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장 19-25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지옥은 어떤 곳일까요? 지옥의 아주 간단한 정의는 첫째 하나님의 은혜가 미치지 않는 곳이며, 둘째 사랑이 없는 곳이고, 셋째 공의가 없는 곳입니다. 지옥은 살아 있으나 죽음과 같은 곳입니다. 그러면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천국은 바로 지옥의 정의와 반대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완벽한 다스리심이 있고, 둘째 사랑이 있으며, 셋째 공의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면서 천국은 살아 있으면서도 아픔이나 슬픔은 없습니다. 즐거움과 기쁨만 있습니다.

그런데 지옥과 천국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두 가지 극단적인 태도를 불러옵니다. 첫째는 ‘미래가 없으니 오늘 잘 먹고 잘 누리다가 그냥 가자(사라지자)’. 둘째는 ‘미래가 없고 지금 힘드니 그냥 지금 여기서 생을 마감하자’라는 식의 태도입니다.

죽어봐야만 사후의 세계를 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내 인생에 대해서 너무 무책임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 가운데 아직 죽어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아는 분명한 사실은 누구나 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죽는다는 것에 대한 아주 분명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죽음 이후의 세계를 모른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인생도 없습니다.

죽음 이후를 모르면 사실 오늘을 살아가는 것도 본질적으로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내일을 모르는데 오늘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여러분 중에 다음 주면 죽을 사람이 있는데 그다음에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면 그게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아니 오늘이 얼마나 무의미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이별하는 것을 상상해 보셨나요? 여러분 자녀들을 영원히 볼 수 없다는 것을 상상이나 해 보셨습니까?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어머니를 영원히 볼 수 없다는 것. 사랑하는 내 남편, 내 아내를 영원히 볼 수 없다는 것. 이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제 내 남편을 안 만날 것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오시는 분들도 간혹 있으신가요? 아니면 내 아내보다 더 예쁜 여자를 만날 생각에 꿈에 부풀어 계신 분이 있나요? 아니면 하도 험하게 살아서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이건 어때요? 여러분 자신과 영원히 이별하는 것을 상상해 보셨나요? 답이 없이 이런 생각들만 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아니면 아예 귀찮아서 ‘그냥 죽어보면 알겠지’하면서 오늘을 살면 얼마나 미련합니까? 그런데 우리가 이런 생각들을 막연하게 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 주변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는 오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실 뿐만 아니라 그 이후도 영원히 계신 분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기를 원합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2천 년 전 유대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땅에 살고 있는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을 연결하는 것이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습니다. 죄의 결과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영생에 대한 축복도 사라진 것입니다. 죄는 인간이 가진 모든 축복을 파괴했습니다. 창조주로서 하나님의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요? 놀랍게도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할 목적으로 자신의 아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인간의 형상대로 이 땅에 보내셔서,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심으로 사망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거룩한 교환’(Holy Exchange)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뒤집어쓰시면서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죽음의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그 대가로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의롭다 여김’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십자가 사건을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자녀 삼아 주시고,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제시하신 유일한 구원의 방법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을 위해서 아들을 십자가에 대신 죽게 하신 사건만으로도 엄청난 사건이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시는 사건이 없으면 사실 우리가 믿는 모든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결론입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5장을 영어성경으로 보면 ‘What if’로 계속 질문을 합니다. What if는 어떤 사실을 반대로 가정을 해보는 것입니다. ‘What if there is no resurrection?’(만약 부활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만약, 부활, 즉 다시 사는 것이 없다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합니다. 가장 먼저는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한번 죽으면 영원히 그것으로 끝난다는 결론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하는 복음 증거가 헛됩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죽은 분을 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우리의 믿음의 기초도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모든 믿음은 사실 헛된 것이고, 우리는 거짓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고전15:13-15)

그리고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는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셔야만 우리에게는 십자가 사건이 영원한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고전 15:17-19)

결론적으로 부활이 없다면 주님을 믿고 먼저 죽은 자들도 다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우리보다 먼저 죽은 사랑하는 자들이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도 죽음에서 다시 살리시지 않았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다시 부활하는 소망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믿음이라는 것은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것인데,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죽은 대상은 우리가 따라야 할 소망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지금 이 모든 말들은 진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문학적으로 사용하는 ‘역설’입니다. 예수님은 사실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셨고, 삼일 째에 다시 살아나시리라는 말씀을 제자들에게 거듭해주셨습니다. “내가 죽어야 너희를 살리고, 내가 살아야 너희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라는 말씀을 자주 해주셨습니다. 죽은 지 삼일이나 되어서 시체 썩은 냄새가 나는 친구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 25-26)

예수님은 살아 계실 때에 당신 스스로가 부활이고 생명의 근원이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본보기로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는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이야기한 사도바울은 본론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0) 

예수님께서 모든 사망의 권세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주님을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소망이 되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최초의 인간의 범죄로 죄가 들어온 아담의 저주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고전 15:21)

‘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22절은 한 사람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 15:22)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죄를 범해서 우리가 죄인으로 태어났다고 해도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모든 믿는 자가 새로운 삶을 얻는 기회가 새롭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영광스러운 부활절을 기념하는 이 시간에 ‘부활’이라는 것이 왜 이토록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소망이 되는지 그 이유를 성경적으로 한번 쉽게 정리해 봅니다.

1. 부활은 모든 것을 갚아 주기 때문이다(과거에 대한 치유)

부활이 우리에게 소망인 이유는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겪는 모든 어려움을 부활 후에 모두 제거해 주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과거의 우리의 실패를 더는 겪지 않게 해줍니다.

다시는 이 지긋지긋한 못난 자아와의 싸움을 안 해도 된다는 것, 내 영혼을 갉아먹는 미움, 시기, 질투, 원망, 분노가 더 이상 나를 괴롭힐 수 없다는 것, 더는 썩어질 것들을 몰래 흠모하며 들킬까 염려하고 갈등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남들과 비교하며 얻을 수 없고 가지면 안 되는 것을 갖고 싶어 몸살 나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더는 오해받고, 오해하고 머리 싸매고 드러눕고, 마음 아파하며 올라오는 신물을 삼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 끝도 없는 욕심, 욕망의 그물에서 헤어나려고 몸부림치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근거 없는 외로움과 고독, 자기 연민으로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밤을 지새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 밑바닥이 깨진 항아리처럼 그 수많은 은혜와 축복이 한순간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바닥을 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다시는 인생을 비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수많은 감사의 조건보다 단 한 가지의 불만족이 나의 모든 기쁨을 잡아먹을 때 오는 실망감을 더는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 다시는 사람들에게 나의 본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가면과 허식과 위장으로 나를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부활은 무엇보다 이 땅에서 예수님을 닮기 위해 나의 옛 자아를 죽이기 위해 몸부림치던 이런 모든 영적인 여정을 값어치 있게 해준다는 데 능력이 있습니다. 또한 부활은 이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들을 섬기느라 손해 본 것들을 갚아 주십니다. 특별히 한 영혼을 사랑하고 복음 증거를 위해서 애쓴 모든 것들을 갚아 주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과거를 치유하여, 우리의 모든 수고를 값있게 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2. 부활은 오늘을 의미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현재에 대한 최선)

과거가 정리되고, 미래가 결정된 사람은 오늘에 최선을 다해 살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의 사역의 마지막에 죽음을 앞두고 디모데후서 4장에서 이런 멋진 고백을 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딤후 4:7-8)

부활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도 현재에 최선을 다합니다. 삶의 분명한 목표가 있고, 그 사명을 잘 이룬 자에게 분명한 보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 신앙은 오늘 하루 나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3. 부활은 내일을 소망 가운데 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미래에 대한 소망)

부활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바로 나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처음으로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며 모든 수치 속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나의 신랑 예수님을 직접 만나게 된다는 것, 내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완전한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잠든 나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 더는 이 땅에 억울하고 소외되고 굶주리고 악의 공격으로 고통당하며 죽어가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 사탄이 다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공격하지 못한다는 것, 아니 더는 악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

여러분! 부활은 죄로 물든 인류의 모든 어둠과 고통과 눈물과 억울함과 악의 잔재들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 되신 나의 신랑 주님과 매일매일 감격과 기쁨 속에 감사와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는 것입니다. 부활은 이 세상에서 느껴보지 못한 완전함과 온전함을 맛보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보지 못한 태초 에덴의 아름다움, 내가 좋아하는 모든 동물과 뛰어놀며, 생전 처음 보는 모든 아름다운 피조물들을 맞이할 수 있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제는 삑사리 안 내고 가장 아름다운 천상의 목소리, 깨끗한 영으로 주님을 찬양할 수 있고, 누구나 기타 치고, 누구나 드럼 치고, 누구나 성가대나 찬양을 할 수 있고, 제자훈련을 안 해도 되고, 금식도 없고, 고난 주간도 없으며, 성경 암송도, 제직 회의도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부활의 영광을 통해 천국에 있는 모두를 온전히 끝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태초의 에덴보다 더 많은 온갖 맛있는 과실의 열매를 먹으며 더 이상 고기가 먹고 싶은 생각에 몸 떨림이 없다는 것. 부활은 모든 것을 치료하시고,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고, 모든 것을 온전케 하시는 새 생명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렇게 확실하고 좋은 것이 부활인데 아직 확신이 없으시다고요? 여러분. 보험 아세요? 자동차보험. 건강보험. 비즈니스보험. 여행자보험. 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의 모든 사람이 대부분의 생활에 보험처리가 됩니다. 생명보험도 있습니다. 근데 생명보험은 사실 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죽으면 그 돈은 다 내 가족에게 갑니다. 생명보험이 나를 구원해 주는 게 아닙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그렇게 많은 보험이 필요한데, 여러분은 진짜 죽음 이후의 생명에 대한 보험은 들어 있습니까? 만약에 정말 부활이 있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것은 보험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영적 진리에 거하는 것입니다. 나의 생명과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땅의 근원인 흙을 취하셔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호흡을 그 코에 불어 넣으셔서,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반드시 기억해야 영원한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영원하시고, 그분이 하신 말씀이 영원하고, 그리고 그분이 창조하신 인간의 영혼이 영원합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행 24:15)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 5:28-29)

영국의 무신론자들이 한때 버스에 이런 문구를 크게 써 붙이고 광고했습니다. ‘There is no resurrection.’(부활은 없다.) 이런 문구에 현혹되어 인생을 의미 없이 사는 사람들을 보다 못한 크리스천들이 그 옆에 이런 문구를 광고했습니다. ‘But what if?’(그러나 만약에 있다면?)

며칠 전에 사회복지부 사역자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목사님. 오○○ 형제와 김○○ 자매를 아시지요. 오 ○○, 김○○ 성도는 농인으로 장애를 갖고 있지만, 주일마다 아이와 함께 농아인 예배에 출석하며 신실하게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잘 아시듯이 오○○ 형제와 김○○ 자매는 선천성난청 장애 2급의 장애를 가진 부부입니다. 이 부부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딸 아이가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아이가 태어날 때 탯줄이 목에 감겨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날 때부터 뇌 병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제대로 걸어보지 못하고 아프지 않았던 적이 없던 딸 아이였는데, 두 부부는 올해 1월 다섯 살 된 어린 딸아이를 하나님께 먼저 보내드렸습니다. 소천하기 전날 모 기독교방송국에서 그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프로그램이 소개된 몇 시간 후에, 부르심을 받게 되어 가족들이 더욱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께서 이 소식 들으시고 많이 위로해주시고 기도해주셔서 ○○형제와 ○○자매가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많은 교역자의 기도와 위로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부부가 부활절을 맞아 “살아계신 주” 온라인 특송에 참여했습니다. 두 부부가 천국 소망, 부활 신앙이 없이는 정말 부를 수 없는 찬양이기에 더욱더 감격이었습니다. 지금도 일자리 찾기가 어렵고 아이를 돌보며 생겨버린 석회로 어깨는 아프지만, 예수님께서 살아계시기에 부활의 소망으로 오늘을 살아냅니다. 찬양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 언젠가 주 오실 때에 어린 딸 ○○이를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목사님 전해 주신 하나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더 깊이 알게 되고, 부활의 소망으로 찬양할 수 있게 되어 감사를 드립니다.

최성은 목사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Ph. D.)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M. Div.)
한국 침례신학대학교(B. A.)
타코마제일침례교회 담임목사 역임(9년)
뉴올리언즈 및 미드웨스턴 침례 신학교 겸임교수
국제 KOSTA 강사 및 이사
Northwest Baptist Convention(NWBC) 실행이사
미 남침례교단 소속 미국 국내 파송 선교사
네슈빌 다리놓는교회 개척, 다운타운 홈리스 사역
(現) 지구촌교회 담임목사

■ 저서
『생수를 마셔라』, 『예배의 창문을 열라』
작성자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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