 권세들의 제일 톱에 마귀 루시퍼가 있는데 그가 바로 26절이 언급하는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 사망”입니다.

마귀의 권세는 우리 영혼의 보좌에 앉아 우리를 컨트롤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 죽음의 권세를 꺾으시고 우리 영혼의 보좌에 좌정하시고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미국 HBO의 인기 드라마 중에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이라는 드라마가 있는데, 제목이 참 흥미롭습니다. 태초부터 우리의 영혼의 왕좌를 놓고 치열한 영적 전쟁이 벌어져 왔는데 그야말로 ‘왕좌의 게임’입니다. 이 게임의 종지부를 찍은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지금 세상의 정치권력, 경제권력 등을 잡고 있는 모든 세력들이 우리 눈에 보기엔 대단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세상의 권세들은 최후 심판 날에 예수님의 손에 의해 반드시 멸망됩니다. 그 멸망의 신호탄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세상의 역사는 반드시 끝이 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바로 그 끝의 시작입니다. 역사의 마지막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둠의 세력들에 대한 심판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이 사탄의 세력들을 반드시 멸망시킬 것입니다.

2차 대전 때도 보면 D-데이가 있고 V-데이가 있었습니다. 연합군이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한 날을 D-데이라고 하고 그로부터 수년 뒤 나치 독일이 완전히 항복하여 전쟁이 끝난 날을 Victory-데이라고 하여 V-데이라고 합니다. 알만한 사람들은 D-데이 이후에 이미 나치 독일의 운명은 기울었음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독일이 싸운 전쟁은 이미 패배가 확정된 군대의 마지막 발악일 뿐이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영적 전쟁의 승리의 신호탄 같은 D-데이입니다. 사탄의 권세는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치명타를 입었고, 그 뒤부터는 정신없이 수세에 몰리고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 이후 이미 사탄은 자신의 운명이 멸망으로 치닫기 시작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알고 있기에 지난 2천 년간 마지막 발악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사탄의 세력이 완전히 멸망당하는 최후 심판의 날 V-데이가 멀지 않았습니다. 모든 세상 권세와 그 뒤의 사탄의 권세를 심판하신 뒤에 주님께서는 사랑과 정의의 새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나라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하게 될 것입니다.

3) 부활의 능력으로 오늘을 살아가기

우리는 그 사실을 믿고 부활의 능력으로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부활은 단지 우리가 죽은 이후에만 오는 축복이 아닙니다. 지금 살아있는 순간에도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삽니다. 주님은 아득한 전설 속의 신화적 존재가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도 우리 안에 살아 계셔서, 우리에게 힘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분인 것입니다.

교회는 갈보리 십자가의 보혈로 태어난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새로운 종족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뛰어난 새로운 백성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기에 세상 사람과 다르게 삽니다. 우리는 죽은 신을 예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무덤에서 일어나 영원히 살아 계시며, 우리들에게 늘 임재하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하늘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끊임없이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살아계심을 확신하십니까? 그러면 사람에게 어려운 소리 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찬양합니다. 몸에 병이 들고 직장을 잃고 억울한 배신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이웃이 가진 재산과 명예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내 인생을 다스리신다는 확신, 그분이 내 상처는 고치시고, 내 아픔은 치유하신다는 확신, 그분이 내 슬픔 변하여 기쁨 되게 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삽니다. 모든 절망의 순간이 그분의 능력으로 인해 기적의 순간으로 바뀔 것을 기대하며 삽니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주님께서는 죽음을 뚫고 우리를 위해 돌파구를 열어주신 것처럼, 우리 인생에서 죽음같이 힘든 장벽들을 뚫고 돌파구를 열어주실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인생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힘들게 다가오는 장벽은 무엇인가요? 직장, 사업, 건강, 자녀 문제, 여러분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이 부활절에 부활의 능력으로 그 장벽을 돌파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첫 열매 되신 주님께서 먼저 가셔서 그 장벽을 뚫고 길을 열어 주십사고 기도합시다. 부활하신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위해 승리의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한홍 목사

UC버클리대학 졸업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에서 석사
풀러신학대학원에서 미국 교회사로 박사
온누리교회 양재캠퍼스 수석부목사
횃불트리니티 리더십센터 원장
한동대학교 겸임교수
(現) 새로운교회 담임목사 (2009년 개척)

■ 저서
『폭풍 속의 은혜』, 『하나님의 경영』, 『내게 힘을 주는 교회』, 『종교 개혁 히스토리』, 『하나님이 내시는 길』, 『아멘 다음이 중요하다』, 『결말을 알면 두렵지 않다』, 『기독교 에센스』 등
작성자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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